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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 여정(아브라함~그리스도)

작성자요한

작성일2019-07-26

조회수63

하나님의 구원 여정(아브라함~그리스도)

마태복음 10:40~42

 

세상의 모든 학문은 가장 기초가 되는 정의(定義)를 설정하고 그 위에 모든 이론 체계를 세우고 있다. 정의란 증명하지 않고 “OOOO이다라고 단정한 것이다. 만약 초석이 되는 정의가 잘못되면 그 위에 있는 것들은 다 무너질 수밖에 없다. 구원에 관한 기독교 신학의 핵심 정의는 아래와 같다.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다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이 원수가 되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피 흘려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해 주셔서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화해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예수를 믿는 자는 값없이 구원을 선물로 받는다.”

 

이러한 구원론 기초 위에 인간의 생각으로 성경 말씀을 해석해서 수많은 교리가 만들어졌고 이것을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이를 배운 목사들이 교회에서 성경을 교리에 의해 말씀을 전하고 있다. 깊게 생각해 보면, 기독교인은 하나님과 예수를 마음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교리를 마치 진리인 양 붙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아버지이시니, 아버지가 죄지은 아들을 용서하시는 것처럼 인간을 구원해 주시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구원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기 위해서는 인간이 창조된 목적과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간질하고 죄를 짓게 하는 악한 세력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인은 악의 세력이 있다고는 알고 있지만, 자신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끊임없이 마귀와 귀신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악한 영적 존재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구원은 단지 희망 사항에 불과하며 하늘나라에 갈 수가 없게 된다. 이러한 자들이 나중에 지옥으로 떨어져 슬퍼 울며 너무 억울해 이를 갈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영계에서 범죄하여 쫓겨난 마귀의 죄악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하더라고 항변할 수가 없는 이유는, 결국 말씀을 어기고 마귀의 시험에 넘어간 것은 아담이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마귀의 미혹을 이겨냈다면 모든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마귀의 말을 따를 것인지는 전적으로 인간의 의지이고 그 책임도 져야 한다.

 

마귀의 자식이 된 인간을 안타깝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에 합당한 자를 마귀의 발아래에서 건져내고 그 죄악까지 해결해 주시는 것이 바로 구원이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기 때문에 그 앞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롭게 되어야 하는데, 인간 스스로는 그 누구도 의롭게 될 수가 없다. 따라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권세가 있기에 마음을 낮추는 자의 죄를 직접 사해주시기도 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의 깊은 뜻은 죄 사함 권세를 아들에게 일임하시고 그를 믿고 나오는 자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것이다.

 

창세기를 보면 아담의 타락 이후에 소수의 사람만이 하나님과 함께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아벨과 같이 마음을 다해 나아온 자를 의롭게 보셨고, 또한 그의 자손들을 혈통적으로 관리하시어 그들을 구원해 주셨다. 아벨, 에녹, 무드셀라 그리고 노아가 바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자들로 수 백년 동안 장수하며 살았다. 그 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택하사 죄악에 물들어 있는 가족들을 떠나게 하신 후, 여러 가지 연단을 통해 믿음을 키우셨다. 최종적으로 아들 이삭을 아낌없이 바치는 아브라함의 확고한 믿음을 확인하시고 그를 의롭게 여기셨다.

 

여기서 의롭다고 칭한 것은 죄를 없애 주신 것을 의미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선언과 같이 죄 아래 태어난 인간은 그 누구도 스스로 의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보시고 의롭다 인정해 주시면 죄는 사해지고 구원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칭의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그 당시 모든 인간이 마귀의 자식으로 죄악에 중에 헤매고 있을 때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선의 기준으로 내세우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만 은혜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마음으로 믿고 따르는 자에게도 구원의 선물을 주셨다. 그 이유는 당신이 세우신 자를 선대 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조카 롯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원은 거기까지로 아브라함이 살았던 당대로 끝나고 만다. 다시 말해, 비록 롯은 구원받아도 그 롯을 믿는 자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의 기준으로 세우시고 그를 믿는 자도 구원해 주신 이유는, 앞으로 보내실 예수를 믿는 자가 어떻게 구원되는가를 미리 알려주시기 위한 목적도 있다. 구약의 모든 사건은 예수의 모형이다.

