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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라!

작성자bansuk

작성일2020-02-23

조회수445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고린도전서11:1-16

제목: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라!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고전11:3-5). 바울은 당시 교회에서 남자들이 지켜야 할 규례와 여자들이 지켜야 할 규례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에는 이런 규례가 사라지고 없으나, 천주교에서는 지금도 이것을 지키고 있다.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바울의 이 말은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인데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외에 어떤 지상적 존재에게 순복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이 말 또한 여자의 머리는 남자인데 당시 여자가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한다는 것은, 어떤 지상적 권위로부터 독립 되었다는 것을 뜻하므로, 결국 여자가 남편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에는 이런 규례가 사라지고 없으나. 당시 남자와 여자에게 이런 규례가 적용되었던 것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 초대교회가 형성 되었을 때, 성령을 받은 유대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이방인들에 대한 어떤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보니, 복음을 전하는 자들마다 각기 좋을대로 대안을 마련해 주다보니 이런 규례가 생겨난 것이다. 사도 바울 역시 유대인 출신으로 율법의 영향을 받다보니, 이런 규례를 만들어 당시 고린도 교인들에게 적용시켰던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천주교가 이것을 지키고 있는 것은, 313년 니케아 공회이후 약 천년 동안 천주교가 교회를 장악하여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영향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종교개혁자들을 통해 천주교의 철옹성 같은 아성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 여파는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당시 조선은 쇄국정치로 단단히 대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능력 앞에 굳게 잠겨 있던 빗장도 풀리고 말았다. 복음이 우리나라에 들어 온지 불과 200여년 밖에 되지 않지만, 성령의 역사로 기독교는 놀랄만한 성장을 가져왔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가 성령으로 하나 되지 못하고, 여러 교단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각 교단마다 자기 입맛에 맞는 법과 교리를 만들어, 그것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도 한분이요 그리스도도 한분인데 왜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하나 되지 못하고 나눠져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이다. 죄를 영적으로 표현하면 귀신(죽은 영)이다. 죄와 귀신은 똥과 똥파리와 같은 공생관계로서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예수께서도 죄와 귀신을 더럽다는 말로 동급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더러운 귀신()’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간질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았어도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고 자꾸만 나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성령으로 하나 될 것을 말하고 있지만, 기독교인들로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이 모두 죄로 부패 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불가능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바울이 성령으로 하나 될 것을 주장했던 것은, 자신이 유대인 출신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사람들이라, 예수를 믿게 되면 율법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게 되는데, 이때 유대인들은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까지 모두 해결 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성령을 받으면 마음이 하나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서, 육체로 오신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 되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도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고 자꾸만 나뉘게 되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난 후 제자들이 관원들 눈을 피해 마가 다락방에 숨어 있다가 오순절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이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 담대하게 예수가 하나님 아들임을 선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를 믿고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은 유대인들은 성령을 받아야 비로소 구원이 완성 된다. 이에 따라 일반 유대인들도 예수를 믿고 율법을 거역한 죄(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은 자들은 오순절에 다 같이 성령을 받고 날마다 모이기를  힘썼던 것이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2:44-47). 예수를 믿고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성령이 지배하게 되자, 이런 일이 벌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방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마음속의 죄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가 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분열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았을 때는 마귀 발아래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잠시는 뜨겁게 느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 때문에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성령이 충만할 때는 하나가 되는 것처럼 보이나, 성령이 식어지면 다시 나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죄를 먹고 사는 '죽은 영(귀신)'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요동을 치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성령만 받으면 유대인들처럼 자신들도 하나 되는 줄 알고 있지만, 성령으로는 기독교인들이 절대 하나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기독교인들이 하나 될 수 있는가?


