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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법(율법)의 잣대로 그리스도를 재단하지 말라!

작성자bansuk

작성일2020-09-06

조회수3,219

그리스도의 주일 말씀

본문: 갈라디아서3:23-29

제목: 성령의 법(율법)의 잣대로 그리스도를 재단하지 말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3:23).

 

바울이 기록한 이 말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을 두고 하는 말로서, 예수가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율법아래 갇혀 있게 되었는데, 율법이 유대인들을 예수 앞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유대인들 모두가 예수를 믿고 의롭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본문을 기록한 것이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선택 받았지만, 당시 각 나라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유대인)들에게도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이런 바램과는 다르게 유대인들은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던 유대인들로서는,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유는 예수는 안식일의 주인으로 오셨기 때문에, 안식일에 병을 고쳐서 사람의 전신을 온전케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유대인들로서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고 다니는 예수가 자신들 눈에는 이상한 자로 보였던 것이다.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던 자들과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그리스도의 간극을 무엇으로 좁힐 수 있을까? 어느 한쪽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생각을 접지 않는 한, 이 둘의 간극은 좁혀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누가 자신의 생각을 접어야 할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들이다. 그런데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안식일을 조상대대로 지켜왔고 또한 율법에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당연한 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을 주신 근본 목적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통해서 진정한 안식이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주셨으나, 유대인들은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령, 율법을 어겨 병든 사람이 있는데, 그가 안식일을 지켰다고 해서 병든 몸이 치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려면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를 통해 병든 몸이 나아야 되는데, 유대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다보니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그 의무를 다했다고 여겼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의 잣대로 예수를 재단하게 되면, 예수가 하는 일은 모두 이단들이 하는 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율법을 지켜야 하는 자와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분을 동일한 선상에다 놓고 보면, 예수는 유대인들 눈에 이마에 뿔 달린 짐승처럼 보이는 것이다. 예수는 안식일만 어겼던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 성전도 헐어라! 그러면 내가 삼일 만에 다시 일으키겠다. 더 나아가 내 살과 내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말했으니, 유대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던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나는 하나이니라!” 하는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로서 신성모독에 해당한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수 있냐는 것이다. 유대인들로서는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 자신들을 미혹하는 이단으로서 죽여야 한다고 믿었다. 율법아래 살던 자가 자신을 깨닫지 못하면 결국 구세주를 죽여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유대인들이 율법아래서 이천년 동안 하나님을 믿어왔다고 하지만, 율법을 주신 의미를 모르다보니,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죽는데 내어주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둠속에 사는 인간의 한계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어떤 모습일까?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들의 그것과 하나 다를 봐 없음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생각하기를 자신들은 유대인들과 다르다고 말하겠지만, 기독교인들 역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왜 성령(영적인 율법)을 보내주셨는지, 그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다. 그러다보니 성령이 하시는 일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또한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동일한 영으로 착각하여 구원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 본문 말씀도 자신들 입맛에 맞게 해석하여, 우리는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으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두에서 말했듯이 기독교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도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영생에 이르지 못한다.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영생에 이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런 말도 곧이 듣지 않는다. 그리고는 자신들은 예수를 믿었으니까 무조건 예수께서 자신들의 죄를 사해주실 것이라 믿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바울이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3:23).

 

바울이 말하고 있는 위 내용을 기독교인들에게 그대로 적용해 보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령의 법(영적인 율법)아래 갇혀 있게 되었는데, 성령의 법이 기독교인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기독교인들 모두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말씀도 자신들 입맛에 맞게 해석하여, 자신들은 이미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으니까 구원 받은 것이라고 단정지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인들은 율법아래 살던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도 마음속의 죄를 해결받을 수 없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이 말씀은 현제 이방인들 앞에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나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이런 바램과는 다르게 기독교인들 역시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 대다수가 공중에 재림할 예수만 기다리고 있을 뿐, 도적같이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모두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구원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를 인정하지 않았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미 성령(영적인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성령의 법을 완성시켜 주러 오시기 때문에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해결하여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성령의 법을 따라 사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신약성경에 기록된 온갖 법을 다 지키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신약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지 못하여 모두가 영적인 율법아래 갇혀 있는 것이다. 영적인 율법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셨다. 그러다보니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기독교인들이 지켜야 하는 주일에도 오직 죄인을 구원하는 일에만 전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바라보는 기독교인들이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이다.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과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하러 오신 그리스도와의 간극을 무엇으로 좁힐 수 있을까? 어느 한쪽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생각을 접지 않는 한, 이 둘의 간극은 절대 좁혀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누가 자신의 생각을 접어야 할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아 지금까지 열심히 신앙생활 해왔고, 또한 주일성수는 말할 것도 없고,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철야 또한 빠짐없이 지켰으며, 더 나아가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며, 자신들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도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영적인 율법)을 왜 보내주셨는지, 그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이유는, 성령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을 따라 살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을 통해서 자신의 한계를 깨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계속해서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려면, 그리스도로 거듭나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진정한 안식이 무엇인지도 모른 체, 무조건 주일만 지키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령, 기독교인들 중에 성령의 법을 어겨 마음이 병든 사람이 있는데, 그가 주일을 지켰다고 해서 병든 마음이 치료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따라 기독교인들도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려면 성령의 법의 완성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 병든 마음을 고침 받아야 비로소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다보니, 주일날 예배당에 가서 예배 한번 드리는 것으로, 그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아무리 많은 예배를 드려도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많은 예배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유대인들이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그 많은 제사를 드리고도 마음속의 죄가 해결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이치다.

 

유대인들이 율법의 잣대로 예수를 재단하게 되면, 예수는 이단의 괴수로 보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성령의 법의 잣대로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재단하게 되면, 그리스도는 기독교인들의 생각과 맞지 않기 때문에 이단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성령의 법을 지켜야 하는 기독교인들과 성령의 법을 완성시켜주러 오신 분을 동일한 선상에다 놓고 보면, 그리스도는 기독교인들 눈에 이단의 괴수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께서 안식일의 주인으로 오셨듯이,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또한 오늘날 주일날의 주인으로 오셨다. 기독교인들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지만, 그리스도는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 마음속에서 죄를 해결해주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주일날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예배를 통해 기독교인의 속사람이 변화된 사람이 한명도 없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으로 드리는 예배는 그리스도의 모형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런 예배를 통해서는 속사람이 절대 변화되지 않는다. 결국 기독교인들이 주일마다 예수 이름으로 드리는 예배로는 기독교인의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유대인들이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이천년 동안 제사를 드렸지만, 그런 행위로는 유대인의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더 이상 예배당에 모이지 말고, 기독교인 모두가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고, 각자가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님 앞에 나오라는 말씀이다. 그 이유는 기독교 공동체 생활로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헐고 자신을 믿으라고 말씀하셨던 것과 같은 이치다. 부활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주인으로 들어가게 되면, 기독교인들도 그때는 더 이상 사람의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인간의 주인이 되어 각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고전13:19절을 보면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 앞에 오시게 되면, 그동안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의 은사로 주신 것들을 모두 폐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신 목적은, 성령의 법아래 갇혀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에 주시기 위해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맨 처음 사도 바울 마음속에 빛()으로 들어가서 이방인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그리스도께서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통해 영으로 오셔서, 기독교인들 중에서 자신을 믿고 나오는 자들을 알곡으로 인()치는 작업을 하시게 된다.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주러 오신 분을,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의 잣대로 재단하여, 그를 이단으로 보거나, 그를 배척하게 되면 기독교인들의 구원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귀 있는 자는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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