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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들 앞에 도적같이 오신 그리스도!

작성자bansuk

작성일2018-02-11

조회수2,168

주일 낮 말씀

본문: 마태복음24:32-51

제목: 이방인들 앞에 도적같이 오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시겠다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도적의 비유를 들어 그것을 말씀하시고 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 알았다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24:42-44). 이를 두고 기독교인들은 공중에 재림하시는 예수님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데살로니가전서4:16절을 보면 예수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때는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 수 있도록 오신다고 했기 때문에, 본문에서 도적같이 오신다고 하는 말씀과는 전혀 다르다.

 

그럼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시는 이유가 무엇이며 또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아래서 살고 있다는 말은, 하나님도 모르고 이방인으로 살던 사람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는다. 그 증거로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보내주셨다. 성령을 선물 받은 이방인들은 그때부터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을 따라 살아야 하는 의무가 따른다. 그런데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성령의 법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람을 통해 다시 오시는 것이다. 이는 마치, 율법아래 갇혀 있던 유대인들이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통하여 자범죄(율법을 거역한 죄)”원죄(아담이 지은 죄)”를 해결 받아 온전한 구원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오늘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아담이 지은 원죄는 예수 피를 통해 이미 해결 받았기 때문에, 이제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만 해결 받으면 기독교인들도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현제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보좌에 계시는데, 어떻게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신다는 말인가? 사도행전 9장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어떻게 사람을 통해 다시 오시게 되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려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여 주여 뉘시오니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9:3-6).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울에게 빛()으로 다시 오신 이유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에 열두제자가 있었으나,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할 자들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예수께서 직접 사울 마음속에 영()으로 들어가셔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울의 겉모습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나, 그의 마음속에는 부활하신 예수가 계셔서 말씀하였던 것이다. 장차 기독교인들 앞에 오실 그리스도 역시 똑같은 모습으로 오신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2:20절에서 고백하기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성령이 아닌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자는 바로 이와 같은 고백을 하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 받은 것을 가지고 바울처럼 자신도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말하고 있는데,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받은 성령은 사도바울 마음속에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 영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거듭날 수 없다. 그 이유는 성령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만 지배하신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거듭나려면 반드시 인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한다. 지성소에 하나님이 계시고, 성소에 예수가 계셔야 하듯이, 인간의 영()은 성령이 지배하고, 인간의 마음속에는 그리스도가 계셔야 한다. 그래야 기독교인들이 타락으로 가지 않는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혼동한 나머지, 성령 받은 것을 가지고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주장하며 방종의 삶을 살고 있는데, 이는 악한 영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먹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AD65년경에 목 베임을 당하여 죽게 되자, 그때부터 이방인들 입을 통해 전해지는 복음은 예수가 빠진 알맹이 없는 복음이 되고 말았다. 예수가 빠진 알맹이 없는 복음이란? 복음을 전하는 자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이 전해주는 말들이 모두 알맹이 없는 복음이다. 그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지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게 되자,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자신도 사도바울처럼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신약성경을 보니까 유대인들이 예수 믿고 성령만 받으면 무조건 구원이라고 하자, 기독교인들 역시 우리도 예수 믿고 성령 받았으니까 무조건 구원이라고 믿어버린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은 받았지만, 자신들 마음속에 예수가 계시지 않다보니,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육신에게 져서 모두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다. 이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기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께서 또다시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람을 통해 2천 년 전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씨를 뿌렸다면, 2천년이 지난 후 사람을 통해 그 열매를 직접 거두러 오신 것이다. 현제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마음속에 예수가 계시지 않아 쭉정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사함 받고 알곡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누구를 통해 어떻게 오시는지 모르기 때문에 늘 깨어있어야 한다. 만약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는 그리스도가 자기 앞을 스쳐지나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 도적같이 오신 예수를 믿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글로 한번 설명해보자! 어떤 사람이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고 각각 성령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그중에 한 사람은 A집사요 다른 한 사람은 B집사이다. A집사는 집안이 넉넉하여 많은 배운 사람이라 똑똑하다. 그에 반해 B집사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하였다. 그러다보니 맨날 A집사로부터 도움을 받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B집사에게 사도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찾아오셨다. B집사는 그때부터 자기 뜻대로 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이다. 그러자 A집사는 B집사가 자기를 따르지 않고 이상해졌다며 자꾸만 핀잔을 주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B집사가 A집사를 조용히 불러 사실 내 마음속에 부활하신 예수가 들어오셨다고 말하자 A집사가 콧방귀를 꿰면서 혹시 자네 귀신에게 홀린 것 아니냐며 도리어 B집사를 힐난하며 나무란다. A집사가 알곡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B집사를 구세주로 보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자신보다 못한 자를 구세주로 믿어야 하는 현실이 자기 눈앞에 펼쳐졌을 때 과연 그를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와 같은 일이 성경에도 나온다. 예수가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 많은 병자들이 예수를 구세주로 믿자 많은 병들이 치료되었다. 하지만, 자기 고향에서는 병자들이 치료되지 안했다. 이는 예수에게 능력이 없어서 치료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를 요셉의 아들 또는 마리아의 아들로 보았기 때문에 병이 치료되지 않은 것이다. 고향 사람들이 예수를 다윗의 자손(메시아)으로 믿어야 자신들의 병이 치료될 터인데, 한낮 보잘것 없는 마리아의 아들로 보았으니 병이 치료될리 만무했던 것이다.

 

이런 일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공중에 재림하시는 예수와 달리 이방인들 앞에 도적같이 오시는 그리스도는 가장 천하고 낮은 자를 통해 오시기 때문에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그를 쉽게 믿을 수 없다. 이사야 53장을 보면,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서 사람들이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이는 바로 마음이 높아진 자들과 교만한 자들로 하여금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 앞에 오시는 그리스도 역시 사람들 앞에 전혀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 자를 통해 오시는 것이다. 이는 바로 마음이 높아진 자들과 교만한 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오늘날에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가장 천하고 낮은 자를 통해서 오시기 때문에, 그를 믿기 위해서는 자신을 죄인으로 한없이 낮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를 믿을 수 없다. 그리고 그를 믿지 못하면 죽는 날까지 그가 그리스도인줄 모르고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지금도 메시아를 기다라고 있는 것은 예수를 메시아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귀 있는 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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