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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하라!

작성자bansuk

작성일2019-06-09

조회수105

주일 낮 말씀

본문: 마태복음5:43-48

제목: 원수를 사랑하라!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용들을 과연 기독교인들이 제대로 지키고 있는 것일까? 외람되게도 기독교인들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 말씀을 지킬 수가 없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죽은 영)들이 말씀을 지킬 수 없도록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거역한 중대한 죄인이란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어디 이 뿐인가? 미워하지 말라!” 미워만 해도 이미 마음속으로 살인한 것이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지 말라!”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자요. 도적질 하지 말라!” 남의 물건을 탐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으로 도적질을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하신 이런 말씀들을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거역한 '중한 죄인'이란 사실을 망각한 체, 도리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우쭐되고 있다. 왜 기독교인들 모두가 이런 잘못된 함정에 빠져 있을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진리의 말씀을 전해주실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성령만 받으면 모든 죄를 사함 받아 구원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는 그 순간이 구원 받는 순간이 아니라, 그동안 불신자로 사단의 발아래 살다가 이제야 비로소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성령의 법)을 받고, 하나님 백성으로서 첫 출발을 알리는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다보니,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왜 성령을 먼저 보내주셨는지, 그리고 성령이 자신들에게 무슨 역할을 하는지, 그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이걸 모르고 신앙생활하다 보니 마치, 사공이 많은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교단마다 교리가 다르고, 교회마다 성경해석이 다르고, 성도들마다 각각 생각이 다른 것이다. 각자의 생각이 이렇게 다르다보니 교단이 나누게 되고, 교회가 나누게 되고, 성도들 간에도 하나가 되지 못하고 끼리끼리 당을 지어 활동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도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율법아래 살도록 하셨지만, 유대인들 역시 율법을 주신 이유를 모르고 신앙생활하다 보니까 도리어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다가, 마지막에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마저 배척하다가 끝내는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왜 예수를 배척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이 자신들에게 무슨 역할을 하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걸 모르게 되면 당시 유대인들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마지막에 사람을 통해 다시 오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배척하다가 끝내는 멸망으로 가게 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무조건 성령만 받으면 모두가 구원이라 여기고, 그때부터 안하무인으로 살아간다. 기독교인들에게 구원이 완성되려면 적어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모든 죄가 사라지고 없어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아직도 죄악이 그대로 남아 있다. 왜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까지 받았는데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악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일까?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오시지 않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이 사라지지 않는다. 매번 드리는 말씀이지만,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그것으로 그들은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지만, 율법도 없이 개, 돼지처럼 날마다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던 이방인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 백성으로서 첫출발을 시작하는 단계인 것이다. 따라서 성령은 기독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영적인 율법'을 주러 오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성령만 받으면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도리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을 이롭게 하는 행위이다.

 

그럼 이스라엘 백성도 아닌,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어떻게 오시게 되었는가를 살펴보고, 더 나아가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성령을 거역하게 되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방 불신신자가 처음 전도를 받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도 첫 사람 아담이 지은 원죄(마귀 발아래서 벗어남)’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다.


만약 율법도 없이 사단의 발아래서 살던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지 않으면, 이방인들로서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성령을 보내서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먼저 확인시켜 주신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는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그 순간이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마음속에 주신 율법)'을 받은 순간이므로, 그때부터 기독교인들은 누구나 의무적으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만약 성령을 받고도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게 되면 모두가 죄 아래 갇히게 된다.  


