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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자녀와 부르신이의 뜻을 따라 된 자녀(2)

작성자사모님

작성일2005-08-12

조회수7,262

이스라엘의 약속의 자녀와 이방인의 부르신 이의 뜻을 따라 된 영적인 자녀(2)

    

 1부에이어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이삭(예수)의아들 '야곱’의 예표로 오시는 이는 누구인가? 에서 영적인 백성에게 오실 '야곱’의 예표는 곧 영적인 주님이요 영적인 아들이신 것이다. 이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선택으로 으로 말미암아 부르신 이의 뜻을 따라 오게 되는 자 이다.

 그러므로 '이삭’은 예수를 상징하고 육적인 이스라엘민족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은 예수로부터 태어난 이방인들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삭(예수)의 아들은 쌍태일까? 왜 두 민족이 태중에서부터 싸우기 시작하여 태어나서 자라나기까지 다른 것일까? 또한 하나님께서 왜 큰 자는 미워하고 작은 자를 사랑하고 택하였는가?

 이것 또한 예수 한분으로 말미암아 태어날 이방인들의 영적인 자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정하시고 이 뜻을 어떻게 이루시는가를 좀 더 쉽고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연단하신 후 약속하신자녀 이삭을 주신다음 그를 통하여 또다시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주셨다. 그러나 형 ‘에서’는 버리고 동생 ‘야곱’을 택하셨다고 하셨다.

 그럼 이 쌍태의 의미는 무엇인가? 왜 하나님은 쌍태를 주셔서 아직 태어나기도전에, 하나는 사랑하고 하나는 미워하고 사랑치 않는가?  얼핏 보면 하나님이 공평치가 못하고 편파적인 분으로 보여 진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중에서 영적인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하는 큰 비밀이 들어있다.

 이는 육으로 작은 자 야곱 택하심을 통하여, 이방인들 중에서도 이삭의 예표인 예수로 말미암아, 앞으로 복음으로 태어날 두 쌍둥이를 예표하는 것이다. 한 예수로 말미암아 큰자 에서와 같은 육적인 그리스도인들과, 작은 자 야곱 같이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된 그리스도인들이 태어날 것을 이들을 통하여 미리 나타내 주고 계시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누구 같은 자를 미워하여 버릴 것이며, 누구 같은 자를 사랑하여 구원할 것인가도 잘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먼저 육으로 태어난 형 에서를 육적으로 살펴보면, 그는 부모의 태속에 동생과 함께 있다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게 되지만 먼저 태어나서 형이 되는 것이다. 그는 먼저 태어난 큰 자로서 들 꾼이며, 용맹하고 씩씩하다. 육체로 볼 때 거의 흠 잡을 때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아니한 때에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택하심을 따라 하님의뜻이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기 위하여,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노라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였나니(롬13:11-13)”라고 하시면서 태중에서부터 ‘에서’는 미워하셨다.

 후에 ‘에서’가 장성하여 사냥을 다녀왔을 때 몹시 배가 고팠었다. 그때 ‘야곱’은 엄마 일을 도우며 팥죽을 쑤어놨다. 그것을 본 ‘에서’는 순간적인 배고픔을 참지 못 하고 육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여, 동생에게 팥죽을 줄 것을 요구 하였다.

 그러자 동생 야곱은 형의 배고픔을 이용하여 이때 자신이 쑤어놓은 팥죽을 그냥 줄 것이 아니라 장자의 명분과 바꾸어 팔아먹을 것을 생각하고 형에게 장자의 명분 팔 것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형은 식물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팔고 말았다.

 때문에 가문의 장손이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여기고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동생에게 팔아서 넘기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내리신 장자의 명분을 소홀하게 여겼으므로 동생에게 빼앗기게 된 것이다.

 이때 당시 장자의 축복권이란 하늘의 축복이 땅에 나타난 하나님의 직접적인 축복이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갖는 장자의 의미와는 엄청나게 다른 것이다.


 이제 동생 야곱을 살펴보자. 이는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중 태어난 작은 자이다. 이도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선이나 악을 행하지도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뜻이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시려고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노라” 하시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따라 야곱을 선택하신 것이다.

 이는 하나님보시기와는 달리, 사람의 눈으로 볼때는  아버지와 형을 속인 간교한 야곱이다. 또한 남자답지 아니하고 지렁이같이 꿈틀거리는 연약한 자 이었다 그러나 야곱은 비록 장막 안(엄마의 품)에 있는 지렁이 같이 나약하고 보잘것없고 부모와 형을 속인 간교한 인간이었지만, 14년간의 연단 끝에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과 자신과의 싸움에서 자신을 무너뜨리고 이긴 자이다.

