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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그리스도영의 다른점(2)

작성자사라

작성일2019-07-05

조회수43

성령과 그리스도영의 다른 점(2)

사도행전16:6-10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16:6-10).

 

유대인들과 예수의 제자들은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사역을 하고 있지만 유일 무일하게 사도바울만 성령과 예수의 영또는 하나님 영과 그리스도 영(8:9) 두 분을 다 말하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자신들도 마음속에 '예수의 영'이 계시는 줄 알고 '성령'과 '그리스도의 영'을 하나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성령은 아버지의 영으로서(10:20)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시지 않는다. 만일 성령께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면 인간들은 죄 때문에 다 죽게 된다. 그래서 성령은 인간의 영위에 머물면서 각 사람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면서,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감화 감동으로 도와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죄 때문에 성령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 중보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시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율법아래서 살았다. 바울이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는 믿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의 영'이 사도바울에게 빛으로 들어가서 바울이 빛으로 예수를 만난 것이다. 따라서 이때 바울도 자범죄가 동시에 사해졌다. 그리고 난후 아나니아 제자에게 안수를 받고 성령이 임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예수의 영'이 임한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 저들의 죄만 없이하시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다. 하여 성령이 마음까지 통과 할 수 있었으므로 저들을 붙잡고 사역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도바울에게는 성령도 임하고 예수의 영도 임하였다. 이 뜻은 무엇일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통하여 이방인에게 앞으로 그리스도께서 하실 사역들을 미리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말한 성령예수의 영에 대하여 알아보자. “성령께서는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마음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나머지 아시아 근방에 있는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였다고 하였다.” 라고 하였다. 여기서 사도바울은 '성령'께서 하시는 것과 '예수의 영'이 하는 것을 구별하여 따로 기록하였다. 이 내용은 사도바울처럼 마음속에 그리스도 영을 모시지 않고 함께 체험하고 살아보지 않는 이상 기독교인들로서는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도 알지 못하고 성령과 예수의 영을 하나로 볼 수밖에 없다.

 

이 뜻은 사도바울이 아시아로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성령'께서 먼저 제지하셨다. 그러나  바울의 마음은 아시아로 가고 싶었다. 그러자 '예수의 영'이 이를 강권적으로 막으신 것이다. '성령'께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따르고 살아야할 법과 기준을 주시고 감화 감동만 주시지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강제로 꺽어서 통제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 때문에 성령을 소멸하기 쉽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인간이 하나님께 범죄 하지 못하도록 마음속에서 강권적으로 막으시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어떤 자가 여자를 보고 음욕이 불일 듯 일어나서 이기지 못하고 범죄현장으로 가려고 할 때 성령께서 법으로 1차적으로 막으신다. 그래서 잠시 멈칫하고 돌이켜 보지만 잠시 참을 뿐, 하고 싶은 육신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마음속에 남아있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을 지배하시기 때문에 욕망을 아예 꺾어 버리고 범죄 현장으로 가지 못하도록 자신의 의지를 차단 시켜버린다. 다른 말로 직역하면 성령께서는 아버지 역할처럼 선포적인 부분을 하신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엄마 같은 마음으로 고주알 미주알 깨닫게 하시고 말씀하신다. 이렇듯이 사도바울 마음속에서 예수의 영이 하시는것처럼, 앞으로 이방인들의 마지막 때에 이루어져야 할 사역또한, '성령'도 있고 또한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함게 있어야 온전한 구원이 된다는 것을 미리알려 주시려고, '성령'께서도 역사하시고 '예수의 영'도 사도바울의 마음을 사로잡고 쓰신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성령을 받고 사역을 함에 있어서도 사도바울과 분쟁과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 그 좋은 예가 게바(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다가 유대인들을 보자 자리를 피했다는 소리를 듣고, 바울이 게바를 책망한 내용이 나온다(2:11-16). 그리고 아볼로와의 사이에서도 사람들이 서로 분쟁하여 나뉘는 것을 본다(고전3:1-9). 성령은 감화 감동으로 일시적으로 역사 하시지 인간의 마음을  일일이 감찰하며 섬세하게 일하지 않는다. 또한 자유의지를 통제해주지 않기 때문에, 사도바울 속에서 역사하시는 '예수의 영'과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예수는 죄인들을 구하러 왔기 때문에 인간들의 심정을 잘 알아서 수용하고 포용하고 또한 죄에 대하여는 죄를 짓지 못하도록 통제해주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하는 것과 부딪힌 것이다.

 

 바울이 살아서 처음 복음이 전해졌던 시기에는, 비록 율법으로 보호를 받지 못한 이방인들 이라할 지라도 지금처럼 성령을 거역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울 속에 '예수의 영'이 계셨기 때문에 이방인들 마음속에 비록 예수의 영이 없이 성령만 받아서 신앙생활 했어도 바울 보기를 하나님 보듯이 하고 모든 것을 믿고 신뢰하며 좋아한 자들은 사도바울을 끝까지 믿고 잘 따랐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의 믿음을 따라온 자들은 바울 속에든 예수께서 이들의 죄를 사해주신 것이다. 하여 이들은 성령 충만을 계속 받을 수가 있었고 육체의 소욕도 제어 할 수 있어서 성령을 따라 살수가 있어 구원이 된다.