처음 성령을 받게 되면 누구나 뛸 뜻이 기뻐한다.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불로 임하기 때문에 누구나 처음 성령을 받으면 가슴이 뜨겁다. 가슴이 뜨겁다보니까 세상 모든 것이 다 사랑스러워 보인다. 처음 성령을 받으면 눈이라도 빼줄 것처럼 또는 전재산이라도 다 받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처음 느꼈던 사랑이 점점 식어져서 나중에는 감감조차 무뎌지고 만다. 감각이 무뎌지고 나면 죄의식도 못느끼며 살게 된다. 먹고 살기 바빠서 세상 일에 치우다가 뒤늦게 자기 마음이 황페케 된 것을 깨닫고 처음 느꼈던 사랑을 회복해보려고 기도원을 찾아가 금식기도도 해보고, 온갖 부흥회를  쫓아다녀보지만, 그때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기독교인들이라면 누구나 한 두번씩 이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가? 그 이유는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서, 우리 마음속에 오시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이 충만할 때(성령의 강한 지배를 받을 때)는 죄악(미움, 시기, 질투, 분노, 음란, 거짓, 탐욕)들이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기 때문에, 이런 죄악(생각)들이 덜 올라온다. 그때 기독교인들로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치 죄악들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구원 받은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고 살려다보니 어쩔 수 없이 세상과 접촉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특히 기독교인들로서는 세상과 명확한 경계구분이 없이 살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세상 것들을 탐하게 되어, 결국은 성령을 멀리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죄요. 성령을 거역한 죄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하게 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점점 멀어지게 되므로, 그때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던 죄악들이 다시 고개를 쳐들고 올라와서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악한 영들은 성령과 멀이지기만을 늘 엿보고 있다. 그러다가 믿는 자가 한순간이라도 성령을 멀리하는 순간 기회를 틈타서 고개를 내밀고 올라와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악한 영(죽은 영)'은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지만, 마귀는 타락한 천사라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올 수가 없다. 따라서 마귀는 인간의 몸밖에서 끊임없이 믿는 자들에게 세상 것들을 탐하도록 유혹한다. 그리하여 믿는 자가 사단의 계략에 말려 세상 것들을 탐내는 순간,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악한 영'이 여지없이 고개를 쳐들고 올라와서 인간들을 죄짓게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여,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숨어 있던 악한 영(죄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날마다 깨어 성령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어느 누가 하루종일 성령만 의지해서 살 수 있겠는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직장도 다녀야 한다. 그리고 직장에 다닐 수 없는 자는 장사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 직장이나, 장사를 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세상 사람들과 접촉을 하게 되고, 세상 사람들과 접촉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성령을 거역하게 된다. 그래서 이방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거역하지 않고 살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기독교인들의 이런 사정을 잘 알고 계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사정을 잘 알고 계시면서도,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기독교인 모두를 성령의 법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다. 기독교인 모두를 성령의 법아래 가두어 놓아야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을 때, 이방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성령을 어긴 죄를 들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앞으로 달려 나와서,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게 되면 어찌 되겠는가? 이는 사단으로 하여금 기독교인들을 마음 놓고 지배하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사단이 기독교인들 마음을 지배하여,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가르쳐놓게 되면, 기독교인들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에서 성령을 구원 받았다고 하는 말은, 교인들을 배나 지옥자식 만들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수께서도 바리새인, 서관, 율법사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했던 것은, 그들이 유대 백성들에게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가르쳐 놓아서, 유대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배나 지옥자식을 만들어 놓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흙탕물 비유로 설명해 보자! 우리가 흙탕물을 병에 담아 한참동안 놓아두면 흙은 가라앉고 맑은 물만 위에 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다가 다시 병을 흔들어 놓게 되면 가라앉았던 흙이 올라와 병속의 물을 온통 흐려놓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 마음속도 모두 이와 같은 원리로 작용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만 받아서는 결코 마음속에 들어 있는 흙탕물(죄악)이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흙탕물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맑은 물을 공급해 주실 분은 오로지 부활하신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계셔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던 흙탕물(죄악)이 모두 빠져 나가고 맑은 물이 공급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흙탕물(죄악)이 남아 있는 한, 어느 누구도 원수를 사랑할 수 없다. 그리고 미움, 시기, 질투, 분노, 음란, 거짓, 도적, 탐욕 (죄악)등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오늘날 대형교회 목사라도 또는 사람들에게 존경 받은 유명한 인사라도 돈과 여자, 그리고 명예에서 넘어지는 이유가 바로 자기 마음속에 흙탕물(죄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계시지 아니하면, 천하 없는 어떤 자라도 끝에 가서는 다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지 아니하면, 제아무리 돈이 많고, 제아무리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자라도 마음이 공허할 수밖에 없다. 마음이 공허하다는 말은 앞날이 불안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무엇인가 붙잡지 않으면 그 불안을 떨칠 수가 없기 때문에, 세상에서 돈이면 무엇이던지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욕심을 내는 것이다.

