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말씀 보기

HOME > 주일낮설교 > 주일설교말씀 > 보기

제목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작성자bansuk

작성일2019-10-06

조회수30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마태복음25:31-46

제목: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마태복음 25장은 예수께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다. 1절에서 13절까지는 신랑이 오실 때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자들과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자들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14절부터 30절까지는 장사하러 떠난 세 사람의 이야기를 각각 담고 있다. 그리고 30절부터 46절까지는 양과 염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양일까? 염소일까? 지금부터 자신이 양에 속한 자인지 혹은 염소에 속한 자인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유대인들 속에서 누가 양이고, 누가 염소인지 구분해 보는 것이, 우리 자신을 알아 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유대인들의 실태를 알게 되면, 기독교인들 속에서도 누가 양이고, 누가 염소인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율법의 보호를 받고 태어난 자들이다. 다시 말해 마음 판이 이방인들처럼 죄악으로 물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으로서 자긍심이 대단했다. 이방인들은 죄악 가운데 태어나다보니 날마다 죄악을 먹고 마실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반해, 유대인들은 율법의 보호를 받다보니 율법만 어기지 않으면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들 눈에 이방인들은 개, 돼지로 보였던 것이다. 개가 토한 것을 도로 주워 먹고, 돼지가 자기가 싼 똥 위에 도로가서 눕는 것을 보고 이방인들을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이 율법을 온전히 지킨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다. 유대인들이 아무리 율법의 보호를 받고 있을지라도, 인간의 영()이 마귀 발아래 놓여있는 이상 율법을 거역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도 이미 그것을 잘 알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유대인 모두를 율법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다. 유대인들을 율법아래 가두어 놓아야 유대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그들을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와 아담이 지은 원죄에서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런 계획을 전혀 모르고 있다 보니, 지구상에서 유일무이하게 자신들만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이라 하여, 그들의 의()가 하늘을 찔렀다. 이런 자들 앞에 하나님 아들이 오신다 한들 그들이 믿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약속한 기한 이를 때에 너에게 가리라 한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유대 역사 2천년 마지막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셨다. 하나님의 본래 계획대로라면 율법아래 갇혀 있는 유대인들 모두가 예수를 믿어야 했다. 그래야 율법을 거역한 와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를 수가 있다.

 

그런데 율법으로 의롭게 되어 있다보니, 하나님의 계획과는 정반대로 유대인들의 의(義) 하늘만큼 높아져 있어서, 보잘 것 없는 목수 아들로 오신 예수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들을 믿게 하시려면, 적어도 예수를 궁궐에서 태어나게 하시던가? 아니면 흠모할만한 체격이라도 갖추고 있어야 할텐데, 너무도 초라하고 너무도 보잘 것 없는 동네에서 자란 목수 아들로 나타나셨으니 누가 그를 메시아라고 믿겠는가? 거기다 유대인들이 목숨걸고 지키는 안식일을 범하고 다니면서, 죄인으로 낙인찍힌 세리와 창기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다녔으니, 누가 그를 메시아라고 믿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왜 이렇게 못난 모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보내주셨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을 죄인으로 낮춘 자들은 아들을 믿을 수 있도록 하시고, 자신을 의인으로 높이는 자들은 아들을 믿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한 근거는,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13:15). 이로써 유대인들 중에서도 누가 양이고, 누가 염소인지 자동으로 구분이 되는 것이다.

 

예수가 오기 전에는 유대인들 모두가 양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 스스로는 양과 염소를 구분할 수 없다. 유대인들 중에는 온전한 자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가 오시고 난 후에야 유대인들 중에서도 양과 염소가 구분지어 지게 된다. 예수만이 선이고 온전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로서는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서 양과 염소로 구분짓게 되는 것이다.

 

당시 그들이 아무리 많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이레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켰을지라도,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믿지 않으면,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와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영생에 이르지 못한다.


이 세상 모든 인간은 하늘로부터 주어진 인간의 영(靈)과 땅에서 생성된 인간의 혼(魂)이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두 가지 죄를 모두 해결 받아야 영생에 이르게 된다. 인간의 영은 예수 피를 통해서 죄를 해결 받아야 하고, 인간의 혼(마음)은 예수 살을 먹어야 마음속의 죄가 해결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반드시 이 두 가지 죄를 모두 다 해결 받아야 영생에 이르게 된다. 기독교인들은 현제 예수의 피 흘림을 통하여 아담이 지은 '원죄' 하나만 해결받은 상태라서, 다시 말해 기독교인들은 현제 영(靈)만 마귀 발아래서 벗어난 상태라서, 아직도 마음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죄가 그대로 있기 때문에 온전한 구원에 이른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 받았다며 경거망동 해서는 안 된다.  

