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말씀 보기

HOME > 주일낮설교 > 주일설교말씀 > 보기

제목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라!

작성자bansuk

작성일2020-04-12

조회수1,365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마태복음28:1-20

제목: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라!


대제사장을 비롯한 당시 종교 지도자들 눈에는 예수가 눈엣 가시처럼 여겨졌다. 자신들이 목숨처럼 지키던 안식일에 병을 고치고, 유대인들에게는 생명줄과도 같은 성전을 허물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들의 분노를 가장 크게 샀던 일은 하나님과 나는 하나다라고 하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로서, 당시 종교지도자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과 성전을 모독한 죄로 붙잡아 빌라도 총독에게 넘겼다. 예수를 넘겨받은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죽일 만한 죄를 찾지 못하였지만, 대제사장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이 들고 일어나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며 백성들을 선동하자, 밀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빌라도가 예수를 죽는데 내어주고 말았다.

 

예수께서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돌아가셨지만, 그에게는 죄가 없기에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자, 세상 임금인 마귀가 죄 없는 예수를 죽인 것이 죄가 되어 세상 임금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마귀가 세상 임금 자리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께서 인간 곁을 떠나게 되자, 마귀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 인간의 영()을 지배하고 있었지만마귀가 예수를 죽이고 심판을 받아 세상 임금 자리에서 내려온 뒤로는, 마귀도 더 이상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의 영()을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은 자들의 영은, 현재도 여전히 마귀의 발아래 놓여 있

 

오늘날 이방인들이 하나님 백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된 것도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의 공로 때문이다.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는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하고, 세상 임금인 마귀를 심판하게 된다. 따라서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마귀의 지배를 받던 인간의 영()이 마귀 발아래서 해방되어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영()은 마귀 발아래서 나와 현제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마음은 아직도 여전히 죽은 영(귀신)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좋아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다고 하여, 그것으로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원 받았다며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성령 받은 것으로는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영생에 이를 수가 없다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죽은 영)는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해결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본질인 성령은 육체를 입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올 수가 없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만 들어오실 수 있다. 따라서 성령 받은 것으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영생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아야 영생에 이르게 된다.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이 하나님 백성으로서 의무를 다했듯이, 오늘날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 또한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으로서 그 의무를 다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지켜야 할 의무란? 성령의 뜻대로 사는 것이. 다시 말해 성령이 넣어주시는 감동대로 살아야 한다. 마귀 발아래 살 때는 자기 생각대로 살았지만, 성령을 받은 후에는 자기 생각대로 살면 하나님 앞에 죄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성령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성령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육신의 소욕을 최대한 죽여야 한다. 그래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살 수 있다. 본래 이방인들은 하나님 백성이 아니라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지만, 이방인들도 성령의 뜻대로 살게 되면 누구나 구원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부패한 이방인들로서는 성령의 뜻대로 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영생에 이를 자가 많지 않다.

 

