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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역할

작성자호세아

작성일2019-07-07

조회수54

본문 사도행전16장 6-10

제목 성령과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역할


유대인들은 일평생을 이방인들과 상종도하지도 않았고 오로지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조상들의 유전을 따라서 살았다. 조상들의 유전이라 함은 율법을 기본 바탕에 둔 생활의 제약들 이었다. 이방인들의 시선으로는 율법은 인간 삶에 있어서 전혀 필요하지 않은 관습이고 효율적이지 않은 행위일 뿐이다. 그래서 유대인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신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유대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죽은 영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보호를 받아왔던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 땅에 자기 백성을 위해서 오신 것이다(1:11). 예수님은 율법의 지배를 받고 있는 유대인들, 다시 말해서 마음속에 죽은 영이 존재 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오신 것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드렸을 때에는 율법을 범해서 외부로부터 들어온 죽은 영이 쫓겨나면서 마음의 죄를 사함 받고 그 후에 예수의 피로 성령이 그들의 영을 지배하게 되면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율법의 지배 아래서 살았을 때 이방신들과 타협 없이 살았 듯이 성령의 지배 아래서 세상과 타협 없이 강한 믿음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로마인들에 손을 빌어서 엄청난 박해를 감행했어도 두렵고 고통스러운 순교를 그리스도인으로써 영광스러운 일로 받아 드리고 끝까지 예수를 부인하지 않고 죽어갔던 것이다.

 

유대인이 성령을 받게 되면 성령은 인간의 영을 지배하게 된다. 성령은 법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지 못하게 기준이 되어 주신다. 그래서 법의 기준인 성령은 오직 옳은 것과 옳지 못한 것에 대해서만 심판만 하실 뿐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꺽어서 죄를 차단해 주시는 역할을 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유대인들은 구원을 받고서도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육신의 걱정으로 넘어져서 영혼은 구원을 받되 육신으로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위에 글에서 언급한 유대인, 율법, 예수, 성령의 개념이 이천년이 지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단순히 교회를 다녀서, 신학교를 다닌다고 해서, 성경을 읽는 다고해서 알 수 있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이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마음에 죽은 영이 떠나가고 그리스도의 씨앗이 성장하면서 체험으로 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이방인의 상황을 살펴보면 유대인과 가장 큰 차이점이 되는 율법이 없이 살았다는 것이다. 율법의 보호가 없다보니 이방인은 태어나면서부터 마음속에 죽은 영을 가지고 일평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남을 위한 삶, 신을 위한 삶이라는 것은 없고 오로지 자기 자신(죽은 영)을 위한 삶이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살아갈 뿐이다. 마음에 죽은 영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리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감화, 감동을 받는다고 하여도 죽은 영의 지시를 이겨낼 수는 없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이라는 것은 성경에 쓰여 있기에 기독교인 모두가 머리로는 알고 있다(5:22). 기독교 인들이 이 말씀을 가지고 자신들이 받은 성령과 동일시 하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한 목회자들이 돈, 이성, 명예를 이겨내지 못하고 타락하게 되어서 세상의 법정에 서는 것을 보게 된다. 성령에 충만한 목회자의 모습이 그렇다면 그 밑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도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만 보더라도 기독교인들이 받은 성령으로만 믿음의 완성이고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성령의 열매는 마음에 죽은 영이 없는 유대인들이 성령을 받았을 때를 두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만이 온전한 구원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은 유대인들과 같이 법으로 존재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마음에 죽은 영이 존재하기 때문에 처음 성령을 받게 되면, 죽은 영은 마음속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고 잠시 활동을 중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육신의 소욕을 이길 수 없게 되고 죽은 영이 자신의 욕심을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요즘 대형교회에서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하는 목회자들의 모습도 마음의 죽은 영의 욕심이 성령의 뜻을 어기고 발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다. 교회 헌법에도 아들에게 세습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고, 또 성령이 그들에게 하면 안 된다는 감동을 반드시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은 영의 소욕은 성령의 뜻을 거스르고 자신의 목적을 반드시 이룰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사도 바울이 아들이 있어서, 아들에게 자신의 교회를 세습하는 상황을 겪게 된다면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내가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고자 했으나 성령께서 하지 말라고 감동을 주었고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아서 아들에게 세습하지 못했다. 라고 성경에 기록했을 것이다.

 

그럼, 기독교인들은 성령으로는 육신의 정욕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까? 암묵적으로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다만 현제로써 성령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솔직하게 성령으로써는 부족하다는 것을 시인하게 되면, 자신이 육신의 소욕이 그대로 존재해서 활동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불신자와 구분이 없어지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기독교인은 자신이 욕신의 소욕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시인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이제 기독교인들에게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인격적으로 사람의 모습을 입고 오실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정욕을 숨기기에 급급하지만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심, 음란, 정욕을 가지고 있다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죄악으로 빠지는 자유의지를 꺽어서 정욕을 성사시키는 죽은 영의 행위를 차단해 주는 것을 보여 줄 것이며 인간의 의지로써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되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육신은 죄악으로 한 없이 부족하지만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육신의 정욕을 이기는 삶을 보여 줄 것이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의 모습과 같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사람들이 선의 기준이 되어서 이방인들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말들은 어눌하고 부족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행위는 그리스도가 이끌어 가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그들을 삶을 좇거나 신앙을 좇아서 살아가면 그들의 마음속에도 자신도 모르게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씨앗으로 자리 잡아서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도적같이 오시는 그리스도가 마지막 세대에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는 사역을 펼쳐 나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령과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정리하자면, 성령은 인간에게 법으로 오셔서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구별해 주실 뿐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발동하여서 금식과 기도로 육신의 소욕을 떨침으로 성령의 감화 감동을 잘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을 거부해서 죄를 짓는 것은 차단해 주시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은 육신의 정욕으로 성령의 감동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도와주신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잘못된 판단을 하려고 할 때 인간이 이해 할 수 있는 논리로 죄를 짓지 못하게 하시고 혹은, 논리로 이해시킬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는 강권적으로 마음과 육체를 움직여서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 기근, 위험에서 건져내 주시고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내 안의 정욕과 외부의 위험으로 부터 이길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이다(로마서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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