 

유대인들 속에서 누가 양이고, 누가 염소인 줄 알았으니까 이제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누가 양이고, 누가 염소인지 구분해보도록 하자!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방법은 유대인들 중에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방법과 똑같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만 구원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구원할 계획을 이미 영계에서 루시엘(천사)이 타락할 때부터 세우고 계셨다. 그 증거는 바로 이삭의 예표로 유대인들 앞에는 육체를 입은 아들(예수)을 보내주셨고, 이방인들 앞에는 야곱의 예표로 영적인 아들(부활하신 그리스도)을 보내주셨다. 미물에 불과한 인간이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그저 하나님의 은혜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몇몇 과정이 필요하다. 하나님이라고 하여 무조건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 법에 따라 구원의 절차를 밟아가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위계질서가 철저한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도 반드시 법에 따라 행동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하나님 되지 못하는 것이다. 좋은 예로 루시엘이 하나님과 같이 완벽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으나, 그가 영계의 위계질서 어지럽히자 즉시 영계에서 쫓겨나서 마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부분은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하늘나라 법에 따라 이방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려면, 먼저 이방인들을 땅에서 하나님 백성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후 그들에게도 유대인들처럼 똑같이 율법을 주시고, 율법아래서 2천년을 살게 하는 것이다. 율법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법이기 때문에, 이방인들도 결국 율법을 거역한 죄를 짓고 모두 율법아래 갇히게 된다. 그런 후 기독교 2천년 역사 마지막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다시 이방인들 앞에 보내서, 그리스도를 믿고 나오는 자들을 양으로,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을 염소로 구분하는 것이다.

 

여기서 기독교인들이 알고 넘어갈 것이 있다. 부활하신 예수는 이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영으로 오시기 때문에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시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어야 말씀을 통해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영이다. 따라서 누구의 지배를 받느냐에 따라 인간의 영혼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인간의 마음속에 죄가 있어서 '죽은 영'의 지배를 받는 자는 인간의 영혼을 죽이는 소리를 하게 되고, 산 영이신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자는 인간의 영혼을 살리는 말씀을 하게 된다.


이에 대한 근거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 마음속에 영으로 들어가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사건이다. 열두 제자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기록한 반면, 바울은 자신이 체험하고 경험한 것들을 성경에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바울이 기록한 말씀을 바울의 말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바울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셔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에는 반드시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권세가 따라야 한다. 권세가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 말씀이 될 수 없다.


이에 따라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이 그대로 순종하게 되면, 음속의 죄를 해결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바울 마음속에 계신 예수께서 이방인들의 '원죄'와 '자범죄'를 모두 해결해 주시기 때문에 구원에 이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권세있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도 권세 있는 말씀이라서,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의 죄를 해결 할 수 있었다. 이런 권세를 오직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에게만 주신 권세이다.

 

오늘날 수많은 목사들이 강단에서 설교를 하고 있지만, 그들의 말을 들어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권세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이 아니면 인간에게 어떤 권세도 따르지 않는다. 오늘날 수많은 신학자와 목사들이 책을 펴내고 있지만, 그들이 펴낸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기독교인들의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들에게 어떤 권세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권세가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 말씀이 될 수 없다. 


