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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보다 더 크신이

작성자사모님

작성일2005-06-23

조회수7,404

성전보다 더 크신이

본문:마12:1~8


 


 율법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섬겨오던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를 입고 오셔서, 율법을 범하여 죽게 생긴 백성들을 건지시려고, 제자들을 데리시고 다니시면서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백성들이 회개 할 것을 촉구하며 천국복음을 전하신다.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안식일이면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시며 병고쳐주는 일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이를 보고 있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시비를 걸고 또한 죽이려고 의논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어떻게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어기고 안식일에 일을 하느냐는 것이다. 


 본문의 말씀에도 안식일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밀밭사이로 지나는데, 제자들이 시장하여 밀 이삭을 잘라먹으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묻기를, “왜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며 묻는 말이 나온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다윗이 시장할 때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자기와 함께한 자들과 같이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성전보다 더 크신 이가 여기 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 나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 자신을 성전보다 더 크신 분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나 저들은  육신 그대로 판단하여 알아듣지 못하고 예수에 대하여 반기를 드는 것이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성전을 목숨처럼 중요시하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선택받은 아브라함의 후손들로서 모세의 율법을 따라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왔기 때문이다. 모세를 따라 애굽땅에서 나와 광야생활을 거쳐 가나안땅에 정착하여 안정된 성전을 짓기 전까지, 처음에는 성막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을 섬겨왔다. 세월이 흘러 다윗왕 때 열두지파가 하나로 뭉쳐지자, 아들 솔로몬 왕을 통하여 거대한 예루살렘성전이 지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였던지 때가되면 자신들이 하던 일들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율법대로 제사드릴 제물을 가지고 성전으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의 타락으로 인하여 이들 민족은,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 두 왕조로 나뉘어져 살게 되었다. 해서 북이스라엘 열 지파는 여로보암을 좇아서 벧엘과 단에다가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여호와하나님을 찾았고, 남유다 두지파만 예루살렘에 남아서 힘들게 성전을 지키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특히 유대인들은 어떤 경우에서든지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성전을 지키며 살아왔기 때문에 성전을 자기 목숨처럼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전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예배의식의 주도권은 다른 이들이 함부로 할 수 없고, 하나님이 정해주신 율법대로 레위인들 중에서 제사장을 선정 구별하여 이들만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는 일을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성물들 또한 이들만 관리하고 먹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었는데, 이것이 구약의 율법이었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쫒기다 라마 나욧에 있는 빈들에 숨어 지낼 때, 너무나 시장하여 함께한 자들과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떡을 먹고도 죽지 않고 이들에게 아무해가 돌아가지 않았다는 뜻은, 율법을 어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것은 다윗도 우리와 같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었기에 다윗과 함께한 자들도 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말하자면 다윗의 믿음 때문이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자였다. 율법을 넘어서 그는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순종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중심을 보시고 법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적용시켜 주신 것이다.


 그리고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율법에 기록이 되어있다고 한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때, 아니! 백성들을 대표하는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부터 더욱더 철저하게 안식일을 잘 지켜서 백성들의 본이 되어야 할 터인테 어떻게 이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예수께서도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 하시며 자신을 성전보다 더 크다. 안식일의 주인이다. 라고 하시면서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시는 것을 볼 때,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의아해 할 수도 있다.

 

 위에서 말 한 것처럼 안식일 지키는 것과 성전을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겼던 이들에게는, 예수자신이 “성전보다 더 크다.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유대인들은 도저히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전 안에서 제사장들이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되지 않는 뜻은, 제사장들이 안식일 날 자신의 개인적인 소욕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성전 안에서 안식일에 어떤 일을 하다가 혹 범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안에서 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를 따라 다니는 제자들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고자 밀 이삭을 잘라먹은 것이 아니라, 이들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를 따라다니며 천국복음을 증거하고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다니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도 똑같은 일을 하다가 시장하여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또한 성전보다 더 크다. 란 뜻은, 백성들이 성전 안에서 예배와 제사 드린 목적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였는가를 보면, 이 또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긍휼함과 은혜를 입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고, 후에는 결국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만나기 위해서 필요로 했던 예배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성전이란 의미는 하나의 겉이고 결국 성전 안에서 이루어져야할 어떤 핵심적인 실체(생명)를 얻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성전또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기 위한 하나의 모형으로 잠시 필요로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아들이 올 때 까지 필요했던 것이고, 하나님아들을 만나기 위해서 제사와 예배도 드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아들이 온 후로는 모형인 성전보다 실체인 예수가 더 크다. 란 뜻이다.


