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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만이 주님을 따른다.

작성자bansuk

작성일2005-04-25

조회수6,246

예수께서 성경을 통해서 하신 말씀들은 사실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말씀들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들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다보니까 그 말씀들을 지키겠다고 혹은 지킬 것이라고 호언 장담하고 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들을 인간들이 지키려고 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하늘에 가서 별을 따오는 것이 더 쉬운일일 것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들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 지키지도 못할 말씀들을 왜 성경에 기록해 놓고 그것들을 지키라고 하는 것일까? 얼핏보면 이것은 대단히 큰 모순을 낳고 있다.

지키지도 못할 말씀들을 기록해놓고 그것을 지키라! 이것을 확실히 증명해 주는 사건이 바로 부자청년 이야기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자 예수께서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그러자 그 청년이 "어느 계명이오니까?"하며 묻자 예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시자 그 청년은 "이 모든 것은 내가 모두 지켰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하고 묻는 것이다.

그 청년이 계명을 지켰다고 하는 것은 순전히 죄악으로 가득차 있는 인간이 육신의 껍떼기로 지켰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예수께서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던 말씀은, 흠이 있는 인간의 육신으로는 어느 누구도 그 계명을 온전하게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그 청년은 겁도 없이 그 계명들을 온전히 지켰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청년이 정말로 그 계명들을 온전히 지켰는지, 그것을 시험해 보는 말씀이 바로 "가서 네 소유를 다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고 했을 때 그 청년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못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 청년이 계명들을 모두 지켰다고 했던 말들은 모두 거짓이다. 부자 청년뿐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나누어 줄 수 없다. 오늘날 아무리 예수 잘 믿는 자라도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면 백번 줄행랑치고 말것이다.

그래서 인간으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썩어없어질 재물 하나도 마음놓고 나누어 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이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이 성경구절을 가지고 부자청년이 아마 믿음이 없어서 그랬다고 하면서, 자신은 마치 그런일이 자신에게 닥치면 당장에 할 것처럼 우쭐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거짓말이다. 오늘날 죄 아래 살고 있는 인간들이 무슨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그런 말들을 한다는 말인가?

이런 일을 하실분은 오로지 우리 주님 한분뿐이시다. 주님께서 내속에 계셔야지만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의 말씀(법)들을 지켜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목숨이 하나뿐인 나로서는 죽을까봐 하지 못할 일을, 주님이 내속에 계시다면 재물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으로 말미암은 온전한 믿음이다.

인간이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만큼 비참한 일은 없다. 모든 인간이 어둠속에 살고 있다고 말들을 하는데, 그 어둠이란 것이 어느 정도를 두고 어둠이라고 말하는지 아는 사람은 단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어둠속에 있는 자가 어둠을 측량해서 기준치를 설정해 놓고 말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마치, 칠흑같이 어두운 밤중에 잠깐 성냥불을 켰을 때 거기서 나온 불빛을 보고, 빛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육신 껍데기로 착한 것을 가지고 선이라는 기준을 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사실을 주님 입장에서보면, 인간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어두운 존재로 보이겠는가? 그래서 그것을 인간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려고 별라별 방법을 다동원하여 알려주지만, 좀처럼 쉽게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를 두시고 인간들로 하여금 그것을 깨달아 가도록 하셨지만, 역시 어둠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로서는 그것 마저 쉽지 않다.

