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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작성자bansuk

작성일2019-09-29

조회수323

그리스도 주일 말씀

본문: 마테복음22:1-14

제목: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예수께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말씀하신다. 여기서 청함을 받았다는 말은 초청을 받았다는 말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하시는 말씀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으면 우리 모두가 택함을 입은 것 아닌가? 그런데 예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대로라면 초청을 받은 자들 속에서 또다시 누군가로부터 택함을 입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누가 초청을 받은 자들이고, 누가 택함을 입은 자들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실 이방인들처럼 초청을 받고 온 사람들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굳이 초청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면,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냈을 때, 이스라엘은 그때 이미 초청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초청을 받았다고 하여 그것으로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믿어야 택함을 입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 그 후손들을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 하게 하신 후, 모세를 통해 애굽을 탈출하게 하신다. 그들이 홍해바다를 건너고 바란 광야를 지나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받았다는 말은, 사단의 백성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고 하여 곧장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성령을 받아 땅에서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고 하여, 그것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해결받아야 할 죄가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에,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기 전에는 기독교인들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해결 받을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살 때는 바로의 법을 따랐으나, 율법을 받은 후부터는 하나님이 주신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나 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온전히 지키며 산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잘 알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를 율법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다. 율법아래 가두어 놓아야 마지막에 하나님 아들이 오셔서 율법아래 갇힌 자들을 죄에서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런 깊은 뜻을 모르고,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뿐,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의롭게 될 수 없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를 모르고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우쭐됐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계획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만다. 그렇더라도 하나님이 계획했던 일은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된다. 어느 덧 유대인들에게도 2천년의 시간이 흐르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약속한 때가 이르면 너에게 가리라는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예수를 보내서 율법아래 갇힌 자들을 죄에서 구원토록 하신 것이다.

 

그런데 율법을 어겨 모두가 죄인이 되어 있어야할 유대인들이 도리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예수를 배척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말씀 1~8절까지가 그런 내용들이다. 본문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님 백성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거부했을 때는 어떠한 형벌을 받게 되는지 그것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자신과의 관계를 혼인잔치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의롭게 된 나머지 온갖 핑계를 대면서 혼인잔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불러오라고 보낸 종(선지자)들까지도 능멸하고 죽이자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 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라”(22:7-8).  

 

유대인들이 혼인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하자, 하나님께서는 눈을 돌려 이번에는 이방인들 중에서 아들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자들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하나님 백성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하나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 이방인들이 아들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려면, 먼저 사단의 발아래서 나와서 하나님 백성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백성이 되고 난 후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법(영적인 율법)아래서 약 2천년 동안 살아야 아들과 혼인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유대인들도 율법아래서 2천년을 살게 하신 후, 아들과 혼인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 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이라 누구도 변개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이방인들과 혼인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셨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아들 또한 하나님 백성이 아닌 자들과 혼인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셨다. 그런데 이방인들 스스로는 사단의 발아래서 나올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실을 아시고 이방인들이 사단의 발아래서 나올 수 있도록 장애물을 제거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세상 임금인 마귀를 멸해 놓았기 때문에, 이방인들 중에서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는 아담이 범죄한 '원죄'를 해결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선물로 보내줄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3:8). 


이방인들이 유대인(하나님 백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마귀가 죄 없는 예수를 죽인 것이 불법이 되기 때문에, 마귀는 세상 임금으로서 권세를 잃게 되어 더 이상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자기 발아래 둘 수 없게 되었다. 그때부터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마귀 발아래서 나와서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도 그때부터 이 세상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아담이 범죄한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보내주시고, 그들을 하나님 백성 삼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이방인들도 비로소 아들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바로 아들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초청을 받고 온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하나님 백성 삼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이방인들로서는 예수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조건 예수 이름을 부를 수가 없기 때문에, 사도 바울 같은 자를 이방인들 앞에 보내서, 그를 통해 여러 가지 이적과 표적을 보여주도록 하여 이방인들로 하여금 예수 이름을 부르도록 하고 성령을 받게 하신 것이다. 바울이 죽은 후에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부어주시고, 그들에게 따르는 여러 가지 이적과 표적을 보여주도록 하여, 이방인들 누구나 예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성령을 선물로 보내주셨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땅에서 하나님 백성(기독교인)들의 숫자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게 되었다. 이들 모두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초청을 받고 온 사람들이다.

 

그동안 사단의 발아래 살던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게 되자,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며 기뻐 어찌줄 모른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고 가장 먼저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과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라는 사실이다. 사단의 발아래 살때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예수가 누군지도 모르고 살았지만, 성령을 받고보니까 이런 사실들을 모두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모여 교회라는 공동체를 세우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사람들이 바로 기독교인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에게 성령의 뜻대로 살 것을 말씀하신다. 그동안 사단의 발아래서 죄악을 먹고 마시며 자기 멋대로 살았지만, 이제 성령을 받고 하나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자기 뜻대로 살던 방식을 버리고, 성령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영적인 율법'이다. 


기독교인들이 처음 성령을 받고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구원 받았다며 좋아했지만, 기독교인들도 자신의 구원을 완성시키려면 성령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죄악 때문에 어느 누구도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영적으로 표현하면 '죽은 영' 혹은 '악한 영'이라 부른다. 예수께서도 유대인들에게서 죄를 해결해 주실 때마다 "더러운 귀신아 거기서 나오라!" 또는 "네 죄를 사하노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모두 동격으로 같은 말이다. 죄를 영적으로 표현하면 귀신이다. 


