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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에 대한 기독교적인 이해와 경계

작성자bansuk

작성일2015-11-14

조회수4,208

요가(yoga)에 대한 기독교적인 이해와 경계
한국기독교이단목회연구소 소장 강경호 목사
강경호 목사 기사입력 2015/11/13 [02:32]

▲ 한국기독교이단목회연구소 강경호 목사

오늘 한국 기독교는 무속(巫俗), 불교(佛敎), 유교(儒敎), 도교(道敎) 신앙이 혼합 형태를 띠고 있거나 기복적인 요소가 신앙 안에 어느 틈인가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똬리를 틀어 좌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요가다. 이러한 요가의 모든 몸 동작은 뱀의 움직임과도 같으며 실은 뱀이 똬리를 틀듯 꼬리뼈 부분에 머물다가 ‘7 차크라’를 거쳐 등뼈를 타고 올라 뇌 속의 번갯불 같은 번쩍임에 이른다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쿤달리니’가 곧 ‘뱀심’(蛇力)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요가가 웰빙바람을 타고 들어와 지금도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최근에는 대학 내에 요가학과가 생기고, 요가지도사 자격증에 도전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또한 어느 지역에서나 쉽게 요가학원 등을 볼 수 있듯이 요가가 우리 생활과 더욱 밀접해지고 있다. 특히 유명 연예인들이 요가로 다이어트에 성공해 젊은 여성들에게는 환영받는 다이어트의 방법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요가의 인기는 기독교인이라고 예외가 아니라는데 있다. 문제는 기독교내에 요가를 경계하는 목소리마저도 없다는 것과 함께 오늘날에는 아무런 부담감 없이 요가를 즐기는 기독교인이 많아진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요가’는 단순히 유행처럼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이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이미 요가는 많은 사람들의 건강과 심신 단련의 중요한 수단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사회 안에서 안정되게 정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집이나 직장 인근의 요가센터, 구민 복지관, 백화점 문화센터, 학원, 노인 대학, 심지어 교회에서도 요가를 가르친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요가는 가장 인기 있는 강좌 중 하나이고, 초등학교 방과 후 학습 시간에 요가를 가르치는 곳도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떤 교회의 경우는 요가 강습을 알리는 광고를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 요가 수강생들을 교회 안에서 모집하기도 한다.

이렇게 기독교인들에게 요가의 숨은 위험성을 무릅쓰고 다양한 접근을 하고 있다. 즉 요가에 대하여 힌두교 색체를 배제하고 운동으로 접근하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소위 ‘홀리(신성한)요가’를 하는 크리스천 요가 수행자들은 ‘옴’을 빼고 ‘아멘’으로 대신한다. 그리고 홀리요가 클래스는 해당 클래스를 위한 주제인 성구로부터 시작한다. 각 포즈는 일반 요가와 같다. ‘요가’라는 산스크릿어를 싫어하는 차루랑가는 “높낮이 팔굽혀펴기”라고, 사바사나는 “시체포즈”라고 변경하여 부른다.

한국요가문화협회 정강주 회장은 요가의 세계적 인기를 종교성에서 찾고 있다. 즉 요가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새로운 복음이기 때문에 각광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요가는 모든 종교의 밑바탕이 되고, 몸을 통해 호흡과 명상으로 깨달음을 추구한다고 설명한다.

흔히 요가를 동작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요가는 체조, 호흡, 명상의 3요소가 일체를 이룰 때 그 효과가 상승된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요가학원에서는 요가 호흡법에 익숙해지고 동작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곧 명상을 통한 정신 수양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요가라는 말의 뜻은 ‘결합시키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바로 겉으로는 이 ‘결합’이란 자연과 인간의 결합을 의미한다. 즉 “자연과 인간의 합일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요가는 호흡을 통해 우주의 에너지를 축적하고 명상을 통해 평온하고 안정감 있는 최상의 정신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은 눈가림에 불과하다. 실은 어떤 절대자와의 결합이며, 그 절대자는 힌두교에서 섬기는 신이다. 즉 요가는 몸으로 하는 ‘힌두교식 기도, 명상’이다. 실상 요가의 수행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것은 불교와 힌두교에서 자신들의 신과 합일(한몸이 되는) 종교 의식과 일치한다. 따라서 다이어트, 스트레칭, 명상이라고 위장된 요가는 단순한 건강 단련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힌두교 종교 의식의 하나라는 것이다.

즉 요가에는 종교성이 녹아 있다. 요가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종교성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이 거의 무비판적으로 요가를 받아들이고 활동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운동 삼아 요가를 많이 하지만, 깨달음을 목표로 명상에 빠지다 보면 영적․종교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가는 단순한 운동, 스트레칭, 다이어트가 아니다. 한마디로 요가는 몸으로 하는 힌두교의 의식이다. 이를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나쁜 흑암의 세력을 자기도 모르게 경배하고 섬겨 그 영과 합일(일치)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 그런데 사람들은 요가를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서가 차분해지며 육체적인 피로도 많이 풀린다고 한다.

이러한 요가는 관념적인 사상 체계가 아니다. 요가는 자신에게 닥쳐오는 괴로움을 자기 안에서 찾고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몸과 마음의 속박에서 벗어나 대자연에 그대로 몰입함으로써 절대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음 속에서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몸에는 한 점의 부조화도 없는 상태로 자신이 절대가 되는 특수한 체험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요가의 핵심은 참 나를 발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즉 참 나를 발견하면 거기서는 위대한 힘과 지혜가 떠오른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요가는 정신을 맑게 하고 육체를 단련하는 데는 크게 종교에 관련지을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부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가에는 인간과 하나님을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드는 사탄의 고도 전술전략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거기에는 악한 영이 똬리를 틀고자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비우라고 종용하는 일이 있게 된다. 또 네 자신이 신이라고 부추기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도록 조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뉴에이지 사상이다.