 끝까지 하나님과 겨루어 자신의 자아를 무너뜨리고 정말로 장자의 축복인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낸 야곱(이스라엘)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에서는 버리고 야곱을 택하셔서 그를 통해 이스라엘민족을 세우시고 또한 그를 통해 약속하신 메시야도 보내주신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먼저 택하여 본보기로 보여 주심은, 이는 저들만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요  저들을 통하여  앞으로 하나님의 아들 복음이 전 세계로 전파될 것을 위하여 이렇게 미리 정하신 것이다. 바로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기 위하여 이방인에게도 예수의 복음이 전해지게 될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갈3:8~9참조)

 이와 같이 이방인들 중에서도 예수로 말미암아, ‘에서’ 같은 육적인 그리스도인들과 ‘야곱’ 같은 그리스도인이 태어날 것을 아직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기도전에 복중에서부터 이미 하나님께서는 에서 같은 자는 미워하시고 야곱 같은 자를 택하시어 하나님의 혈통을 이으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신 것이다.

 영적인 백성 중에서도 야곱 같은 자를 택하시어 그를 통해서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주님을 보내 주시겠다는 뜻인 것이다.

 

 그럼 영적인‘에서’ 같은 자는 누구이고 ‘야곱’ 같은 자는 누구인가 살펴보자.

 이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의 예표인 예수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예수의 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쌍태인 에서와 야곱 같은 기독교인들이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해서 예수의 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복음을 먼저 받은 자들이 태어났다. 이들은 영적인 ‘에서’로서 복음을 먼저 받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장자의 명분을 가지게 된 자들이다.

 이들은 에서처럼 육신으로 보기에 흠이 없을 정도로 학문, 인품 제질, 물질 등등..이 부족한 것이 없을 정도로 멋있고 출중하다. 그리고 이들은 먼저 되었다는 자만과 육으로 잘났다는 긍지로 똘똘 뭉쳐있다. 또한 막상 육신적인 의식주 문제로 고통이 오게 되면 항상 현실의 배고픔을 더 생각하고 걱정하며 살다보니 믿음을 저버리고 주님을 배신하게 된다.

 그래서 육신의 문제를 이겨내지 못하고 주님이 주시는 영생의 축복 권을 받아내지 못하고 동생에게 팔아먹는 자들이 되고 마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의 미움을 받을 기독교인들을 놓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영적인 야곱은 나중에 태어났고 또한 육신으로도 지렁이 같이 나약하여 한없이 못나고 못 배웠으며 가진 것도 없고 인품도 없어 보이며 너무나도 보잘 것이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너무나 못났기 때문에 형의 발꿈치를 그대로 잡고 형의 약점(육신의 의식주 문제에 약한 자들)을 알고, 자신은 육신의 문제를 포기하고 땅에것이 아무것이 없어도 끝까지 주님을 배신하지 않고 따랐다.

 이는 한없는 고통과 연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끝내 작은 자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영적인 아들을 두고 하는 말이며, 또한 앞으로 이를 통해 새롭게 태어날 그리스도인들이 탄생할 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이다.

 이가 아직 복음으로 태어나기도전에, 이방인이 무슨 믿음으로 선이나 악을 알아서 행하기도 전에, 이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의 뜻을 따라 서게 하시려고 이렇게 정하신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먼저 태어난 기독교인들을 보면, 영적인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하나같이 육적인 사람들인 것을 본다. 말로는 영적이라  하는데 신앙생활 하는 행태를 보면 삶의 전부가 영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육신의 일들만 추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영적이라 함은 우리 사람들의 죄악 된 마음 판을 놓고 하는 말이고, 육적이란 뜻은 자기 자신의 자아와 땅에서 먹고사는 의식주문제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예를 들자면,  기독교인들이 교회에 나아가 예배를 드리거나 헌금 하는 것 충성 하는 것 모두가 육신의 몸으로 했다. 그리고 기도 응답 받는 것이나 축복 받는 것도 모두가 육적인 것(건강, 물질, 집, 자녀, 사업, 직장, 권력문제)들로 해결 받고 감사를 드린 것이다.

 이들이 영적인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자신 마음속의 죄악 문제를 해결 받기위해 예배드리며 헌금하며 충성 하며 감사를 하였던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구하는 것도 받는 것도 모두 육적인 문제를 해결받기위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하늘나라 장자권인 영생의 축복을 주실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믿음도 당장 현실적인  육체의 문제들을 채우기 위하여 하였던 것이므로, 영생보다는 그저 육신의 식물 한 그릇이 더 필요할 뿐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육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는 지금의 기독교인들인 것이다.


