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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의 이중성!

작성자bansuk

작성일2017-02-05

조회수1,720

주일 낮 말씀

본문: 마태복음23:25-28

제목: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의 이중성!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예수께서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의 이중성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있다.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겉으로는 깨끗한 척 하였지만, 그들 마음속에는 시기와 질투와 거짓과 분노와 탐욕이 가득하였다. 그들이 겉으로는 하나님 앞에 열심을 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열심을 냈던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열심을 내던 자들이었다면, 그들은 자신이 율법을 거역한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들은 자신의 죄를 해결해줄 예수를 믿었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통해 죄 사함을 받기도 전에 자신을 의롭다 여기고 예수를 믿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보아, 그들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당시 장례문화는 사람이 죽으면 굴을 파고 그 속에 여러 구의 시체를 던져 넣게 되어 있었다. 예수도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 유대인의 장례풍습을 따라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 입구가 돌로 된 굴속에 넣어 두었다. 유대인들은 새로운 시체를 굴속에 던져 넣을 때마다 굴 입구를 막아놓았던 돌에다 회칠을 하여 말끔히 단장을 하였다. 예수께서 그것을 비유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이라고 표현하였던 것이다. 당시 예수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엄청난 분노를 쏟아 냈다. 사실, 예수께서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감춰진 죄악이 들통 나자, 예수 앞에서 그것을 사실로 인정하기 보다는 자신의 죄악을 감추기 위하여 예수에 대한 증오심을 나타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이중성이다.

 

이런 일은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람을 통하여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셔서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종교지도자들이여! 겉으로는 자신을 거룩하게 꾸미고 다니지만, 너희 마음속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도다. 소경된 종교지도자들아! 너희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게 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종교지도자들아 새로운 잔디로 곱게 단장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역시 기독교인들의 이중성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유대인들과 달리 이방인들은 마음이 부패한 자들이다. 따라서 종교 지도자들 역시 겉으로는 깨끗한 척, 거룩한 척하지만, 그들 마음속에는 시기와 질투와 거짓과 분노와 탐욕과 음심이 가득하다. 그들이 겉으로는 하나님 앞에 열심을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열심을 내고 있는 자들이라면,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는, 장차 부활하여 이방인들 앞에 오실 그리스도를 믿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를 통해 죄 사함을 받기도 전에, 자신은 이미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여기고 있는 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도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이로 미루어보아, 기독교들 역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육체를 입고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이라고 표현하였다면, 오늘날 부활하여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신 그리스도 역시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잔디로 곱게 단장한 무덤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우리의 장례문화는 유대인의 그것과 달리 사람이 죽으면 땅을 파고 관을 묻게 되어 있다. 시체를 묻고 난 후에는 봉분을 하고 잔디로 곱게 단장을 한다. 그리고 무덤 앞에 화병을 놓아두고 그곳에 꽃을 꽃아 두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덤이 말끔하게 단장된 것이다. 그러나 무덤 안에서는 시체가 썩어 냄새가 나고 온갖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다. 이를 두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잔디로 곱게 단장한 무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아마도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분노를 나타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죽이려 할 것이다. 사실, 부활 하신 그리스도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종교 지도자들로서는 자신의 감춰진 죄악이 들통이 나자, 부활 하신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 보다는, 도리어 자신의 죄악을 감추기 위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자신의 적으로 생각한 나머지 죽이려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이중성이다.

 

