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이르는말씀 보기

HOME > 주일낮설교 > 구원에 이르는말씀 > 보기

제목

항복의 의미!

작성자bansuk

작성일2005-04-15

조회수6,510

이 세상은 끊임없이 벌어지는 전쟁속에서 살고 있다. 국가는 국가끼리, 회사는 회사끼리, 개인은 개인끼리 자기 이익을 위해서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끊임없이 벌어지는 전쟁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자가 힘을 길러야 하는데, 결국 막판에 가서는 힘없는 나라가 힘있는 나라에 먹히게 되고, 회사나 개인 역시 힘 있는 자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독일이 2차 대전을 일으켜 서유럽 전채를 집어삼키려할 때, 미국과 영국, 프랑스, 소련으로 형성된 연합군에 의해서 그들의 꿈은 무참히 깨지게 되었고, 독일은 그로 인해서 전쟁의 페허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전쟁의 폐허더미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독일인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을 수 없었다. 히틀러라고 하는 한 사람의 개인의 욕심이 큰 화를 불러오고 만 것이다.

일본 역시 대동아 전쟁을 일으켜서 한 때는 동남아시아 일부를 완전히 지배하던 때가 있었다. 일본의 욕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미국까지 집어삼키려고 미 7함대가 주둔해 있는 괌 지역을 공격했다가, 미국에서 이를 알아차리고 곧바로 히로시마에 원자폭단을 투하하자 일본은 완전히 두 손들고 말았다. 일본 식민지배하에 있던 나라들도 그때서야 비로소 벗어나게 되었다.

지금도 일본은 침략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요즘들어서 사회이슈가 되고 있는 독도 문제만 보더라도 일본은 어떻게 해서라도 독도를 자기 영토로 주장하려고 한다. 독도는 원래 한국 땅이다. 그런데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라 주장하는 이유는, 거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들이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이것이다. 한국이 6.25전쟁을 치루고나서 그 위에 국가를 재건하려고 보니 도무지 돈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이승만 정권을 부정축재자로 몰아내고 박정희가 5.16군사 군테타를 일으켜 국가재건회의 의장으로 앉게 되었는데, 도무지 나라에 돈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박의장은 김종필을 일본에 보내서, 그동안 일본이 한국을 36년동안 지배하면서 한국을 괴롭혔던 댓가로 8억불을 요구했다. 당시 8억불은 어마어마 한 돈이다. 그러나 일본이 이에 난색을 표하면서 3억불 밖에 못주겠다고 버틴 것이다.

한국측에서는 더 내놔라! 일본은 더 이상 못 내놓겠다 이런 줄다리기가 한참 계속되자 일본은 더 이상 버팅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왕에 한국에 돈을 줄바에는 단서조항을 붙이기로 했다. 독도는 일본하고도 가까우니까 독도를 일본 땅으로 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여자들을 끌어다 일본군 위안부로 삼았던 문제도 이번에 돈을 주면서 매듭 짓자고 한 것이다. 그럼 한국측에서 요구하는 돈을 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당시 한푼의 돈이 아쉬운 한국으로서는, 한국의 요구대로 돈을 지불하겠다는 일본의 계략에 말려서, 그렇게 하라고 구두로 합의를 해줬던지 아니면 문서로 남겼던지 분명한 무언의 합의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틈만나면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분명한 문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이유는, 현재 계약 당사자가 생존해 있는데 그것을 밝히게 되면 계약 당사자는 제2의 이완용(나라팔아먹은 매국노)이가 되고 말기 때문에 그것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 사건에 대하여 알만한 사람은 다알고 있는 일이라서, 독도가 자기들 땅이라고 주장해도 일본에 대하여 강하게 반박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독일이나 미국같은 나라보다 비겁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것은, 국가간에 항복을 했으면 그것으로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일본은 간사하게도 겉으로는 항복하는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자신의 속셈을 키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언제든지 기회만 되면 다시 침공하여 그 나라를 자신의 속국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이러니 국제사회로부터도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당사국으로서 피해를 입힌 각국에 대하여 엄청난 보상을 해줬다고 한다. 간사한 일본에 비하면 수준높은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나라가 이럴 때 각 개인은 어떠하겠는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일자 무식 김두한이를 왜 사람들은 좋아하는가? 그리고 왜 그에게는 강패라는 말을 쓰지 않고 협객 김두한이라 부르는가? 그 이유는 그가 남자답다는 것이다. 가령, 상대방과 싸움을 하더라도 이기면 그 지방을 다스리는 보스로서 형님자리에 앉는 것이고, 싸움에서 지면 깨끗하게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보면 김두한이게서 찾아볼 수 있는 남자다운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깡패나 조직폭력배들을 보면, 의리도 없고 지조도 없는 오합지졸들이다. 싸움에서 졌으면 깨끗하게 승복하고 그에 부하가 되든가? 아니면 낙향을 하든가? 해야 할 것인데, 싸움에서 지고 나서도 계속해서 상대방에 대하여 분을 참지 못하고 속으로 으르릉 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는 개만도 못한 자이다. 개도 3년 이상을 주인이 키우고 나면 훌륭한 충견이 된다.

