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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작성자bansuk

작성일2018-12-09

조회수541

주일 낮 말씀

본문: 마태복음15:1-9

제목: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나아와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라고 묻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말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페하는도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위 내용을 살펴볼 때, 유대인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마음도 없이 입술로만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예수께서 나아와 왜 당신의 제자들은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더 큰 계명을 어기고, 무조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말하기만 하면,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여겼다. 성경을 보면 이런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실 이런 일 때문에 예수와 바리새인들 간에 부딪히는 잦았다. 그들은 언제나 율법을 들이대며 예수를 코너로 몰아붙였으나, 그때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너희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도다라고 말씀하시면 그들의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을 책망하셨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어떤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계명에 따라 안식일에는 불도 피우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안식일에 불을 피울 수 없기 때문에 안식일 전날 모든 음식을 준비해둔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유대인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하게 잘 지키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안식일 전에 음식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이, 밥은 먹어야 되겠고, 안식일이라 불은 피울 수 없고, 그렇다고 온 식구가 하루 종일 굶을 수는 없고, 그리하여 궁리 끝에 생각해낸 방법이 안식일에 저촉을 받지 않는 이방 사람을 대리고 와서 불 좀 피워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직접 불을 피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식일 법에 걸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하면 안식일 법에 걸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안식일에 불을 피울 수 있게 되었다며 굉장히 좋아하겠지만, 이를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어찌 생각하시겠는가? 마음도 없이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그들이 얼마나 가증스럽게 느껴졌겠는가?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이 정도인데,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시겠는가?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하셨는데, 마음도 없이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저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피눈물을 흘리시는 것이다.

 

심지어 전기불이 들어온 요즘에도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전등도 켜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안식일에 전등불을 켜야 할 일이 생기면, 이때도 안식일에 저촉을 받지 않는 이방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고 한다. 과연 이것이 진정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자세라고 볼 수 있겠는가? 예수로부터 책망을 들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마음은 없고 오직 형식에 치우쳐 하나님을 경배하였으니,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는 책망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어떨까? 율법의 보호를 받고 태어난 유대인들이 저 정도라면, 율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죄 아래 태어난 이방 기독교인들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 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겉 다르고 속 다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어떤 목사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오직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교회를 개척한다. 처음에는 가진 것이 별로 없다보니 지하실에서 교회를 시작한다. 교회를 시작한 그때부터 개척교회 목사는 성도들을 보내달라고 죽기 살기로 기도한다. 그러다 성도 몇 명이 불어나게 되면 그때부터는 빨리 지하실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다가 교인 숫자가 좀 더 불어나게 되면, 임대교회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다가 자가 교회를 갖게 되면, 이번에는 더 큰 교회를 갖기 위해 성전을 건축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리하여 목사는 꿈에 그리던 큰 성전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과연 그 목사가 정말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니면 큰 교회를 갖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 목사가 기도한 내용을 들어보면 전자보다는 후자 쪽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목사에게 물어보면 그는 당연히 영혼에 관심을 더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기독교인의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이다. 어디 그 목사만 그러겠는가? 오늘날 모든 교회 목사들이 다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혹여 자신은 오직 인간의 영혼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모두 자신을 속이고 있는 자들이다. 인간의 영혼은 오직 그리스도께서만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도 죄악 속에서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인간의 영혼을 죄에서 구원할 수 없다. 따라서 아직도 죄아래 살고 있는 인간으로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모든 교회 목사들이 큰 교회를 갖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목사들 말로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큰 교회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자기 명예 즉,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더 나아가 자신의 위상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큰 교회를 선호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입술로는 이것이 곧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며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의 속마음이 세상에 들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교인들은 목사들의 그런 말에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다. 교인들이 목사들 말에 속는 이유는, 자신들 역시 목사들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짜 인간의 영혼에 관심을 가지신 예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새도 거처할 곳이 있지만 나는 이 땅에 몸 하나 거처할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무슨 절차와 형식이 필요하며, 무슨 큰 교회가 필요하겠는가? 하는 말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속이고 있는 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우리나라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자식의 앞날에 대하여 걱정을 더 많이 하고 있다. 그리하여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공부시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강남에 사는 학부모들은 보통 자녀들에게 고액의 사비를 들여 7~8개의 학원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런 학부모들에게 묻는다. 자식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공부시키는 이유가 뭐냐고? 그럼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모두 다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 공부시킨다고 하는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식이 출세를 하면 부모는 얻는 것이 없을까? 당연히 부모의 위상 또한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부모는 그런 사실을 모두 숨긴 체 오직 자식의 앞날을 위하여 공부시키는 것이라고 둘러 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은 모습이다.

 

이런 일은 인간들 세상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일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그것을 죄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도 예외일 수는 없다.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우쭐되는 사람이라도 겉 다르고 속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여전하다. 기독교가 불신자들에게 개독교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기독교인들의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 때문이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기독교인들은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 때문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더욱더 손가락질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기독교인 스스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독교인들의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방인 가운데 한 사람을 통하여 빛()으로 다시 오시는 것이다.

 

빛으로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악들을 찾아내주시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주인으로 들어가시게 된다. 인간의 마음속에 주인으로 들어가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동안 인간의 마음속에서 주인 노릇을 하며 온갖 죄를 짓게 하던 더러운 영(죽은 영)들을 모조리 쫓아내주신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던 죽은 영이 떠나게 되면, 그때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다시 태어나게 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다시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인격의 삶을 살지 않게 된다. 그리스도가 믿는 자의 마음속에 계신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이런 자를 당신의 자녀라 일컫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성령을 받으면 자기 마음속에도 그리스도 계신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지 않는다. 만약 기독교인들 말대로 성령이 그리스도 영으로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면, 기독교인들이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여전히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다시한번 말씀 드리지만,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고, 하나님 영이라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실 수가 없다. 만약 성령이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게 되면 아직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지 못한 기독교인들로서는 모두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게 된다. 따라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셔야 할 분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셨던 예수 그리스도 한분뿐이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오셔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끝까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거부하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우쭐되다가는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들처럼 끝내는 멸망으로 가게 될 것이다. 이런 자들을 향해서 오늘도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하신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귀 있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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