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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으로 죄를 사해주시는 그리스도!

작성자bansuk

작성일2015-01-11

조회수5,664

주일 낮 말씀

본문: 누가복음18:35-43

제목: 합법적으로 죄를 사해주시는 그리스도!

 

인간들 세상에 법이 있다면, 하늘나라에는 위계질서(位階秩序)가 있다. 하나님이라도 이 법을 어기게 되면 벌을 받아야 한다. 이는 그만큼 하나님이 온전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천사들 중 하나가 자기자리를 이탈하여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다가 영계의 위계질서를 어지럽히는 중한 죄를 짓고 말았다. 우리 생각 같아서는 그때 범죄한 천사들을 심판하여 지옥에 보냈더라면...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라고 하여 범죄한 천사들을 무조건 심판하지 않는다. 만약 하나님께서 범죄한 천사들의 죄도 묻지 않고 무조건 심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한 분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물며, 악한 인간들도 죄의 유무를 따져본 다음 범죄자를 감옥에 보내는데,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죄의 유무도 따지지 않고 범죄한 자들을 무조건 심판하여 지옥에 보낸다면, 하나님은 독재자가 되고 만다. 우리가 지금까지 죄를 지어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우리에게 죄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장차 오실 하나님 아들을 통해서 우리의 죄악을 하나하나 따져 보아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때까지 길이 참고 계시는 중에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육체를 입고 오신 아들을 통해서 죄의 유무를 따져보아야 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의 유무를 따져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천사들을 우주라는 공간에 가두고 그들의 죄악을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다. 마귀는 즉시 인간에게 접근하여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말했지만, 마귀는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의 눈이 밝아진다고 거짓말을 했다. 인간이 처음 지음 받을 때는 죄가 없었기 때문에 벌거벗고 살아도 창피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단절되자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이 창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자 그것을 곧 자신의 눈이 밝아진 것으로 착각했다. 그들에게 죄가 들어오자 그들은 곧 하나님의 눈길을 피하여 숨고 말았다.

 

오늘날 인간들이 자꾸만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고 하는 이유도 모두가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인간의 마음속에는 죄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 한다. 이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죄를 짓게 하는 죽은 영(鬼神)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자꾸만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 하는 것이다. 특히, 속으로 혼자서 무슨 일을 해결하려는 자들일수록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거부하고, 혼자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보려다가 마음먹은 대로 일이 해결되지 않을 때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는 것이 것이다. OECD국가 중에서 한국 사람들이 자살률이 높은 것도 모두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속임으로서 자신이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내고 말았다. 그 후 마귀는 모든 인간을 자기 발아래 두고 세상 임금으로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한이 이르자, 당신의 아들을 이스라엘 땅에 보내게 되었다. 그러자 마귀는 하나님 아들마저 인간의 손을 빌어 죽이고 말았다. 그러나 죄 없는 예수는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게 되었고, 마귀는 죄 없는 자를 죽인 것이 되어 불법자가 되고 말았다. 그때부터 예수 피를 힘입어 사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마귀도 자기 발아래 두지 못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성경은 하나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함이라!(요일3:8)”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흘려주신 피의 효력 때문이다. 예수가 흘려주신 피는 마귀를 심판하고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해주시는 능력이 있다. 따라서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원죄를 사함 받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하여 원죄를 해결 받았다 해도 그것으로 영생에 들어갈 수는 없다. 이방인들은 성령을 받은 영적인 백성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고, 반드시 이방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신 아들을 믿어야 비로소 마음속의 죄를 해결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주셨다. 영적인 율법이란? 기독교인들이 마음속으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고 모두가 죄를 짓고 말았다. 이로써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한 죄를 짓고 모두가 영적인 율법아래 갇히게 되었다. 영적인 율법아래 갇힌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하늘에 오르셨던 예수가 그리스도 영이 되어 사람을 통해서 다시 오시게 된 것이다. 이방인들은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음속의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온전케 되어 영생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성령(영적인 율법)을 주신 목적이다.

 

