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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세상에 왔으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작성자bansuk

작성일2020-04-26

조회수214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요한복음3:16-21

제목: 빛이 세상에 왔으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유대인들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것 때문에, 그들의 자긍심은 대단하였다. 그러나 율법은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법이기에, 그들 또한 모두 율법을 거역한 죄인들이다. 율법을 거역한 죄의 경중에 따라 어떤 자는 육체가 병이 들기도 하고, 어떤 자는 멀쩡한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들이다. 그런데 자신을 의롭게 여긴 자들이, 병든 자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병든 자들이 예배당에 들어오는 것조차도 그들은 허락지 않았다.

 

율법아래 갇힌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육체를 입은 예수가 오셨다. 이때 육체가 병든 자들은 낫기 위해서 예수 앞으로 달려 나왔다. 하지만, 자신을 의롭게 여긴 자들은 예수 앞으로 달려 나오지 않았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다른 종교를 전파하는 이단으로 보았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즉시 출교를 시켰다.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하는 것은, 자기 동족들에게 버림을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든 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낫기 위해 예수를 찾았다. 그러나 출교를 당할까봐 두려워하는 자들과 자신을 의롭게 여기던 자들은 끝내 예수를 찾지 않았다.

 

오늘 본문을 보면,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더라! 말하고 있다. 우리 생각 같아서는 빛이 세상에 왔으므로 어둠속에 살던 인간들이 빛을 더 사랑하게 될 것 같은데, 도리어 어둠을 더 사랑하더라는 것이다. 왜 사람들이 빛을 사랑하지 않고 어둠을 더 사랑하는 것일까? 이는 어둠의 특성 때문이다. 맨날 어둠속에 살던 사람은 어둠을 빛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참 빛이 오게 되면 그것을 멀리하고 싫어하는 것이다. 컴컴한 방안에 전등불을 켜면 어둠이 물러가듯이어둠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참 빛을 받아야만 생명을 얻게 된다. 사람들이 빛을 싫어하고 어둠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어둠의 세력 때문이다. 어둠의 세력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이상, 인간은 빛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둠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쳐줄 분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모두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다는 것은, 자신은 구원 받은 하나님 자녀라는 것이다. 기독교인 말대로 자신이 하나님 자녀라면,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오직 성령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죄인은 결코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뜻대로 살고 있는 자를 찾아볼 수가 없다. 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도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가? 그것은 바로 기독교인들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는 죄악(죽은 영)때문이다.

 

성령을 받은 자가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면, 성령을 거역한 죄를 짓고 영적인 율법아래 갇히게 된다. 영적인 율법이란?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주신 마음의 법이다. 기독교인들은 마음속으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래야 영생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죄악을 갖고 태어나다보니, 누구도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끝에 가서는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고 만다. 이렇게 하여 결국 기독교인들도 모두가 영적인 율법아래 갇히고 말게 되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러야 그나마 마음이 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지 않게 되면, 자신이 마치 구원에서 멀어진 것 같기 때문에 계속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아무리 아버지로 불러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사함 받기 전에는, 하나님께서도 기독교인들을 당신의 자녀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결코 죄인을 당신의 자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을 거역한 죄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진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과 관계를 연결시켜줄 중보자가 필요하다. 그 일을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셨던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셨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오신 이유는, 영은 육체를 입어야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육체를 입고 오셔야 기독교인들의 속사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기독교인들 중에서 긍휼히 여길자는 긍휼이 여겨주시고, 불쌍히 여길자는 불쌍히 여기셔서 영생에 이르게 할 것이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께서도 유대인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서 영생에 이르게 하셨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바울 마음속에 들어가신 후,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빛()으로 그 사람 마음속에서 들어가신 후, 기독교들을 비롯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이다.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비롯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누구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자신의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 복음이 전세계에 전해지고 나면, 세상 사람들은 알곡과 쭉정이로 나눠지게 될 것이다. 그때 공중에 재림하신 예수께서 알곡은 공중으로 불러 올라가고, 쭉정이는 땅에 남게 되어 이 세상과 함께 불태워지게 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을 빛의 자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아직 빛의 자녀가 아니고, 죄악 속에 살고 있는 어둠의 자식들이다.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빛의 자녀로 생각하는 것은,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동일한 영으로 생각한 나머지, 성령을 받으면 자기 마음속에도 그리스도가 계신 것으로 착각하여 자신이 빛 아래 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실 수가 없기 때문에 빛의 자녀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마음속에서 죄악(죽은 영)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어둠의 자식들이다.

