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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로 오신 예수와 그리스도!

작성자요한

작성일2019-07-12

조회수40

실체로 오신 예수와 그리스도

요한복음 20장 24~29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도마가 부활을 의심했지만, 그 뒤 예수를 직접 만난 후에 “(당신은)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때 예수께서는 “(나를)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하시며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셨다는 것이 위 본문의 내용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보고 도마를 ‘의심 많은 자’라고 비난하며, 자신은 보지도 못한 예수를 잘 믿고 있는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맞는 것 같지만,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에게 어떻게 해석되고 적용되는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결국 어둠 속에 살다가 멸망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마귀의 미혹으로 타락한 인간 곁을 하나님께서 떠나셨기에, 영적인 존재에서 육적인 존재로 전락한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을 스스로는 절대로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살아계시고 선하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먼저 계시해 주시고, 이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믿고 나오는 자를 어둠 속에서 구원시켜 주시고자 하신다.

 

하나님의 방법(뜻)은 먼저 백성을 삼으시고, 그들에게 첫 것으로 모형을 주셨다가 그 뒤 두 번째로 실체를 주셔서, 그 실체를 믿고 나오는 자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사람은 모형으로 주신 첫 것에 익숙해져 그것을 고집하다가, 두 번째 주신 실체를 믿지 못하여 멸망의 길로 가게 되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머리로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는데, 그렇게 하신 이유는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기 위함이었다. 첫 것은 마음도 없이 형식적으로 할 수 있지만, 둘째 것인 실체를 믿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마음 중심에서 자신은 하찮고 죄를 짓는 존재임을 시인해야 한다. 하나님은 오직 인간의 마음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약속된 자손들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육적 백성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성전을 짓게 하셨고, 또한 각양 제사를 지내게 하실 뿐만 아니라 율법을 주셔서 백성으로 당연히 지켜야 할 규범을 주셨다. 또한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와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 그리고 다스리는 왕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주셔서 그들을 치리하게 하셨다. 이 모든 것은 첫 것으로 그 뒤 보내주실 실체(예수)의 모형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육적인 백성이라 하나님께서 주신 첫 것들은 모두 눈에 보이는 것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형식적인 것을 통해서라도 그들의 마음을 받기를 원하셨다. 특히 죄를 지으면 동물을 죽어 피를 흘리게 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셨는데 이때 그 사람의 상한 심령을 함께 받기를 기대하셨다. 다윗을 마음에 합한 자라 칭찬하신 이유는 그가 율법을 잘 지킨 것이 아니라, 죄를 짓고 나서 그 죄를 처절하게 회개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벨과 같이 제물과 함께 그 마음을 받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죄악 중에 태어난 인간은 모형을 통해 하나님께서 온전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모형인 첫 것을 먼저 주신 이유는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도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둘째 것을 받아들이라고 하신 것이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히10:9]라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꿈에도 알 수 없었던 그들은 형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잘 섬기면 구원을 받는 줄 알고 마음도 없이 겉만 중요시하며 철저한 종교적 행위를 하였다. 이렇게 유대인을 이천년이나 모형 아래에서 생활하게 하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둘째 것을 보내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실체인 하나님의 아들은 외적으로 보면 첫 것보다 훨씬 더 초라한 모습으로 그 누구도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 수 없었다.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숨어있다.

 

유대인은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메시아가 오신다고는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들 앞에 오신 예수는 상상한 것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달랐다. 모형인 대제사장은 거룩한 옷을 입고 있었으며 성전도 대단했는데, 실체인 예수는 정말 별볼일 없는 나사렛 동네의 목수 아들로 평범하게 살다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말을 믿으라고 하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가끔 이적도 베풀고 병도 고치는 능력을 행하니 그들도 혼란스러워했지만, 결국 그를 이단의 괴수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였다.


