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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작성자bansuk

작성일2018-10-29

조회수540

주일 낮 말씀

본문: 야고보서2:14-26

제목: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의 뜻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쓸모 있게 가꾸어 놓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그가 하신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좋은 예로 부자 청년이 예수를 찾아와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묻는다. 그러자 예수께서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시자, 그 청년이 가로되 어느 계명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 땅에서 지켜야 할 여섯 가지 계명들을 말씀하시자,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는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고 묻는다. 그러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데 가서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고 말씀하시자, 그 부자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면서 떠나는 것이다.

 

부자 청년이 자신은 계명들을 지켰으니까 틀림없이 영생에 들어갈 것으로 믿고, 예수께 그런 질문들을 하다가 마지막에 예수께서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데 가서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고 말씀하시자, 거기서 자기 꾀에 자신이 넘어지고 말았지만, 만약 그 청년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었더라면, 그가 영생을 얻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더 나아가, 그도 예수의 제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을 것이다. 성경에는 이런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서 질문을 던졌다가 도리어 본인이 곤란한 처지에 놓이고 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이 만약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깨닫고, 거기서 돌이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행동으로 옮겼더라면 그들은 모두 영생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를 믿지 않은 자들이라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도 한 사람도 자신을 돌이키는 자가 없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니까 자신의 살아 있는 믿음을 보인답시고, 자기 생각에 불쌍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데려다 밥을 먹여주기도 하고,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찾아가 온갖 굳은 일을 다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요즘은 거리를 떠도는 노숙자들에게 매일 식사를 제공하는 교회들과 밥 퍼주는 단체가 많이 생겨서 오갈 데 없는 분들에게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이런 사람들을 육신적으로만 보면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하는 분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큰마음을 먹지 않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믿음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믿음이란? 우리 생각대로 행동 하는 것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을 듣고 우리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두고 믿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가령, 부자 청년에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데 가서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을 듣고 그가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두고 믿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취하고 있는 행동들은 모두가 자기 생각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이라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믿음하고는 거리가 멀다 하겠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목숨을 걸어야 한다. 좋은 예로 라합 기생이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몰래 숨겨주었을 때, 그녀가 만약 여리고 군인들에게 들키기 날에는 그녀의 목숨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으나, 그녀는 자기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겨 주었던 것이다. 다말 역시 목숨을 걸고 시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집안의 대를 잇게 하였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진들 중 어느 누구도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는 자가 없다. 예수님 당시에도 목숨을 걸고 예수를 찾아오는 자들이 많았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당시 혈루증은 부정한 병이라 하여 밖으로 함부로 돌아다니다가는 사람들에게 돌을 맞자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죽음을 무릎 쓰고 예수를 찾았던 것이다. 예수께서도 그 여자를 보시고 여자여!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에서, 그녀가 얼마나 힘든 발걸음을 하였던 가를 알 수 있다. 중풍병자가 지붕을 뚫고 내려왔던 사건이나, 문둥병자가 예수를 불러 세우고 자기를 고쳐달라고 하는 사건들 모두가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이렇게 믿음에는 반드시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는 믿음의 행동들은 어떠한가?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는 일인가? 그리고 밥 퍼주는 일 또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 것은 맞지만 과연 자기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는 일인가?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가서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하는 일이 과연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일까?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믿음의 행위와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의 행위가 어떻게 다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따라서 자기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것들은 모두 성경이 말하고 있는 믿음의 행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지만,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내용하나도 제대로 순종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자기 마음속에 죄악이 가득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순종하려면 자신의 생각을 버려야 하는데, 자신을 생각을 버리려면 결국 자기 목숨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어느 누가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성령의 뜻을 좇아 행하려 할까? 이로 미루어보아 자기 목숨은 곧 자기 죄악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어느 누구도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성경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니까 자신은 결코 죽은 믿음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기 생각에 따라 길거리에 나가 밥 퍼주는 일을 하기도 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기도 하고,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찾아가 봉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믿음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뒤따르게 되어있다. 가령,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 아들을 받치라고 말씀하셨다, 그 뒷일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을 져주시는 것이다. 에스더가 자기 민족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왕의 부름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왕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왕으로 하여금 홀을 내밀어 에스더를 죽지 않게 하신 후, 에스더로부터 전후 사정을 전해들은 왕이 이스라엘을 죽이려 했던 하만을 죽이고 도리어 이스라엘 민족을 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나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은 예수가 자기 어머니로부터 술이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여자여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말을 하지만, 마리아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하인들에게 그가 무슨 말을 하던지 그대로 따르라고 말하자, 예수께서도 할 수 없이 물을 떠다가 항아리에 채우라고 말하자,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믿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뒤 따르게 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기 생각을 따라 하는 행동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뒤따르지 않는다. 이는 바로 하나님께서 혹은 예수께서 시켜서 하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에, 지금까지는 성령을 거역하고 살아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였으나, 앞으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누구나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셨을 때, 그가 하시는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동하게 되면, 기독교인들 역시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가령, 어떤 자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에 이르게 됩니까?” 하고 물었을 때, 그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이 처해 있는 환경과 현실에 따라 각각 어떤 말씀을 해주실 때,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믿음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목숨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부자청년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령, 오늘날 재산을 수백억이나 가진 어떤 사람이 영생을 얻겠다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찾아와서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이번에도 당신이 가진 재산 전부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쫓으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리스도를 쫓을 사람이 과연 기독교인 중에 몇이나 되겠냐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자는 부모나 형제나 자매를 모두 버리고, 그리고 죽을 각오를 하고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 중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실천할 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실천하는 것이 곧 믿음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실천하는 것이 곧 행함이다. 이렇게 믿음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함이 뒤따라야 한다. 이것이 곧 산자의 믿음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만 하고,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죽은 믿음을 가진 자이다. 이런 자는 입으로만 예수 믿는다고 말할 뿐, 행동으로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 이런 자가 태반이라는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아래서 믿음의 기준도 없이 살아왔지만, 앞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오셨을 때에는 그리스도가 하시는 말씀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누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느냐에 따라서 알곡과 쭉정이로 나눠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행동으로 옮기는 자는 알곡으로 인침을 받게 될 것이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도 죽는 것이 두려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자는 쭉정이로 버려지게 될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처럼 자기 생각을 따라 행동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 자기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서 하나님의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부터라도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무엇이고, 자기 생각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확실하게 구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귀 있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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