죽은 영의 활동을 알기 쉽게 표현하면, 똥이 있는 곳에 항상 똥파리가 들끓듯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 때문에 '죽은 영'들 또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악한 영'들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뱀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서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날마다 방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아무리 성령이 충만한 자라도 끝에 가서는 성령을 소멸하고 말기 때문에 결국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여 넘어지고 마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타락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은,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가령,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미워만 해도 살인라고 말씀하셨으니까 미워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를 보고 음욕만 품어도 간음이라고 말씀하셨으니까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성경에는 기독교인들이 지켜야할 여러 가지 말씀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이 기록되어 있다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 모두가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영적인 율법이다.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하나하나 마음속으로 다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성령이 충만한 자라도 처음 몇 번은 남을 미워하지 않고 살 수 있다. 그리고 여자를 보고 얼마동안은 음욕을 품지 않고 살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서 남을 미워하게 되고, 여자를 보면 또다시 음욕이 올라오고 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성령을 받았어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죄악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성령이 충만했을 때는 육신의 소욕을 절재할 수 있지만, 성령을 소멸하게 되면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느 누구도 성령의 뜻대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도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의 뜻대로 살 것을 말씀하신 것은, 기독교인 모두를 영적인 율법(성령의 법)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다.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영적인 율법아래 가두어 놓아야,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성령을 거역한 죄에서 기독교인들을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법과 영적인 율법은 동격으로 같은 말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이런 깊은 뜻을 모르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며 우쭐되는 것이다. 유대인의 예에서 보았듯이,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뿐,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의롭게 될 수 없는데,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날뛰던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영적인 율법으로는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할뿐, 영적인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는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을 영적인 율법아래 가두어 놓았던 계획이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초대교회로부터 시작한 기독교 역사도 시간이 흘러 2천년이 지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약속한 때가 이르면 너에게 가리라는 말씀대로, 기독교인들 앞에도 당신의 영적인 아들(부활하신 그리스도)을 보내 주시게 되었다. 성령을 거역하고 영적인 율법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였기 때문에 모두가 죄인이 되어 있어야할 사람들이 도리어 영적인 율법(성령)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예수를 배척하던 유대인들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 있다.

 

오늘 본문말씀 9~14절까지를 보면, 이방인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거부했을 때 어떠한 형벌을 받게 되는지 그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자신과의 관계를 혼인잔치에 비유하고 있듯이, 부활하신 그리스도 역시 자신과 기독교인들과의 관계를 혼인잔치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본문 9-10절을 보면,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한 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여기서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고 한 것은, 전 세계에서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잔치에 손이 가득한지라이라고 말한 것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전 세계에서 초청장을 받고 모여든 모든 기독교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음 말씀을 보면 기독교인들이 왜 천국문턱에서 넘어지게 되는 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 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 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22:11-13).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땅에서 하나님 백성이 된 것은, 천국에 들어가 위해서 초청장을 받은 것일 뿐 아직 천국백성이 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성령만 받으면 그것으로 그리스도의 택함을 입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천국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너는 왜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왔느냐?” 하고 묻는 것이다. 이 말은 너는 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하고 묻는 말이다. 그러자 그가 아무 말도 못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는 그가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왜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왔느냐?”하고 물었을 때, 그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 말도 못했던 것은, 그가 세상에 있을 때 틀림없이 하나님 아들들을 통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 말도 못했던 것이다. 만약 그가 살아생전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된다고 하는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면, 그는 하나님에게 어떤 항변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물음에 아무말도 못했던 것은, 자신의 잘못을 그제서야 깨달았기 때문에 아무말도 못했던 것이다. 그가 바깥 어두움에 쫓겨난 후에야 자신을 한탄하며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죽은 후에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육체가 살아 있을 때 회개를 해야 그나마 자신의 육체가 죄악을 감당해주기 때문에 자신의 영혼이 살 수 있다. 천사가 타락하고도 죄를 용서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자신이 지은 죄를 감당할 수 있는 육체가 없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되면 다시는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천사들은 처음 지음을 받을 때부터 완벽한 존재로 지음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루시엘이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하다가, 그만 죄를 짓고 영계에서 맨 밑바닥 세상(스올)으로 쫓거나서 되었다. 


인간들이 천사들보다 못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지만, 육체가 있다는 것이 죄를 지었을 때는 천사들보다 훨씬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자신이 지은 죄를 해결 받아야 한다. 죽어서는 육체가 없기 때문에 죄를 해결 받을 방법이 없다. 정신 나간 사람들이 죽은 후에도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사단의 하수인들이 인간들을 안심시키려고 하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은 절대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이 말씀은 전 세계에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초청을 받고 온 사람(기독교인)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정작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는 자는 적다고 하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성령을 거역한 죄(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초청을 받은 자에 머물고 만다. 이에 따라 청함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택함을 입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택함을 입은 자를 두고, 예복을 받은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복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두고 하는 말로서,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 마음속에 영으로 들어가서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시는 것을 두고 예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주인이 된 자들은 다시는 사람 손으로 지은 건물(예배당)에 나가 생명의 없는 자들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선생이 되어 자신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다시는 사람의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 예루살렘 성전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듯이, 기독교인들 또한 그리스도가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시면, 그때는 기독교인들에게도 더이상 예배당이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오늘날까지도 예배당에 나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은, 아직 그들 속에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계시지 않다는 증거이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하루빨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자신들에게 보내달라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셔야 기독교인들의 구원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시면, 기독교인들도 그때는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일을 그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다보니,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를 왜 드리고 있는지, 그 이유도 모르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도 성전에서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있었던 것은, 예수를 하루빨리 자신들 앞에 보내달라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왜 제사를 드리고 있는지 그 이유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제사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예수가 오셨을 때, 그들이 믿지 않고 배척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이유를 모르게 되면, 유대인들처럼 자신을 죄에서 구원해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배척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정작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해 줄 그리스도를 이단 괴수라며 손가락질 하고 문전박대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기독교인들의 현주소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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