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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선 “주여 주여”, 교회 문만 나가면 “죽여 죽여”

작성자bansuk

작성일2015-07-02

조회수3,167

교회선 주여 주여”, 교회 문만 나가면 죽여 죽여

 

신앙인을 불 받을 게 아니라 말씀을 받고 그대로 살 일이다.

 

 

얼마 전, 임신한 아내가 구운 감자가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냉장고에서 감자를 꺼내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불을 최고치로 올린 다음 얇게 썬 감자를 올려놓으려고 자세를 잡고 있었다. 그때 예레미야 선지자와 같은 아내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센 불로 하지 말고 약한 불로해야 돼!"

 

이유인즉, 센 불로 감자를 구우면 표면은 순식간에 타들어가 빨리 구워지는 것처럼 보이나 막상 먹어 보면 속이 하나도 안 익어 생감자처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센 불에다 굽는 게 아니라 약한 불에다가 천천히 구워야 감자 표면도 타지 않고 속도 잘 익어 잘 구워진 감자가 된다고 했다.

 

비단 감자만이 아니라 생선도 그러하다. 센 불에다 고기를 고문하듯이 단시간에 굽다 보면 겉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있지만 막상 먹어 보면 물컹한 게 회 맛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진짜 고수들은 센 불과 약한 불을 적절히 사용해서 고기를 굽는다. 그렇게 센 불과 약한 불을 오가며 정성 들여 구운 고기는 육즙이 살아 있어서 아침마다 새롭고 또 새로우니 고기의 육즙이 크도다라는 찬송을 부르게 만든다. 아무튼 요리를 할 때 겉이 아닌 속까지 푹 익히려면 약한 불을 잘 사용해야 한다.

 

불로~ 불로~ 불로~

 

내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1년에 많게는 6, 적게는 2번 정도 부흥회를 열었다. 그렇게 여러 번의 부흥회에 참여하면서 재미있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흥회에 참석하는 교인들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부흥강사 목사님은 엘리야 선지자. 그래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에게 하늘에서 불이 쏟아지는 것을 보여 주려고 저토록 애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 볼 정도로 부흥회 때마다 센 불이 임하는 것을 강조했던 것 같다. 그래서 부흥회의 알파와 오메가는 불로 시작해서 불로 끝날 때가 많았다.

 

찬송도 불이 꼭 들어간 찬송이어야 하고, 말씀도 불같은 말씀이어야 하고, 기도도 불이 임하는 기도이어야 하고, 무엇보다 부흥회의 열매는 불 받은 사람들이 나타나야 했다. 그렇게 불같은 부흥회가 잘 마쳐지면 그 부흥 강사 목사님에게는 불의 종이라는 칭호가 하사된다. 그분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그런 불의 종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신기한 현상을 보았다. 이러한 부흥회의 불이 지나가고 나면, 사람들의 겉은 엄청나게 뜨거워진 것 같고 당장 오대양 육대주라도 복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달려갈 것 같은 기세를 보이는데, 교회 주차장에서는 겉이 노릇노릇 익은 얼굴로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다투기 시작한다. 주차 안내를 하는 나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열불을 낸다. 여전히 같은 교회 안에서 형제자매들을 이간질하고 미워한다. 이간질하는 모습을 보는 나는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한다. 세상이 아닌 가정에 돌아가서 불(?)을 쏟는다. 교회에서 사람들이 볼 때는 주여 주여하는데 교회 밖에서 사람들이 안 볼 때는 죽여 죽여한다.

 

센 불의 부작용

 

이상했다. 왜 그러는 걸까? 내가 센 불에 조리한 감자 요리처럼, 겉은 센 불에다가 구워 가지고 바싹 익은 듯하고 심지어 탄 흔적도 보이지만, 속은 전혀 익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분위기를 뜨겁게 만들고 뜨거움을 주장하는 불의 종(?)이 있어서 센 불을 불러일으켜 뜨겁게만 달구면 사람들이 그 뜨거움 속에서 은혜를 받고 변화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혹시 속고 속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오히려 이러한 뜨거움 속에는 텅 빈 공허함이 따라올 때가 많았다. 실컷 달아올랐기는 한데 정작 내면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신앙적인 감정 잡기에서 나온 영적 애드리브 같은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불 받았는데도(?) 지독하게 변화되지 않는 센 불의 악순환들에 질리기 시작했다. 약한 불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약한 불이!