 그래서 이 백성들에겐 정말로 하나님아버지의 은혜를 한 번에 받아 누릴 수 있는 통로인 예수가 육체를 입으시고 실체로 백성들에게 오신 것이다. 오셔서 율법을 범한 죄악을 지적하시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하셨고, 또한 믿고 회개하고 나오는 자에게는 죄를 사해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다. 

 

 바로 백성들이 율법을 어긴 죄악 때문에 하나님아버지와의 막혔던 담이 이제는 헐리고, 생명을 얻어 영생의 길로 들어가는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중에서 예수를 믿어 영생으로 들어가게 된 자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건물의 성전보다 성전안에서 이루어져야할 실체인 생명을 이미 얻었기 때문에, 성전보다 더 크신 예수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는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님은 말씀 하셨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피로 말미암아 성령까지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육체가 죽을 때까지 성령의 법을 잘 따라 살아야지 구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기독교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방인들이 율법이 없이 살다가 성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백성들은 신앙의 형태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성령 받은 것을 구원의 완성으로 알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앞서서 전에 말한 바도 있지만, 이스라엘백성들은 율법으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율법을 범한 죄에 대하여 예수께서 오셔서 육체로 담당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나중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피흘려주시고 다시 부활승천하서서 성령을 보내주실 때 아담으로부터 온 원죄를 용서 받게 되므로, 영과 혼이 죄에서부터 완전해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백성들과 구원의 문제가 다르다. 


 성령의 종들 중에서도 아주 드물게 성령으로 강하게 쓰임 받는 종만 성령의 법에 관하여 조금 외치고 있을 뿐, 나머지 목사들은 자기 스스로 목사가 되어 거의 타락으로 갔고, 성령의 뜻도 다 거스리고 오히려 방종 하는 삶을 살고 있으며 또한 성도들에게도 똑같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성령 받은 것이 구원이 아니라, 성령의 뜻을 다 따라 살지 못한 죄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마치 이스라엘백성들이 율법을 받은 것이 구원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서 율법을 어긴 죄인이었듯이 말이다.