전라북도 장수군 오수지방에 가면 개의 기념비가 하나 서 있는데, 그 개는 주인이 장에갔다 돌오다가 술을 먹고 누워서 잠이들게 되었는데, 때마침 가까운 곳에서 산불이 일어나 주인이 잠든 곳까지 다가오자, 그 개는 잠든 주인을 깨우려고 한참을 짖어도 일어나지 않자 개는 개울가로 달려가서 자신의 몸에 물을 묻혀서 불길이 타오지 못하도록 주인이 잠든곳 주변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 개는 얼마나 죽을 힘을 다해서 온몸으로 불길이 주인이 잠든곳까지 타오지 못하도록 막았던지 불은 꺼졌고, 주인이 한참 후에 잠에서 깨어보니 그 개는 그만 지쳐서 주인 곁에서 숨을 거두고 죽어 있더라는 것이다. 주인은 자신을 살린 개라하여 그곳에 개의 묘비를 세워주게 되었고, 그 소문이 나라님에 귀에까지 들려지게 되어 나라에서도 그 개를 충견이라 하여 그곳에 큰 기념비를 세워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못쓸 것들은 개만도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개보다 못한 자들이 지금 이곳에 와서 신앙생활 하고 있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어찌나 강단에서도 화가 나던지 지금은 모두 이곳을 나가라고 쫓아내 버렸지만,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면 정말로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옛날 주인은 자신들에게 거짓과 권모와 술수만 가져다 주기 때문에 그를 버리고 새로운 주인을 모실 것을 수차례 강조해서 알려줬다.

그리고 현재 자신이 모시고 있는 주인이 얼마나 못된 영물인가하는 것도 자세하게 알려주었고, 또 새롭게 모실 주인은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알려줬다. 그래서 모두들 옛날 주인을 버리고 새로운 주인을 모시겠다고 야무진 대답을해서 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그들을 시험해볼 요량으로 무슨 말끝에 그들에게 새로운 주인에게 자신의 모든것을 맡길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더니 "아니! 글쎄 모두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실망스러움이 어디 있을까? 믿었던 도끼에 발등찍힌다고 나는 그들을 보면서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이번 만큼은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그들을 이곳에서 모두 쫓아내고 말았다.

주님을 모신 종으로서, 나는 그들이 우리 주님에게 자신을 맡길 수 있겠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그들이 그렇게 묵묵무답으로 나올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들은 그것이 아니라고 변명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도저히 그들을 더 이상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동안은 나도, 아직은 저들이 부족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며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려왔건만, 이번에 저들의 행동들을 보면서 저들에게서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부족한 인원은 밖에서 채울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밖에 나가 있는 사람들중에 혹시라도 자신이 정말로 죄인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 면담하자! 그리하여 그에게 몇 가지를 반드시 시험삼아 물어볼 것이 있다. 그러니까 전에 처럼 적당한 생각으로 들왔다가는 반드시 믿음을 시험해볼 것이기 때문에, 그런 자는 반드시 다시 쫓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는 다시는 면죄부가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앞으로 이곳에 들어와서 강단과 함께 동고동락하겠다는 사람은, 자신의 자아, 자신의 의지, 자존심, 체면 따위는 아예 세상밖에 던지고 들어와야 한다. 다시 말해서 죽은 시체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만약 그것을 몰래 숨겨가지고 들어왔다가 발각되는 날이면 그날로 당장에 퇴출명령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들어오는 자들은 자신을 완전히 강단에 맡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강단에서도 그를 마음대로 다루어서 주님 자식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강단에 완전하게 맡기지 못하게 되면 그것은 백년을 가르쳐도 결국 내 자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헛수고를 더 이상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속 상하면 마음놓고 때리기라도 해서 가르치다 보면, 강단에서도 그에 대하여 불쌍히 여겨달라고 주님께 기도라도 할 수 있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기 때문에 결국 남는 것은 서로가 불신밖에 남을 것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강단에서도 각오를 단단히 하게 되는 것이다.

