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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행위로는 누구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작성자bansuk

작성일2020-05-03

조회수254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갈라디아서3:1-14

제목: 종교적 행위로는 누구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유대인들은 율법아래서 2천년 동안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 하지만, 이런 종교적 행위로는 유대인 어느 누구도 의롭게 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율법은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할뿐, 율법으로는 인간이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을까? 여기에는 몇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 하던 유대인들이 하나님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그들에게 율법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두 번째 목적은,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가도록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낮은 곳에 내려가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 중에서, 율법의 중한 법을 어긴 자들은 육체가 병들게 되었으나, 율법의 하위 법을 어긴 자들은 육체가 병들지 않았다. 그러자 육체가 병들지 않은 자들이, 육체가 병든 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며 상종도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성전에서 함께 제사 드리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사실, 육체가 병들지 않는 자들도 모두 율법을 어긴 자들이다. 다만, 그들의 육체가 병들지 않았던 것은, 율법의 중한 것을 어기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자신이 병들지 않았다는 것을 의(義)로 여기며 자기 형제들을 정죄했던 것이다. 법(죄)아래 있는 자들이 종교생활에 깊이 빠지게 되면 부모 형제도 몰라본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자신을 의롭게 여긴 나머지 불신자나 자신보다 못한 자들을 함부로 비판하며 정죄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것은, 자신은 예수 믿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 받은 것으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 되지 않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자기 마음속에 죄악이 가득하여 아직도 죄아래 살고 있는 자가 남을 비판 한다는 것은, 똥 묻는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예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7:1-2). 적어도 남을 비판하려면 자기 눈에 들어 있는 들보부터 빼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남을 비판하는 것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일이다.


하나님 자녀는 절대로 남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붙잡아 왔을 때, 예수도 간음한 여인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었으나, 예수께서는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어떤가? 자신보다 못하거나 불신자들을 함부로 비판하며 정죄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아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증거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으로 구원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자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본인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아야 한다.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마음속에 주신 법)'역할을 할뿐,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남을 비방하고 정죄하는 것은, 자기 눈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속에 있는 티만 보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7:3).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유대인들 모두가 율법을 거역한 죄인들이다. 그런데 자신이 병들지 않았다는 것을 의(義)로 내세워, 육체가 병든 자들을 정죄하였던 것이다. 결국 인간이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면, 악한 영의 조종을 받아 자기보다 못한 자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모두 똑같은 죄인들인데, 인간들이 서로 편을 갈라놓고, 한쪽은 죄인 한쪽은 의인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하나님이 지켜보실 때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호랑이가 없는 굴에서 토끼가 왕노룻 한다고, 마귀의 조종을 받는 인간이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세상을 심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2천년 동안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던 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을 붙잡고 제사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런 종교적 행위로는 인간이 의롭게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이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아무리 많은 제사를 드린다 해도, 그것으로 아담이 지은 원죄와 율법을 어긴 자범죄’는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영생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원죄와 자범죄두 가지 죄를 모두 해결 받아야 비로소 영생에 이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약속한 기한이 이르자, 유대교 이천년 역사 말미에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예수가 오시면 지금까지 성전에서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던 종교적 행위를 그치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유대인들은 원죄와 자범죄를 사함 받고 모두 영생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육체가 병들지 않은 자들은 자신을 의롭게 여긴 나머지 예수를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성전에서 나가서 여전히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율법의 완성자가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교적 행위를 계속하는 자들을 두고, 바울은 율법의 저주아래 있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육체가 병든 자들과 자기 동족들에게 따돌림을 받던 세리와 창기들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를 찾아왔다. 그리하여 병든 자들은 고침을 받고, 세리와 창기들은 율법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았다. 육체가 병든 자들의 병만 고침 받은 것이 아니라, 율법을 거역한 자범죄(마음속의 죄)까지 해결 받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과 병든 몸이 도리어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바울이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쳤다고 하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육체가 병들지 않은 자들은, 당장 아쉬울 것이 없는 자들이라서 예수를 믿지 않았다. 그들은 병들지 않는 육체가 도리어 자신을 멸망으로 이끌고 말았다.

 

예수는 아담이 지은 '원죄'를 담당해 주시기 위해서, 마귀의 조종을 받은 인간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셨다. 인간적으로 보면 슬픈 일이나, 그러나 이것은 마귀를 멸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었으나 죄 없는 예수는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났다. 이로써 세상 임금인 마귀는 더 이상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의 영()을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 율법을 거역한 죄를 짓고 율법아래 갇혀 있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먼저 자범죄(마음속의 죄)’를 먼저 사함 받게 된다. 그런 후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고 난 후 마지막에 성령을 받게 되는데, 이로써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유대인들은 자범죄와 원죄’두 가지 죄를 모두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기독교인들이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그것으로 자범죄와 원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자범죄(마음속의 죄)'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아담이 지은 원죄하나만 해결 될 뿐,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자범죄)’는 도말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구원이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모르고 성령만 받으면 무조건 구원이라고 믿기 때문에, 교만해진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악한 영'이 붙잡고 사용하기 때문에 함부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여, 유대인들이 예수 믿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니까, 자신들도 예수 믿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과정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유대인들은 율법아래서 이천년을 살다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을 수 있지만, 이방인들은 율법도 없이 살다가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은 것이라서,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는 오직 자기 백성 즉,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의 '자범죄'만 해결하여 주신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1:21).


