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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모형과 실체

작성자사라

작성일2019-07-12

조회수56

그리스도의 모형과 실체

히브리서8:1-13

 

원래 하나님의 나라는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 안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독교인들에게 먼저 성령을 주시고 은사와 표적을 보여주신 까닭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을 보고 믿고 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도 도마에게 보고 믿는 것 보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더 복되다고 하셨다. 이 뜻은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세계만 판단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0-21)

 

그러나 인간이 육신을 입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마음보다도 보이는 현상을 먼저 믿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또한 마음으로 하는 것은 진실을 담아서 해야 하는 것으로서 깝깝하기 때문이다. 우선당장 겉으로 보이는 것이 대단하고 커보이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불신자인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믿게 하려면 성령을 먼저 줘서 은사와 표적을 나타내 주어야 믿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둔갑되어 있다. 마치 내 것인 양 자신이 잘해서 그런 줄 알고 마음이 높아지고 교만해져 있다. 성령의 능력과 은사는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따라서 높아지고 교만하게 되면 다시 회수를 당하게 된다. 이방 기독교인들은 그나마 눈으로 보이지 않으면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기도원에서 기도할 때라도 눈앞에 십자가를 그려놓고 하게 된다. 이유는 그래야지 그나마 거기에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 교회가 모두 눈에 보이는 유형교회로 이루어져있다. 그래서 교회 건물도 크고 웅장하게 지어놓고 강단도 화려하게 꾸며 놓게 된다. 그래야지 거기에 마치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도 신령과 진정을 담아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으로 되지 못하니까 전부다 형식에 치우친 의식만 담아서 절차와 순서에 의한 행위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인들 마음속에 그리스도(생명)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있는 자는 하나님께 행하는 모든 것을 마음으로 하기 때문에 실제 삶을 쫓아서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가기 때문에, 눈에 보여 지는 겉치레와 형상을 쫒지 않는다. 그리고 남의 것을 가지고 흉내내는 것이 아니고 자기 몸 안에 이루는 것이라서, 없어지거나 회수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에 당당하고 어떤 일에도 두려움이 없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자신을 세상의 유혹들로부터 지켜줄 그리스도(생명)가 없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하기 보다 눈으로 보여지는 현상에 치중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도 뭔가 눈에 보이는 형상화를 시키게 되는 것은, 그렇게 해야지만 하나님도 거기에 역사하실 것 같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다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이 육신으로 지어 놓은 건물이나 형상 안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에 편만하시다. 따라서 마음으로 간절하게 구하고 찾으면 그런 자 에게 응답하신다. 그리고 성령을 받을 때나 병이 나을 때도 꼭 형식과 절차에 따라서 터치(안수)를 해줘야지 뭔가 이루어 질 것 같고 병도 나을 것만 같다. 또한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간절하게 믿어야 하는데, 죽은영(옛자아)의 방해로 인하여 마음으로 하는것이 잘되지 않으니까어떤 형상을 취하거나 찾게된다. 또한 십자가 형상을 찾는것도 이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서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현실이고 폐단이다.

 

또한 이단들의 형태를 살펴보면 자신들을 가르켜 자신이 재림예수이다. 두 증인이다. 또한 감람나무이다. 보혜사 성령이다. 라고 하는 것을 본다. 성령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낮추라고 주신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통해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의 역사를 이용하여 자신의 위상을 드러내고 자랑하며 자신을 신격화 시켜서 높여놓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흔적이 아니고 마귀의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증거로 이들이 진정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보낸 자들이라면, 이들은 자신이 보혜사이며 재림예수라고 하면서 자신의 영광을 구하면 안된다. 보내심을 받은자는 반드시 자신은 죽어서 없어지고 오직 보내신이의 영광만 구하는 것이다(요7:17-18). 또한 그리스도가 마음에 있는 자는 자신의 몰골과 처지를 깨닫고 또한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죄악 속에 있다가 나왔는 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자랑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리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자신을 부각시키지 않고 오히려 죄인으로서 더 밑으로 내려가서 자신을 죄인중의 괴수로 낮추게 된다. 그리고 자신같이 못난 인간을 만드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은사와 표적을 나타내주는 것으로서는 죄를 사해주지 못한다. 또한 모든 의식과 절차에 의한 예배 행위와 근사한 피아노 반주에 맞춰서 찬양을 하는 것으로서도 죄사함을 얻지 못한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행위로서 마치 은혜가 있는 것처럼 하여 자신을 잠시 위로하는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이런 행위로서는  삶을 바꾸지 못하고 행동으로 나타내어 진정한 그리스도의 은혜를 맛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노래로서 흥을 돋우어 마치 은혜가 있는 것처럼 위장하여 잠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일 뿐이다


기독교인들은 겉으로 들어나는 죄악보다도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짓는 보이지는 죄악이 더 무섭고 크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고 거역한 자범죄는 성령아래서 신앙생활 하는 회개로서는 해결 받지 못한다.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죄는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께서 영으로 다시 오셔서 해결 해 주셔야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 중심으로 믿고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표적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직 마음속에서 죄를 없이하는 일을 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만 관심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진실을 믿으라고 하시는 것이다. 만일 겉으로 드러나는 표적만 보게 되면 진정성이 없는 부왕부왕하는 삶을 살게 됨으로 진실을 알 수가 없게 된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영이시기 때문에 말씀을 듣는 자의 마음에 따라서 즉시 그리스도의 씨앗이 믿는 자의 마음속에 겨자씨로 떨어지게 된다. 때문에 형식과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 또한 가장 낮고 못 난자를 통해 말씀으로 오시기 때문에,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고 마음의 눈으로 봐야지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교만한 자들과 육신의 눈으로 보면 보잘 것이 없기 때문에 믿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인들 마음이 유대인들과 같지 않고 마음속에 죄악의 씨가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의 마음을 테스트하여 죄악을 가려내고 높아져서 교만한 자들도 가려내어, 교만한 자들은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못난 자를 통해 몰래 도적같이 오신 것이다.