그런데 요가가 가진 운동으로서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이 요가를 무조건 받아들이기에는 위험한 요소가 많다. 따라서 요가가 가진 종교성을 인지하고 기독교 세계관에 배치되는 사상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독교계 역시 요가를 경계하기보다 흡수 또는 동화시키며 신앙에 활용하고 있다. 이른바 ‘크리스천 요가’란 이름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요가와 기독교 신앙이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을 이충웅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첫째, 요가 자체가 힌두교 자체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요가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요가를 종교가 아닌 운동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가는 단순한 건강 증진이나 마음의 수양을 위한 수련법이 아니라 힌두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요가는 힌두교의 핵심으로 인도하는 네 가지 요소 중 하나다. 카르마, 마야, 니르바나, 요가로 힌두교에서 요가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영원한 윤회로부터 벗어나 해탈하기 위한 수행법이다. 이러한 요가는 힌두교 신과의 합일이다. 대표적인 ‘하타 요가’의 경우 시바에게 바쳐지는 힌두교인들의 수행 방법이다.

둘째, 요가는 힌두교의 선교 전략이다. 소위 ‘라마크리슈나 미션’이 요가를 온 세상에 전파한다. 라마크리슈나는 19세기 캘커타 칼리 사원의 사제로 신에 대한 깨달음을 추구하면서 자신 스스로 신을 바라보고 몸으로 느꼈다. 이후 그의 제자인 비베카난다가 라마크리슈나 미션을 인도 캘커타에 세우면서 전 세계에 힌두교와 요가를 전파하게 된다.

셋째, 요가는 뉴에이지 운동이다. 뉴에이지란 서양의 세속적 인본주의와 동양의 고대 신비주의적인 인본주의 운동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없이 인간성의 회복과 참된 평화, 그리고 참된 행복이 실현되는 새로운 시대를 이룩하려는 범세계적인 종교 운동이다.

요가는 현대 사회 사람들에게서도 성행하고 있다. 이러한 요가가 어떤 이들은 육신적인 건강을 위한다는 이유로, 어떤 사람은 종교적 진리를 추구한다는 목적 하에 이를 행하고 있다. 이러한 요가는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인도의 심신 수련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즉 요가는 몸으로 하는 힌두교식 기도 명상이다. 이러한 요가의 수행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것은 다름 아닌 불교와 힌두교의 수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가가 비만 해소와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며, 몸을 유연하게 하고, 정서를 안정시키는데,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많은 사람들이 요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요가는 분명한 것은 인도종교 고행(苦行)수행에 기원되었으며, 교회 일부에서 명상이니 영성이니 하면서 참선하는 모습과 흡사하게 명상, 관상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에 교회 예배당이 사찰 법당으로 착각이 될 때가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세상문화와 전통종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증해보지 않고, 쉽게 받아들이는 이러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

웰빙 열풍을 타고 침투한 요가가 건강을 위한 프로그램 같지만 이방종교와 신접(神接)하는 행위이다. 즉 다이어트나 명상과 함께 붙어다니는 요가는 단순한 건강 단련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종교적인 의식의 하나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요가가 힌두교식 기도라는 사실을 모르고 행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일종의 이방 종교 의식을 우리 삶 속에서 행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가 건강을 위해 혹은 심신의 수련과 차분한 정서를 갖고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별 생각 없이 하는 요가가 흑암의 세력과 나쁜 영들에 노출되는 통로가 된다. 심지어는 이방 신들과 접촉하는 결과까지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또한 크리스천의 삶에서 요가를 허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요가를 통해 얻어지는 차분함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나 평화가 아니다. 요가를 함으로 자신도 모르게 이방 종교식 기도를 하며 이방 신들과 접촉하는 통로를 열어 놓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분명 요가는 인도의 종교인 힌두교의 대표적인 수련법이다. 이에 이 시대의 가장 반기독교 사조 중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뉴에이지’ 운동은 동양의 신비주의 종교, 특별히 인도의 힌두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힌두교의 대표적인 수련법 중의 하나인 요가를 기독교인이 수용해서는 안 된다.

요가의 수련법이 반기독교적 세계관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힌두교에 대한 이해를 할 때에 더 알 수 있다. 즉 힌두교에는 영혼구원의 길이 세 가지 있다. 그 하나는 업보를 쌓는 길이다. 이것은 종교적 의식과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헌신의 길인데, 이것은 신을 사랑하며, 신에 대한 완전한 의탁과 신의 뜻에 대한 완전한 복종으로 특징짓는다. 마지막 셋째로 지식의 길이 있다. 여기서 지식이란 신비한 깨달음(覺)의 경지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방법이다. 그런데 요가는 이 세 가지 구원의 길에 있어서 세 번째에 속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진정한 실체는 온 우주의 유일한 실체인 브라만(대우주정신)에 종속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인간이 브라만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각기 독립된 실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세상에는 온갖 고통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에게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자신이 독립된 실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대우주정신인 브라만에 종속되는 길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 개인이(힌두교에서는 한 개인의 정신을 ‘아트만’이라고 한다) 대우주정신이 브라만에 귀속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대우주 속의 일부라고 ‘깨닫는’ 길뿐이다.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힌두교도들은 여러 가지 수련과 고행과 명상, 참선 등을 수행한다. 이러한 수련 과정을 통하여 한 개체는 이제 독립적 실체에서 벗어나 브라만에 함몰, 또는 합일되는 완전한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힌두교의 구루(Guru-스승) 중의 한 사람인 오쇼 라즈니쉬는 「저 너머의 신비와 시」에서 명상을 통해 우주와의 합일의 경지로 들어가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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