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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그리스도 영의 다른점(1)

작성자사라

작성일2019-07-05

조회수68

성령과 그리스도영의 다른 점(1)

사도행전2:1-47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승천 하신 후 50일후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던 자들에게 성령이 임한 것이다. 본문에 보면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들 중에서도 예수의 소문을 듣고 믿겠다고 하는 무리에게도 똑같이 성령이 임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어 예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을 받았다. 그리고 은사를 받아서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여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만들어졌다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는 즉시 성령을 따라서 살아야한다. 그래야지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가 있다. 이방인들도 처음에 예수의 복음이 전해졌을 때는 성령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틈만 나면 교회 나가서 열심히 기도하였다. 그러자 성령 충만이 되어 많은 성령의 능력과 은사가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성령의 불같은 역사로 말미암아 예수피의 복음이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어 믿는 자의수가 20만 명에 달하게 되었다.

 

여기서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처럼 성령의 뜻대로 살아야 구원이 완성된다. 그러나 처음 성령 받을 때만 뜨겁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령 충만이 사라지고 점점 소멸되어 끝에 가서는 육신의 소욕만 남게 되어 타락으로 갔다. 따라서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개독교 라는 소리를 들으며 하나님의 이름이 바닥으로 떨어져서 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개중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자 들이 남아서 성령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다시 예전에 마가의 다락방에 뜨겁게 임하였던 때를 그리워하며 다시 돌아가 보려고 금식하고 기도하며 애를 써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였던 성령체험을 다시 해보고 싶어 하지만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뜻(영적인 율법)대로 따라 살지 못함을, 유대인들이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하였던 것처럼 그것을 거울삼아 죄를 깨닫고 낮추고 있어야한다. 그래야지 성령을 거역하여 생긴 죄에 대한 부분을 해결해 주실 분,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이방인 앞에 도적같이 오셨을 때 그를 알아보고 믿기가 쉬울 것이다. 그런데 성령 받은 것만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줄 잘못알고 있으면서 마음이 교만해져 있다. 유대인들은 율법(자범죄)을 먼저 사함 받아 마음이 깨끗하게 되었기 때문에 성령을 받게 되면 성령을 끝까지 따라 살기가 쉬워서 구원으로 이루어질 수가 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이방인들이었기 때문에 율법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적이 없다. 하여  태어나면서부터 죄악의 씨앗을 가지고 죄악과 함께 먹고 자라왔기 때문에 죽은 영이 방해를 하고 있어서 성령을 따라서 사는 것이 쉽지가 않다.

 

따라서 이방 기독인들이 받은 성령으로서는 온전한 죄 사함이 없기 때문에 구원에 이를 수가 없고 다만 죄를 깨닫게 할 '영적인 율법'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이렇게 하신 것은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먹고 마시던 자들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고 나오는데 도움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또한 죄악이 더욱 죄가 되게 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아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하신 하나님의 뜻이다(5:20-21). 마치 이스라엘백성들처럼 말이다.

 

유대인들과 열두 제자들에게도 '예수의 영'은 들어가지 않고 모두가 성령의 감화 감동과 역사하심으로 사역을 하였다. 이들은 예수를 눈으로 직접 보고 믿었기 때문에 성령께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해 주고 있기 때문에 성령만 잘 따라 살면 구원이 완성된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게만 유일 무일하게 마음속에 예수의 영이 빛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유대인인 사도바울에게 성령만 주셔도 구원이 이루어질 터인데, 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허락 하셨을까? 이는 이방인들의 사도로 쓰기 위함이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자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령을 '법'으로 먼저주신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따라서 살지 못한 죄인이 되었을 때, 사도바울에게 영()으로 들어가셨던 예수께서 기독교인 앞에 그리스도의 영이 되어 사람의 몸을 통해 인격을 입고 다시 오시겠다는 것을 미리 예지 해 주신 것이다.

 

사도바울이 전한 말씀 중에서 성령이라고도 하고 예수의 영이라고도 표현을 했다(16:6-16). 또한 하나님의 영이라고도 하고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하였다(8:9). 바로 이런 부분을 보고 기독교인들이 자신들도 성령을 받았으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자신들 마음속에 있는 줄 알고 있지만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없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도 아니고 사도바울도 아닌 이방인들이다. 사도바울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성령만 받아도 구원이 된다. 그러나 예수의 영까지 받은 이유는 훗날 이방인들이 성령의 법을어긴 죄인이 되었을 때, 사도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자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 질것을 미리 알게 하시려고 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따라서 마지막때에 이방인들의 사역이 이루어 질것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 사도바울에게 '예수의 영'이 들어간 상태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다.

 

예수의 열두 제자들을 보면 모두가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예수는 하나님 아들로서 죄가 없다는 것을 증거하고, 성령의 능력과 표적을 나타내어 모두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도록 하는 사역을 하였다. 그래서 저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고 믿기만 하면 모든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성령을 받아 성령의 뜻대로 살게 되어 구원이 완성이 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 금식하고 기도하며 육체를 제어해 보지만 잠시뿐, 세상에서 밀려오는 문화와 문명, 또한 육체적 쾌락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된다. 또한 마가의 다락방에서 일어났던 성령 충만함을 다시 받아보고 싶어도 안 되는 이유가 다 이 때문이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받은 성령으로는 구원이 될 수가 없고 또한 성령을 그리스도 영이라고 동일하게 여기고 있지만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 각각 어떻게 다른지를 명확하게 구분지어 알아보자.

