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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역에 나타난 이방인의 구원 계획!

작성자요한

작성일2019-07-06

조회수79

바울 사역에 나타난 이방인의 구원 계획!

사도행전 91~22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가 이스라엘 땅으로 제한되지 않고 온 세상에 전파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자가 바로 사도 바울이다. 바울은 이방인에게 예수를 전하는데 목숨을 바쳤던 자이며 또한 신약 성경의 절반 이상을 기록한 저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인은 믿음의 표본으로 사도 바울은 지칭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열심을 내는 자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자신도 바울과 동등한 하나님의 종이라 생각하지만, 바울이 왜 택함을 받고 어떻게 쓰임을 받았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단순히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로 쓰신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이방인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미리 보여주셨다. 따라서 앞으로 이루어질 이방인의 구원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울의 역할과 사역을 세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로 변화 받기 전에는 빼 속까지 철저한 율법주의자였고, 예수 믿는 자를 잡는 일에 앞장 서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실행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스테반을 돌로 쳐 죽일 때 그 옆에서 증인 역할을 하면서 마땅히 여겼다[7:58]. 이런 사람이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자를 잡기 위해서 가던 도중에 정오에 빛난 태양보다 더 강렬한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를 보았다. 그 빛이 얼마나 강했던지 그의 눈이 멀 정도였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바울이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를 육신의 눈으로 본 사실만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그때 바울 마음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그리고 며칠을 금식하고 기도하던 중에 아나니아라는 예수의 제자에게 안수를 받고 성령을 받았다[9:17].

 

일반적인 유대인은 육체로 오신 예수를 믿어 율법을 어긴 죄악을 먼저 해결 받고, 그 믿음을 유지하면 예수 십자가 보혈로 원죄를 사함 받고 그 뒤 성령을 받아 구원이 완성된다. 예수의 열두 제자들은 예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 그들의 마음속의 죄악을 해결 받았고, 그 뒤 오순절 때 성령을 받았다. 이렇게 유대인은 반드시 빵(예수의 살)을 먼저 먹고, 그 뒤 포도주(예수의 피)를 마셔야 한다. 참고로 가롯 유다는 마음의 죄는 사함 받았지만, 성령이 오시기 전에 자살하여 결국 최종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성령까지 받은 후에 성령을 속인 죄로 죽임을 당한 자는 구원을 받았다. 다시 말해, 성령을 어긴 죄로 말미암아 육신은 멸하고 영은 구원받게 하신 것이다[고전5:5].

 

여기서 일반 유대인과 사도 바울의 큰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 유대인은 예수를 통해 마음속의 죄악은 해결 받았지만, 그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오시지는 않고 오직 성령에 붙들려 쓰임을 받았다. 하지만 바울은 유일무이하게 그 마음에 그리스도 영이 들어오셨고 또한 성령도 받았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바울과 함께 하시어 그가 온전히 성령 따라 살 수 있도록 붙잡아 주셨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특별히 택하신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본문에 나오는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다라는 말씀같이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시기 위함이었다. 바울은 죽임을 당할 때까지 3차에 이르는 전도 여행을 통해 이방 지역에 여러 교회를 세우고 이방 기독교인들을 가르쳤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영으로 들어가셨듯이 이방인에게도 그리스도께서 직접 들어가시겠다는 확실한 근거로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루시고자 하시는 당신의 일은 말씀이나 예표로 미리 알려주신 후에 시행하신다.

 

세 번째는 장차 이방인의 구원은 바울과 같이 반드시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받아야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 바울은 유대인이라 그리스도 영을 먼저 받은 후 성령을 받았지만, 이방인은 반드시 성령을 먼저 받고 그 뒤에 그리스도 영을 받아야 한다. 네 번째는 장차 이방인의 온전한 구원은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를 모신 자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을 보여주셨다. 이러한 내용은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기로 한다.

 

이와 같이 바울은 유대인이면서도 이방인에 대한 구원의 예표로 쓰임을 받은 자이었기에 그의 말과 행동은 다른 유대인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 제자의 임무는 자기 동족인 유대인에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들을 붙잡고 쓰셨기에 성령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유대인은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그 뒤 성령을 받으면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한 성령이 제자들을 강하게 붙잡고 사용하셨기에 많은 이적들이 나타났다. 이런 이적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이유는, 유대인이 예수는 하나님 아들임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율법을 어겨 병 들린 자들이 예수를 믿자 고침을 받는 역사가 많이 나타났다.

