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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

작성자bansuk

작성일2016-11-13

조회수2,931

주일 낮 말씀

본문: 로마서5:12-21

제목: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라는 말은, 인간이 자신의 죄악의 깊이를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의 은혜 또한 넘치게 된다는 말이다. 이는 마치, 밤이 깊으면 새벽이 빨리 찾아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어둠속에 사는 인간들로서는 자신의 죄악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믿는 자들은 자신의 죄악의 깊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하면 누구도 자신의 죄악의 깊이를 알 수 없다.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한 상태에서 인간 스스로 깨닫는 죄라고 해봐야 겨우 육신으로 깨닫는 죄와 그리고 세상에서 말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죄를 알고 있는 것이 전부다. 이런 죄를 깨닫는 것으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죄를 사해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해도 크게 깨닫는 것이 없다.

 

기독교인들이 바울이 기록한 말을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서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요 아직도 육에 속한 사람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걸 깨닫지 못하면 기독교인들은 절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없다. 바울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기독교인들은 옛사람(죄악)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천국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모두가 온전케 된 줄 알고 있겠지만, 외람되게도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는 말에 속게 되면, 결국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처럼 교만한 자리에 앉아 부활하신 주님을 대적하는 자로 전락하게 된다.

 

인간이 자신의 죄악의 깊이를 알려면 자신의 마음속을 환하게 비춰줄 수 있는 밝은 빛이 필요하다. 밝은 빛이 자신의 마음속을 환하게 비춰줄 때만이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다. 여기서 밝은 빛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리스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결국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계실 때만이 인간은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고 한없이 낮아지게 된다. 인간이 그리스도 앞에서 낮아지게 되었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빛을 통하여 비로소 자신의 죄를 제대로 깨달았다는 말이다. 그런 자는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에 교만한 마음을 먹지 않는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가 빛()으로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자 즉시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바울이 비로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이다. 만약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였다면, 바울은 영원히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 체, 율법으로 구원에 이른 줄 알고 우쭐되다가 하나님과 반대되는 일만 하다가 지옥 불구덩이에 던져지고 말았을 것이다.

 

오늘날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영적인 백성이 된 현재의 기독교인들은,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기 전의 모습과 똑같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우쭐되는 사람은, 바리새인들과 똑같은 사람들이다. 기독교인들이 바리새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바울처럼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듭나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으면 무조건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인들이 완전히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을 주러 오셨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도 절대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못한다. 만약 성령께서 기독교인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러 오셨다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지금쯤 모두 사라지고 없어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여전히 죄악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는 곧 성령이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는 증거다. 이런 원리에 따라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도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의 구원은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도록 하셨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주님을 믿게 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때야 비로소 기독교인들도 바울처럼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때부터 그는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살게 된다. 그리스도 은혜 아래 살게 되었다는 말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기독교인들이 무조건 성령을 받으면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것으로 믿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다가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멸망으로 가고 만다.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기 전, 그가 얼마나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던 자인가? 태어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당대의 최고의 학문을 겸비하였으며 또한 율법으로도 전혀 흠이 없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율법에 얼마나 열심을 냈으면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는 일을 했겠는가? 심지어 성령 충만한 스데반 집사를 가편투표로 죽이고 말았다. 그가 만약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인생이 어찌 되었겠는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 역시 당시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기전 모습과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라면 믿겠는가? 이런 말을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시 바울도 자신이 하나님과 정 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으니까 바울처럼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바리새인들이 율법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생각이다. 이렇게 생각하다가는 바울이 사울로 있을 때 스데반 집사를 죽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주님을 믿는 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하다 끝내는 죽이고 말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 누가 그를 죽였던가? 겉으로 보면 로마군이 죽인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예수를 모함하여 죽게 만들지 않았던가? 어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하나님이 보낸 아들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논리적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되지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사는 하나님 백성들의 모습이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 하지만 육신의 소욕을 떨쳐버리지 못하면 이런 우를 범하게 된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되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람을 통해 오셨을 때 그를 이단이라며 또 다시 죽일 수 있다. 성경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하신 말씀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다.

 

기독교인들이 아직 온전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기독교인들 삶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수많은 증거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증거는 아직도 기독교인들이 예배당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바울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면, 그리스도 모형에 불과한 예배당에 나가 예배드리는 일을 그쳤어야 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되면, 예수께서 직접 자신을 가르치시고 성경을 깨닫게 하시기 때문에 더 이상 예배당에 나가 인간들이 전하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계시지 않으면 계속해서 예배당에 나가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예배를 드리고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나가 소와 양을 잡아 하나님 앞에 2천년 동안 제사를 드렸던 것은, 오직 육체를 입고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한대로 예수를 보내주셨지만, 그들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하여 예수를 이단괴수로 몰아서 죽이고 말았다.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을 통해서 이런 교훈을 깨닫지 못한다면 부활하신 예수를 또다시 죽이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허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예루살렘 성전을 헐라고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성전이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성전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마음속에 계시다면, 성경뿐 아니라 모든 것을 깨닫게 하시기 때문에 더 이상 인간들이 전하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자기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예배당에 나가서 목사가 전해주는 말이라도 듣고 육신의 위로라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 찜찜하고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예배당에 나가야 한다. 그러나 말씀을 전하는 목사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성경 말씀을 들어도 죽은 영혼이 살아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이 영혼의 갈급함을 채워보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려보지만, 어느 교회를 가도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목마름은 채울 수 없다. 이때 방황하는 양떼들을 노리는 자들이 있는데 바로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이단들이다. 그들 마음속에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귀신이 예수로 둔갑하여 그럴듯한 말로 성도들을 미혹한다. 이단목사도 자신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귀신에게 속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알면 누가 그 짓을 하겠는가? 모르니까 그러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목사들이 전해주는 말씀을 듣고 교인들의 영혼이 살아났다면, 지금쯤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나, 말씀을 듣는 자들 모두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예배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없이는 아무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보려 해도 허울 좋은 말뿐 그리스도와 같은 행동이 나오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보겠다며, 처음 시작은 요란하게 출발을 해보지만 얼마가지 않아 빛은 고사하고 소금도 되지 못하고 썩어 냄새만 풍기고 만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현주소다. 그러나 믿는 자의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계시게 되면, 그곳은 절대 부패되지 않는다.

 

우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자신이 더러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성령으로 구원 받은 줄 알고 좋아했는데,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고 보니 비로소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마치, 천길 낭 떨어지기에서 한 가닥 동아줄에 매달려 있던 그가 자신이 붙잡고 있던 동아줄이 썩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놀라고 충격이 크겠는가? 그러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히 썩지 않은 새 줄로 갈아타게 되었을 때, 또 그때의 기쁨은 얼마나 더 했을까? 이렇게 생사를 넘나들며 주님을 만난 자라야 날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생각하고 살게 된다. -귀 있는 자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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