유대인은 애써 예수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그의 행색은 너무 초라하였고, 심지어 안식일을 어기고 율법을 잘 지킨 자를 책망하고 오히려 죄인과 함께하니 그를 메시아로 믿기가 너무 어려웠다. 다시 말해, 이천 년 동안 지켜온 전통을 하루아침에 버리고 자기보다 못나 보이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병든 자나 죄인이나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멸시받은 자 중 일부가 그 예수께 나와서 먼저 마음속의 죄악을 해결 받고 그 뒤 성령을 받아 온전한 구원을 받았다.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나온 것이 아니라, 문제가 너무 갑갑하여 그래도 자신 같은 자를 받아주시고 병을 고쳐주신다고 하니 그것을 믿고 나왔다. 사실 제자들도 삼년 동안 예수와 동고동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부활하여 앞에 나타나시기 전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했다. 그 증거가 바로 위 본문에 나온 도마 이야기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는 못해도, 그를 선한 분으로 여겨 나온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어 그들 마음을 깨끗게 하시고 성령까지 주셔서 온전히 아들과 아버지를 믿게끔 해 주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고 또한 뜻이다.

 

오늘날 기독교인은 성경에 기록된 유대인의 실패는 잘 알고 있지만, 위에서 설명한 유대인의 상황과 그들 입장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 증거로 유대인이 예수를 배척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예수만 믿으면 값없이 구원해 주신다고 오해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잘못 알고 있는 이유는 인간의 구원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으로 구원에 있어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공평하게 적용하신다. 단지 그 과정과 방법이 다를 뿐이다. 먼저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기에 예수를 믿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을 시키시는 분이 아니라, 반드시 믿는다고 하는 자의 마음 중심을 살펴보시는 분이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첫 것을 먼저 주셨다고 이를 폐하고 둘째 것을 주셔서 마음으로 믿는 자를 찾고 계시는 것이다.

 

유대인과 달리 기독교인은 이방인으로 죄 가운데 태어나 죄 속에서 살다가 예수 이름을 불러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에 불과하다. 육적인 백성인 유대인에게는 성전과 제사 등이 그들의 첫 것이었다면, 영적인 백성인 기독교인의 첫 것은 바로 교회와 예배이다. 이들은 영적인 백성이라 유대인의 것보다 많이 축소되었지만, 여전히 모형에 불과하다. 오늘날의 예배는 유대인의 제사에 해당하고, 교회는 성전에 그리고 헌금은 헌물에 해당한다.

 

현재의 교회, 예배, 헌금 등이 모형이고 실체가 아니라고 한다면, 기독교인은 쉽게 수긍을 하지 못하고 자신들은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서 이런 것을 지키고 있다고 항변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만약 찬송과 주기도문을 하지 않고 예배를 드린다면 뭔가 허전하여 예배다운 예배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그들 역시도 형식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모형 아래의 신앙생활은 단순 종교 행위에 불과하여 사람의 속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오늘날 기독교는 불신자들에게 개독교라고 조롱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존재가 무시당하고 있다. 최근 들어 목회자들의 부도덕과 비리가 세상에 알려지고,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나 가나안 성도가 되었고, 기독교인이 세상 정치에 관여하면서 그나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사라졌다. 이들은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많으시기에 그 어떤 죄도 십자가의 보혈로 다 용서하실 것이다고 믿고 있다. 또한 예수를 부활하여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어 하늘에 계시는 신으로만 높이고 있을 뿐,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고 늘 동행하실 나의 주님이 되셔야 한다는 것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에 염증을 느낀 자 중에서 실체를 찾다가 결국 이단으로 빠진 자들이 부지기수이다. 이단은 마귀와 악한 영들이 역사하여 그들 우두머리가 예수와 하나님의 흉내를 내고 있는 집단이다. 이들은 자신을 두 증인, 감람나무, 재림 예수, 성령 하나님 그리고 어머니 하나님 등 별의별 이름을 갖고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기독교인의 영혼을 사냥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 사단의 특성은 자신을 높이는 데 있다.

 

기독교는 이천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에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형태가 바뀌다가 현재와 같이 영적으로 타락의 극치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는 모형과 형식적인 것에 타성이 젖어 있는 기독교인에게 실체가 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유대인에게는 그나마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육신을 입은 예수가 오셨지만, 이방 기독교인 앞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영으로 오셨다.

 

영은 육체가 없기에 직접 말씀하실 수가 없다. 그래서 이방인 중에 한 사람을 택하사 그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들어가시어 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정확히 알아야 할 사실은, 예수는 육체로 오셨다가 부활하여 영이 되셨기에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실 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성령)은 인간의 영을 지배하실 뿐 결코 인간 속에 들어오실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육체를 입으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설사 들어오신다고 해서 죄가 있는 인간은 그 자리에 즉사하고 만다.