그러나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는,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믿어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이방인들 앞에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을 수 있다.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는 오직 자기 백성들(율법을 육체에다 받은 유대인들)의 '자범죄'만 해결하여 주신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성령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마음속으로 지은 죄)'는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만 해결해 주신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은 '영적인 백성(마음속에다 율법을 받은 백성)'이라, 반드시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예수 믿고 성령만 받으면 구원 받았다고 믿기 때문에, 성령만 받으면 모두들 구원 받았다는 생각에 교만해져서 남을 함부로 비판하며 정죄하는 것이다. 이런 자는 자신이 사단의 종노룻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의 공로 때문이다. 예수 피는 마귀를 멸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 누구나 예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 영()속에 성령을 보내주신다. 따라서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마귀 발아래 놓여 있던 이방인들 각 사람의 영()이 마귀 발아래서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말은 곧 아담이 지은 원죄를 해결 받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로서 이방인들도 두 가지 죄악 중에서 하나를 해결 받게 된 것이다.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이제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이 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 백성은 아직도 죄인의 신분이기 때문에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은 이때부터는 세상 모든 것을 버리고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살아야 한다. 성령의 감동을 따라 사는 것이 곧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성령의 감동에 따라 하나님 앞에 예배도 드리고, 성령의 감동에 따라 각종 헌금도 하고, 성령의 감동에 따라 교회에서 충성봉사도 해야 한다. 그래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이방인들 마음속이 모두 죄로 부패하여 있다 보니, 성령의 뜻대로 사는 자가 없다. 다시 말해 마음이 죄로 부패되어 있다보니,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았지만, 구원에 이르는 자가 많지 않은 것이다.

 

이방인들이 처음 성령을 받으면, 눈이라도 빼줄 것처럼 또는 전 재산이라도 다 바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성령 충만이 사라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돌아서고 만다. 성령을 소멸하고 육신의 소욕대로 살다보면, 나중에는 완전히 옛날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그때는 불신자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도 교회는 빠질 수 없으니까 주일이면 예배당을 찾기는 하지만, 이미 성령의 감동(마음)도 없이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종교적인 행위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생활을 몇 십 년 반복하다보니까 이것이 신앙으로 굳어져서 나중에는, 이것을 믿음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교회를 오랫동안 다니면서 기독교인들이 터득하게 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무엇이든지 교회일에 열심을 내면 그것을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쌍한 사람들을 찾아가 돌보기도 하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기도 하고, 고아원이나 양로원 찾아가서 여러가지 봉사도 하는 것이다. 거기다 주일성수,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와 십일조와 각종 헌금등도 빠짐없이 하는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까 자신은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서 틀림없이 천국에 갈 것으로 믿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에는 어떤 댓가나 보상도 바래서는 안 된다. 어떤 보상을 바라보고 열심을 내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행위를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가 없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죄(아담이 지은 원죄와 내가 지은 자범죄)를 모두 해결 받아야 천국에 갈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현제 예수 이름을 부르고 아담이 지은 원죄는 해결 받았다. 그리고 그 증거로 성령까지 받은 상태이다. 그러나 아직 본인이 마음속으로 지은 '자범죄'는 해결 받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음속으로 지은 '자범죄'를 해결 받아야 한다. 따라서 이제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만 해결 받으면, 기독교인들도 모두 천국에 갈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자범죄, 위에서 말한 종교적인 행위(교회에서 열심내는 행위)로는 마음속의 죄가 해결 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천국에 갈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마음속에 들어 있는 자범죄를 해결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셨던 예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사도 바울 마음속에 들어가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통해서 오시게 되는데,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예배당에 나가 예수 이름을 예배를 드렸던 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던 것이 장차 오실 예수를 바라보고 제사를 드렸던 것과 같은 이치다. 

 

이제 이방인들도 구원에 때가 이르게 되어,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적인 아들(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이방인들 앞에 보내주시게 된 것이다. 이방인들은 이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다시한번 말씀 드리지만,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열심히 신앙생활 했던 것들은 모두 종교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종교적 행위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되지 않기 때문에 구원에 이를 수 없다. 따라서 기독교인들도 이제 영생에 이르기 위해서는, 기독교 이천년 역사 마지막에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귀 있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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