하여 이런 자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 들이게 되면 그리스도의 씨가 마음속에 들어오게 된다. 씨가 들어온 자는 세상의 말을 들으면 그리스께서는 인격(인자)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자라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씨앗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지 자라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도바울처럼 예수의 영을 모신 자가 이방인들 앞에 우리의 선임자로 오셨다. 따라서 그가 전해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겨야지 우리의 마음속에 계신 그리스도께서도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게 된다.

 

이제 기독교인들 앞에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오셔서 실상을 전해 주시는 대도 불구하고, 들으려 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는 표적이나 현상만 찾는  다거나, 주일날 주보지의 순서에 맞춰 형식적인 절차에 따라 겉치레 예배를 고집하게 된다면, 마치 유대인들이 예수께서 오셨는데도 계속해서 소와 양을 잡으면서 형식과 절차만 찾던 것과 다름이 없게 된다.


그때 당시 예수께서 오셨을 때 유대인들이 이천년 동안 예루살렘 성전에서 소와 양을 잡으면서 하나님을 섬겨왔던 자들에게는 성전이 자신들의 목숨 줄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을 헐어버리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십자가에서 희생의 피로 이루실 것을 말씀하시고, 자신을 믿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갈수 있다는 것을 말씀 하셨다. 따라서 눈으로 보이던 유형성전을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게 되면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성전’(즉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안에 세우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행해왔던 눈으로 보이는 교회와 형식과 절차는 그리스도의 실체가 아니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루고 가셔야할 일들을 겉으로 드러내었던 모형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것처럼 첫 것(율법, 성령의법)을 폐하심을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9) 라는 말씀이 우리 이방 기독교인들에게도 응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도 지금까지 모형인 유형교회예배당을 폐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분을 우리의 마음속에 새 주인으로 모시고 우리의 마음속에 진정으로 그리스도께서 계셔야할 무형교회를 세워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전파될 사역은, 마음속에 들어있는 죽은영을 몰아내고 반드시 산영이신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신 각각 개인이 그리스도께서 거하실 성전이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서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붙잡고 있던 모형이 지나가고 실체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삼위의 하나님을 기독교인들이 알고 있는 상식과 다르게 그리스도께서 알게 하신 것을 잠시정리 하여 알아보자! 우리가 보통 하나님! 하고 부르는 것은 믿지 않는 불신자에게도 해당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느 형상에 안에 갇혀 계시는 것이 아니고 온 세계위에 충만하시다. 또한 어느 곳이든지 마음이 간절한 곳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다. 따라서 믿지 않는 불신자 일지라도 하나님을 마음으로 간절히 찾으면 그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 그 좋은 예가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과, 또한 망망대해 바다에서 거북이 등을 타고 살아 남은자가 있다. 참새 한 마리도 들에 핀 꽃 한송이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 속담에서도 인명은 제천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하나님 하면 불신자를 포함한 세상의 우주만물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신 분을 부를 때 일명 이라고 하기도하는 하나님인 것이다.

 

그리고 성령하나님이 나온다, 이는 예수이름을 부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불리워지는 하나님으로서 각 개인의 성령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또한 율법을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던 이스라엘백성들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을 받으므로 성령께서 각개인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님을 표호 하고 대리한 만 군단을 이끄는 천사장이다. 구약에는 하나님이 직접 인간을 만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항상 천사를 통하여 일하셨다(18장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만난사건, 참조). 그러므로 육체를 입고 율법을 받아서 생활했던 이스라엘에게서는 성령하나님이 마지막 그들의 구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았다. 이방인들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게 되어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 속에는 마귀를 멸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이 사실을 믿고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면 마귀의 지배아래 살던 자들이, 마귀가 떠나면서 성령을 받게 됨으로서 인하여 하나님의 지배권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을 모르고 살다가 성령을 받게 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각각 개인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이방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았다고 무조건 구원이 아니라 유대인들처럼 성령을 끝까지 따라서 살아야 구원이 된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죄악의 씨를 가지고 태어나서 평생 죽은 영(옛자아)의 지배를 받고 살아온 이방인들로서는 유대인들처럼 성령을 온전하게 따라서 살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은 모두가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어있어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계속해서 유대인처럼 자신들도 성령을 받은 것만으로 구원의 완성이라고 주장을 한다면, 유대인들은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게 되면 가는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심판을 받는다고 한 것처럼(12:31-32), 그것이 기독교인들에게도 이루어져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을 먼저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셔서 율법아래 가둬놨다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을 범한 죄인들을 구원해 주신 것처럼, 이방 기독교인들에게도 성령의법(영적인 율법)아래 가두어 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따라 살지못한 이방 기독교인들의 자범죄’(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범하고 스스로 지은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우리에게 오심은, 인간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인자 하나님, 육체를 입은 죄인으로서 영(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영광이 되는 것이다. 이는 크게 하나님 나라에서 으로 표현을 하자면, ‘인자하나님이 되지만 엄밀히 따져서 세부적으로 나눈다면 인자는 사람의 몸을 입은 하나님아들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이방 기독교인들을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에서 구원해줄 하나님의 아들은 사도바울처럼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모신 자가 와서 마지막으로 이방인들을 죄에서 건지는 사역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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