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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의 비유!

작성자bansuk

작성일2005-04-28

조회수7,482

누가복음 15장을 보게되면 탕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내용을 대충 살펴보면,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중에 둘째 아들이 아비에게 자기의 분깃을 모두 달라하여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한 생활로 인하여,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다 허비하더니, 그 나라에 마침 큰 흉년이 들게 되어 저가 비로소 궁핍하게 된지라,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그것도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 집에는 먹을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하고 신세를 한탄하다가 이렇게 비참하게 살바엔 차라리 아버지집에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가기로 마음 먹는데, 그가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기를 "내가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결심하고, 이에 일어나서 곧장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그런데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벌써 알아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는 가락지(印장)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마시며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이것이 부모의 심정이요 부모의 마음이다.

예수께서 이런 탕자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과 인간 관계도 이와 똑같다는 것을 제시해 주시기 위해서 일부런 이런 비유를 들어서 말씀해 주신 것이다. 이 세상 어느 부모가 자기 새끼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있겠는가?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이 없다고 하듯이, 부모역시 자식들이 부모 말에 잘 따라주면 이쁘게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말을 안 듣고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할 때는 부모도 무척이나 속이 상하게 된다.

아이들을 둘 이상 가진 부모는 모두가 이런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한 뱃속에서 나왔어도 두 아이의 성격이 각각 다르고, 또 취향도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그럴 때, 한 아이는 엄마 말을 잘 듣고, 한 아이가 엄마 말을 잘 듣지 않게되면 자꾸만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두 아이가 분명히 내가 낳은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동을 보이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의 성품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이것이 어렸을 때에는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엄마도 별로 편애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데, 아이들이 점점 자라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엄마 마음이 어느 한쪽으로 반드시 기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엄마 마음에 드는 자에게는 반찬 한가지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자에게는 말도 고분고분하게 되지 않고, 자꾸만 툴툴거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엄마로부터 자신이 소외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아이는 엄마에게 눈을 부라리며 따진다. 왜 00는 이뻐하고 자신은 미워하냐는 것이다. 이 때 당황한 엄마는 그것이 아니라고 애써 변명하지만, 인지상정이라고 팔은 안으로 굽게 되어 있다. 아무리 아니라고 변명을 해도 마음속에 숨은 감정은 숨길 수가 없다. 또 똑같은 자식이라도 자신의 말을 잘 따라주는 아이를 이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물론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절대로 엄마 잘못이 아니다. 순전히 엄마 말을 잘 따라주지 않는 자녀의 잘못인 것이다. 그런데 자녀들은 그것을 전혀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지 못하고, 오히려 엄마가 00는 이뻐하고 자신은 미워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의 경우도 마찬가지 경우다. 가인은 자신의 예물이 왜 열납이 되지 않는지 그것을 깨달을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아벨의 제물만 열납한다하여 하나님을 불공평한 분으로 여긴 나머지, 아벨을 죽일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벨을 죽이고 나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편애할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의 속임수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생각을 할 수 있는 나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잘못해서 엄마로부터 자꾸만 꾸중을 듣게 되고, 또 00보다 미움을 더 받게 되는지 한번만 깊이 생각해 보았다면, 자신의 문제를 쉽게 고칠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아이는 가인처럼 자신의 문제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엄마가 00만 편애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럴 수록 엄마와 자식간의 감정의 골은 더욱더 깊어만 가게 된다. 이 강단과 여러분들 사이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 현명한 엄마 같으면, "너도 00처럼 엄마 말을 잘들으면 이뻐 해주지!" 하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혹시 아이에게 상처라도 줄까봐서 말도 못하고 혼자서 끙끙앓다가 고작 생각해낸다는 방법이, 자신이 아이들을 편애하지 말아야지 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한다고 해서, 계속해서 엄마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무슨수로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아픈 손가락 없다고, 자신이 낳은 아이를 누가 일부러 미워하겠는가? 그러나 부모가 그 아이를 미워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 바로 부모 말을 안듣고, 제멋대로 살아가려는 자식들 때문이다. 부모가 자신들을 낳았으면, 자식은 자신의 모든 것을 부모에게 맡기고, 부모 말에 따라서 움직여주면, 부모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줄 것인데, 세상물정도 전혀 모르는 것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나서니, 당연히 부모 마음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도 이와 똑같다. 어느 것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그래서 자녀들은 부모의 열매라고 하는 것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적어도 자식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깊이 깨닫는 자라면 강단과 자신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과의 관계를 통해서 아직도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자들은, 아직도 깨달아야 할 것들이 많은 자들이다.

이렇게까지 애절한 마음으로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을 알려주는데도, 아직도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여, 부모에게 돌아갈 마음을 먹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아직도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더 많이 먹어야 할 자들이다. 탕자가 자신을 깨닫고 부모에게 돌아갈 때에는 완전히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조건없이 부모품으로 달려가야 한다.

그러나 못된 탕자는 먼 타국에서 쥐엄 열매 먹는 것이 지겹고, 또한 그것으로는 도저히 배가 부르지 않게 되자, 허기진 배를 채워 채워보겠다고 자신을 깨닫는 마음도 없이 무턱대고 부모를 찾아가는데, 그는 또 다시 배가 불러지면 부모를 배신하고 부모의 재산까지 훔쳐가지고 또 뛰쳐나오게 될 것이 뻔하다. 이런 자는 절대로 부모를 찾아가면 안 된다. 부모를 더욱더 슬프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그런 아들이 못내 안타까워서 눈물흘리시겠지만, 그렇게 집을 뛰쳐나온 탕자는 다시는 돌아갈 집이 없게 된다. 자신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도, 한 두번도 아니고 이런짓을 부모에게 몇번이나 되풀이 한 자신의 지난날의 잘못 때문에, 이제는 돌아가고 싶어도 도저히 부모님의 얼굴을 뵈올 낮짝이 없어서 부모품으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고 만다.

그래도 부모님은 그런 아들이라도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부모의 은혜를 배은망덕으로 갚아버린 못된 탕자는, 자신의 지난날의 잘못으로 인하여 스스로 올무에 걸려서 오도가도 못하고 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렇게 배은망덕의 탕자는 부모품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끝끝내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 결국은, 그 자리에 주저않고 말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잘못을 저질러도 한 두번으로 그치고 말아야지, 부모는 그런 아들을 사랑해서 그에게 훈계를 하고 야단을 치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미워하는 것으로만 여긴 나머지, 자신을 끝내 돌이키지 못하게 될 때, 자식이라도 아직은 온전한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양 부모도 어쩔 수 없이 그를 버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는 참으로 이뿐 탕자다. 저런 탕자만 있다면 얼마든지 오늘날 우리주님도 기쁜 마음로 모두를 받아줄 수 있을 것이다. 어디 새옷만 사주겠는가? 양복도 사주고, 구두도 사주고, 자동차도 사주고, 집도 사주고, 손가락에 끼우는 가락지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원히 죽지 않을 그리스도의 印자가 새겨진 생명의 반지를 끼워주게 될 것이다. 이것을 받고 싶거든 행동으로 보여라! 성경에 나오는 탕자보다 더한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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