 

아브라함이 죽자 그의 자손들은 애굽 땅에 내려가서 바닷가의 모래같이 번성한 후, 모세를 통해 애굽을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유대인이 천사를 통해 율법을 받았고, 그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을 섬기고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율법 아래에서 살아온 유대인은 택함을 입은 백성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을 뿐만 아니라 율법을 열심히 지키면 육신의 복과 구원도 함께 받는다고 믿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들은 역사를 통해 율법을 잘 지키고 하나님을 잘 섬길 때는 복을 받았고, 불법을 자행한 시대에는 이방 민족의 침입을 받아 온갖 핍박을 받았던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벨로부터 아브라함까지 혈통적으로 구원받는다는 창세기 말씀을 보고,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적통이므로 당연히 구원받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대인들은 마음도 없이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고 율법을 겉으로만 지킨 척하였다. 이러한 유대인의 외식을 책망한 자들이 바로 선지자들이다.

 

이스라엘의 율법 시대에 구원을 받은 자들은 바로 온갖 핍박을 다 받으며 하나님 말씀을 백성들에게 대언한 선지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마음의 죄악을 먼저 제하여 주시고 그들이 담대히 백성들의 죄악을 책망할 수 있도록 성신을 보내사 밖에서 강하게 역사하셨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참으로 비참하였으며 제명을 다해 사는 자가 적었다, 이렇게 쓰임을 받은 그들은 종으로서의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 참 선지자도 있었지만 많은 거짓 선지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오히려 백성을 미혹하여 그 결과 함께 멸망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말씀따라 살 지 못하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계속 선지자를 보내셨고, 유대인은 잠시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불법을 자행하기를 반복 하였다. 그리하여 이천년 전, 유대인이 로마의 압제 하에서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 자신을 구해줄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다. 그런데 그 예수는 외모가 초라하였고, 죄인들을 가까이하고, 심지어 안식일도 범하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기다리는 메시아와는 전혀 다른 다르다고 배척하고 결국 그를 십자가에 죽게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마귀의 시험을 이겨냈고 또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기에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아 인간의 원죄와 자범죄 모두를 사할 수 있는 권세를 갖게 되셨다. 그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나오기만 해도 모든 죄를 사함받고 결국 성령까지 받아 유대인은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예수의 권세는 아브라함과 비교가 되지 않는데, 그 증거로 예수께서 부활하셔 이 땅에 계시지 않아도 그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 방식이었다.

 

육체로 오신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자로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구원이 아니라, 이방인의 구원까지 이미 계획하고 계셨다. 그리하여 택함을 받은 자가 바로 사도 바울이다. 바울의 전도를 받아들어 예수의 이름을 불러 하나님의 영적인 백성이 된 자들이 바로 기독교인이다. 이는 마치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으로 시작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된 것과 같은 것이다.

 

사도 바울은 다른 유대인과 달리 아주 특별한 쓰임을 받았다. 그는 유대인으로 유일무이하게 그리스도 영과 성령을 함께 받은 자이다. 유대인은 먼저 예수를 믿어 그 마음의 죄악(자범죄)을 해결 받고, 그 뒤 그의 피로 원죄를 사함받고 성령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특별히 사용하신 이유는, 앞으로 이방인의 구원은 바울같이 성령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영을 받아야 완성된다는 미리 알려주시고자 하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실 때 항상 미리 말씀하시거나 예표를 내세워 알려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안다면, 바울을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바울의 삶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가신 분은 그 속에 계신 그리스도이셨다. 그 증거로 바울과 성령에 붙들려 쓰임을 받은 제자들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많았다. 제자들은 주로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하여 기록하였고, 바울은 자기 생각을 성경에 기록하였다. 하지만 그의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알려 주신 내용이라 우리는 성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바울은 단지 예수가 하나님 아들임을 전하는 전도자의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그를 믿고 따르는 자를 구원시킬 수 있는 선의 기준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중에서 바울을 믿고 따른 자를 구원해 주셨는데, 그 이유는 바울을 믿고 따르는 것을 그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여기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 있게 나를 믿고 본받아라라고 할 수 있었다. 이는 마치 선의 기준으로 세우신 아브라함을 믿고 따른 자를 구원해 주신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바울을 통해 구원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계승되지 않고 그 당대로 끝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한 구원 역시 앞으로 일어날 이방인의 구원 방식을 미리 알려주신 것이다.