기독교인들이 하나 될 수 있는 방법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통해 다시 오셨을 때, 그를 믿어야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고 하나 될 수 있다. 죄를 해결 받게 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영으로 들어가서 좌정하시게 된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지금까지 죄를 짓게 하고, 이간질 하던 귀신(죽은 영)’이 빛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들어내고 떠나게 된다. 벨리알과 그리스도가 함께 할 수 없듯이, 빛 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오면 어둠은 자동으로 물러가게 되는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그리스도로 안에서 하나 될 수 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당시 바울이 말한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라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들 때 남자의 갈비뼈를 취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에게 속해 있다. 여자가 남자에게 속해있다는 말은, 여자가 남편을 통하지 않고서 자신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런 말을 하면 여성비하 발언이라고 들고 일어나겠지만, 적어도 하나님께서 여자를 창조하실 때는 이런 목적으로 만드신 것이다. 좋은 예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람 숫자를 계수할 때, 남자의 숫자만 헤아리고 여자를 숫자에 넣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든 창조 섭리는, 남편 있는 여자는 남편을 무시하고는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편 있는 여자는 반드시 남편을 통해서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자가 남편을 믿게 되면,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때 여자도 같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요즘 시대로 보면 여자들에게 너무 불합리한 법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꼭 여자에게만 불리한 법이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여자없이 남자만 있을 수 없고, 남자 없이 여자만 있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남자에게는 여자가 필요하도록 만들었으며, 여자에게는 반드시 남자가 필요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런 일을 인간의 머리로 당장 이해가 되지 않는다하여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남편이 가장 역할을 제대로 못하게 되면 대부분의 여자들이 남편을 무시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남편도 망하고 여자도 망하게 된다. 여기서 망하게 된다는 말은 둘 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남편이 책임을 다하고 가정을 잘 다스려서 여자로부터 신뢰와 믿음을 얻는 남편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 남편들이 가장으로서 남편구실을 제대로 못하며 살다보니 십중팔구는 여자들에게 무시를 당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여권이 신장되어 여자들이 사회전반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보니, 남자들이 점점 더 설 곳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 현재 남자들이 처해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현명한 아내는 남편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조(희생)를 잘해서 남편을 머리로 세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자도 살고 남편도 살게 된다. 우리나라 역사책에 등장하는 평강공주와 바보온달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평강공주는 자신이 공주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분을 내려놓고, 내조(희생)를 잘하여 바보온달을 장군으로 만들어서 적들을 물리치도록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자들을 당신의 자녀로 삼고 싶어 하신다. 오늘날 과연 이런 자가 있을까 싶지만, 어쩌거나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근본 목적이 이렇기 때문에, 영생에 이르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여자들에게 훨씬 더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기독교인들 중에서 남녀 성비만 놓고 따졌을 때도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훨씬 많다. 이는 하나님께서 여자들에게 성령으로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시고, 여자들로 하여금 남편들이 좀 무능하고 부족하더라도 무시하지 말고, 내조(희생)를 잘해서 남편을 머리로 세우라는 뜻이다. 그런데 성령의 은혜를 더 많이 받아놓고도 남편을 머리로 세우기는커녕 무시하게 된다면, 그런 아내는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게 되는 것이다. 남편 또한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앞에 서지 못하게 된다. 이에 따라 여자도 자신의 희생으로 남편을 잘 보필해서 머리로 세워야 되겠지만, 남자들 또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해서 여자에게 믿음과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로 보면, 여자들에게만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최초로 죄를 지은 것이 여자이기 때문에, 결자해지 차원에서 여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성경도 이를 말하고 있다.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딤전2:11-14).

 

디모데전서 2:15절을 보면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결국 여자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크나큰 희생이 따르는데, 그 희생의 강도가 마치 여자가 해산하는 고통과 같다는 것이다. 오늘날 어느 누가 자신을 희생하려 할까? 심지어 요즘은 자신이 낳은 자식마저도 내 팽개치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자는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하고, 남자는 가장으로서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런데 성령의 법 아래서는 기독교인들의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자들이나 남자들에게 이런 희생이나 책임을 요구할 수 없다. 오늘날 교회에서 여자들에게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성령의 법 아래서는 구원이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강요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 역시 성령의 법 아래서는 구원이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가장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이를 강요하지 못하는 것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도 희생과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 사는데, 무슨 염치로 교인들에게 희생과 책임을 강요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인들이 하는 신앙생활은 온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종교지도자라도 이런 것들을 교인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질서를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지켜지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 안에 들어올 수 없다. 가령, 여자가 남자를 무시하고 그리스도 안에 들어올 수 없고, 남자가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들어 올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지금까지 교회에서 이런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성령의 법(죄)아래 사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이런 것들을 교인들에게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도 그 의무를 다하지 않고 살면서 누구에게 이것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이것을 인간들에게 요구하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그리스도만이 인간들에게 이것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에게 이런 요구를 하시는 이유는 성령의 법아래 사는 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한계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한계란 죄아래 사는 인간은 누구도 이것을 지킬 수 없는 법이다. 기독교인들도 자신의 한계를 깨달아야 비로소 그리스도 앞에서 죄인으로 손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려주는 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끝까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우기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자로서 더 이상 말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고아와 과부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고아는 부모가 없기에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곧장 그리스도 품에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부모가 있는 자녀들은 부모의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그리고 과부 역시 남편이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곧장 그리스도 안에 들어올 수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몇몇 과부들은 죄와 상관없이 예수께서 그들의 문제를 즉시 해결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바로 그들이 과부였기 때문이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성령의 법 아래서는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들어나고 있다. 

 

오늘날 편한 것만 쫓아 살다보니 여자나 남자들이 자신을 조금도 희생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둘 다 망할 뿐 아니라, 그 밑에 있는 자식들까지 잘못되고 만다. 인간이 편한 것에 길 들여지면, 그것에서 돌이키기가 절대 쉽지 않다. 이미 몸과 마음이 세상 편한 것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돌이키기가 힘든 것이다. 성령 충만을 받아도 그때 뿐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만다. 금식하며 기도해도 그때 뿐 이것을 떨쳐 버리기가 절대 쉽지 않다. 기독교인들이 이를 해결 받으려면, 성령충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이라도 몸과 마음은 이미 세상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한번 세상 것에 길들여지고 나면 거기서 돌이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계속해서 세상 것에서 돌이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기독교인 스스로는 세상 것에서 돌이킬 수가 없다. 세상 것에서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나를 지배해 주셔야만 가능하다. 따라서 죄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한번은 반드시 자신의 죄로 죽어야 한다. 그런 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면,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세상 풍조를 쫓아살지 않기 때문에, 그때는 얼마든지 세상 죄악에서 돌이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남자는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며, 여자는 내조(희생)를 잘 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던 본래 목적을 결국 그리스도를 통해서 재창조하시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 또한 이런 자를 당신의 자녀로 삼게 되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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