 

약한 불이 무엇인가? 철저하게 성경의 본문을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약한 불 아닐까. 겉으로 보기에는 뭔가 대단해 보이지 않고, 소위 말하는 센 불처럼 보이지도 않지만, 이 약한 불에는 센 불이 갖지 못하는 힘과 능력이 있다.

 

불같은 말씀이 아니라 성경 말씀이 선포되어야 한다. 불이 임하는 기도 시간이 아닌 성령이 임하는 기도 시간이어야 한다. 불 받은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상식이 회복된 사람들이 나타나야 한다. (사진 제공 김정주)

 

천천히 이 성경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철저하게 성경에서부터 신학을 타고 전개될 때에 그 말씀 자체에서 능력이 나타난다.

 

약한 불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을 정확하게 가열하여서 푹 익게 만든다. 겉의 변화는 안의 변화를 보증하지 않지만 안의 변화는 겉의 변화를 보증 한다 그러니 겉으로 보기에 센 불이 화력이 세 보이지만 약한 불이 진짜 화력인 것이다

 

불을 힘입어 사자처럼 외치지 않고 말씀을 힘입어 소녀처럼 수줍게 전할지라도 본문을 통과한 설교자와 그렇지 않은 설교자의 외침은 확연한 울림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찬양으로 분위기를 잡지 않아도 된다. (물론 찬양이 분위기를 잡는 시간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불같은 말씀이 아니라, 성경 말씀이 선포되어야 한다. 불이 임하는 기도 시간이 아닌

성령이 임하는 기도 시간이어야 한다. 불 받은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상식이 회복된 사람들이 나타나야 한다. 사람들이 설교자를 기억할 때에 불의 종이 아닌 주의 종 말씀의 종이라고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말씀으로 시작해서 말씀으로 끝나는 집회를 마친 뒤에 사람들의 내면은 고기 뷔페 가서 3시간 쉬지 않고 먹은 것처럼 진리로 말미암은 포만감을 느낀다.

 

변화되어야 한다고 굳이 협박하지 않아도 살아 있는 그 진리의 말씀이 꿈틀거리면서

그 사람의 존재를 변화시켜 나간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는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상식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현실이다

 

약한 불이 그립다. 목회자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잔인하게 사형시킨 성경 말씀이 아닌, 성경 말씀에 의해서 오히려 목회자가 처절하게 못 박혀 순교당하고 나오는 진리. 그 진리에 순교당한 설교자의 설교가 듣고 싶다. 성경을 읽고 내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를 나누는 성경 독후감 나눔 시간이 아닌,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자체를 배우는 성경 공부 시간을 갖고 싶다.

 

성도들이 너무 걸쭉한 성경 이야기만 하면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해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성도들은 내가 그러하듯 진리에 목말라 있다. 성경을 알고 싶어 한다. 그 무엇보다도 성경 말씀을 배우고 알아가고 그 속에서 진리로 말미암아 자유하게 됨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현실적인 이야기가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현실이시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이야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은 것이다

 

약한 불이 그립다. 약한 불의 설교자가 되고 싶다. 성경 66권 중 어디를 펴든지 그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밝히 설교할 수 있는 사람. 어장 관리 하는 목회자가 아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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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곤

| 201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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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겉은 구운 감자처럼 노릇노릇 잘 익은 것 같지만, 실상 속은 하나도 익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있다. 다시 말해서 옛 사람이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겉만 뜨거울 뿐 마음속은 냉랭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생각한 나머지 옛 사람이 죽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 하나님 영이라서, 성령이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 역할만 할뿐 기독교인들을 거듭나게 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도 겉만 뜨거울 뿐 속사람은 옛 모습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부흥회를 하고 금식기도를 해도 그때뿐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옛날로 돌아가 버린다.

성령 아래서의 신앙생활은 하면 할수록 마음속이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성령은 그리스도 영이 아니라서, 기독교인들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만이 기독교인들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신 후 아버지의 영광을 입고 그리스도 영이 되셨다. 영으로 계신 예수께서 맨 처음 바울 마음속에 오셨다. 그런 후 기독교 2천년의 역사가 끝나자 또다시 이방인 중에서 미리 선택한 사람 마음속에 예수께서 영으로 다시 오신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바로 사람을 통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으면 되는 것이다.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그것은 사람을 통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가신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가시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마음을 주관하시고 이끌어 가신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자는 절대 타락으로 가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과 짝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 그리고 날마다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공허함을 느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의 삶이다. 그러나 성령 아래서는 절대 이런 삶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령은 기독교인들에게 오직 영적인 율법 역할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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