 

그러나 자신들도 성령을 받고 은사가 나타나자 교만해진 자들이 자신을 사도바울처럼 동등히 여기고 사도바울을 싫어하는 자들이 있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는 큰 테두리에서 역사하고 감화 감동을 줘서 순종치 않으면 다음에는 소멸되어 역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시기 때문에 그자리에 가만히 계시지 자라나지 않는다. 따라서 잘못한 것에 대하여 세밀하게 꼬치꼬치 따져 묻지 않으신다. 성령은 감화 감동으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소멸하면 성령은 소멸을 당한다.그래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도 성령으로 시작 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 라고 책망 한 것이다(갈3:3).

 

그러나 '예수의 영'은 나의 '새 주인'으로 오셨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신다. 그래서  사도바울 마음속에 있는 '예수의 영'이 일거 수 일투 족을 면밀히 살펴서 허튼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으신 것이다. 하여 마음속에 '예수의 영'이 없이 '성령'으로만 사역 하던 자들이 사도바울을 싫어하고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바울 속에 계신 예수께서 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죄를 사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피 때문에 아담이 범죄한 '원죄'만 사함 받은 경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바울도 죽고 그때 당시 바울을 따르던 자들 역시 핍박받아 죽고 난 후에 이방인들에게 전해지는 복음은 마음속에 예수가 빠진 성령의 법으로만 남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이방인을 예 표로한 모형이었기 때문에 살짝 맛만 보여주고 단회적인 사건으로 끝이 난 것이다. 그래서 이때는 사도바울에게만' 예수의 영'이 있었던 것이지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심은 앞으로 이방인들에게도 장차 오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영으로 다시 보내셔서, 성령을 거역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과제로 남겨 두신 것이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율법아래 가뒀다가 율법을 범한 죄에서 속량해 주셨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을 통해 앞으로 이방 기독교인들 앞에 되어질 사역을 바울이  한 것처럼 마지막때에 이방인들에게 이루어져야 할 사실적인 사건을 보여주어 미리 통지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지 이방인들에게 확실한 근거가되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역을 하실때 팩트가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성령의뜻을 따라서 살지 못하고 범죄 현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을 붙잡아 줄수있는 그리스도 영이 마음속에 없다는 증거이다. 성령께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오실수가 없기 때문에 항상 감화 감동으로 주신다. 하여 항상 성령 충만이 지속되어 성령에게 붙들려있어야지 감화 감동이 떠나지 않고 유지가 되어 성령께서 요구하시는 뜻 대로 따라서 살수가 있다. 그러나 감화 감동은 끝까지 유지가 되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 그 순간을 붙잡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소멸되어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성령 충만 받아서 육체의 소욕을 제어하고 감화 감동받아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신앙에서 떨어지지 않고 생활한다는 것은 기독교인들로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죄를 짓게 하는 죽은 영’(옛 자아)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제대로 따라 살수 없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것으로 구원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따라서 성령을 따라 살수 없는 그것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해주시고 '죽은 영'을 몰아내고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들어가시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죄인으로서 하나님(성령) 앞에 나아 갈수 없는 그것을,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죄를 중보 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성령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 갈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성령을 따라서 살려고 했지만 성령께서는 강권적으로 우리의 죄악을 제어하지도 않고 일일이 통제해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성령께서 감화 감동을 주셨을지라도 1차 적에서 무시를 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 갈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성령을 거역하고 지은 자범죄죽은영을 몰아내 주시고 우리 마음속에 '새 주인'으로 오시게 되면, 나로서는 죄 때문에 할 수가 없었던 그것을, 2차원적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와 중보와  말미암아 성령 아버지의 뜻대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앞에서 인격적으로 두손들고 항복을 하게 되면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나의 '새 주인'이 되어 주신다. 그리고 내가 육신의 소욕에 져서 세상의 정욕을 쫓아서 가려고 하면 강권적으로 자유의지를 제한 하시며 막으시고 말씀하신다. "너! 지금 뭐하고 있느냐고!" 그리고 마음을 사로잡아 괴롭게 하시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거역할 수가 없고 순종할 수밖에 없다. 또한 어떤 때는 어머니처럼 조근조근 말씀하시며 반드시 행동을 요구하신다. 그래야지 내안에 겨자씨로 들어오신 그리스도께서 자랄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게되면 그분은 인격을 입고 오셨기때문에 자라나지 않고 그대로 있게 된다.


그러나 순종을 잘하고 당신을 인정해 드리면, 처음 마음에 들어오실 때는 겨자씨로 들어오셨지만 점점 자라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러, 온전하게 나를 사로잡고 이끌어 가실 수가 있다. 이는 씨뿌리는 비유와 똑같다(마13:18-23). 그리고 자라나는 과정에서 설사 죄를 범하였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앞에서 항복을 했기 때문에, 마치 우리의 죄를  아세셀양에게 돌린 것 처럼 예수께로 턴이 되었기 때문에, 나의 죄악을 마귀에게 청구 시키지 않으시고 자신이 감당해 주신다. 이로서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말하던 성화가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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