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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작성자bansuk

작성일2019-02-10

조회수336

주일 낮 말씀

본문: 로마서7:7-25

제목: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인간이 처음 지음 받았을 때는 선하게 지음 받았으나, 아담이 마귀 꾐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자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게 되었다.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게 되자 하나님은 죄인과 함께 할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인간 곁을 떠나야 했다. 하나님께서 인간 곁을 떠나게 되자 마귀가 인간의 영혼(靈魂)을 지배하게 되었다. 인간이 비록 죄로 말미암아 마귀 발아래서 살게 되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두부류로 구분하여 한쪽 부류는 마귀에게 내어주고, 다른 한쪽은 하나님의 성신으로 인간의 마음을 붙들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인간들이 마귀 발아래 살다가 혹시라도 하나님을 영영 잊어버리게 될까봐 한쪽 부류는 늘 함께 해오셨다.

 

성경을 보면 항상 선과 악이 등장한다. 아담의 후손으로 가인과 아벨이 등장하는데, 이 두 사람 중에서 가인은 악으로 그리고 아벨은 선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가인에게도 족보가 있고, 아벨에게도 족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인의 혈통에서 태어난 자들의 영()과 혼() 모두가 마귀와 귀신에게 지배를 받으며 사는 자들이고, 아벨의 혈통에서 태어난 자들의 영()(아직 예수가 피 흘려주시기 전이라) 마귀의 지배아래 살지만, 그들의 혼() , 마음만은 하나님의 신으로 보호해 주셨던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신으로 보호 받는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일컫는다. 아벨의 족보에 들어 있는 자들이 1천년씩 사는 반면, 가인의 족보에 들어 있는 자들은 죄로 말미암아 오래 살지 못하고 수명이 짧았다.

 

그런데 창세기 6장을 보면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6:1-3). 여기서 사람의 딸들이란? 가인의 족보에서 태어난 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가인의 족보에서 태어난 자들은 모두 사단의 자식이요 죄인들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인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과 결혼 하게 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자는 여자 말을 듣게 되어 있다. 따라서 당시 제아무리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도 사람의 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풍습을 쫓아 살다보면 당연히 하나님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얼마나 하나님의 실망이 크셨으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6:5-7).


그러나 그들 중에서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6:8).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더라도 언제나 당신의 씨는 남겨두신다. 노아가 바로 그런 자이다. 노아의 족보는 아브라함까지 이어진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으나, 몸종인 하갈에서 태어난 이스마엘은 악의 자녀로, 그리고 사라의 몸에서 태어난 이삭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다. 이삭은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오실 예수를 예표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그들 중에서 오직 예수를 믿는 자들만 천국에 들어갈 것을 예표하고 있다. 그리고 이삭에게도 두 자녀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상태 즉, 리브가의 뱃속에서 선택을 받는다. 형 에서는 버림을 당하고, 야곱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다. 야곱의 예표는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오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기독교인들 또한 무조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 앞에 야곱의 예표로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 천국에 들어갈 것을 예표하고 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유대인들은 태어나자마자 율법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마음 중심에 죄가 없으나, 레위기에 기록된 대로 온갖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어 마음중심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마음중심이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면 정신이 혼미하게 되고, 그때부터 신앙생활은 형식적으로 하게 된다. 여기에 더하여 율법의 중한 것을 거역하게 되면, 하나님의 저주로 육체가 병이 들게 되고, 육체가 병 들면 죄인으로 낙인찍혀 성전에도 들어가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도 드리지 못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유독 병든 자들이 많았던 것은 모두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보호를 받고 태어나기는 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마지막에는 모두가 율법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만다. 이를 해결해 주시고자 해서 하나님 아들이 육체를 입고 오셨다. 하나님 아들이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은, 두 가지 목적을 완성시키시기 위해서다. 첫째는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다. 마귀는 천사가 타락하여 된 것이므로, 인간의 흠 없는 피 없이는 절대로 마귀를 멸할 수 없다. 하나님의 권세로도 마귀는 멸할 수가 없다. 만약 하나님의 권세로 마귀를 멸할 수 있을 것 같았으면, 굳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필요가 없다. 죄 없는 예수 피로만 마귀를 멸할 수 있었기에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목적은, 귀신을 멸하기 위해서다. 기독교인들은 마귀와 귀신을 하나로 보기 때문에 예수 피로 인간의 모든 죄가 해결되었다고 믿고 있는데,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마귀는 천사가 타락하여 된 것이지만, 귀신은 죄를 벗지 못하고 죽은 인간의 혼령(魂靈)이다. 따라서 귀신은 자기 수명이 다할 때까지 구천을 떠돌다가 수명이 다하면 무저갱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마귀는 인간의 육체를 입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인간의 몸 밖에서 미혹을 역사하여 죄를 짓게 한다. 그러나 귀신은 인간 속에서 나왔기 때문에 죄가 가득한 인간의 마음속에 언제든지 들어가서 인간을 죄 짓게 한다. 귀신이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과정은, 똥이 있는 곳에 똥파리가 날아드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당신의 아들에게만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사해주시는 권세를 주셨다. 이에 따라 율법을 거역하여 육체가 병 들었거나 또는 율법을 범한 세리와 창기들이 예수를 찾아와 믿게 되면,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귀신을 불러내서 쫓아 주시거나 또는 그들의 죄를 사해주셨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통하여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았다고 하여 곧장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마지막으로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하늘로 승천하시고 난 뒤에 성령을 받게 되는데, 그때야 비로소 유대인들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마귀를 심판 하신다. 심판을 받은 마귀는 세상 임금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는데, 이때 에덴동산에서 인간 곁을 떠났던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오셔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의 영()을 다시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먼저는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게 되고, 그 다음으로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마귀가 심판을 받고 떠나게 되면, 그때야 비로소 성령의 지배를 받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는 세상 임금인 마귀를 멸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 어느 누구든지(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성령을 보내주신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 백성도 아닌 이방인들도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다고 하여, 유대인들처럼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하다가는 사단의 올무에 걸리게 된다.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만 할뿐 기독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게 되면, 예수께서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의 죄를 먼저 사해주셨기 때문에 곧장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하나님 백성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곧장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은 성령을 받는 그 순간부터가 하나님 백성으로서 시작을 하게 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기독교인들은 누구나 의무적으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죄 가운데서 태어나다보니 마음속에 누구나 죄악을 가지고 있다. 이 죄악이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게 방해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독교인들도 마지막에 가서는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말게 되었다.