 그러나 큰 자 육적인 사람 ‘에서’ 뒤에 곧 태어난 작은 자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이는 영적인 작은 자로서 기독교인이라 부르지 않고, 오직 부르신 이의 뜻대로 태어난 영적인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른다. 똑같이 예수 안에서 태어났지만 곧바로 큰 자의 발꿈치를 잡고 뒤따라 나올 작은 자는,  지렁이 같은 ‘야곱’처럼 못 난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작은 자는 처음엔 죄악이 무엇인지 모르고 먹고 마시며 살아왔다. 육으로 판단하기에는 형 에서(기독교인)보다가 신앙생활 한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 보잘 것이 없고 나약하여 형편없다. 그러면서도 권모술수에는 능하여 형에겐 감쪽같이 잠시 숨기고, 육적인 축복(한 그릇 식물)은 저들이 가져가도록 다 주고 다 포기하고 영적인 장자의 축복권인 영생만을 움켜잡게 된 자이다.

 그리고 하나님아버지로부터 택함을 받고 고난과 연단 끝에 육신의 축복 권(식물과 처자식 모두다) 을 포기하고, 영생의 장자 권을 아버지로부터 받아냈다.

 또한 이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을 부인하며 죽기까지 주님을 따라 가서 드디어 주님으로부터 영생을 얻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는 기독교인들 축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육신의 소욕을 벗고 하늘에 거하기 때문에 몸은 비록 땅에 있으나 영은 하늘의 사람이므로 영적인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게 되는 것이다.

 땅 에 것을 포기하고 하늘의 영생 축복을 움켜쥐고 나니, ‘야곱’이 말년에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듯이 이도 이제는 육신의 처자까지도 새롭게 만드셔서 그에게 다시 돌려주셔서  날마다 주님의 은혜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셨다.

 그리고 주님의 뜻대로 영적인 주님의 영적인 자녀를 낳기 위하여 지금 성도들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과정 속에 있다. 훈련하는 과정역시 작은 자 자신이 걸어온 길을 성도들에게 그대로 요구하고 있으며 이들도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땅에 것을 버리고 영생을 취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이방인 중에서 영적인 야곱 같은 자를 택하셔, 고난과 연단으로 훈련을 통과 시킨 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케 한 다음 그를 세워서 표본으로 삼아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가 또다시 자신이 겪은 똑같은 고난으로 영적인 자녀를 낳게 되는데, 바로 이렇게 이를 통하여 똑같이 죄악을 벗고 나온 자가 영적인 ‘야곱’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또한 야곱의 자녀역시 자신과 똑같은 고난을 통하여 자녀를 낳기 때문에 이렇게 나온 자가 또한 진정한 영적인 야곱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영적인 백성이 된 우리 이방인들은, 기독교인들처럼 먼저 태어나서 큰 자로 세움을 받은 종에게 가지 말고,  영적으로 ‘야곱’처럼 작은 자로 세움을 받은 주의 종을 만나서 그에게 가서 듣고, 배우고  같은 고난을 받아 죄악 감당을 한 뒤 작은 자가되어, 그에게 마음을 맞추고 영적인 입 맞추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를 인정하고 사랑하여 영적인 ‘야곱’의 조상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것이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영적인 이스라엘백성의 구원의 완성이다. 바로 이자들이 하나님의 완전한 자녀요, 144,000의 거룩한 주님의 신부요, 거룩한 하나님의 영적인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성령의 뜻을 지켜서 마음속의 죄 사함을 받고 온전한 구원에 이른 자가 단 한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자손들이 율법을 어겨서 모두가 죄인이었듯이 현기독교인들 역시 성령의 법을 어긴 영적인 죄인이 다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성령 받고 종교행위 한 것으로 의에 이르렀다고 하여 여기서 머무르면 안 된다.

 이스라엘백성이 법으로 의에 이르지 못하여 하나님아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듯이, 영적인 백성들도 성령의 뜻을 따라 살지 못하여 성령의 법에 이르지 못한 죄인임을 깨닫고, 앞으로 우리에게 오실 영적인 하나님의 아들 주님, ‘야곱’같이 작은 자를 믿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뜻으로 된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부르신 이의 뜻을 따라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성령의 뜻을 거역하지 아니하고 아들 예수로 말미암아 마음에 있는 죄를 완전히 사함 받아 온전케 된 작은자는, 오직 부르신 이의 뜻대로 말미암아 서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민족들에게 약속의 자녀는 이삭대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이시지만, 영적인 백성 기독교인들에게 오실 분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오시게 될 영적인 주님(아들)을 일컫는 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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