이방인들이 처음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을 때는 구원 받은 줄 알고 모두가 좋아했다. 하지만, 도리어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그것이 죄가 되어, 이제는 기독교인 모두가 영적인 율법아래 갇히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처음 율법을 받았을 때는 거룩한 성민이 되었다며 모두들 좋아했지만, 도리어 율법을 지키지 못한 그것이 죄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율법아래 갇히게 된 것과 같은 이치다. 이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율법을 육체에 받은 유대인들에게는 육체를 입은 하나님 아들이 오셔야 하고, 율법을 마음속에 받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적인 하나님 아들이 오셔야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영()과 혼()이 있듯이, 인간에게는 첫 사람 아담이 지은 원죄가 있고, 인간들 스스로 지은 자범죄가 있다. 이 두 가지 죄 중에서 단 한 가지라도 해결 받지 못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인간들이 생각하기를 인간의 영()과 혼()두 가지 가운데서 한 가지만 해결 받아도 구원에 이르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우리가 성찬식을 할 때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은, 예수의 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이는 인간의 원죄는 예수 피를 통해서 해결 받아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고, 인간 스스로 지은 자범죄는 예수 살을 통해서 해결 받아야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기독교인들이 예수 피를 힘입어 이제 겨우 원죄 하나만 해결 받은 것을 가지고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인들 스스로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앞으로 온전케 되려면 영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비로소 예수 살을 먹고 온전케 될 수 있다.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가 단절될 때, 인간의 영()이 죽자, 인간의 혼()도 함께 따라 죽었다. 이는 마치, 나무뿌리가 말라죽자 나무줄기도 함께 말라죽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인간이 하나님과 단절 되면 인간의 영()은 마귀가 지배를 하고, 인간의 혼()은 죽은 영(鬼神)이 지배를 한다. 따라서 인간이 죄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마귀 발아래 놓여있던 인간의 영(이 예수피로 말미암아 마귀의 발아래서 벗어나서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하고, 인간의 혼()이 죽은 영(鬼神)에게서 벗어나서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모세()를 따라 홍해바다를 건넌 다음, 여호수아(예수)를 따라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모형)을 따라 홍해바다를 건넜지만, 그 다음부터는 여호수아를 따라 요단강을 건너야 가나안 땅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 백성들이 이런 과정들을 무시하고 겨우 홍해바다 하나만 건넌 것을 가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처럼 좋아들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이제 겨우 종(성령께서 세운목사)들을 통해 홍해바다 하나를 건넌 것을 가지고, 마치, 요단강을 건넌 것처럼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기독교인들에게는 여호수아(영적인 아들)를 따라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 일이 남아 있다. 거짓 목사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요단강을 건넌 것처럼 말하지만, 아직까지 이방인들 앞에는 하나님께서 영적인 아들(여호수아)를 보내준 적이 없는데 어떻게 기독교인 스스로 요단강을 건널 수 있단 말인가?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영적인 아들을 따라서 요단강 건너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가나안(천국)땅에 들어갈 수 없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거짓목사들에게 속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성경에 보면, 눈먼 소경 하나가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며 예수를 간절하게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예수를 따라다니던 제자들이 시끄럽다 며 소경이 소리 지르는 것을 나무라자 소경은 더욱더 큰 소리로 예수를 부른다. 예수 역시 못들은 척 그냥 지나가신다. 그러자 소경은 더 큰 소리로 예수를 부르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때서야 소경을 돌아보신다. 예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그 소경이 낫고 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 소경에게는 자기 앞을 지나가는 예수가 자기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에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예수를 부르고 또 불렀던 것이다. 예수께서도 그제야 소경의 믿음을 보시고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합법적으로 인간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귀신()을 쫓아내는 과정이다. 하늘에서 천사가 범죄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천사를 당장 심판하여 지옥으로 보내지 않았듯이, 인간들 세상에 오신 예수도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鬼神)들을 무조건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鬼神)들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 쪽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실토해야 한다. 그래야 예수께서도 인간의 죄를 사해주고 합법적으로 악한 영(鬼神)을 몰아내는 것이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 합법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주인으로 들어가시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은사로 귀신을 쫓아내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다시 재발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을 치우지 않고 귀신(똥파리)만 쫓아냈기 때문에 귀신이 다시 들어온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받은 성령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라고 주신 것이지, 죄를 해결하라고 보내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설사, 성령의 은사로 귀신을 쫓아냈다하더라도 인간이 다시 죄를 짓게 되면 귀신은 다시 들어온다. 이런 원리에 따라 기독교인들이 성령 받은 것으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현재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들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죄를 들고 영적인 아들 앞으로 가서 자신의 죄를 실토해야 한다. 그래야 영적인 아들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합법적으로 사해줄 수 있다. 그리고 죄를 짓게 하는 악한 영(鬼神)들도 합법적으로 몰아낼 수 있다. 우리 집 대문을 열어주지 않았는데, 누가 우리 집 대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온다면 그는 도둑이요 불법자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를 우리는 더 이상 도둑으로 몰수는 없다. 예수가 문을 두드리기 전에 내가 문을 미리 열고 뛰쳐나가서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맞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악한 영에게 시달리며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역설적으로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하지 않았는데, 예수께서 내 죄를 사해준다면 예수는 불법 자가 되고 만다. 그리고 내속의 귀신은 절대 나가지 않는다. 설사, 나갔다 해도 죄 때문에 다시 들어올 것이다우리가 예수를 불법자로 만들지 않으려면 반드시 내가 먼저 죄인임을 그리스도 앞에서 실토해야 한다. 그래야 예수께서도 합법적으로 내속의 죽은 영(鬼神)들을 몰아내고,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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