 

이방인들에게서 이것을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셨던 그리스도께서 2천년이 지나자 사람을 통해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신 것이다.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이라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불신자라도 혹은 타 종교에 속한 자들이라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나 영생에 이를 수 있다. 그리스도는 만유 앞에 공평하신 분이라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믿기만 하면 영생에 이를 수 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이방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찾아와 귀신들린 자기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예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해 개들에게 줌이 마땅하니라"고 말하자, 그 여인이 "네 맞습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나이다" 라고 말하자, 예수께서 그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이방인들 앞에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도 이 세상 어느 누구든지 당신을 믿기만 하면, 그동안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영생에 이르게 해주실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한 기독교인이라도 또는 큰 교회를 담임하던 목사라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그들의 죄가 도말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성령을 받으면 곧 구원 받았다고 하는데,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았다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계셔야 한다. 그래야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도 기독교인들이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증거다. 마귀는 천사가 타락하여 된 자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올 수 없다. 귀신만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영인 성령 또한 한 번도 인간의 육체를 입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한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만 들어오실 수 있다. 따라서 성령은 마귀 발이래서 나온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역할만 하게 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여 모두가 영적인 율법아래 갇혀 있는 것이다. 이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적인 율법의 완성자로 오셔서 기독교인들을 영적인 율법아래서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사도 바울 또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고 우쭐되던 자였으나, 그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보니, 자신이 비로소 어떤 자인지 깨닫고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 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7:19-24).

 

바울 말처럼 기독교인들 또한 마음 중심에는 아직도 죄악이 가득하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모두가 자신의 죄악을 숨기고 싶어 한다. 그 이유는 만약 자신의 죄악이 들통 나게 되면, 자신이 구원 받지 못한 것이 들통 날까봐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본심(죄악)을 숨기려 한다. 특히나 기독교인들 중에서 성령을 구원 받았다고 하는 자들과 자신의 의(義)로 충만한 자들은 더더욱 자신을 숨기려 한다. 만약 자신의 죄악이 들통 나게 되면 어찌 되겠는가? 그래서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자신을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 더더욱 기를 쓰고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 것이다.

 

바울도 자신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본인 역시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도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고 우쭐될 때는 자신의 본심(죄악)이 들통 나는 것을 두려워 해서 숨겼던 것이다. 그러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보니, 자신이 얼마나 자기 죄악을 숨기려 했던 가를 비로소 깨닫고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고 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보니 모든 것이 다 죄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라며,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을 감사하고 있다.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자기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자신의 죄악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래도 하나도 창피하지 않는다.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담대해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을 숨기려 한다. 그 이유는 만약 자신의 숨은 죄악이 들통나게 되면,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놓았던 좋은 이미지와 자기 아성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다니며 입으로 예수 이름을 부른다고 하여 불신자들의 마음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도 지금은 자신의 죄악(본심)을 숨기려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되면 그때는 바울처럼 자신의 죄악을 모두 솔직하게 털어놓게 될 것이다. 자신의 본심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고 있다.


생각해 보라! 자신의 죄악을 숨기고 사는 것이 마음 편하겠는가? 아니면 자신의 죄악을 모두 털어놓고 마음 편히 사는 것이 좋겠는가? 당장은 자신의 죄악을 덮고 사는 것이 편해 보일지 몰라도, 그렇게 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오늘날 모든 인간들이 근심과 걱정에 휩싸여 사는 것은 자신의 본심을 감추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을 감추려 하는 것이 죄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한평생을 죄속에서 허우적 거리다 육체는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게 되나, 인간의 영혼은 죄를 벗지 못했으니 마귀와 함께 타는 유황 불못에 던져지게 된다.


그리고 인간 스스로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교만할 수밖에 없다. 교만한 마음을 사단이 붙들고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스스로는 절대 자신의 죄악을 털어놓지 못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죄악을 모두 털어놓고 싶어도 마음중심에 자신을 책임져줄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죄악을 털어놓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만이 자신의 본심을 숨기지 않고 모두 털어놓고 마음 편히 사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자신을 책임져 주시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가 자신의 주인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에게도 어서 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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