이방인들이 처음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마치 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뛸 뜻이 기뻐한다. 어떤 자는 자신의 눈이라도 빼줄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어떤 자는 자신의 전 재산이라도 다 바칠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씩 성령을 소멸하기 시작한다성령을 소멸하고 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고 만다. 육신의 소욕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무서운 죄악이다그런데 이방인들이 이것을 죄라고 여기지 않는 것이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을 어기고도 죄로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던 것과 같은 이치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았지만,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에 끝에 가서는 모두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만다. 성령과 멀어지게 되면 당연히 육신의 소욕이 올라와서 자신을 지배하게 된다. 육신의 소욕을 죽이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금식하며 매달려 보지만, 그때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고 만다. 성령의 법 아래서는 육신의 소욕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게 된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보니 기독교인들도 이제는 지쳐서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목사들도 말로는 모두들 육신의 소욕을 죽여야 된다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들도 육신의 소욕을 떨쳐버리지 못해서 세습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교회를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말로는 모두들 육신의 소욕을 죽여야 된다고 말하지만, 죄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육신의 소욕을 죽일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럼 마음속의 죄를 없이하기 위해서, 주일성수를 꼬박꼬박 잘하면 마음속의 죄악이 사라질까? 금식을 자주하면 마음속의 죄악이 사라질까?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많이 하면 죄악이 사라질까? 그것도 아니라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많이 먹고 마시면 마음속의 죄악이 사라질까? 그러나 이런 신앙생활은 종교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종교적 행위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되지 않는다기독교 역사가 이천년이 지났어도, 기독교인의 속사람은 지금도 변화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될 수 없듯이,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의 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다.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이나 종교적 행위로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깨끗게 할 수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감동에 따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데, 성령을 소멸하고 육신의 생각대로 살다보니, 마음도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각종 예물도 성령의 감동에 따라 드려야 하는데,유대인들이 율법에 따라 드리던 방법을 도입하여 감동도 없이 예물을 드리고 있다.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과 달리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감동에 따라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그런데 성령을 소멸하고 살다보니 마음도 없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그러다보니 예배가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아니고, 인간이 자기 의를 쌓기 위해서 드리는 예배가 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있는 행위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죄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한 죄를 짓고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다보니,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예배를 왜 드리고 있는지, 그 이유도 제대로 모른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좋은 예로 오늘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부활절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교회에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부활절을 기념하고 있다.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한다는 것까지는 기독교인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빵과 포도주를 왜 먹고 마시고 있는지,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어둠속에 살고 있다는 증거다어둠속에 살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 아들(그리스도)이 오셔서 알려주기 전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가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찬식 때마다 먹고 마시는 빵과 포도주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주신 것들이다따라서 기독교인들 앞에 그리스도가 오시게 되면,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빵과 포도주 먹지 않았도 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의 완성자로 오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기독교인 모두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믿는 자들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된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도 천국이 이루어지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렸던 이유가, 바로 이것을 바라고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가 유대인들 앞에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셨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기독교인들 앞에 부활절과 성탄절의  완성자로 오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는 더 이상 부활절이나 성탄절 같은 날을 기념하지 않아도 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을 모아놓고 빵과 포도주를 나눠주면서, 이것은"내 살과 내 피다" 따라서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따라 지금까지 기독교인들도 부활절을 기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방인들도 구원에 때가 되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다. 따라서 기독교인들도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성령을 거역한 죄(마음속으로 지은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이방인들 앞에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마음 문을 열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되면, 그때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진정한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했더라도, 그리스도가 내 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진정한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없다.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듯이,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내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예수의 부활은 나와 아무상관이 없게 된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내가 지식적으로 아무리 많이 알고 있더라도, 내속에 예수께서 부활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나는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아기를 한 번도 낳아본 경험이 없는 산부인과 간호사와 아기를 처음 낳아본 젊은 엄마가 있다면, 이 중에서 누가 더 아기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을까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은 사람과 불신자 중에서 누가 더 하나님에 대하여 자세히 알 수 있을까? 또 다른 예로 오늘날 말씀을 줄줄 외우며 성경을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과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자가 있다면, 이 중에서 누가 더 예수의 부활에 대하여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예수 부활을 아는 것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내속에 직접 오신 것과는 너무도 다르다.

 

