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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으로부터 긍휼을 입는 자!

작성자bansuk

작성일2005-04-26

조회수6,443

주님으로부터 누가 긍휼을 입을 수 있을까? 주님으로부터 한번만 제대로 긍휼을 입게 되면 그야말로 천대만대 대박이 터지는 일이다. 어둠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아무리 혼자서 발버둥치고, 노력한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죄 아래 살고 있는 인간들은 반드시 하나님아들을 통해서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도 아들을 거치지 않고 하나님앞에 오는 어떤 인간도 그대로 받아주질 않는다. 만약에 죄아래 살고 있는 인간들이 아들을 통하지 않고 그대로 하나님 앞에 왔다가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즉시 죽음을 맞이하고 말게 된다. 죄인은 절대로 하나님을 바로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무엘하 6장을 보게되면, 다윗이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기려고 법궤를 새 수레에 싣고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새 수레를 몰고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자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엉겹결에 법궤를 붙들게 되었다. 법궤를 만진 웃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게 되면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없다.

그리고 대제사장들도 지성소에 들어가기전에 반드시 자신에 대한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제를 드리고 지성소에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대제사장이라 하여 무조건 지성소에 들어갔다가는 자신의 죄악 때문에 그 즉시 시체로 변하고 만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죽었다 그를 꺼내려 무조건 들어갔다가는 그도 죽음을 면치 못한다. 그래서 지성소에 들어가는 자들은 반드시 발끝에 방울과 줄을 달고 들어가서 그 방울소리가 밖으로 들려오면 살아 있는 것이고, 소리가 안나게 되면 발끝에 묶었던 줄을 잡아당겨서 시체를 꺼내 와야 했다.


그만큼 하나님을 상징하는 지성소는 엄격했다. 그리고 일반 제사장들은 성소에만 겨우 들어가서 떡상과 향로와 금촛대에 불만 밝히고 나올뿐 지성소 근처에는 얼씬도 못했다. 이것은 오늘날 어느 누구도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 그대로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도 이런 실정을 잘 아시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의 화목재물로 보내주셔서, 모든 인간들은 반드시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나오도록 허락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인간들은, 기껏해야 아들의 모형을 붙잡고 신앙생활 한것을 가지고 스스로 의인이 되어, 그것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했으니 얼마나 우매한 인간들인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죄를 탕감받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 했던것은, 그야말로 화약을 짊어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꼴이다.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가 어렇게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기만 하면, 어디서 온 누구인지, 또는 세상에서는 무엇을 하다 왔는지 전혀 그런 것들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들은 반드시 아들을 통해서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온통 아들에 관해서만 기록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들을 믿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깨달아야 하는데, 어둠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로서는 도무지 자신의 죄를 깨달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인간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아들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말씀을 들었으면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말씀만 듣고 실천하지 않게되면 모든 죄가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다.

아들로부터 말씀을 들었으면, 자신을 낮추고 아들로부터 긍휼함을 입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들의 긍휼함을 입을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말은, 아들의 마음에 들도록 노력하라는 말이다.아들의 긍휼함을 입게 되면 더욱더 자신의 죄악을 깊이 깨달아갈 수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나아가기가 그만큼 쉽다는 것이다.

아들의 마음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이 지니고 있는 마음이기 때문에 진실해야 한다. 죄인이면 죄인답게 솔직해야 하고, 없으면 없는대로 진솔해야 하고, 모르면 모른대로 정직해야 한다. 모르는대도 아는 척, 없는대도 있는 척, 죄인임에도 죄인 아닌 척 행동하는 것은 자신의 거짓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아들의 마음에 들게 하려면 작은 것에서부터 절대로 소흘함이 없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높은 사람의 눈에 띄게 하려고 크고 화려한 것들을 붙들고 시작하는데, 이런 자들은 십중팔구 사람을 의식하고 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주님은 더욱더 그런 자들을 싫어하는 것이다. 주님은 낮고 천해서 사람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곳에 계시기 때문에, 위엣것만 처다보고 가는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주님을 만나기가 힘들다.

그리고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애절함이 있어야 한다.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자신의 절박한 모습이 있을 때 결국 주님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에서 보듯이, 그 여인은 자신의 딸이 죽게 생긴 것을 알았기에 예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더라도 그것을 모두"아멘"으로 받아들였다. 우리가 그 여인을 보면서 또하나 깨달아야 할 것은, 내 죄악이 클수록 거기에 따른 시험도 크다는 사실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수로보니게 여인은 이방사람이라서 한번도 율법의 엄격한 생활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한번도 그런 어려움속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예수를 찾아와서 자신의 딸이 죽게 생겼으니 당장에 살려 달란다고 해서, 아무런 거치는 시험도 없이 살려주면 너무도 불공평 한것 아닌가? 그럴 수는 없다.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믿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주님께서 강단을 통해서 나에게 호통을 치고, 야단을 치는 것은 그만큼 내 죄악이 주님앞에 크다는 사실이다. 내가 저지른 죄악만큼 주님은 나를 시험해 보는 것인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들은 마치 주님께서 혹은 목사님이 나를 미워하는 것이라 오해하여 스스로 자기 생각에 빠져들어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수로보니게 여인이 자신을 이방 개같은 여자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예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다고 했을 때, 그 여인이 그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문제의 핵심을 짚을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강단에서 여러분들에게 별라별 욕을 다 퍼부어도, 여러분들이 자신을 어떻게 여기고 있느냐에 따라서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긍휼을 입을 수 있는 자인지 그렇지 못한 자인지로 극명하게 갈리게 된다.

오늘 아침 말씀처럼, 김아무개가 자신의 집에 전화세가 기십만원이 밀린 것을 보고, 오후에 부업거리라도 찾아해서 그것을 갚으려고하니 허락해 달라고 말했을 때, 주님은 그의 마음을 보시고 그녀를 도와주시겠다고 말씀 하신다. 교회에서 그녀에게 주는 돈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축내지 않으려고 부업을 해서라도 밀린 전화세를 내겠다는 것이다. 밀린 전화세도 알고보면 모두 아들녀석과 남편이 사용한 요금이다. 우리가 여기서 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녀의 마음이다. 주님께서도 바로 그마음을 불쌍히 보신 것이다.

똑같은 예로, 정아무개도 자신도 부업일거리가 다떨어져서 없기 때문에 식당에 취직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 녀석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을 때, 그애는 누나한테 맡기고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녀의 말속에서는 측은 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바로 마지 못해서 또는 어쩔 수 없이 강단에서 시켜서 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녀의 말속에서 그렇게 일을 하겠다고 하는 데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안들었던 것이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 이유는, 바로 자신의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목사님이 이런 글을 공개적으로 이렇게 올리는 것은, 여러분들이 이런 글을 통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때, 주님이 불쌍히 여겨주시고 계시는가? 또한 똑같은 일을 하겠다는데도 어떤 마음으로 하고자 할 때 주님이 그것을 불쌍히 여기고 계시는가? 그것을 마음속깊이 깨달으라고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이다.

이런 것을 깊이 깨닫는 자는, 모든 생활속에서 이런 일들을 떠올려서 응용하게 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고 있으면 이런 일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해나가게 된다. 그러나 죄인이 되지못하면 약삭빠르게 이런 요점만 찾아서 응용하려 해보만 얼마 못가서 곧 본심이 드러나고 말게 된다.

우리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주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깊이 깨닫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이야 말로, 주님으로부터 가장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지름길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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