 

이렇게 인간의 몸에 들어오신 그리스도는 그 한 사람 속에만 머무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씀을 듣고 받아드리는 자의 마음속에도 들어가신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아주 미약한 겨자씨와 같이 들어가시기에 받은 자의 마음 밭 상태에 따라 성장할 수도 있고 아니면 유산되어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 이러한 비밀을 예수께서 직접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장차 일어날 이방인의 구원에 대하여 미리 말씀하셨다[마13장].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었던 이러한 영적 비밀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제 밝혀지고 있다.  마치 사도 바울 속에 그리스도께서 들어가신 것과 같은 사건이 이 땅에 은밀하게 이미 이루어졌다.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의 마음속에 들어오시고자 하는 이유는, 그들이 성령을 어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있는 것을 해결하시기 위함이다. 

 

유대인이 율법 따라 살 수가 없듯이, 기독교인 역시 아무리 노력해서 해도 성령(말씀)을 따라 살 수가 없다. 성령의 법은 율법보다 더 엄격하여 마음으로 지켜야 하는 법이다. 여자를 보고 음욕만 품어도 간음죄이고 남을 보고 미워만 해도 살인죄가 성립될 정도로 그 누구도 지킬 수가 없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의 성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는 여전히 죄악 된 본질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다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에게 성령 따라 살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이것을 통해 자신의 한계와 근본적으로 악한 존재임을 조금이라도 깨닫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도 없이 예배를 열심히 드리고, 남들에게 봉사하고 헌금을 많이 하면서 뿌듯해하는 이들은 자신의 의(義)를 쌓고 있기에 하나님의 의(義)를 전혀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들이 바로 영적인 바리새인들이다.

 

이제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보내주시어 우리가 성령에 순종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하신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영으로 말씀만 하실 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신 자의 모습인데, 이들 역시 초라한 사람일 뿐 그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겉모습으로는 전혀 알 수가 없고 마음으로 분별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모신 자를 구별하는 방법은 만약 어떤 사람이 성령을 어긴 죄를 지적하며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이 다르다는 영적인 비밀을 말한다면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듣고 받아들이기 위해선 자신이 갖고 있는 성경적 지식과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즉, 자신의 것을 버릴 때 비로소 말씀이 들리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그리스도를 눈으로 보이지도 않게 미천한 사람들 속에 감추어서 이방인 앞에 보내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진짜(알곡)와 가짜(쭉정이)를 가려내기 위함이다. 형식적인 것을 가지고는 그 사람의 진실을 판단할 수가 없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전능 전지하시기에 인간의 마음 중심을 다 알고 계신다. 인간들을 하나님의 잣대 심판하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신다면 영혼들이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첫 것을 폐하고 둘째 것을 주신 이유는, 최후의 심판 시 그 영들이 억울함이 없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만약 첫 것인 모형으로만 그들을 심판 하신다면 누가 마음으로 했는지 아닌지는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시지만, 당사자는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백 보좌에서 인간들을 판결하실 때, 소자(小子)를 어떻게 대한 것을 가지고 심판하신 것을 알 수 있다[마25:31-46]. 여기서 소자는 소외받고 가난한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모셨기에 자기 자신을 작은 자로 여기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분명 그의 입을 통해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했을 것인데 이것을 좋게 여기고 그에게 뭔가를 베푼 자를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시고 그를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반대로 자기 뜻대로 열심히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했지만, 소자에게 하지 않은 자는 영벌에 처하게 되었다. 이렇게 유대인들에게는 초라한 예수를, 이방인은 그리스도를 모신 낮은 자를 믿고 나오는 자에게 구원이 이루어진다.


이글의 내용은  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가 너무 난감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모신 자를 이 세상에 내보내시기 전에 미리 글로 세상에 먼저 알려주시는 것이다. 예수가 오시기 전에 세례 요한이 직접 외쳤지만, 영적인 시대인 오늘날에는 이렇게 글을 통해 알려주신다. 그 이유는 이러한 이방인의 복음이 마지막이기 때문에 어떤 방법이라도 그들을 깨우치기 위한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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