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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자!

작성자bansuk

작성일2019-03-03

조회수77

주일 낮 말씀

본문: 고린도전서13:1-13

제목: 온유한 자!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

 

온유(溫柔)하다는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온유하다는 그런 뜻으로 쓰인 말이 아니다. 그럼 성경이 말하는 온유한 자란?’ 어떤 자를 두고 말하는지 그 뜻을 살펴보기로 하자!

 

미국 서부개척 시대에 야생마들을 잡아다 길들여 사용하는데, 야생마들이 워낙 힘이 세고 날뛰기 때문에 길들이기가 여간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 야생마를 길들이는 한 방법으로 집에서 기르던 당나귀를 말고삐에 함께 묶어 놓아두게 되면, 야생마가 당나귀를 이끌고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당나귀와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야생마가 처음에는 당나귀를 떼어내려고 날뛰지만, 줄에 매달려 있는 당나귀가 떨어져 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지친 나머지 결국 자신을 포기하고 얌전해진다는 것이다. 그때 주인이 얌전해진 야생마를 데려다 길들여 사용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溫柔)라는 말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거칠고 난폭한 성품이 따뜻하고 부드럽게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설사, 야성이 남아 있다하더라도 그 야성은 오직 주인만을 위해 사용되어져야 한다. 주인이 뛰라고 하면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는 전쟁터라도 쏜살 같이 달려 나가야 하고, 반대로 아무리 더 달리고 싶어도 주인이 고삐를 잡아당겨 서라고 하면 그 자리에 딱 멈춰 설수 있어야 한다. ‘온유한 자는 이렇게 철저하게 주인을 위해 길 들어져 있어야 한다. ‘온유한 자는 주인의 성품을 닮아 어떤 때는 산들바람처럼 부드러울 때도 있지만, 때로는 태풍처럼 거세게 몰아칠 때도 있어야 한다.

 

우리가 온유(溫柔)라는 말을 듣고 느끼는 어감은 왠지 부드럽고 연약해 보인다. 우리 속담에 물에 물탄 듯 술에 술 탄듯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행동이 분명치 않은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온유도 잘못 받아들이게 되면 이러한 자에 비유 될 수 있다. 또 다른 표현으로 온유한 자는 타협에 능해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뜻으로 사용되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에서 사용되는 온유(溫柔)는 무기력하거나 연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인 손에 붙들린 온유한 자는 때로는 온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질풍노도처럼 달리기도 한다. 이런 온유한 자는 결코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아래서 죽도록 신앙생활 해도 결코 온유한 자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고 하나님 영이라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실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리스도의 손에 붙들려야만이 '온유한 자'로 변화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성령은 인간의 마음속에 오실 수 없기 때문에 성령으로는 변화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더 나아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마음속으로 성령을 따라 살게 함)을 주시기 위함이지, 기독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성령이 충만한 자라고 해서 성령의 열매인 온유함을 평생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는 잠깐 동안 온유함이 나타날 수 있겠지만, 성령 충만이 사라지고 나면 온유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성령 충만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 속에서는 온유한 자가 나올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5:22,23절을 보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기독교인들 속에서는 절대 온유한 자가 나올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바울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기독교인들이 나를 이단으로 혹은 사이비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설명하는 말을 끝까지 들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바는,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먼저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게 된다. 그런 후 예수께서 마지막에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마귀를 멸하고 성령을 받게 된다. 이때 유대인들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유대인들 마음을 성령이 전적으로 지배하게 되어 성령의 열매를 내놓을 수 있게 된다. 바울은 바로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의 경우를 가리켜 성령의 열매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도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었으나, 자신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성령의 열매가 무엇인줄 알고 이런 글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바는, 아직도 기독교인들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사함 받지 못한 자들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로서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 때문에 죽었다 깨어나도 성령의 열매를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은 자가 전적으로 성령의 지배를 받을 때만이 내놓을 수 있는 열매인데, 아직도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지 못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의 열매를 내놓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인들 속에서는 아직 온유한 자가 나올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현제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 속에서 온유한 자가 나오려면,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로는 어림없고, 반드시 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서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라서, 옛 사람이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다. 그래서 진짜로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니고 예수 이름만 부르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진짜 예수를 믿으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셨을 때, 그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진짜 예수를 믿는 자이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반드시 자신의 옛 사람이 죽게 되어 있다. 옛 사람이 죽어야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런 자가 바로 성령의 열매를 내놓을 수 있는 자요 성경이 말하는 온유한 자이다.

 

오늘날 예수를 믿고 성령까지 받았는데도 아직도 자신의 옛 사람이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다면, 그런 자는 아직 구원 받지 못한 하나님 백성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 백성이란 말은 아직도 하나님 법을 따라 사는 죄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자는 진짜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천국에도 들어갈 수 없다. 그럼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되는가? 기독교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다시 오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래서 기독교인들도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혹여 지금까지 먹고 사느라고 교회를 등한시했거나 또는 교회에서 상처를 받아 교회를 멀리했거나, 올바른 말씀을 전해주는 곳이 없어서 방황하다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가나안 성도들이 있거든, 이제부터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율법을 거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유대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육체를 입은 예수께서 오셨듯이, 부활하신 그리스도 역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다시 오셨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열일을 제처 두고라도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자신의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자만이 영생에 이를 수 있다. 옛 사람이 살아 있는 자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이 유명한 큰 교회 목사요 성령이 충만한 자요 능력이 많은 자요 천리를 꿰뚫어볼 수 있는 예지 능력을 가진 자라도, 옛 사람이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다면 그런 자는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자이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1-3) 말하고 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 깨달았던 것은, 결국 인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아니하면, 고전12장에서 말하는 성령의 은사로 어떤 일을 하였더라도 그것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만 부르고 있을 뿐 진짜 예수 믿는 것이 아니다. 예수 이름만 불러도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의 효력 때문에 모든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다. 심지어 나는 예수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뇌사에 빠진 자식을 살려달라고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셨다. 나도 처음에는 성령이 전부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 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내 마음속에 들어오시고 난후에야 비로소 나또한 성령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한 영으로 보고 있는 것은,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아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자가 없기 때문에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한 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받은 자 외에는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실 수가 없다. 그러나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셨던, 예수께서 우리가 그를 믿기만 하면 얼마든지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실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속에 세워지는 그리스도의 무형교회이다.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자는 천국이 내 안에서 먼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의 영광을 입고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다시 오시게 되었음으로, 이제 기독교인들에게도 진짜 예수 믿을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기독교인들 중에서 알곡과 쭉정이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제 판가름 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마음이 높아진 자들과 교회에서 높은 감투를 쓰고 있는 자들과 부한 자들은 교만한 마음 때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성령을 따라 살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는 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이런 자가 바로 온유한 자요 하나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자들을 두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다시한번 말하거니와 성령을 받았는데도 아직도 자신의 옛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당신은 아직도 옛 사람 그대로 있는 것이니, 깨닫고 돌이켜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자신의 옛 사람을 먼저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천국은 바로 이런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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