 

기독교인들이 어둠속에 살고 있다는 증거는, 기독교인들이 육신의 소욕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육신의 소욕은 마음에서 올라오는 것으로서, 아무리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자라도 끝에 가서는 결국 육신의 소욕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두가 넘어지고 만다. 만약 성령이 그리스도 영으로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셨더라면, 기독교인 모두가 육신의 소욕을 물리치고 승리하였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오늘날 기독교가 이처럼 타락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고, 하나님 영이라서 인간의 마음속에 오시지 않기 때문에, 성령의 법 아래서는 기독교인 모두가 육신의 소욕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결국 넘어지고 마는 것이다.

 

바울이 그리스도로 거듭나기 전에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얼마나 율법에 열심을 내던 자인가는 그에 행적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게 율법에 열심이던 자가 만약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찌되었을까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만약 바울이 예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사단의 자식으로 활동하면서도 자신은 틀림없이 천국에 갈 것으로 믿었을 것 아닌가? 그렇게 율법에 붙잡혀 살던 그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보니, 자신이 지옥자식이요 말할 수 없는 더러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자신이 어둠속에 살면서도 그것이 어두움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그가 그리스도의 빛을 통해서야 비로소 자신이 어둠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예수를 만나고 난후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바울을 대입해서 생각해 볼 때,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모두가 어둠속에 살고 있는 사단의 자식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제아무리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자라도,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역할을 할뿐,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성령은 하나님 영으로서 마귀 발아래서 나온 기독교인들의 영()만 지배하기 때문에, 성령으로는 기독교인들이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뜻대로 살면 구원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끝까지 성령의 뜻대로 살 수가 없다. 기독교인들에게 영생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셨지만,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도리어 성령의 법아래 갇히고 말게 된 것이다. 이것을 두고 기독교인들 스스로 지은 자범죄라고 말한다.

 

이제 기독교인 스스로는 죄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비단 기독교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도 율법을 거역하고 모두가 율법아래 갇히게 되었다. 율법아래 갇혀있던 유대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육체를 입은 예수가 이스라엘 땅에 오셨던 것처럼, 오늘날 영적인 율법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사람을 통해 다시 오신 것이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이제 기독교인들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끊어졌던 관계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을 수 있다. 율법을 거역한 유대인들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 되었으나, 예수께서 오셔서 다시 연결시켜주셨던 것처럼,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 또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관계를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다시 연결시켜 주셔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의 죄를 용서해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죄만 용서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영(그리스도 영)’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보내서 아예 하나님 것으로 인()치시는 것이다. 하나님 것으로 인()침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건들릴 수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

 

그러나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른 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니까 구원 받았다는 생각에 빠져,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참혹한 형벌이 따르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지 못하면, 그들은 세상 마지막 날 지옥형벌을 받기 위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이방인들에게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적인 아들을 이방인들 앞에 보내주셨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끝까지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며 빛 앞에 오기를 싫어한다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이 참혹한 형벌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자들을 두고 성경은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더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말씀이,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빛 앞에 드러날까 함이요 우리 생각 같아서는 악을 행하는 자가 빛 앞으로 더 달려 나와야 될 것 같은데, 악을 행하는 자가 오히려 빛 앞으로 달려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빛 앞에서 자신의 행위가 드러날까 하여 빛 앞으로 달려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교회를 다니는 자들이라도 그리스도를 싫어하는 이유는, 자신의 행위가 그리스도의 앞에서 드러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달려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오늘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앞에 오시면 당장은 좋을 것 같지만,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행위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달려 나오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진리를 좇는 자는 빛 앞으로 달려 나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이 말은 마음속으로 주님을 사모하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가 우리 앞에 다시 오시는 것이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자신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이었음을 나타내려 하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주님을 사모하는 자들은 빛 앞으로 달려 나와서 자신의 행위를 확인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믿는 자는 더 잘 믿게 되고, 믿지 않는 자는 더 못 믿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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