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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는 은혜의 가치를 모릅니다.

작성자호세아

작성일2019-01-30

조회수101

성령으로는 은혜의 가치를 모릅니다.

마태복음 18 : 21 - 35


 본문 앞에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말씀 도중에 제자 베드로가 나와서 이 땅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 잘못에 대한 용서의 횟수를 묻습니다.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은 490번이라도 용서하라고 얘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천국은...’ 하시면서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십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 일곱번이란 숫자도 많은 것으로 이야기를 했었는데, 예수님은 인간 사이의 용서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하찮다는 것을 임금과 종의 관계를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종이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에 빚을 탕감 받았는데, 오늘날 금액으로 따지면 약 3조억에 이르는 금액입니다. 그것을 용서받고 나오는 길에 자신과 같은 동료를 만나서 백 데나리온, 오늘날 5백만원 정도 되는 금액을 갚을 것을 추궁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엄청난 빚을 탕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동료에게는 조금한 금액 때문에 용서 없이 옥에 가두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한 줄로 정리하면 자신은 엄청난 금액을 용서 받았으면서 남에게는 조금한 것도 용서하지 못하는 잘못된 행동입니다. 임금과 종의 관계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받은 것은 일만 달란트와 같이 평생 갚고 또 다시 태어나서 갚아도 모자란 은혜입니다. 그리고 탕감 받은 종과 동관과의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인간 사이에서는 백 데나리온이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에 빚에 비교를 하면 상대적으로 너무나 하찮은 금액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누구든지 종의 잘못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을 합니다. 하지만 세상 어떤 사람도 나는 하나님께 많은 탕감(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빌려 준 돈을 받지 않겠다.” 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성경을 보면서 악한자를 욕 하지만 내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 합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라고 자부하며 오늘날 까지 율법을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에 대한 배려, 용서는 할 수 없었습니다. 누가복음1025절에 예수님이 율법사에게 진정한 이웃을 물었을 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율법사도 이론으로는 진정한 이웃이 사마리아 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율법의 한계 때문에 자신도 진정한 이웃이 못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뜻은 유대인들도 율법은 은혜의 법이 아니다. 율법이 온전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역할은 빚()을 지지 않기 위한 울타리()일 뿐, 빚을 졌을 때 탕감해주는 수단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310절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은혜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진정한 죄에 대한 탕감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마음에 죄를 해결 받고 둘째로 성령을 통해서 영의 죄를 해결 받아야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의 은혜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두가지 절차를 밟는 것이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고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보내 주신 목적 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과 다르게 두 부류의 유대인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한 부류는 율법을 편법으로 지키면서 의로워져 있는 사람이고 또 한 부류는 율법에 대한 감각이 없어져서 죄의 대가로 육신에 병을 얻어 사람입니다. 한 부류는 스스로 의로워져서 예수그리스도가 필요 없었고 한 부류는 죄를 먹고 마시면서 죄 대한 감각이 없어져서 메시아에 대한 필요성을 잃어버린 자들 이였습니다.


 그래도 예수그리스도가 유대 땅에 왔을 때 그나마 육신의 죄를 가지고 있던 부류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고침을 받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따른 사람은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 말씀을 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유대인과 다르게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일만 달란트 탕감을 받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만약 성령이 기독교인들에게 일만 달라트의 탕감 이었다면, 진작에 전 세계 모든 기독교인들이 성화가 되어서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의 아들에 희생과 사랑이 나타났어야 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 입에서도 기독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참 진리라는 말이 나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싫어하고 욕하고 무시하는 것을 보았을 때,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은 영적인 율법역할 밖에는 할 수 없다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기독교인에게도 온전한 것(메시아)이 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은 죄를 알게 해주시는 법과 같습니다. 율법의 요구가 죄 없는 예수를 기다리게 하는 것처럼, 성령의 요구하심은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성령을 따라 살면서 스스로 죄에서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즐거움과 육신의 정욕을 쫒아 갈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보면서 죄에서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을 느껴야지만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왔을 때는 세상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쫒을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세상 기독교인 누구도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아본 사람은 없습니다. 영으로 오신 그리스를 마음에 모신 분들이 도적과 같이 나타나서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삶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내실 것입니다.

 

 성령의 이적과 기사는 순간을 보고 판단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잠시 잠깐 나타나는 현상으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24시간 삶을 보면서 당신이 따라 갈 수 없는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삶을 보고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몇일, 몇달을 당신의 삶과 비교를 해서 나의 삶은 모두 잘 못 되었고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삶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신의 모든 삶을 버리고 쫒아야 할 것 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쫒게 되면 그의 마음에도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임재 하여서 본문의 말씀처럼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은혜를 알고 부모, 형제, 이웃을 용서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들에게 자신에 마음속에 모신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전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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