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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하시는 일과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

작성자bansuk

작성일2020-03-22

조회수603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고린도전서13:1-13

제목: 성령이 하시는 일과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마귀 발아래 살던 이방인들을 하나님 백성삼기 위해서다. 하나님 백성이 되면, 마귀가 주관하던 세상 법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법이란?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주신 영적인 율법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육체에다 율법을 주셨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마음속에다 영적인 율법을 주셨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살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부패한 이방인들로서는 성령을 따라 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날마다 자신을 처서 복종 시켜야 한다. 만약 성령을 받은 자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게 되면,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기 때문에 악한 영의 지배를 받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강단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자질이 대단히 중요하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설교를 해서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성도들도 성령의 감동에 따라 헌금도 하고 충성봉사도 하게 된다. 성령께서 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면, 교인들은 자발적으로 충성을 하게 된다. 교회가 성령의 감동에 따라 운영되어지게 되면, 교회나 성도들 간에 전혀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육신의 생각으로 교인들을 가르치게 되면 어찌 되겠는가그때는 헌금도 강요에 의해서 하게 되고, 충성봉사도 강요에 의해서 하게 된다. 교회의 모든 일을 강요에 의해서 하게 되면, 교회에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오늘날 교회에 분란이 일어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예배당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 때문에, 교회와 정부간에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데 사실, 성령의 감동에 따라 예배를 드리게 되면, 장소와 상관없이 어느 곳에서 예배를 드려도 상관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으로 예배하는 자를 기뻐 하시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소멸하고 육신의 생각으로 살다보니, 예배는 꼭 예배당에 가서 드려야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예배당에 가서 많은 예배를 드려도 마음도 없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지 않으신다. 더군다나 이방인들은 마음이 부패하여 있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을 따라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런데 성령의 감동없이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린들, 그것이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오늘날 기독교가 목숨처럼 지키고 있는 주일 성수나 십일조 같은 제도는 유대인의 율법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법으로 정해주셨기 때문에, 이것을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 하지만이방인들에게는 주일 성수나 십일조 헌금 등을 법으로 정해주시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성령의 감동에 따라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다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가 유대인들에게 적용되던 율법을 가져와서, 그것들을 기독교인들에게 강제로 적용시키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적용되던 율법을 적용하려면 율법 전부를 가져와서 적용시키든지 해야 하는데, 자신들이 지킬 수 없는 것들은 모두 빼버리고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것들만 골라와서 적용시키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율법 전부를 가져와서 기독교인들에게 적용시키게 되면, 기독교인들도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본인이 죄인이라는 사실이라도 깨닫게 될 텐데, 입맛에 맞는 몇개만 가져와서 적용시키다 보니, 기독교인들이 입맛에 맞는 몇 가지를 지켰다는 그 것으로 도리어 의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율법 몇가지를 지킨 것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던 것과 같은 이치다.  


오늘날 기독교가 이렇게 잘못 된 길로 빠지게 된 원인은, 성령께서 세운 목자가 기독교를 이끌어 왔어야 하는데, 육신의 생각을 가진자가 기독교를 이끌어 왔기 때문에, 이런 잘못된 길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라고 말했듯이, 육신의 생각으로 교회를 이끌어 가게 되면, 교회와 성도들은 사단의 하수인이 되고 만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며 그들을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오늘날 기독교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이방인들이 육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성령을 따라 살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성령을 무시하고 육신의 생각으로 교회를 운영하다보니. 오늘날 교회가 사람이 만든 제도속에 완전히 갇히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그런데 육신의 생각으로 교인들을 가르치면 어찌 되겠는가? 성령의 감동을 따라 예배하기 보다는, 사람이 만든 제도와 교리에 따라 예배하는 것이다가령, 주일 날 예배당에 모이는 것도, 성령의 감동으로 예배 드리기 위해서 모여야 하는데, 주일이니까 예배당에 모여 예배 한번 드리는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십일조나 각종 헌금등도 성령의 감동에 따라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도록 해야 하는데유대인들에게 적용되던 율법을 기독교인들에게 적용시켜서 강요하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을 주신 목적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오늘날 이런 제도가 기독교인들 생각 속에 고착화 되어 있다 보니, 교회는 성령의 감동이 사라지고 사람이 만든 제도가 하나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오늘날 교회는 신령과 진정이 사라지고 형식적인 예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유대인들이 의와 인과 신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형식적으로 제사 드리던 것을 비판하던 기독교인들이, 이제는 자신들도 유대인과 똑같이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다. 오늘날 교회는 사람이 만든 제도와 교리가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들을 모두 집어 삼켜버리고 말았다. 예배당에 사람 숫자가 늘어나서 교회 규모는 커졌지만, 하나님이 계셔야 할 그 자리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바리새인들도 자신들이 하나님 자리에 앉아 유대인들을 배나 지옥자식 만들더니,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 또한 하나님 자리에 앉아 교인들을 배나 지옥자식 만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도 없이 드리는 예배와 예물을 열납하지 않으신다가인과 아벨의 경우를 보면하나님께서 마음도 없이 드린 가인의 예물은 열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으로 드린 아벨의 예물은 아벨과 함께 열납을 하셨다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따라서 진정한 예배란 성령의 감동을 따라 드리는 예배여야 한다. 그리고 십일조나 각종 헌금등도 성령으로 감동으로 드려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그런데 마음도 없이 강요에 의해서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예배와 예물을 받지 않으신다마음도 없이 드린 예물은 하나님께 상달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복도 받을 수 없다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복이 아니라, 영생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복이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진짜 축복이다.

