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말씀 보기

HOME > 주일낮설교 > 주일설교말씀 > 보기

제목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기 위함이라!

작성자bansuk

작성일2017-08-06

조회수1,713

주일 낮 말씀

본문: 히브리서10:1-18

제목: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기 위함이라!

 

유대인들이 율법아래서 약2천년동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지만, 율법으로 그들이 온전케 되지 못하였던 것은,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늘 드리는 바 똑같은 제사로는 유대인들을 온전케 할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서 단번에 정결케 되었더라면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나게 할뿐 황소의 피와 염소의 피가 인간의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제사나 예물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단번에 드려지는 온전한 제사를 받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짐승을 잡아 드리는 제사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에 불과한 것들이라서 온전한 제사가 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체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번제와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시고 또한 기뻐하지도 않으신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제사는 다 율법을 따라 드려지는 제사라서 첫 것을 폐하고, 둘째 것을 요구하신 것이다.

 

첫 것으로 주신 것이 불완전한 것이라면, 둘째 것은 온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려지는 제사만이 온전한 제사이다. 성경이 말하고 있듯이 짐승의 피와 살로는 인간의 죄를 없이하지 못한다. 인간의 죄를 없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흠 없는 인간의 피와 살이 필요하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죄인들이다. 죄 아래서 태어난 인간은 온전한 제물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받으실 제물을 손수 준비하신 것이다. 예수는 인간들과 달리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말은 하나님 말씀으로 잉태되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실 때 땅이 있으라 하시니, 땅이 지어졌고, 하늘이 있으라 하시니, 하늘이 만들어진 것처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마리아의 몸에 생명을 잉태시킨 것이다. 예수는 성정이 우리와 똑같은 분이나 그에게는 죄가 없다. 예수는 인간들과 달리 죄가 없기 때문에, 그의 영()과 혼()이 마귀와 귀신(죽은 영)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단번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율법아래서 2천년 동안 살던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아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먼저는 율법을 거역한 를 사함 받게 된다. 그런 후 마지막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흘려주신 피를 통하여 아담이 지었던 원죄를 해결 받게 된다. 그 증거로 성령을 받고 유대인들은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 때문에, 예수를 믿지 못하여 멸망으로 간 자들이 부지기수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기 위해서는 자신이 율법을 거역한 죄인이란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던 유대인들로서는 자신이 율법을 거역한 죄인이란 사실을 누구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들로서는 예수를 믿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던 것이다. 유대인들 중에서 예수를 믿었던 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당시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던 세리와 창기 그리고 율법의 저주로 육체가 병든 자들이 그나마 예수를 찾아와 믿었던 것이 전부다. 이로 미루어 보건데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믿었던 자들은 첫 것을 붙잡고 있다가 땅에서 망하게 되었고, 당시 죄인으로 낙인찍혀 손가락질 당하던 세리와 창기 그리고 율법의 저주를 받은 자들이 둘째 것(예수)을 붙잡아 영생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감추어진 구원의 비밀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본문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이 첫 것에 해당된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은 둘째 것으로 오신 예수를 믿고 유대인과 똑같이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것으로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기독교인들에게 크나큰 함정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 법아래서 2천년을 살게 하셨다면,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율법을 주시고 그 법아래서 2천년을 살게 하셔야 공평한 일 아닌가?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율법아래서 2천년 동안 죽도록 신앙생활 하다가 마지막에 오신 예수를 믿어야 구원이라고 말하고, 이방인들은 제멋대로 살다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너무 불공평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이방인들처럼 율법을 주지 않고 제멋대로 살게 내버려 두었다가 마지막에 오신 예수를 믿으라고 했더라면 훨씬 더 예수 믿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이 도리어 걸림돌이 되다보니, 그들로서는 예수 믿기가 절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공평하신 분이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율법 아래 살게 하셨다면,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율법 아래서 살게 하신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초대교회로부터 지금(2천년)까지 살아온 것이 바로 율법아래서의 신앙생활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이름을 부르는 이방인들에게도 값없이 성령을 보내주셨다. 이방인들에게 값없이 성령을 보내주셨다는 말은,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처럼 율법아래서 죽도록 신앙생활도 하지 않았어도 아무런 댓가 없이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는 지금까지는 이방인들이 제멋대로 살았지만, 성령을 받은 그 순간부터는 제멋대로 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성령을 받고도 성령을 따라 살지 못했을 경우 죽어서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받았던 성령이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이 되는 것이다. 