 

좋은 예로, 부자들이 하루에 수백억씩 돈을 벌어도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부자도 자신의 앞날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들 또한 무엇인가 붙잡고 있지 않으면 공허함을 채울 수 없기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가는 돈이라도 붙잡고 있으려는 경향 때문에, 그렇게 많은 재산을 갖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기업을 문어발처럼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는 부자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 모두가 다 똑같이 무엇인가를 붙잡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모두가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과 더불어 마귀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본문을 다하기 위해 오늘도 끊임없이 인간들로 하여금 죄 짓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죄지은 인간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 자신들의 본분에 충실한 것이다. 마귀와 더불어 '죽은 영'들도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서 저렇게 발버둥치는데, 기독교인들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생각만 할뿐 '악한 영'들의 활동에 비해 너무도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     

 

내가 아는 어느 유명한 교회 목사님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그분은 이름만 대면 우리가 금방 알 수 있는 대형 교회 목사다. 그런데 그 목사가 자신은 돈과 여자, 명예에 대해서 깨끗하다고 자랑하는 것을 보았다. 과연 그게 사실일까? 그 목사가 겉으로는 돈과 여자, 명예에 대해서 깨끗할지 몰라도, 그도 마음으로 남을 한번이라도 미워해봤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를 보고 한번이라도 음욕을 품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크고 좋은 교회를 갖고 싶어서 욕심도 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깨끗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예수 앞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그가 교회를 크게 짓 고자 했던 것은, 순전히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한 것이지, 하나님을 위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명예를 위해 살지 안했다고 거짓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지은 죄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이 곧 성령을 거역한 죄다. 어디 이런 사람이 한국 교회에 한 두명이겠는가?

 

그러나 그 목사는 자신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거역하고, 성령의 뜻을 저버렸다는 생각을 전혀 못할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 앞에서 그런 행동을 보였다. 만약 그 목사가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지 못한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들 앞에 다시 오셨을 때, 그는 무슨 죄를 들고 그리스도 앞으로 달려 나갈 것인가? 말씀을 거역한 죄와 성령을 거역한 죄를 들고 나가야 하는데, 자신은 깨끗하다고 자랑을 했으니, 그가 그리스도 앞으로 달려 나갈 일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높은 감투를 쓰고 있는 자들일수록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원수는 오직 예수께서만 사랑할 수 있다. 따라서 현제의 기독교인들로서는 누구도 원수를 사랑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 앞에서 죄인으로 손 들라는 것이다. 손을 들게 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시겠다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직접 들어 오시게 되면, 그때는 기독교인들도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때는 원수만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움, 시기, 질투, 분노, 음란, 거짓, 도적, 탐욕등과 같은 죄도 짓지 않게 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시기 전에는 악한 영들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였지만,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들오시자, 그동안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던 악한 영’들이 모두 물러가고, 그리스도가 새 주인으로 좌정하시게 되므로 더 이상 기독교인들도 죄를 짓게 않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설사, 인간의 몸밖에서 마귀가 죄를 짓도록 유혹을 해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모신 자는 결코 마귀의 꾐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 아래서는 천하 없는 어떤 자라도 '악한 영'과 마귀의 꾐에 넘어가게 되어 있다. 

 

그 이유는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령만 받아서는 기독교인들이 절대 온전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말은, 사단을 이롭게 하는 말로서 스스로 자신을 사단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키고 마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고 외치다가 자신들 스스로를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집어넣고 말았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거짓목사들이 가르치는 어리석은 말에 속지 말고, 이제 곧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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