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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인도하는 좁은 문

작성자요셉

작성일2019-11-27

조회수249

마태복음 7:13-14

그리스도가 인도하는 좁은 문

 

위 구절에서 나오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이 말은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세상과 분리해야 된다는 뜻에서 자주 이야기 한다. “예수님을 쫓아 좁은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세상은 넓은 문입니다.” 라고 말이다. 그러나 세상과 분리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세상과 분리가 된다고해서 내가 정말 세상과 등 돌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속에 성령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세상과 짝하게 되고, 성령의 말씀을 따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단순히 예수 믿고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은 말 그대로 예수께서 하신 말씀대로 세상 법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 법 즉, 신약성경에 나와 있는 예수의 말씀과 제자들의 말씀, 사도바울의 말들을 듣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끝임없이 육체가 주저 앉지 못하게끔 금식과 기도로 정욕을 비워내야 겨우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사실과 문제들은 간과한 체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서 다 해결되니까, 우리는 괜찮아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니까 다 죄 짓고 회계하고,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면 돼!”라고 너무나도 손쉽게 자기의 죄악을 털어버린다. 이러한 행동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는커녕 오히려 넓은 문에서 떵떵거리며 좁은 문인 척하는 것과 다름없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온전한 믿음도 아니고, 온전한 신앙생활도 아니다. 이렇게 자신의 문제를 정당화해서는 결코 성령을 따라 살 수도 없고,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내놓을 수도 없다. 그 결과 끝에는 오직 심판과 지옥형벌만 있을 뿐이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 해결할 방법이 없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면 오직 기도하라고 이야기 할뿐 그 이상에 해답은 내놓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 한계를 느끼고 가나안 교인이 되거나 다시 불신자로 돌아간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 백성이었던 유대인들과 달리 율법이 없었기 때문에, 어떠한 제제도 받지 않고 살았다. 그 결과 우리 마음은 우리의 자유의지와 생존본능에 의해 살아간다. 즉, 하나님의 법과 보호가 없으니 이방인들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해 살아가야만 했고, 서로의 유익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법을 만들었으니, 이방인들의 세계는 온통 자기 유익과 생존에 집중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계관속에서 산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다고 해도 그 마음속 주인은 나 자신(죽은 영)’인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금식을 하고 기도를 해도 결국 내 주인의 뜻대로 내 유익과 생존을 위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기독교인들은 유대인과 자신들을 동일시해서 성령을 받은 것으로 그것으로 구원이 완성됐다고 착각한다. 정작 성령을 따라 살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러한 확신을 주는 이유는 바로 나의 주인(죽은 영)이, 나를 속이고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 유대인들은 혈통에서부터 하나님의 관리를 받았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 이후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율법과 함께 백성으로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았다. 보살핌이라는 것은 외부 세계와 분리를 통해서 외부 문화가 침범할 수 없도록 그들에게 지키고 따라 살아야할 규범을 주신 것이다. 그것이 613가지나 되는 유대인들의 율법이다. 그런데 단순히 이 율법이 지켜야할 규범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로 그들에게 육체에 율법을 주시고 그들이 율법을 지켜 그들의 마음()’을 보호 하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도 시간이지나 강대국들의 침입과 지배로 문화가 섞이어, 생존하고자 율법을 어기게 되자 그들 육체에 병이 들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어두운 시기에 예수께서 오셔서 그들의 율법을 어긴 죄를 사하시고 동시에 그들의 마음도 깨끗케 하셨다. 그리고 그 예수를 끝가지 마음으로 믿고 따른 자들은 피 흘림 이후 성령이 오시게 되자, 그들이 성령을 따라 온전히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 이방인들은 하나님 법의 보호가 없었기에 마음이 온전하지 않아 결코 성령을 따라 살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방인들에게도 기회를 주셨다. 바로 성령이 율법역할을 하고, 그 율법을 완성할 자로써 당신의 아들을 또다시 보내주신 것이다. 그분이 바로 부활하여 으로 오신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라는 뜻은 중보자, 기름부은 자, 선택받은 자라는 뜻이다. 고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보해주시는 그리스도가 사람을 통해 영으로 오셔서 우리를 중보 해주셔야지 만, 우리가 온전히 성령을 따라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은 성령처럼 한 번에 단회적으로 오셔서 뜨겁게 역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은 본디 하늘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죄 없는 피 값으로 마귀 발아래서 한 번에 나오게 되었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은 땅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육신과 항상 하나가 되어있다. 그래서 과거 유대인들은 그 육신에 율법을 주어 (마음)’이 멋대로 육신을 따라 가지 못하게 제어한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그렇지 못해 항상 육신과 혼(마음)이 융화가 되어있다.

 

때문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8:5-11)”이란 말을 사도바울이 한 것이다. 이방인들은 그리스도를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고 끝없이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그런데 스스로는 결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어 내 자신과 싸울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아주 작은 겨자씨로 우리 마음밭에 겨자씨로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언젠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리스도의 씨앗을 유산시켜버리기 때문이다. 마치 여자와 남자가 만나 아이가 자궁에 착상되어 10달을 거쳐 뱃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영도 마찬가지다. 먼저 그리스도 영을 받은 자로부터 끝없이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의지해 내 자아, 내 생각, 내 자유의지들이 체험적인 한계를 느끼고, 내 수준을 깨달아야지 나의 마음속에 내 의지들을 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이방인들은 참 마음이 복잡 미묘하게도 말씀을 듣는다고 해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말씀만 들으면, 그 표면적인 말과 내 생각이 결합되어 내 뜻대로 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내마음속에 겨자씨처럼 그리스도를 모셨다고 해도 좁은 길로 가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말씀과 함께 인격을 받아 들여야 한다. ‘인격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특징,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드러낸다. 인격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 사람을 본받고 닮아간다는 것이다.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좁은 길은 내가 말로만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인격을 받아들여 그를 좋아하고, 닮는 것이다.

 

그래야지 내 것이 싫어지고, 내 옛 구습을 벗을 수 있으며, 새로운 그리스도의 인격이 나의 새로운 자아가 되어 나를 이끌어간다. 그리고 그제야 성령의 뜻대로 살며, 이방인들의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넓은 길은 내 마음대로, 말씀도 내 뜻대로 변형시키면서 내 의지대로 가기에 쉽고 편하지만, 그 끝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닮아 그 인격을 닮고자 하면, 내 인격 때문에 끝없이 싸우고, 구하고 두드려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하지만 그 끝은 무한대이며, 언제나 여유와 평안이 가득한 삶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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