가령, 자연생태계 속에서 인간과 하나님이 어떤 관계속에 있는가를 깨달아 가도록 하시기 위해서, 먹이사슬이라는 생태계의 한 단면을 통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고 살아가는 약육강식의 방법이다. 이것은 인간들로 하여금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게 된다는 원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강자는 또 다시 더 쎈 강자에게 잡아 먹히게 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럼 지구상에서 가장 쎈 강자는 누구일까?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세상에 속해 있는 모든 만물은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랑으로 강자를 제압해 나가시는 것이다. 사랑은, 나를 상대방에게 주는 것으로써 사랑의 힘보다 더 쎈것은 이 지구상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이 세상 임금인 마귀를 손들게 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여서 마귀로 하여금 패배케 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정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그 사이에 자녀들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모형이라 하겠다. 인간들이 모두 어둠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냥 무심코 지나쳐 버려서 그렇지, 죄악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분만 있다면 가정생활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자신을 깨달아갈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죄악을 깨닫게 해 주시는 주님이 계시다면, 우선 내가 그곳에서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듣는다. 내가 들은 그 말씀을 가지고 남편이나, 자식들에게 그 말씀들을 전해 준다. 그 말씀들을 전해주다 보면, 반드시 가족들이 그 말씀을 가지고 자신에게 공박을 해온다. 그 이유는, 당신부터 잘하지 왜 당신은 그것을 실천하지도 못하면서 우리들에게만 잘하라고 강요하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말을 꺼내놓고, 결국 가족들에게 자신의 목덜미를 잡히게 된 꼴이다.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은, 자신은 말씀대로 전혀 살지도 못하면서 가족들에게는 말씀데로 살라고 강요한 것이 되어서, 결국 자신은 행동으로 전혀 본이 보이지 못하면서 입으로만 주님을 믿는다고 했던 거짓말이 가족들에 의해서 낱낱이 드러나고 말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남들 앞에서는 말하기가 수월하지만, 자신의 모든것을 알고 있는 가족들 앞에서는 성경 말씀과 자신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게 되면 여지없이 자신의 거짓이 탄로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목사들이 자신의 부인앞에서는 만큼은 꼼짝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 목사들이 얼마나 성도들 앞에서는 거룩한 척하지만, 눈에 보이지 안는데서는 완전히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때 말씀을 전하는 자가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자신의 거짓이 탄로났다 하여 그것을 창피하다하여 감추려 하지말고 떳떳하게 가족들 보는 앞에서 자신의 믿음없음을 시인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들과의 그런 관계를 통해서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를 냉철하게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족들과의 약속으로 앞으로 하나 하니씩 자신을 고쳐나가겠다고 다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로 하는 것이 아닌 실지 행동으로보여 주겠다고 말이다. 자신이 가족들 앞에서 그런 다짐을 했으니 본인이 했던 말을 실천을 하지 않았을 때에는 자신에게 어떤 결과가 돌아온다는 것쯤은 본인이 더 잘 알것이기 때문에, 본인은 더욱더 노력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때 본인 혼자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다는 것을 주님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운자라면, 전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에게 맡기고 주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귀를 기울려 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주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겠다는 자가 설마,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섣불리 듣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절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주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듣는자가 꼭 생기는 것은, 아직도 자신이 어떤존재라는 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들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깨닫고 있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말씀을 전하다 보면, 가족들이 안듣겠다고 눈을 부라리며 달겨들고, 심지어 남편들을 공갈과 협박으로 폭언을 일삼고, 거기다 심하면 때리기까지 하고, 자식들은 엄마라는 사실도 망각한 체 xx를 찾아가며 안하무인이요 막무가내다.

자신은 죽어라고 가족들을 위해서 말씀을 전했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가족들은 한마디로 꼴도보기 싫다며 너나 잘하라고 하면서 모두 다 뒤집어버리니 그야말로 속도 상하고 죽을 맛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 앞에서 자신들이 얼마전까지 그렇게 따지고 대들며, 삐죽거렸던 모습임을 어찌 알 수 있었으랴!

누워서 침을 뱉으면 바로 자신의 얼굴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가족들의 성난 모습을 보면서 본인들은 철저하게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주님께서 가족들의 성난 모습을 그나마 잠재워서 고분고분 여러분들의 말을 듣게 할 것이다. 그러기 전에는 어림도 없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죄인으로 낮추기 전에는 어림없다는 소리다.

여러분들이 강단에 대들고, 불순종하고, 강짜부리고 그리고 집에가서 한번 예배를 드려보라! 대번에 여러분들이 했던 행동을을 가족들이 그대로 흉내내서 여러분들에게 그대로 나타내 보여줄 것이다. 인과 응보라고 말이다. 그렇게 하고라도 자신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반대로 여러분들이 주님 말씀에 순종하고, 철저하게 자신을 죄인이라고 낮추고 집에가서 예배를 한번 드려보라! 어제께 까지만 해도 성난 사자 같던 가족들이 순한 양으로 변하여 여러분들 말에 고분고분할테니까 말이다. 따라서 가족들은 나의 자화상이요 나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주님앞에서 나를 낮추지 못하고 불순종 하면 가족들 역시 나에게 대들며 달려들것이고, 내가 주님 앞에 순종하면 가족들 역시 나의 말을 잘듣고 고분고분할 것이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기가 막한 방법으로 나를 죄인으로 낮추어 가도록 옴짝달싹 못하게 가족이라는 큰 울타리를 쳐 주신 것이다. 이런 가족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쓰임받는 그들도 죽을 맛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하기 싫다고 안하고 있고, 무섭다고 안하고 있다면 누가 자신의 자화상을 보게 할 것이며, 또 무엇으로 자신의 속사람을 비추어볼 것인가? 그리고 자신을 어떻게 날마다 죄인으로 낮추어 갈 것인가? 안하고 있는 사람은 그만큼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만큼 남들에게 뒤쳐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날마다 남편을 앞에 모시고 예배 드리는 사람은, 그만큼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에 주님을 만날 수 있는 희망도 그만큼 앞당겨지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결국 주님으로만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한다면, 나 역시 당연히 죄인으로 드러나야 주님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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