 

바울은 다른 사도들과 많이 달랐다. 그는 예수 생전에 만난 적도 없었기에 말씀을 직접 듣지도 못했고 제자들로부터 배운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또한 성령을 받은 즉시 바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담대해 전하였다[9:20-22]. 또한 바울이 기록한 말씀은 제자들이 기록한 성경과 많은 차이가 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행적을 주로 기록한 반면, 바울은 유대인의 율법과 복음, 믿는 자의 삶, 인간의 죄악 등 여러 방면의 내용을 기록하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유대인의 율법과 복음에 대하여 명확하게 설명하였다. 자신이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다가 그리스도로 거듭나 보니 율법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인간이 지킬 수 없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기에 그 말씀을 기록할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을 따르던 자들에게 나를 믿고 본받아라라고 자신있게 말하면서 수많은 영적인 내용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속에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다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또 다른 증거로 바울이 예수의 수제자이며 선배인 베드로의 외식을 과감히 질타한 사건이다 [2:11-14]. 베드로는 성령으로 거듭났지만, 여전히 유대인의 율법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바울은 베드로보다 더 철저한 율법주의자임에도 예전 것을 모두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을 알려주셨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따라서 바울만이 아래와 같은 고백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꼐서 사시는 것이다 [2:20]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바울이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하였지만, 장차 일어날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당대에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으로 믿고 있었다.  또한 자신이 전도한 이방인이 분명 성령을 받고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봐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정작 그들이 자신과 같은 믿음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각 교회에 서신을 보내서 이방 기독교인들을 계속해서 책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울도 이방인은 예수의 이름을 불러 성령은 받았지만 궁극적으로 자신과 같이 그리스도 영을 받아야 온전한 구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행여 그리스도께서 그 속에 계셨다고 하면서 바울이 몰랐다고 하는 것을 쉽게 수긍하지 않을 수가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역사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끌어 가신다.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일만 담당하시지 미래의 일이나 다른 일에 관여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상세히 바울을 통해 미리 밝히시지 않는 이유는, 참으로 놀랍고도 놀랍다. 이렇게 넓고 깊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아시는 분은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밖에 없다. 이제 그분이 영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시어 이렇게 글을 통해서 밝히 말씀하고 계신다.

 

이제 이방인의 구원 과정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바울의 사역을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그의 말씀을 듣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한 이방인들이 많이 있었고, 이들이 모여서 교회가 형성되었다. 이들 중에 자신에게 예수를 전해주고 믿음의 삶을가르쳐 주는 것을 감사하여 끝까지 바울을 따르는 자가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바울을 따르다가 나중에는 바울을 배척하거나 세상으로 돌아간 자들도 많았다.

 

여기에 놀라운 영적 비밀이 담겨있다. 이렇게 바울을 통해 성령을 받고 그를 끝까지 믿고 따랐던 이방인들은 결국 그의 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좋아하고 따랐기 때문에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가 있었다. 이는 마치 예수 당시에 수르보니게 여인과 백부장 같은 이방인도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른 것과 같은 이치이다. 로마서 16장에 바울을 따르던 많은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들이 바울을 통해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은 비록 바울이 전한 말씀을 듣고 성령을 받아 기독교인은 되었지만, 그를 끝까지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성령 받았다고 바울과 동등함을 취했던 자들은 최종적인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 그 예로 고린도 교회에 바울을 따르는 자와 아불로를 따르는 자 그리고 게바(베드로)를 따르는 자로 나뉘어 분쟁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전1:12].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자들에게 하늘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고 책망하였다.

 

참고로 고린도 일부 교인들이 말씀을 전해 준 바울보다 아불로를 선택한 이유는 그는 오직 성령만을 강조하고 바울같이 그들 죄악을 지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상대방의 죄악을 보면 사사건건 지적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고 나오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바울 자신도 끊임없이 죄인중의 괴수라 하며 자기 속의 죄악을 깨닫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빛 되신 그리스도께서 바울 속에 함께 하신 증거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악을 깨닫게 해 주시지만, 성령은 이렇게 지적하시지 않으신다.