우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오셔야 한다.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가게 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바울 마음속에 영으로 들어가서, 바울을 통해 하신 말씀이 곧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었듯이, 이방인들 앞에 오신 그리스도 역시 비록 사람의 입을 통해 하신 말씀이라도 그가 하시는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의 마음속에 영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런 자가 바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이다바울 또한 이렇게 '양자의 영'을 받아 그리스도로 거듭났던 것이다. 기독교인들 또한 모두가 바울처럼 '양자의 영'을 받아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 받게 된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집과 아집과 자아를 모두 버려야 한다. 심지어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신앙생활조차도 종교적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두 버려야 한다. 바울도 율법아래서 열심 내던 종교적 행위들을 모두 배설물로 여기고 버렸.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성령의 법아래서 신앙생활하면서 가졌던 고정관념과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말씀과 자신의 생각이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에 믿지 못하게 된다. 기독교인들도 자신이 구원 받았다는 생각을 내려놓지 않게 되면, 자신을 의롭게 여기던 바리새인들처럼 사사건건 그리스도와 충돌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는 이것이 가장 힘든 자신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계시록에 보면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기는 자는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라! 이기는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되리라! 이기는 자는 만나를 먹게 되리라!"하는 말씀이 나오는데이 말은 곧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들이 하늘에서 받게 될 상급(賞給)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아모리 칠 족속과 싸워 이겨야 그 땅을 차지 할 수 있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과 싸워 이겨야 영생에 이르게 된다. 만약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 자는 영생은 고사하고, 평생을 죽은 영(귀신)에게 종노릇 하며 살아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앞에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금방 주님 말씀을 받아들일 것 같지만, 성령을 소멸하고 자기 뜻대로 살아온 기독교인들로서는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말씀을 거부하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도 장차 오실 메시아를 손꼽아 기다렸지만막상 메시아가 자신들 눈앞에 오셨을 때, 자신들이 생각하던 메시아가 아니라며 예수를 배척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두 팔을 벌려 맞이할 것 같지만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폐부(죄악을 들추어 냄)를 찌르는 말씀을 하시기 때문에기독교인들도 막상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면 기분 나쁘다며 얼굴을 붉히게 되는 것이. 바울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소욕은 육체를 거스린다고 말하였듯이, 인간의 마음속에 오신 그리스는 인간의 생각을 거스리게 되고, 반대로 인간의 생각은 그리스도를 거스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라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공중에 재림할 예수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재림에 앞서 이 땅에 먼저 도적같이 오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은, 가장 천하고 가장 낮은 자를 통해서 오시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오신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아무도 모르게 오시는 이유는, 마음이 교만한 자들과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우쭐되는 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께서도 가장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오셨던 이유는, 마음이 교만한 자들과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오셨던 것이다. 


이방인들 앞에 가장 천하고 낮은 자를 통해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말을 믿고 나오는 자들을 알곡으로 인()치는 작업을 하시게 된다. 계시록에서 인(印)친다고 하는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땅에서 쭉정이로 버려질 것이다. 도적같이 오신 그리스도께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고 나면, 세상 마지막 날 예수께서 다시 공중에 재림하셔서 땅에서 알곡으로 인()친 자들을 먼저 공중으로 불러 올라가게 된다. 그때 땅에 남게 된 쭉정이들은 하늘에서 불비를 내려 이 세상과 함께 불태워버릴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영적인 깊은 잠에 빠져 들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깊은 잠에 빠져 취해 있게 되면, 도적같이 오신 그리스도를 눈앞에 보고도 믿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늘 인지하고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들이 미련해서 예수를 믿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당시 그들의 높아진 마음과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지 못해서 예수를 믿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자신의 높아진 마음과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들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거부하고 마는 것이다따라서 기독교인들도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는 자신의 높아진 마음과 자신의 생각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데이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에게는 이것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좁은 문이 되는 것이다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많지 않지만, 반대로 멸망으로 가는 문은 그 길이 넓고 크기 때문에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은 것이다.

 

예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통과 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말씀하신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을 따라 살면 영생에 이르게 되지만,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육신의 소욕을 떨쳐버리고 성령을 따라 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 역시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을 천국으로 인도해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다시 오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모두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에 이르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기독교인들로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에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유대인들 중에서도 자신을 의롭다고 하던 바리새인들은 예수 믿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던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되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첫째, 우리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죄가 사라지게 되니까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된다. 우리 마음속에서 죄가 사라지고 나면 그때부터 어떤 근심이나 걱정이 밀려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면, 이 세상 어떤 누구에게도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선생이 되어 나를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예배당에 모여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던 것은, 그리스도를 우리 앞에 하루라도 빨리 보내주실 것을 바라고 이천년 동안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유대인들도 하나님 앞에 이천년 동안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던 것은, 예수를 하루라도 빨리 자신들 앞에 보내주실 것을 바라고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그런데 어둠속에 살고 있는 하나님 백성(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은 왜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그 이유도 제대로 모른 체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되면, 주일마다 예배당에 모여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부활절이나 성탄절에도 예배당에 모여 그리스도 모형에 불과한 빵과 포도주를 다시 먹지 않아도 된다. 유대인들도 예수가 오시기 전까지는 안식일을 비롯하여 유월절이나 맥추절 같은 날과 달과 절기들을 꼬박꼬박 지켰지만, 예수가 오신 뒤로는 이것들을 모두 폐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예배당에 모여 꼬박꼬박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며 살아 왔지만,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속에 오시게 되면, 이제 이런 것들을 더 이상 지키지 않아도 된다.

