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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음성을 듣거든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말라!

작성자bansuk

작성일2012-01-29

조회수11,719

주일 낮 설교

본문: 히브리서3:1-19

제목: 주의 음성을 듣거든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말라!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 모세를 하나님 다음으로 크게 신뢰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했던 말과 행동 하나하나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습관처럼 답습하게 만들었다. 가령,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하여 복을 받게 되자, 그들은 앞 다투어 나그네를 대접하는 습관이 생겨났고, 또한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 주고 아내를 내 보내라는 말을 했다하여, 그들은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꼬투리를 잡아 여자들을 학대하였다.

 

이는 모든 일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방생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하고 복을 받은 것은,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인간으로 위장하여 아브라함을 찾아온 것을, 아브라함이 천사를 극진히 대접하고 하나님께 받은 복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자신에게도 천사가 찾아와서 복을 줄 것처럼 생각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오늘날 마치 로또 복권을 사서 일등에 당첨되어 보겠다는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충분한 이유도 없이 너도 나도 앞 다투어 아브라함의 흉내를 내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한 행위이다. 이런 식의 신앙생활은 종교적인 행위에 그칠 뿐 믿음을 쌓아 가는대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모세가 이혼증서를 써주고 아내를 내보내라고 했던 말도 사실은 이혼하라는 말이 아니다. 모세가 이런 말을 한 것은, 당신 높은 자리에 앉아 있던 이스라엘 관리들이 툭하면 모세를 찾아와서 맘에 들지 않는 자기 부인을 내쫓아 줄 것을 모세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율법에는 음행한 연고 없이 함부로 아내를 버리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틈만 나면 율법의 창시자인 모세를 찾아와서 졸랐던 것이다.

 

당시는 가부장적인 제도가 심했던 시대라 모든 것이 남자 위주로 꾸려가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며 살기가 쉽지 않던 시대이다. 따라서 남자들은 이런 제도를 악용하여 아내가 조금만 맘에 들지 않으면 부인을 쫓아낼 연구만 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보니 모세역시 그들의 강청을 못 이겨 하는 수없이 “아내를 좇아 보낼 때는 반드시 이혼증서를 써 줘서 보내라”고 했던 것이다. “이혼증서”를 써줘서 보내라고 하는 말은 약자인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 제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래 목적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와 이혼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크나큰 죄를 짓는 행위이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것이 관례가 되어 부부사이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모세의 이 말을 들이대며 약자인 여자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을 모르게 되면 이처럼 성경말씀을 오도하여 어처구니없는 일을 발생시키게 된다.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성경구절을 악용하여 성도들을 협박하고 있는지 모른다.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들이 십일조나 헌금을 강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 백성이라면 당연히 십일조나 헌금을 해야 한다. 그러나 십일조나 헌금을 강요하는 목적이 하나님 뜻에 어긋난다면 그것은 성도들을 상대로 강도짓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는 목적은 예물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이 마음의 소통을 나누기 위해서다. 그런데 예물을 드리는 목적이 하나님과의 소통은 뒷전이고 오로지 예물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면 이는 하나님 이름을 빙자한 강도짓이다.

 

말씀으로 성도들을 협박하여 강도짓을 일삼는 자들은 성경구절 토씨 한자 한자에 목숨을 건다. 예수님 당시 율법사와 관원들이 모두 그런 자들이다. 그들은 입만 살아서 나불거릴 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은 자들이다.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도 까닥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성도들에게만 법을 지키라며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이다. 예수님도 이런 자들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런 자들은 오늘날 교회 안에도 즐비하다.

 

그들은 왜 입만 살아서 나불거리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단 한번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통에 참여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시밭길을 한번도 걸어가 본적이 없는 자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십자가의 고통을 오직 이론으로만 알고 있는 자들이다 그래서 말과 이론으로는 하늘을 찌르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온갖 세상 것들로 꽉차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의 속셈으로 모아진 헌금은 결국 자신들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하여 교회 건물을 짓는데 사용되어지거나 혹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고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떨치는 일에 쓰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본래 목적을 상실하게 되면 복음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어 성도들을 배나 지옥자식 만들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방인들 앞에 도적 같이 오신다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땅에 오셨던 예수께서 무엇 때문에 또다시 이방인들 앞에 오신다고 하신 것일까? 그것은 이방 기독교인들 속에서 온전한 열매를 거둬들이기 위해서다. 현재 이방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온전한 열매로 착각하고 있지만 온전한 열매는 단 한 사람도 만들어진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이방인들 앞에 하나님 아들이 오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죄인으로 태어난 자가 온전한 열매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들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나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온전한 열매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장차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아들을 믿어야 비로소 온전한 열매를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시는 이유는 이방인들이 정말로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었던 자들인가를 시험해 보기위해서이다.

 

이방인들 앞에 도적같이 오신 주님께서는 믿는 자들의 죄를 모두 들추어내서 하나하나 열거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음성이 들려질 때 자신을 죄인으로 깨닫고 있는 자들은 주님 앞에 달려 나오겠지만, 마음을 강퍅히 하고 있는 자들은 주님을 믿지 못하고 도리어 주님을 향해서 돌팔매질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들 속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는 마지막 작업이다. 자신이 무엇으로 심었던지 심은대로 거두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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