이밖에도 인간의 이중성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이중성에 속해 있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거나, 설사 안다고 해도 그것을 굳이 밖으로 꺼내지 않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숨은 것을 밖으로 꺼내봐야 자신에게 득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중성이 얼마나 모순을 낳고 있는지 한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하라고 난리를 친다. 그때 자식이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면 부모가 으레 하는 말 공부해서 남 주느냐?” “다 너를 위해서 공부하라고 야단을 치는 거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얼핏 들으면 자식을 위한 말 같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이 말을 사실 부모 자신을 위한 말인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이유는, 부모가 자식을 끝까지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리고 자식이 잘되어서 출세라도 하게 되면 부모 위신도 덩달아 올라가기 때문에 공부하라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하는 부모나, 자식 입장에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숨은 의도를 전혀 눈치체지 못하고 이런 말을 하게 되고, 자식은 이런 말을 곧이 듣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런 말을 하는 부모가 자신의 속마음까지 모두 알고 말을 한다면 양심의 가책이 되어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듣는 자식도 부모의 이런 속셈을 알고 말을 듣는다면 단번에 항의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보면 아마도 가족끼리도 큰 싸움도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혹여 어떤 자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더라도, 우리는 상대방을 긁지 않기 위해여 못들은 척 하고 마는 것이다. 만약 상대방의 거짓을 들추어내기라도 하는 날에는 큰 싸움이 일어날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적당히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이렇게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굳이 남의 것을 들추어내서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살아온 세월이 수천 년이다. 교회를 다니며 예수 이름을 부른다고 하여 이런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랫동안 다니고 성령이 충만한 자라도 마음속에 숨은 죄악을 밖으로 들어내는 자는 없다. 마음속에 숨은 그것()을 밖으로 들어내는 순간! 그는 세상에서 아주 나쁜 자로 낙인찍힐 것이기 때문에 절대 자신의 정체를 들어 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주여! 주여!를 외치고 있다. 이 얼마나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인가?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항하여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했던 것이나, 오늘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들을 향하여 잔디로 곱게 단장한 무덤이라고 말하는 것이 하나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인간이 이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으로 살다보니, 자신이 누구에게 속고 있는지 자신도 알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인간이 이렇게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인간의 마음속에서 기생하고 있는 악한 영(죽은 영)”의 존재 때문이다. “악한 영이란 엄밀히 말하여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함께 살아온 인간의 주인이다. 이 세상 모든 인간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주인으로 들어오시기 전까지는 누구나 악한 영의 지배를 받으면 살고 있다. 악한 영이 자신의 존재를 들어 내지 않기 위하여 인간들로 하여금 겉으로 선한 척, 착한 척, 살아가도록 조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악한 영이 인간의 마음속에서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인간들로 하여금 겉으로 위장을 하며 살아가도록 유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을 했을 때 바리새인들이 화를 내며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종교 지도자들에게 잔디로 곱게 단장한 무덤이라고 표현을 하면, 십중팔구는 화를 내면서 죽이려 할 것이다. 이는 모두가 악한 영이 자기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그리스도에게 분노를 내도록 만드는 것이다.

 

꼭 그리스도가 하시는 말씀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상대방이 나를 속이려 할 때 그런 사실을 미리알고 상대방의 감추어진 속셈을 말하게 되면 상대가 대단히 화를 내며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바로 악한 영이 자기 정체가 드러난 것을 알고 본인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나타내도록 표시하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말을 하지 않거나 또는 알면서도 속아 주는 경우가 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교인들은 불신자들에 비하여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이 훨씬 더하다. 그래서 절대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을 삼가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큰 분란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회 목사들도 성도들의 잘못을 꾸짖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것을 그리스도 사랑으로 잘 포장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목사가 성도의 잘못을 보고도 꾸짖지 못하는 것은 그들을 책임질 능력이 없기 때문에 꾸짖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검을 주러왔지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예수의 이 말씀은 먼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들추어내러 오셨다는 말이다. 죄악을 들추어내야 인간이 자기 정체를 알 수 있고, 인간이 자기 정체를 알아야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미명하에 인간의 마음속에 숨은 죄악들을 절대 들추어 내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교인들을 가르치다 보니까 교인들 마음속에서는 죄가 쌓여 배나 지옥자식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나, 부활하여 사람을 통하여 다시 오신 그리스도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하여 매섭게 지적하신다. 이는 곧 인간의 마음속에 숨은 악한 영의 정체를 드러내 줌으로서, 인간들이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방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아야만 솔직해질 수 있다. 인간이 솔직해지게 되면 악한 영도 더 이상 인간의 마음속에 발붙이지 못하게 된다. 그렇지 못하게 되면, 평생을 악한 영에게 끌려 다니며 이중성에 속아 살아야 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마음속에 계시지 않는 한, 인간은 겉과 속이 다른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겉과 속이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때, 인간은 온갖 근심과 걱정을 싸매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지옥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가 이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우리 모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아야 한다. 그래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주인으로 우리 마음속에 좌정하시게 된다. -귀 있는 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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