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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자기 문제이다.

작성자bansuk

작성일2013-06-12

조회수12,401

“믿음”은 자기 문제이다.

 

장로님 한 분이 계셨다. 그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계속 출석해 오셨는데 어느 날 교회를 훌쩍 떠나버렸다. 그 이유는 목사님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도에게 신뢰를 못 준 목사 탓이다. 그 목사님은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과 신뢰, 이런 것은 상대 때문에 신뢰가 없어지고, 믿음이 불신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결국 신뢰와 믿음은 전적으로 자신의 문제이다.

 

1960년대 어느 해 여름, 내가 직접 목격했던 일이다. 동네 아저씨 한 분이 마당 한편에서 물을 끓이며, 올가미를 들고 자신이 키우던 개의 이름을 불렀다. 옛날엔 개의 이름이 ‘독꾸’가 참 많았다. ‘독꾸’는 꼬리를 흔들며 반갑다고 그 아저씨 앞에 왔다. 그런데 아저씨는 별안간 올가미를 걸어 ‘독꾸’를 숨 쉬지 못하게 만든 뒤 그 끈을 나무에 걸려고 했다. 그러나 무게 때문인지 끈이 풀리면서 ‘독꾸’는 쏜살같이 골목 밖으로 도망갔다. 나는 한 편으로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며, ‘독꾸’는 자신을 죽이려 한 주인에게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화가 나 혹시 지나가는 사람을 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한 시간쯤 지났을까. ‘독꾸’는 너무나 태연하게 자기 보금자리인 마루 밑에 깊숙이 들어가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아저씨가 다시 ‘독꾸’를 부르자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다시 마루에서 나왔다. 비유가 좀 생뚱맞다고 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 이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서고 주인을 신뢰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교회 문제든 목회자 문제든, 인간관계 문제든, 이 모든 문제는 자기 “믿음”의 문제일 뿐이다. -부천 처음교회 윤대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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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부천 처음교회 윤대영 목사가 지난 토요일자 국민일보 미션지에 올린 글을 발췌한 내용이다. 나는 위 글을 보면서, 주의 종의 한 사람으로서 “믿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다. 목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교회를 떠난 장로를 탓하기에 앞서서 “나는 과연 그리스도 앞에 바로 서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곧 나 자신에 대한 물음이다.

 

내가 주님을 만나 그리스도로 거듭 나기 전, 그러니까 내가 20년전 처음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 성령의 은사로 한창 신나게 사역할 때 일이다. 그때는 정말 성령 하나님께서 엄청난 은사를 부어주셔서, 병든 자에게 손을 얹기만 해도 병든 자가 낳고, 귀신들린 자가 나의 목소리만 들어도 귀신이 소리 지르며 떠나가는 때가 있었다. 아무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자 여기저기서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교회가 부흥하게 되자, 나는 내 “믿음”이 좋아서 그런 줄 알았다. 나를 보는 교인들마다 이구동성으로 “목사님! 목사님! 우리 목사님하며 추켜 세워주자” 나는 그만, 나도 모르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져 갔다.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며 살아가던 나에게 어느 날부터인가 성령의 역사가 점점 나타나지 않았다. 손을 얹어도 병이 쉽게 낫지 않았고, 귀신들린 자를 데려오면 몇 시간씩 땀을 뻘뻘 흘리며 씨름을 해야 했다.

 

처음에 엄청나게 나타내던 능력이 내게서 나타나지 않게 되자, 나는 죽을 맛이었다. 나는 그때 별라별 짓을 다해보았다. 그때 깨달은 것이 있다. 오늘날 많은 목사나 부흥강사들이 왜 처음에는 엄청난 성령의 능력을 나타내다가, 나중에는 그런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진 인간의 교만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성령의 은사를 거두어 간 것이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자기 소유물인양, 사람들 앞에 자신을 높이는데 사용하거나 또는 부와 명예를 축척하는데 사용하다보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회수당하고 만 것이다.

 

성령의 은사를 회수당하고 난 사람들 대부분이 교인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교회안에도 온갖 여러가지 장치를 해놓고 별라별 짓을 다 한다. 또 어떤 목사들은 암을 고친다며 상처를 내고 그 위에 이상한 것(밀가루 등등)를 발라주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끝내는 여러 사람들에게 이단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ㅁㅁ중앙교회, ㅎㄹㄹㅇ 기도원 등등이다.