 

이를 쉽게 알아보기 위해 잠시 구약으로 넘어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가기위해 거치는 절차가 있었다. 맨 처음은 마당에는 물두멍과 번 제단이 있다. 다음에는 성소가 있고 그 안에는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상징하는 떡 상과 금 촛대와 향로가 있다. 그리고 지성소가 있는데 이곳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법궤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맛나를 담은 항아리가 있다. 먼저 마당에서 깨끗하게 씻을 것은 씻고 태울 것은 태운다. (이것은 인간이 육체로 할 수 있는 것을 감당하는 것을 뜻한다.) 다음은 성소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상징하는 금 촛대와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를 상징하는(향로) 자리이다. (이 자리는 성도들이 갖추어야할 마음을 뜻한다.) 따라서 일반 백성들은 들어가지 못하고 제사장만 들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성소법궤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법과 엄위"를 뜻한다. 또한 맛나담은 항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이곳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자리이다). 그리고 대 제사장이 양의 피를 가지고 일년 일차씩 백성들의 죄를 사해 주시기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장소이다. 이곳은 아무리 대 제사장일지라도 죄가 있으면 죽임을 당한다. 하여 대 제사장도 자신의 죄를 먼저 씻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몸소 자신의 피를 흘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가로막힌 담과 휘장을 찢으시고 단번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지성소에 들어가신 것이다. 이것으로서 인간들이 지은 죄를 예수께서 다 감당하셨으므로 율법이 요구하는 요구조건을 들어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죄 아래 갇혀있던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율법을 어긴 죄를 사함 받음과 동시에 마음속까지 깨끗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으로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 갈수 없었던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은혜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성령을 받고 따라서 살게 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본질의 영이시기 때문에 육체를 입으신 적이 없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죄 때문에 죽게 된다(벧세메스 법궤사건 참조 삼상6:19).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오실수가 없다. 그래서 죄악 된 마음을 하나님과 멀어진 관계를 회복해 주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중보자'로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죄인과 함께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아들만이 인격을 입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오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서 의  본질로서는 하나님과 아들이 하나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하시는 일과 죄에 대한 구원에 관한 문제는 각각 자리가 다르다. 하나님은 본질로서 우주만물과 세상만물을 조성하시고 지배하신다. 그리고 성령은 아버지의 영으로서 예수피로 구원받은 사람에게 임하여 각자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신앙생활하는데 도움을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오직 인간들의 죄악된 마음(성소, 혼적인 요소)을 담당 하신다. 따라서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들을 참견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뜻에 맡기고 자신은 인간들의 죄악만 감당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예수를 살리시는 것도 아버지께서 하시고 이방인들을 구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보내시는 것도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것이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따를 뿐이다. 그 좋은예가 이스라엘백성들이 로마압제에 있을때에 그들을 관여하지 않고 오직 죄인들을 구하는 일만 하고 가셨다.  예나 지금이나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에 항상 사람의 몸을 쓰셔서 죄인들과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같은 자리에다가 동격으로 놓고 보면,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구원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성령은 죄가 없는 거룩한 하나님의 영으로서 죄가 있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오실수가 없다.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면 인간은 죄 때문에 즉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피로 구원받은 인간의 영 위에 임하시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을 하자면. 인간이 마귀의 영역 아래있다가 하나님의 영역 아래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이후부터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인간 곁으로 왔다가 갔다가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성령)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계신다. 다만 인간들이 성령을 거역하고 범죄 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거리를 인간 스스로 멀어지게 한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성령 충만을 받아 멀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하여 육체를 제어하면 조금은 하나님과 가까워진 것 같아서 구원을 받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또다시 밀려드는 세상의 유혹과 죽은영(옛 자아)의 방해로 인하여 도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어, 또다시 성령 충만은 없어지고 육체의 소욕만 남게 되는 폐단을, 기독교인들이 해결 받지 못하고 지금 무거운 짐들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죄 때문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즉 성령 하나님이 계신 곳에 가까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예수께서 휘장을 찢으시고 지성소에 들어가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들어 갈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는 그것을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내가 성령의 뜻대로 살아 갈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을 말하고 있다이방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따라서 살지 못한 문제를 영원히 해결해 주시고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한사람을 통해 인격을 입고 우리 앞에 오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사도바울 속에서도 성령과 예수의 영또는 하나님 영과 예수의 영을 똑같이 표현을 했지 않느냐? 하면서 자신들도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와 그리스도영이 동시에 있는 줄 알고 있으면서 자기 속에서도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악한 영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예수로 인하여 율법을 범한 자범죄를 사함받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을 예수께서 찢어주신 상태이다. 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이 같기 때문에 따로 표현하지 않고 같이 표현해도 구원에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무방하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성령과 그리스도의 영을 하나로 묶으면 구원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이라면 이들 또한 사도바울과 똑같은 삶을 살아야 구원이 된다. 그리고 성령의 뜻대로 살아야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그러지 못한 것은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없다는 뜻이다. 기독교인들이 아버지의 '성령'과 아들인 '그리스도 영'을 똑같이 여기게 되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게 됨으로 인하여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와 '죽은 영'을 해결 받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에 큰 오류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이 문제를 깊이 숙고하고 자신을 죄인으로 한없이 낮추고 있어야한다.

 

그럼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하나로 보면 구원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해서 그런지? 또한 사도바울은 성령도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도 말하는데 이 뜻이 무엇인지, 또한 '성령이 하시는 일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 또한 어떻게 다른지를 2편에 이어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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