 

유대인들도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이천년 동안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런 제사들을 모두 폐하게 되었던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이천년 동안 예배를 드렸지만, 이제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드리던 모든 예배를 모두 폐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천국이 자기 마음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속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무형교회가 비로소 우리 마음속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이에 따라 무형교회가 우리 마음속에 세워지고 나면이제는 더 이상 사람 손으로 지은 유형교회는 우리에게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시라주일 마다 예배당에 모여 꼬박꼬박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며 사는 것이 더 현실성 있는 삶인가? 아니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속에 오셔서 나를 이끌어 가시는 것이 더 현실성 있는 삶인가?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믿음의 척도인가? 아니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내 마음속에 오셔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시는 것이 더 확실한 믿음인가? 누가 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증거 하게 되겠는가? 이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께서 하시라!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첨부파일 다운로드: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미투데이 공유
  • 요즘 공유
  • 인쇄하기
 

김석곤

| 2020-05-12

추천0반대0댓글수정삭제

우리가 성경을 통해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성경을 통해 아는 지식으로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자신있게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고 살다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후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듯이,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고는 있지만,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우리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자신있게 말하려면, 적어도 사도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빛(영)으로 우리 마음속에 직접 들어오셔야 한다.

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울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셔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열두 제자들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나 또는 예수의 행적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반면, 바울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체험한 것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바울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셔서 바울의 삶을 직접 이끌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무슨 말을 할때마다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말을 글로 옮겨 쓸때는 성경구절로 도배를 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자신이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성경구절을 가져다 자기 것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성경말씀을 도적질 해다가 자기 것으로 삼는 행위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말에 어리둥절하겠지만, 성경말씀대로 살지 못해면서 성경구절을 인용하는 것을 도적질하는 것과 같다.

기독교인들이 성경 말씀을 도적질 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바울처럼 성경 말씀대로 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성경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는 바울처럼 자기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한다. 성령의 법아래서는 어느 누구도 성경 말씀대로 살 수가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다보니, 입만 살아서 하나님 이름을 부를 뿐, 하나님 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심지어 귀신들도 성경 말씀을 인용해서 말하고 있다.

오늘날 유명한 신학자나 목사들이 수많은 책을 펴내도 그것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바울처럼 그리스도가 말씀한 것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기록한 것이라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통해 하신 말씀은 권세 있는 생명의 말씀이라, 그 말씀대로 살게되면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하지만, 인간의 생각으로 기록한 책은 생명이 없기 때문에, 그책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아도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산 영(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자와 '죽은 영(귀신)'의 지배를 받는자의 차이 점이다.

바울이 열두 제자들처럼 예수 부활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속에 직접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확신할 수 있었다.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고 말했던 것도 자기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셨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우리 마음속에 직접 들어오셔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바울처럼 확실한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다. 부활의 증인만이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으며, 부활의 증인이 전하는 말씀(복음)이라야,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천국으로 안내할 수 있다.

이름 : 비밀번호 : 스팸방지코드 :
번호제목작성자등록일조회수
하단로고

새한중앙교회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삼성리 584-1 

Tel : 031-774-6301 / Fax : 031-774-6305 

선교비후원계좌 : 농협 351-0930-6631-83(새한중앙교회)

Email: ksk6307@naver.com / h0sea@naver.com

Copyright ⓒ 2013 새한중앙교회 /  정보관리책임자:김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