 

나의 교만으로 인해서 성령의 은사를 회수당하고 나자, 나 역시 힘을 잃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교회는 침체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아 있던 성도들도 하나둘씩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때 나를 가장 실망 시켰던 일은, 죽을병이 걸려서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낫지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다가 우여곡절 끝에 우리 교회에 오게 되어, 병을 고침 받고 감격하여 죽을 때까지 목사님을 따르겠다던 성도 한분이 있었는데 그분마저도 교회를 떠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나로 말미암아 빗어진 일이긴 하지만, 사람의 간사함이란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와 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그때 너무도 큰 충격을 받고, 성령께서 도와주지 않는 목회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목회를 접으려고 맘먹고 보따리 하나 싸들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죽음을 각오하고 산 기도에 들어갔다. 그러나 죽는 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산을 내려와서 죽을 결심을 하고 기도하던 중에 정말로 바울처럼 빛(영)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지만, 주의 영을 마음속에 받아서 그리스도로 거듭나고 보니, 그동안 내가 성령 아래서 신앙생활 하던 것이 너무나 보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성령을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성령은 어디까지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 역할을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우리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우리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할 목적으로 성령을 보내주셨다는 사실이다. 성령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우리 마음속의 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 율법이 없을 때도 죄가 왕노릇하였지만,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고 하던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제야 바울이 왜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던가가 구구절절 깨달아졌다. 그리고 바울이 율법 아래서 습득했던 모든 지식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했던 말도 뼈저리게 느껴졌다. 나 역시 성령 아래서 살 때는 내가 바로 의인(義人)이요 구원 받은 하나님 자녀인줄 알았는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내 마음속에 들어오고 보니, 내가 바로 “죄인 중에 괴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알량한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보잘것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신학 지식과 세상 학문은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학문이었으며, 그러다보니 성경도 전부 내 입맛에 맞게 해석하여 교인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그리스도로 거듭나고 보니,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23:15)” 내가 바로 성령의 법아래서 살면서 교인들을 배나 지옥자식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교인들에게 성령으로 모두 구원 받았다고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교인들을 배나 지옥자식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을 만나고보니, 바울이 왜 율법아래서 배운 지식들을 배설로로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던가가 뼈속깊이 새겨졌다.

 

 나는 그 후 왜 강단의 목사가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 바로 서야 하는가를 구구절절 깨닫게 되었다. 예수께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다 구덩이에 빠지고 말게 된다"는 말씀이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그동안 내가 성령의 법아래서 아무것도 모르고 살던 삶이 바로 소경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내 마음속에 모시고 나니 그제서야 소경에서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성도의 "믿음"을 판단하는 것도, 내가 얼마나 그리스도 앞에 바로 서 있는가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져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 바로 서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해주는데도 불구하고, 성도가 목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교회를 떠난다면 그것은 성도 자신의 “믿음”문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강단의 목사가 그리스도 진리 안에 바로 서지 못한 상태에서 말씀을 전했을 때, 성도가 목사를 떠나간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목사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신다.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너희는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마23:8-10)” 예수께서는 인간의 참 아버지는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 한분이시며, 땅에서 모든 인간의 선생은 오직 그리스도 한분 뿐임을 말씀하시고 있다. 이는 곧 누구를 가르치려고 선생이 되려는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아서 가르쳐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자신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이 선생이 되어 가르치게 되면, 인간의 생각으로 사람들을 가르치게 되니 교인들을 배나 더 지옥자식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야고보 사도는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약3:1)”고 말씀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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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suk

| 201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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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람 아담이 마귀 꾐에 넘어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가 끊어진 것을 원죄라 일컫는다. 아담이 지은 원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갈실 때 흘려주신 피로 말미암아 마귀가 심판을 받고 세상 임금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이 세상 어느 누구나 예수 이름만 부르면 원죄를 해결 받았다는 증거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주신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은 성령의 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따른다. 만약 성령을 따라살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되는 것이므로 마지막날에 모두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이방인들이 성령을 따라살지 못한 죄를 자범죄라 부른다. 그러나 마음이 부패한 이방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성령을 온전히 따라살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인들도 모두 성령의 법아래 갇히게 된 것이다. 이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이방인들 앞에도 하나님 아들이 오시는 것이다.

하늘에 오르셨던 예수가 그리스도 영이 되어 바울속에 들어가셨던 것처럼, 이방인들 앞에 오실 때도 예수가 그리스도 영이 되어 이방인 중에서 미리 택정한 한 사람을 통해서 이방인들 앞에 오시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바로 이렇게 오시는 자를 하나님 아들을 믿어야 한다.

믿음의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사람을 통해서 오신 그리스도를 하나님 아들로 믿을 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그 결과에 따르는 책임 또한 본인이 져야 한다. 이스라엘 땅에 전혀보잘것 없는 몸으로 나타난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을 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당시 유대인들의 몫이었다.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었던 자와 믿지 않았던 자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들의 결과를 잘 지켜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저들의 결과를 지켜보며 무엇을 깨달아야 할 것인가? 판단은 순전히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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