영적인 율법이란? 마음속으로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기독교인 어느 누구도 이것이 자신들에게 주신 영적인 율법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성도들을 가르치는 목사들 역시 이런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무조건 예수 믿고 성령만 받으면 구원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유대 지도자들이 율법으로 의롭게 된다고 가르치던 것이나,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이 성령(영적인 율법)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나 같은 이치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주신 영적인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늘 드리는 바 똑같은 예배로는 기독교인들을 온전케 할 수 없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 앞에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려서 단번에 온전케 될 수 있었다면 어찌 예배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예배들은 날마다 죄를 생각나게 할뿐 예수 이름만 불러서는 결코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가 도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율법을 주신 이유는 예배나 예물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단번에 드려지는 온전한 예배를 받기 위함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날마다 예수 이름으로 드리는 예배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에 불과한 것들이라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기독교인들이 전체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와 제물은 원치도 아니하시고 또한 기뻐하지도 않으신다는 것이다. 다만, 기독교인들이 이런 예배를 드리는 것은 모두 성령의 법에 따라 드려지는 예법이라서 첫 것을 폐하고, 둘째 것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둘째 것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 다시 오셨을 때, 그를 믿는 것이 둘째 것에 해당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이방인들 앞에 다시 오셨을 때,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영적인 율법아래서 신앙생활 하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둘째 것으로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기독교인들도 둘째 것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바리새인들처럼 둘째 것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첫 것(그리스도의 모형)에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면 기독교인들 또한 바리새인들처럼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다.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성령(영적인 율법)의 법을 따라 살아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 때문이다. 죄악이 방해를 하여 성령을 따라 살 수 없는 것이다. 처음 성령을 받았을 때는 눈이라도 빼줄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그도 결국은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여 성령을 거역하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처음 시작과 달리 끝에 가서 타락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한 죄이다. 이런 죄악들을 마음속에 품고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고, 찬양을 올려 드린다 한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겠는가? 절대 아니다. 이는 다 성령의 법에 따라 드리는 예법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드려지는 예배를 원하고 계신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서 다시 오셨을 때, 기독교인들이 그를 믿게 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 마음속에 빛()으로 들어가게 된다. 믿는 자들 마음속에 빛()으로 들어가신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악을 낱낱이 찾아내서, 인간이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가를 깨닫게 하신다.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마음속에 모신고 난 후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표현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은 이런 일을 하시지 않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서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지 못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시게 되면, 그때부터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뜻대로 살도록 인도하신다. 바울이 갈2: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말했던 것처럼, 우리들 또한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게 된다. 예수는 오직 아버지(성령)의 뜻을 쫒아 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는 자들 또한 오직 아버지(성령)의 뜻을 쫒아 살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렇게 당신의 아들이 올려드리는 예배를 받기 원하신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첫 것으로 주신 것들을 폐하시고, 온전한 둘째 것을 요구하시게 된 것이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에게 해당되는 첫 것이 무엇이고, 둘째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았거든 그대로 실행에 옮기면 살게 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

첨부파일 다운로드: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미투데이 공유
  • 요즘 공유
  • 인쇄하기
 
이름 : 비밀번호 : 스팸방지코드 :
번호제목작성자등록일조회수
하단로고

새한중앙교회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삼성리 584-1 

Tel : 031-774-6301 / Fax : 031-774-6305 

선교비후원계좌 : 농협 351-0930-6631-83(새한중앙교회)

Email: ksk6307@naver.com / h0sea@naver.com

Copyright ⓒ 2013 새한중앙교회 /  정보관리책임자:김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