 

아쉽게도 바울을 통한 이방인의 구원 역사는 바울이 죽자 그것으로 모두 끝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바울 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방인의 온전한 구원이 잠시 이루어졌지만, 구원받은 자가 다시 다른 이방인을 구원시킬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이방인에 대한 구원은 바울이 죽자마자 그 당대로 끝나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영적 백성 된 자들만 남게 되었다. 초대교회 이후 5세기까지는 그런대로 말씀대로 살아보려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 뒤 정치와 결탁되어 권력을 잡게 된 카톨릭이 1000년 동안 유럽을 지배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15세기경 루터와 칼뱅 그리고 요한 웨슬러와 같은 자를 사용하시어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하셨고, 그 뒤 개신교가 시작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렇게 기독교가 2000년이 지난 지금, 하나님께서는 사단에 갇혀있던 이방인의 최종적인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영으로 바울과 같은 자를 택하자 이 땅에 보내주셨는데, 조만간 세상을 향해 말씀하시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 구원이라고 철저하게 확신하고 있는 이방 기독교인에게는 이러한 말씀이 도대체 이해되지도 않을뿐더러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섭리가 있다. 오늘날 이러한 하늘나라의 영적 비밀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크게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날 것이다.

 

첫 번째는 이 말씀은 말도 안 되는 헛튼 소리라 하며 대부분 기독교인은 받아칠 것이 분명하다. 거부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마도 칼로 이 말을 전하는 자를 죽이고 할 것이다. 마치 유대인이 예수를 죽이고자 했던 반응이 일어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미 자신은 구원을 받았고 나중에 하늘나라에 상급을 기대하고 있는데, 이것이 부정하니 그 속에 엄청난 분노가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두 번째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은 지금까지 듣지도 못했던 말씀이지만 그동안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았던 성경 말씀이 풀어지고 성령 따라 살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자는 희망을 갖고 따라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수긍한다고 이방 기독교인의 구원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말의 풍성함에 절대로 속지 않으신다. 우리 이방인은 말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족속들이다. 그 증거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 누구도 말씀 따라 행동을 하면서 사는 자가 없지 않는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말의 진위를 확인하시기 위해 검증 과정을 겪게 하실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열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체험을 하고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을 확인하시기 위해 광야의 힘든 생활을 하게 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그들이 원망 불평한 대가로 40년을 광야에서 보내면서 여호수와와 갈렙 이외는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은 혹독한 시련을 겪게 하시고 이방인은 천국 열차에 무임승차하게 하시면 결코 공평하신 분이 아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전하신 말씀을 좋게 받아들이고 나아오는 자가 있다면 그들의 믿음이 정말인지 확인을 하실 것이다. 그 방법에 대해서 여기에서는 자세히 언급할 수 없지만, 히브리서 12장에 나오는 연단의 과정을 반드시 겪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좁은 길이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자도 적고 얻고자 해도 얻지 못한 자가 있다고 이미 말씀하고 계신다. 지금 기독교인 모두는 넓은 길로 편하게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말만 하고 전혀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자녀로 확신하고 있다. 이제 조만간 사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 나아가실 것이다. 저들이 그 말씀을 듣고 나아와 시련의 좁은 길을 통과한다면 구원에 이르지만, 반대로 말씀을 배척하거나 비록 말씀은 좋아도 힘들어서 뒤돌아간다면 결코 천국 문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치 부자 청년이 근심하며 떠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많이 발생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모두 그리스도로 인해 이 땅에 이루어지실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알아야 할 내용은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기독교인만을 구원하시려 오신 것이 아니다. 이천년 전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 오셨지만, 그에게 나온 소수의 이방인을 구원하셨듯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불신자나 타 종교인 심지어 이단에 속한 자들까지 그 앞에 나오는 자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다. 이들은 성령을 받지 않아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자들이기 때문에 먼저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자들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육신의 필요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그때 이러한 육신의 것을 받고 그것에 감사해서 그리스도를 모신 자 앞에 감사함으로 나오는 자들 역시 구원을 얻을 것이다. 예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들을 고쳐주셨지만, 그 중에서 오직 한 명만 예수께 돌아와서 감사를 표현한 그 사람만 온전한 구원을 받았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것이 바로 공평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이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께서 구원을 손길을 내밀어주시는 자들은 한결같이 마음이 청결한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에 욕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뭔가 자신보다 선한 존재를 찾고 있었고, 그들이 그것을 받았을 때 감사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벨부터 아브라함까지 그랬고, 유대인 중 예수 앞에 나온 자들도 그랬고 앞으로 이방인 중에서 그리스도 앞에 나올 자들도 마음판이 악하지 않는 자들이다.

 

비록 악한 자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나오면 된다. 그리스도는 만인 앞에 공평하시다. 결국 구원을 받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그의 앞에 나오고 안 나오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섭리인데, 누가 이렇게 넓고 깊고 공평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오직 자신을 낮추고 마음이 청결한 자들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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