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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더 복되다

작성자요셉

작성일2019-07-11

조회수55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더 복되다

요한복음 20:24-29

 

위 구절은 도마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지 않자 예수께서 직접 고난의 흔적을 보이시고 도마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더 복되다 이야기 하신 구절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위 구절을 상기하며, 우리는 예수를 보지 못하고 믿고 있으니 더 복되다 라며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기독교인들 또한 유대인들과 같이 형식과, 전통, 교리에만 초점을 두지 정작 중요한 자신의 마음은 전혀 살피질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성화와는 거리가 먼 단지 믿음만을 강조하는 신앙이 되었다.

 

기독교인들이 스스로 살아있는 종교라고 기독교인들은 자부하지만, 오늘날 불신자들이 보기엔 그 어떤 종교보다도 부패하고 기득권층들로 가득한 권력을 탐하고, 신의이름을 남용하는 종교로 보고 더욱이 기독교에 대한 시선이 안 좋아지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은 성령으로 구원받았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신은 죄가 올라오지 않는다. 스스로 성화가 되고 있다고, 또는 잘 믿고 있다고 위안을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성화가 되고 있다.” “스스로 죄가 올라오지 않는다.” “은혜가 충만하다.”라는 말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야기는 누구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이 나 스스로 느끼고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만족감이라는 것은 개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소속감(자신이 속한무리에서 인정받는 것), 자신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것에 크게 만족감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무리에서 노력한 것은 어떤 것보다도 큰 가치로 작용한다.

 

유대인들도 그들이 속한 유대민족 이라는 소속에서 율법을 지킨 것은 어떤 것보다도 큰 가치로 작용했다. 그래서 하나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셨음에도 자신의 가치를 내려놓지 못하고 계속 형식과 규율, 전통, 교리에 빠져 예수께서 진정한 진리를 전했음에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를 거부했다. 이를 거부한 이유는 자신들이 쌓아올린 노력과 자신들이 소속되어있는 민족이 지켜온 약 2천년의 가치가 모두 허사가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가치와 교리는 언제나 초월하시는 분이다. 인간의 생각으로 그 가치를 귀하게 생각한다면 이는 벌써부터 하나님과 정 반대의 길로 가는 것이다.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가진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 모든 걸 뒤집어엎고 새롭게 하셨고,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참뜻들을 완성하셨다. 그것은 바로 율법은 죄인을 만드는 것이었고, 죄인은 예수 앞에 나와 자신의 죄의 무게를 알고, 예수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예수를 믿은 유대인들은 극히 일부였고, 그들은 율법을 어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의 증표로 성령을 받아 성령을 의지하며 하나님 뜻대로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이방 기독교인들은 유대인과는 근본이 다르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적도 없고, 하나님 법대로 산적도 없는 민족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아 그제서야 하나님 백성이 된 것이고 성령과 성경이 영적인 율법역할을 하게 되어 하나님 백성으로써 영적인 율법을 지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받아, 마귀지배 아래서 나오게 되었지만, 우리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인은 (죽은 영)나의 자아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외부세계와의 차단, 그리고 율법아래 살아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 그들의 삶의 목표였기 때문에, 예수로부터 하나님을 따라 살지 못하는 것(자범죄)를 해결 받고, 육체와 마음이 깨끗하게 된 상태에서 성령이 주인이 되어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우리 이방인들은 삶의 목표자체가 우리의 삶(우리 자아)에 중점이 맞춰져있기 때문에 우리육체와 마음이 통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성령을 받았을 때는 육체와 마음이 새로운 것을 접해 어느 정도 통제가 됐으나 결국 세상과 연결고리가 깊은 우리 이방인들에게 온전히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은 결국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한테 성령으로 시작했으나 육으로 마치겠느냐 하는 말이 위와 같은 내용에서 한 말이다.(3:1-3)

 

그래서 이방기독교인들에게 유대인과 같은 기회를 주시기 위해 예수께서 부활하여 영으로 오셔서 사도바울에게 오신 것처럼, 인격적으로 우리에게도 오셨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자아(죽은 영)를 몰아내고 우리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를 통제하길 원하신다. 그래서 그 목적은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만 있으실 뿐이다.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예수께서 인격적으로, 사람에게 오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죽은 영(우리 자아)을 몰아내고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시려 하신다. 그래야 우리를 통제하시고,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 수있게 하시기 때문이다. 성경의 여러 사도들이 성령을 받아 사역을 했다. 그러나 전부 예수께서 하신말씀을 위주로 사역하였지만, 사도바울은 다른 사도들과 달리 삶과 행동 여러 가지부분에서 직접 체험한 것을 토대로 사역을 하였다. 그것은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사도바울에게 오셨고 그를 인격적으로 통제하셨기 때문에 더 구구절절히 설명하고 사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도바울에게 특별히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오신이유는 그를 이방인에게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가시고 어떻게 사역하실지 예표로 보여주기 위함이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오늘날 기독교는 오랜 세월동안 성령으로 구원받았다고 하며, 전통과 교리를 만들어내어 형식만 갖추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정작 사람마음속에 곤고함은 해결할 수 없고, 그저 믿음만 강조하고 아멘만 요구할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땅에 오셔 모든 걸 새롭게 하셨듯이 전통과 교리가 아닌 인간들 마음에 문제를 가지고 사역하실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보여 지는 교리와 형식이 없다. 단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죄를 가지고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알게 하신다. 그리고 내 죄를 낱낱이 밝혀 나의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셔 나를 통제하는 단하나의 진리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 죄를 낱낱이 밝히기 위해서는 내가 누군지 알아야 하는데, 인간의 관점과, 시선으로는 결코 알 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이 영(말씀이 씨앗)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인정하고, 시인하는 자의 마음에 겨자씨로 보이지 않게 오신다.

 

획일화된 교리와 전통에 따라 아무런 대가를 치루는 것 없이 말로만 믿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믿음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진정한 믿음은 그리스도 없이 오랜 세월 지속해온 전통과 교리, 강제적인 아멘으로는 이룰 수 없다.

 

진정한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고 내 안의 겨자씨가 자라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알고, 내가 그리스도로 변화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같이 못나고, 악한 자가 그리스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확신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는 것이며, 그것을 내 안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어나갈 때 진정한 믿음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화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 뜻(성령의뜻)대로 온전히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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