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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사는 삶!

작성자bansuk

작성일2005-05-06

조회수6,625

종교적 행위와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그 시작부터가 다른 문제다. 어원은 비슷할지 모르겠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종교적 행위는 내가 스스로 알아서 절간을 찾아가거나, 예배당을 찾아가서 예배드리는 행위이고,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나의 모든 것을 석가에게 맡기거나, 또는 주님에게 맡기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같은 종교적 행위라도 절간의 중들은, 석가라는 사람의 우상을 세워놓고 복(육신의 복)을 달라고 빌고 있는 것이며,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라는 나무막대기 우상을 세워놓고 복(육신의 복)을 달라고 빌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중들보다 조금 나은 것이 있다면,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중들보다 구원얻을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튼 종교적 행위는 인간이 중심이 되어 자기 편리한대로 생각하고, 자기 편리한대로 행동을 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종교적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지켜야 할 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중들에게는 아침 저녁으로 석가상앞에 앉아서 염불(불경)을 외우는 것이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예배당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는 행위다.

중들이라도 자신을 완전히 석가라는 귀신에게 맡기고 나아가는 자들은, 그것이 그들에게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조금이라도 살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 마음속에서 석가라는 귀신이 시키는대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得道(득도)라고 한다.

그래서 옛날 사명대사나, 원효대사 또는 중국의 공자, 맹자 같은 자들을 보면, 보통인간의 삶을 훨씬 뛰어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뭇사람들에게 추앙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보면 예수도 공자나, 맹자와 똑같은 사람으로보는 것이다.

동양에 공자, 맹자가 있다면 서양에는 예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예수 역시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희생해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이라는 좋은 본보기를 보여준 훌륭한 분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죽은지 삼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했다면, 자신들도 죽었다가 반드시 다시 환생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에 천국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극락왕생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믿는 기독교인들이나, 절에 다니는 불교인들이나 무엇이 다를 것이 있냐는 것이다. 기독교에도 목사가 있다면, 절에는 스님들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기독교에 교회라는 예배당이 있다면, 자신들에게도 절이라는 불당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도 육체로 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기독교인들을 하는 짓을 흉내낼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독교인들의 생활까지는 모두 흉내내며 살지 몰라도,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만큼은 절대로 흉내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죄악을 다루는 문제다. 그들이 기독교인들의 흉내를 쉽게 낼 수 있었던 것은, 아직 온전치 못한 기독교인들로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든 죄악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룰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쉽게 흉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둠속에 살고 있는 그들로서는 아무리 죽었던 석가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하여도,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악의 문제만큼은 다룰 수가 없다. 어둠이 어둠속을 밝힐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석가라는 귀신에게 자신을 완전히 맡기고 믿음으로 나아간다고 해도 결국은, 어둠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어둠속에 살고 있는 인간이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때, 인간의 겉모습은 그대로 있을지 몰라도, 인간의 마음속은 완전히 360도로 변하고 말게 된다. 어둠이 비로소 빛을 의지해서 살게 된다는 말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절간의 중들이야 믿음으로 산다고해도 자신를 지배하고 있는 어둠의 주관자 때문에, 어둠을 크게 벗어날 수 없어서 겨우 육신으로 절제된 생활을 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리스도 말미암는 삶이란 그때부터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속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기 때문에 나라는 어둠의 존재는 사라지고 그리스도께서 대신 사시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자기 마음속에 모시지 못한 인간들은,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분을 철저하게 믿고 따라야 한다. 그래야 그도 자신의 죄악을 깨닫게 되어서,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고, 그리스도로부터 긍휼함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예배당에 나가서 겨우 종교적 행위만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나는 믿음으로 산다"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어불성실이다.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내 안에 예수를 모시고 있거나 아니면, 예수를 마음속에 모시고 있는 자를 철저히 믿고 따른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죄아래 살고 있는 인간들이 무슨 재주로 믿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인간은 자신의 죄를 해결받기 전까지는 믿음이라는 말을 꺼낼 수 조차 없다. 인간이 죄를 해결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야 한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불가능하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결국, 나라는 존재는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 존재하신 다는 말이다. 따라서 믿음으로 사는 자는 내 안에 그리스도영을 모시고 있거나, 혹은 누군가 그리스도 영을 모시고 있다면 그에게 나를 전적으로 맡기고 그에 뜻대로 사는 것을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것이다.

나를 주님에게 전적으로 맡긴다고 할 때 적당히 맡겨서는 오히려 부작용만 일으키게 된다. 나를 맡기려면 나의 모든 것(죽고 사는 문제까지)도 모두 맡겨야지, 그렇지 않고 나를 적당히 맡기게 되면 오히려 주인의 심기만 불편하게 만들어서 도리어 야단만 맞게 된다. 이렇게 자신을 맡길 것 같으면 차라리 맡기지 않는 것이 낫다.

그리고 나를 한번 맡겼으면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말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맡긴다 해놓고 다시 나를 찾아오려다 보니 망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주인을 못믿었으면 나를 맡긴다 해놓고나서 다시 나를 찾아오려고 했겠는가? 그것은 아직도 내가 주인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주인을 믿지 못하는 자가 무슨수로 자신을 주인에게 맡긴다고 하겠는가? 그런자는 순전히 입으로만 주인을 믿는다고 말하는 자다. 그래서 나를 깨닫고 있으라는 것이다. 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그것이 곧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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