 

기독교인들이 타락해 가는 과정을 보면, 처음 성령을 받고 얼마동안은 성령의 뜻대로 사는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육신의 소욕이 올라오다보니까 조금씩 성령의 감동을 무시하게 된다. 그리고 눈만 뜨면 세상의 문화와 문명을 접하며 살다보니까 육신의 소욕을 죽이지 않고서는 성령의 뜻대로 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세상에 깊이 빠지게 되면 나중에는 성령의 음성마저 들려오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답답한 나머지 기도원에 올라가 금식하며 매달리게 된다. 금식하면 육신의 소욕이 조금 죽게 되니까 성령의 미세한 음성을 듣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그때뿐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그것을 몇 번을 반복하고 나면 나중에는 성령께서 그 마저도 응답하지 않으신다.

 

성령의 감화 감동이 사라지고 나면, 그때부터는 교회는 문턱만 밝고 다닐 뿐 형식적인 신앙생활로 변하게 된다. 교회 가서 말씀을 들어도 불안한 마음을 잠재울 수 없으니까 불신자처럼 세상 것이라도 붙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가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이 밀려 올 때는,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아름답게 보이고 또한 세상 것들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는데, 성령의 감동이 사라지고 나니까 불신자로 살던 때보다 마음이 더 불안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하여 이곳저곳을 기웃 거리다 이단의 꾐에 빠지기도 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듯이, 세상 것을 놓지 못하게 되면 악한 영이 인간의 마음속에 틈타고 들어온다. 그러면 믿는 자라도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 악한 영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다보면 그것이 바로 마음의 병으로 자리 잡게 된다.

 

성령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멸망으로 갔던 사울 왕을 보면, 그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자기 뜻대로 살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서 성신을 거두어 가신다. 사울에게서 성신 떠나자 그 자리를 귀신이 차지하여 사울 왕을 지배하게 되니까 사울이 미쳐서 자신의 사위인 다윗마저 죽이려고 몇 번을 시도 하다가, 끝내 저주를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우리가 사울 왕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은, 기독교인들도 성령을 받았을 때는 좋았지만, 그러나 성령을 거역하게 되면, 그에 대한 형벌을 받아야 한다. 유대인들도 율법을 받았을 때는 좋았지만, 율법을 어겼을 때, 그에 대한 형벌로 그들의 육체가 병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 중에 유독 병든 자가 많았던 것이다.

 

초대교회로부터 시작한 기독교 역사도 2천년이 지났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성령의 뜻대로 사는 자가 없다. 예수 이름을 부르며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성령의 뜻대로 신앙생활 하는 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처음 성령을 받았을 때는 눈이라도 빼줄 것처럼 또는 전 재산이라도 다 받칠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사람들이,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 있다. 처음 성령을 받았을 때는 그렇게 뜨겁던 사람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성령의 감동을 소멸하고 모두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다. 베드로 후서2:19절에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모두 자신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졌기 때문에, 이제는 악한 영의 종이 되어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욕먹는 이유가 바로 불신자와 다름없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고도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는 기독인들에게도 형벌로 마음속에다 병을 주셨다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역하면 육체가 병들게 되듯이, 기독교인들도 성령을 거역하면 마음이 병들게 된다. 마음의 병이란? 죽게 생긴 질병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영적인 병이다이런 병은 세상 의학으로도 치료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자살충동 등도 일종의 마음의 병이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이런 병을 갖고 사는 자들이 당장은 불행해 보일 수 있지만,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병이 도리어 복이 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다음 글을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셨다. 유대인들도 율법을 따라 살면 구원에 이를 수 있다. 따라서 그들도 처음 율법을 받았을 때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율법을 지켰다. 설사, 율법을 어기더라도 즉시 회개하고 돌이켰다. 그러나 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이 613가지나 되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그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율법을 거역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 앞에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유대교 2천년 역사가 끝날 무렵에는 율법을 거역한 자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거역한 자들을, 율법이 정한대로 그에게 알 맞는 형벌을 주셨다(레위기 참조). 그 형벌은 유대인들의 육체에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소경, 문둥병자, 혈루증, 중풍병자, 절름발이, 앉은뱅이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병자들이 나타났다. 로마의 어느 장군이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보니,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서 병든 자가 많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유대 땅에 병든 자가 많았던 것은 바로 율법을 거역한 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다. 당시 자신을 의롭게 여긴 자들은 예수 앞으로 달려 나오지 않았지만육체가 병든 자들은 예수 앞으로 달려 나와서 자신의 병든 몸을 고침 받고, 더 나아가 마음속의 죄까지 해결 받게 되었으니, 도리어 하나님의 저주가 ()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약속한 기한이 이르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당신의 아들 예수를 보내주셨다. 예수께서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 첫째는, 율법을 거역한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고, 두 번째는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를 담당해주시기 위해서, 자신이 채찍에 대신 맞음으로서 유대인들이 죽어야 죄를 대신 짊어지셨다. 그리고 두 번째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어야 했다.