밖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은 꼭 해보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쫓겨났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이글을 보고 마음에 각오를 단단히 하고, 앞으로 자신의 각오와 의지를 담은 "항복 문서"를 써서 들고와서 목사님을 면담하기 바란다. 목사님이 반드시 몇가지를 여러분들에게 질문하고서야 여러분들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를 그 자리에서 결정해 주겠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어설프게 마음먹은 사람은 절대로 들어올 생각을 하지마라! 어떤 방법으로 던지 여러분 마음을 떠 볼것이기 때문에 거짓으로 들어왔다가는 그것이 언제 들통나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때 발각되게 되면 다시는 면죄부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이 일을 꼭 하고 싶은 사람만 찾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강단에서도 마음먹고 가르쳐 볼 것이기 때문이다. 죽는 것이 두렵고, 또한 자신의 거짓이 언제 탄로날까 두려운 사람도 절대 들어오지 말라! 두려움은 거짓의 산물이다. 그러나 나를 죽은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사람은 차라리 마음이 편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라는 것이다.

내가 살려고 하니까 두려운 것이다. 나를 죽었다고 생각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차라리 마음 편한 것이다. 내가 살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죄악이다. 그러니까 죄악이 계속해서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죄악으로 사는 나를 새로운 주인 앞에서 죽었다고 인정해 버리고, 새로운 주인을 따라 사는 것이다. 이 얼마나 마음편한 일인가? 자신이 살려고 하니까 새로운 주인 앞에서 자신의 죄악이 들통날까봐서 날마다 벌벌 떠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말로 하자면, 새로운 주인에게 "항복"했으면 다시는 속으로 옛 주인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간사한 일본놈들처럼 미국에 항복했으면 미국의 지시를 따라서 철저하게 순종하고 살아야지 겉으로는 미국 말을 듣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흑심을 품고 있다면 그것이 어디 항복한 자로서의 태도냐는 것이다.

여러분들 또한, 새로운 주인을 모시고도 계속해서 속으로는 옛 주인을 사모하는 마음을 먹기 때문에 새로운 주인으로부터 문제를 지적 받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주인을 모신자는 어떤 비밀도 마음속으로 감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비밀을 새로운 주인에게 다 알려서, 새로운 주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새주인을 앞에 두고도 계속해서 마음속으로는 옛 주인을 섬기려 하기 때문에, 새주인으로부터 욕을 먹게 되고, 야단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심하면 매질까지 당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이런 이유 때문에 새로운 주인으로부터 야단을 맞고, 혼이 나게 되는데도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새로운 주인에게 야단을 맞는 것인지도 모르고 있다.

이것은 바로 "항복"이라는 의미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사한 일본놈들처럼 말이다.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게 되면 이 말이 무슨 말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까 그런 자들은 오지 말라는 것이다. 와도 벌벌 떨다가 시간만 허비하다가 쫓겨나고 말게 되는 것이다.

첨부파일 다운로드: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미투데이 공유
  • 요즘 공유
  • 인쇄하기
 
이름 : 비밀번호 : 스팸방지코드 :
번호제목작성자등록일조회수
하단로고

새한중앙교회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삼성리 584-1 

Tel : 031-774-6301 / Fax : 031-774-6305 

선교비후원계좌 : 농협 351-0930-6631-83(새한중앙교회)

Email: ksk6307@naver.com / h0sea@naver.com

Copyright ⓒ 2013 새한중앙교회 /  정보관리책임자:김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