설사,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말씀을 전해도, 그들이 전하는 말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성령께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 뜻대로 살것을 말씀하신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를 저버리고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한 죄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죄를 날마다 짓고 있으면서도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동일한 영으로 착각한 나머지 자기 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시다고 믿고 있는데,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면, 기독교인들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벌써 해결 받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미움, 시기, 질투, 분노, 거짓, 음란, 탐욕 등이 가득하다성령을 받아도 이런 죄악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을 주러 오셨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이런 죄악들이 사라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보더라도,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더 분명해진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만 해결해 주신다. 이에 따라 기독교인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게 되면, 그때는 기독교인들도 인간의 영혼을 살리는 말씀을 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절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혼동하여 성령과 그리스도를 동일한 영으로 보게되면, 기독교인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기독교인들의 구원은 요원해 질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하나님 백성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하나님 백성 만들기 위해서 아주 기막힌 방법을 사용하셨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처음 지음 받았을 때는 죄가 없었으나,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께서 인간 곁을 떠나게 되었다. 하나님이 떠난 그 자리를 세상 임금인 마귀가 꿰차고 앉아 인간들을 자기 발아래 두게 된 것이다.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간들이 마귀 발아래서 신음하며 살던 것을,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마귀를 멸하여 놓았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이 세상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마귀 발아래서 나와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말이다. 마귀 또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더 이상 자기 발아래 둘 수 없게 되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 백성도 아닌데, 성령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의 공로 때문이다. 문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들 모두 똑같은 성령을 받았는데도, 유대인들은 성령을 받으면 곧장 구원에 이르게 되나, 이방인들은 성령을 받은 그 순간이 땅에서 하나님 백성으로서 첫 출발을 시작하는 단계에 불과하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신약성경에 기록된 유대인의 구원과정을 보고, 무조건 성령만 받으면 자신들도 구원 받은 것으로 착각하여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기독교인들 역시 마음이 높아져서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이 부분이 명확히 해소 되지 않기 때문에, 자꾸만 구원의 문제가 풀리지 않고 꼬여가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을 정리하면 이렇다. 유대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율법의 보호를 받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율법은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법이라서 모두가 율법아래 갇히게 되었다. 그런 자들이 예수를 믿고 나오자 율법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문둥병자, 중풍병자, 혈루증, 소경, 귀머거리 등등이 모두 율법을 거역하여 생긴 병이다. 그런데 예수를 통해서 그들 모두가 고침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를 통해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를 모두 해결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해,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은 예수를 통해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와 예수의 피 흘림을 통해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마지막에 '성령'을 받으면 곧장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마음속의 죄(자범죄)를 사함 받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성령을 받아도 곧장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이방인들도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고 마귀 발아래서 나와서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원죄하나만 해결 받아서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기독교인들도 유대인들처럼 아담이 지은 원죄와 본인이 마음속으로 성령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까지 모두 해결 받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고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면, 그때부터 하나님 백성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 의무란? 성령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성령의 뜻이란?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이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도 이미 그것을 잘 알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에게 성경대로 살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기독교인들 모두를 영적인 율법아래 가두어 놓기 위해서다. 그래야 기독교인 2천년 역사 마지막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서,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들처럼 모두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죄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마음이 한껏 높아져 있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인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배척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하나님께서는 기독교 2천년 역사가 끝나자 어김없이 야곱의 예표로 이방인들 앞에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그런데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어떤 자를 통해서 오시는가하면, 지극히 작은 자를 통해서 오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자를 통해서 오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도 보잘 것 없는 육체로 오셨듯이, 이방인들 앞에 오시는 그리스도 역시 보잘 것 없는 자를 통해서 오신다. 그럼 예수께서는 왜 보잘 것 없는 자를 통해서 오시는 것일까? 그것은 마음이 높아진 자들을 못 믿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자들은 이미 마음이 하늘을 찌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자들은 이미 사단의 하수인으로 쓰임 받고 있는 자들이다. 따라서 그런 자들을 가려내기 위해서 가장 천하고 가장 낮은 자를 통해서 오시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우리 생각 같아서는 기독교인들이 다 믿을 수 있도록 성도수가 많은 큰 교회 유명한 목사를 통해서 오시면 좋을 것 같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과 정반대로 행동하시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못난 자를 통해서 오시는 것이다. 유대인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는 자는 아들을 믿을 수 있도록 하시고, 마음이 높아진 자들은 아들을 믿을 수 없도록 하신 것처럼, 기독교인들 또한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는 자는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하시고, 마음이 높아진 자들은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도록 하신 것이다. 이로써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자동으로 양과 염소가 구분되어지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틀림없이 양이라고 생각하고, 이단이나 다른 종파에 속한 자들을 염소라고 생각하겠지만, 기독교인들 중에는 아직 온전한 자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기독교인들 스스로는 양과 염소를 구분할 수 없다. 성령과 더불어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만이 영(靈)과 혼(魂)이 온전케 된 분이기에, 그분을 믿고 나오는 자는 오른편에 있는 양이 될 것이나, 그를 믿지 않는 자는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지 못한 자들이라 왼편에 있는 염소가 되는 것이다. 염소들이 갈 곳은 마귀와 더불어 영영한 불못 뿐이다. 

 

예수께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지극히 작은 자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속에 계신 자는 바울처럼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한다.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자를 두고 예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실 때도 작은 겨자씨로 오신다. 작은 겨지 씨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자란 후에는 세상의 모든 나물보다 커서 새들이 깃들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 말하는 성화과정이다. 그러나 성령아래서는 이런 성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율법 역할만 하기 때문에,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타락으로 달려가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은 외모를 치장하기에 바쁘다. 인간들도 예뻐지려고 얼굴을 죄다 뜯어 고치고 있다. 그런데 교회마저도 외모를 치장하기에 바쁘다. 교회는 남보다 더 크고 웅장해야 되고, 교회 성도 수는 무조건 많아야 되고, 교회 목사는 세상이 알아주는 유명한 목사여야 되고, 좋은 차를 타야 목사의 권위가 서고, 주의 종은 좋은 집에서 살아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말은 그럴듯하게 둘러 되지만 이는 모두 자기 욕심에 사로잡힌 자들이다. 그리스도가 목사들 속에 주인으로 계시다면 절대 저런 짓을 하지 못한다.

 

오늘날처럼 지상 외모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못난 자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과연 누가 그를 메시아로 믿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지극히 작은 자를 통해서 오셨을 때, 기독교인들이 그를 자신을 죄에서 구원해줄 메시아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믿겠지만, 자신은 구원 받았다고 하는 자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이로서 양과 염소는 자동적으로 분리 되고 마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첨부파일 다운로드: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미투데이 공유
  • 요즘 공유
  • 인쇄하기
 
이름 : 비밀번호 : 스팸방지코드 :
번호제목작성자등록일조회수
하단로고

새한중앙교회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삼성리 584-1 

Tel : 031-774-6301 / Fax : 031-774-6305 

선교비후원계좌 : 농협 351-0930-6631-83(새한중앙교회)

Email: ksk6307@naver.com / h0sea@naver.com

Copyright ⓒ 2013 새한중앙교회 /  정보관리책임자:김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