 

마귀가 사람을 통해 예수를 죽였지만, 그에게는 죄가 없기 때문에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들은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지만, 영적인 존재인 마귀는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먼저 아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귀는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의 영()을 다시는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의 효력 때문에, 마귀 발아래서 나올 수 있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로 인간 곁을 떠났던 하나님께서 비로소 성령으로 다시 인간 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이런 일을 하시기 위해서 유대인들 앞에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이다. 따라서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은 누구나 예수 앞으로 달려 나와서 율법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아야 했다. 세리와 창기들이 예수 앞에 달려 나왔고, 육체가 병든 자들도 낫기 위해서 예수 앞에 달려 나와서 병든 몸을 고침 받게 되었다. 그러자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죄까지 모두 해결 받게 된 것이다. 유대인들 육체에 생긴 병은 율법을 거역하여 생긴 병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게 되면, 병든 자들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죄까지 모두 떠나게 되는 것이다.

 

예수를 통해 육체의 병을 고침 받은 자들은, 자신이 예수를 통해 병을 고침 받은 증거가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러자 오순절에 이르러 그들에게도 성령이 내리게 되었다. 이것으로 유대인들은 영()과 혼()이 완전히 죄에서 자유케 되어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율법을 거역한 자들이 하나님의 저주로 말미암아 형벌을 받아 육체에 병이 들게 되었으나, 도리어 그것이 예수 앞으로 달려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구원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자신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며, 예수를 믿지 않은 자들은 마음속의 죄도 해결 받지 못하고 또한 성령도 받지 못하게 되어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지금까지 유대인들의 구원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서두에서 말했듯이,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뜻대로 살면 누구나 구원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뜻대로 살기란 절대 쉽지 않다. 처음 성령을 받았을 때, 얼마동안은 성령의 뜻대로 사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성령을 소멸하고 마는 것이다. 더군다나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교단의 제도와 교리를 내 세우며, 그것을  믿고 따르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일반 성도가 마음으로 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령을 소멸하고 나면 다시는 성령의 감화 감동이 찾아오지 않는다. 죽을힘을 다해 금식하며 기도해도 그때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성령의 감화 감동을 한번이라도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령의 감화 감동을 받고 살던 사람이, 성령을 소멸하고 나면 불신자로 살던 때보다도 더 악해지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성령을 소멸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믿는 자의 마음속에 형벌을 주시는 것이다예수께서도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시고 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12:43-45). 이것이 바로 믿는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벌이다.


성령을 거역한 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마음속에 일곱 귀신 들어가면, 그때는 이 세상 어떤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다.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을 소멸하게 되면 위와 같이 일곱 귀신이 들어가 인간의 마음의 장악하게 된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형벌로 주신 마음의 병이다. 기독교인들이 마음의 병을 치료받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일곱 귀신을 먼저 쫓아내야 한다. 일곱 귀신은 인간의 힘으로 쫓아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해결해 주실 분이 오셔야 한다. 그분이 바로 십자가에 죽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하고,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시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자는 적그리스도 영을 받은 자이다.

 

기독교인들은 현재 모두가 성령을 소멸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형벌로 말미암아 누구나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마음의 병은 죽게 생긴 질병이 아니라, 귀신에 의한 영적인 병이라 세상 의학으로는 절대 치료되지 않는다. 이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하고 마음의 병을 치료해 주셔야 한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자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직접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던 귀신이 병과 함께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인간의 주인이 되어 주신다. 그렇게 되면 다시는 귀신이 인간의 마음속에 발붙이지 못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누가 자신의 마음의 병을 깨닫고 그리스도 앞으로 달려 나오느냐 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겉으로 멀쩡한 자가 그리스도를 찾아와 믿는다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도 자신의 마음이 병들어 죽게 생긴 자들은 그리스도를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혈루증을 앓던 여인처럼,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며 가진 재신을 전부 탕진해도 낫지 않게 되었을 때, 그런 자도 그리스도를 찾아오게 될 것이다결국 기독교인들도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와 그리고 세상 의학으로도 치료 되지 않아 자신이 죽게 생긴 병을 깨닫는 자가, 그나마 그리스도를 찾아오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성령 하시는 일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살펴보았다. 기독교인들은 현재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기 때문에, 성령에 대해서만 알고 있을 뿐,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 바울이 성경 여러 곳에서 성령과 그리스도 영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모두 성령의 역사로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성령과 그리스도는 위격도 다르시지만, 하시는 일들도 엄연히 다르다. 성령께서는 마귀가 지배하던 인간의 영()을 다시 오셔서 지배하게 되었고, 그리스도께서는 귀신이 지배하던 인간의 마음을 다시 오셔서 지배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의 ()과 혼()이 성령과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에서 자유를 얻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다. -귀 있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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