 이제 영적인 백성이 된 기독교인들도 지금까지 성령의 법을 가지고 겉으로 보이는 교회 건물에 나가서 성령의 법에 의하여 예배를 드려왔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 역시 무엇 때문에 예배라는 형식을 갖춰놓고 거기에 맞추어 날마다 행위를 해 왔던가? 이 또한 주님을 만나 죄에서 해방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적인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구원완성을 그대로 가져와서 예수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구원의 완성이라면, 영적인 백성들 마음속에든 시기질투, 미움, 분노, 음란, 거짓 등등.. 이모든 죄악들은 어떻게 된 것이며, 성령의 뜻을 거역한 죄는 어쩌란 말인가? 이렇게 큰 영적인 죄악이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있는데, 어떻게 '죄에서 구원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한마디로 아니라는 것이다.이는 영적인 백성들은 예수의 피만 받아서 원죄의 문제만 해결 받았을 뿐이지, 마음속의 자범죄는 아직 해결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우리는 예수를 믿었으니까 법은 안 지켜도 된다고 주장하면서, 주의 날에 주일성수도 제대로 안하고, 십일조도 새벽예배도 모두 자신들이 편리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있는 것이다. 자기 멋대로 놀러가고, 사고팔고, 등등..하고싶은일  하면서, 자신들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이미 이런 죄는 예수피로 말미암아 이미 모두 용서 받아 괜찮다고 하여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들에게는 율법이 주어졌지만, 우리에겐 성령의 법이 있기 때문에, 자기마음대로 신앙생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성령의 법을 다 어기고 살면서도, 영적인 죄악들을 모르고 회개치 않으면서, 예수 안에 있는 자유를 엿보고 자신들 멋대로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진정 성령의 뜻을 범한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고 영적인 주님(아들)로부터 용서받고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죄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자기의 멋대로 죄악을 먹고 마시면서, 자유가 아닌 방종을 누리고 있는 것이며, 구원의 완성이라 하여 평안한 삶을 살고 있는데, 이것은 정말로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 영적인 백성들이 교회에 나가서 지금까지 예배드렸던 것들이, 실상은 온전한 하나의 실체(영적인 아들을 만나 영적인 죄에서 용서받아 온전해 지는 것)를 만나기 위하여 교회의 모형을 잡고 예배하며 기다렸던 것이 아닌가하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나와서 종교 행위한 것을 가지고 예수 믿었다고 해도 안 되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렀다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아직 영적인아들이 오기 전까지는 백성들은 육신이 죽을 때 까지 성령의 뜻을 잘 따라 살아야 법적인 구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영적인 백성들이 과연 누가 성령의 뜻을 하나도 거스리지 않고 따라 살아서 죄에서 구원 받은 자가 있단 말인가?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인간은 누구도 연약하여 하나님이 주신 법을 온전히 따라 살 수 없다는 뜻이다. 과거에 성령으로 충만했던 종들 역시도 법을 따라 살아서 온전한 구원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들도 성령을 어길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었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일생을 주님 앞에서 절제하며 육체가 죽어 순교하기까지 자신들을 낮추며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도 법을 지킨 행위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인들은 성령받은것을 구원의 완성으로 할 것이 아니라, 결국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속에 들어있는 영적인 죄악을 깨닫고, 교만하여 높아져있지 말고 영적인주님 앞에서 죽기까지 낮추고 있으라는 뜻이다. 그리하면 주님이 이것을 보시고 성령의 뜻을 어긴 영적인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가 범한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긍휼을 베푸사, 주님이 그의 마음속에도 들어 가셔서 생명으로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죄악을 알고 죄에 대하여 죽고, 영적인 주님을 믿고 나오는 자에게는, 성령의 법이 그를 정죄할 수도 없고, 주안에서 행한 모든 일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죄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이미 죄에서 빠져나와서 법보다도 더 크시고 교회에서 모형으로 드렸던 예배보다도 더 크신, 영생의 주인이자 예배 실체의 주인이신 주님과 함께 있기 때문에, 주 안에서 행해지는 어떤 것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주안에서 영생의 문제도, 육신의문제도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옷을 입든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지 죄가 되지 않고, 바로 주님 안에서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누려지는 참 자유인 것이다.

 

 그러나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벗지 못한 자들은, 마땅히 성령의 법에 매여서 모든 것을 절제하며 참고 인내하며, 자기 맘대로 먹고 마시며 입고 쓰고 어디를 가는 모든 것들까지도 절제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법을 벗어나서 자유를 누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 자유가 아니고, 법을 어기고 누리는 방종이기 때문에 성령의 법의심판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 성도들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자신들이 죄인임을 손들지 않고, 영적인 아들 앞에서 무릎도 꿇지 않았으면서, 감히 아들이 누리는 자유를 엿보고, 자신들 편리한대로 잘먹고 잘쓰고 아무데나 멋대로 가고 하면서 얼마나 마음대로 방종하며 살았던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자신들 생각대로 멋대로 살았으니 주님이 노발대발하시고 가족들까지 세상에 나가서 저렇게 고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휴! 쯧쯧...


 아직도 자신들이 죄인으로 죽기 싫은 자들은, 실컷 성령의 법아래 꽁꽁 매여서 꼼짝 하지 말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잘지키고 절제하면서, 고생 열심히 해서 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아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무릎도 꿇지 않으면서, 감히 아들 몰래 슬금슬금 자유를 맛보려고 하는데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분 멋대로살려고 하는 방종이라서 성령의 법이 여러분들을 철저하게 따라 다니면서 정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약 여기서도 철저하게 돌이키지 못하게 된다면, 이는 지옥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들은, 이제 고생 그만하고 싶은 자들은, 이제 고생 그만 하고 아들 앞에서 어서 자신의 죄에 대하여 인정하고 죽으라! 그리하면 성전보다 더 크시고 법보다도 더 크신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가 주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릴 것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성령 받은 영적인 백성들이여!  성령의 뜻을 범하여 죽게 생긴 죄악을 깨닫고 주 앞에서 낮추고 있으라! 그리고 영적인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 회개하라고 외칠때, 그의 음성을 듣고 나와서 그를 믿으라! 그리하면, 성전보다도 더 크시고 법보다도 더 크신 하나님의 아들 영적인 주님이, 긍휼을 베풀어 주시사 성령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심으로, 주안에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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