 

이렇게 바울이 전한 기독교는 그가 죽자 그리스도는 빠지고 성령만 받은 기독교인만 양성되면서 이천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그동안 중세 천년 동안에는 사단의 방해로 유럽 지역에 한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악행이 자행되었다. 15세기 전후로 성령께서 몇 사람을 강권 적으로 붙들어 종교개혁을 일으키셨고, 그 뒤 불과 이백년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기독교가 전 세계로 전해졌고 우리나라까지 알려졌다.

 

이렇게 전파된 기독교가 최종적으로 이스라엘로 다시 전해지면, 예수께서 재림하고 믿는 자는 휴거한다고 믿고 있는 이 시점에,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사 영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오셨듯이, 이방인의 한 사람에게 빛으로 기적같이 들어오신 것이다.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때를 정확히 맞추어 이 일을 시행하셨다. 아벨에서 노아까지 이천 년,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 이천 년, 그리고 바울부터 그리스도까지 이천 년으로 하나님의 구원 여정이 완전히 밝혀졌다.

 

바울에게는 그리스도께서 통으로 들어가셨지만, 이방인에게 들어오신 그리스도는 작은 겨자씨같이 그 누구도 모르게 오셨다. 통으로 오셨다는 뜻은, 그리스도께서 오시자마자 바로 바울의 마음을 붙잡고 말씀을 전하도록 역사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이 그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율법과 복음을 그의 서신서를 통해 자세히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속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신으로 이 땅에서 계시면서 그 모든 것을 섭렵하셨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이방인 앞에 오신 그리스도는 계속해서 성장하여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하셨지만, 아직 세상을 향해 본격적인 사역은 하지 않고 계신다. 모든 때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성장하신다는 것은 마치 예수께서 이천년 전 이스라엘 땅에 육신으로 오셔서 삼십 년 동안 평범한 유대인으로 성장하신 것과 같다. 이 과정에서 예수는 율법을 따라 생활하면서 유대인의 생활과 관습을 배우셨고, 또한 그들의 희로애락과 죄악에서 허덕이는 안타까운 모습도 보고 자라나셨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키가 자라남과 같이 그 지혜도 함께 자라나셨다. 그리하여 성령을 받고 마귀의 시험을 통과하신 후 본격적인 사역을 하실 때, 삼십 년 동안 보고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유대인들에게 하늘나라에 대해 다양하게 말씀하실 수가 있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심정을 잘 알고 계셨기에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또한 죄가 전혀 없으시기에 율법을 모두 지킬 수가 있었지만, 이것을 지키지 못해 병에 걸린 하나님 백성들의 고통도 잘 알고 계셨다. 만약 예수께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와 말씀을 전한다면, 그의 말씀을 알아들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선과 악으로 판단은 하실 수 있겠지만,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유대인의 심정을 전혀 헤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끝까지 자신을 배척한 이스라엘 백성을 품고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셨고 결국 십자가에 기꺼이 매달려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셨다.


여기서 깊게 생각할 것은, 바울 속에 오신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 오셨던 예수가 부활한 후 영이 되어 바로 들어오셨기에 이방인의 특성은 잘 아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울을 좋아하고 따랐던 자(이방인)의 구원을 이루어졌지만, 그 구원받은 자 속에 다시 영으로 들어가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는 없었다.

 

놀랍게도 이방인 속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처음에는 겨자씨같이 작게 오셔서 이십삼 년이라는 세월 속에 소수의 이방 기독교인을 훈련 시키시며 그들을 통해 이방인의 특성을 다 체득하고 계신다. 그 이유는 사람들에게 알아듣게끔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이방인의 상황을 겪으면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그들의 죄악이 어떠하신지를 파악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온전한 능력을 갖출 정도까지 성장하신 후에 본격적으로 이방인 앞에서 구원의 사역을 펼칠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마음속에 있는 죽은 영과 싸움을 통해 이방인의 모든 영적 속성을 다 알게 되시는 것이다.

 

인간에게 역사하는 방법에 있어서 성령과 그리스도 영은 확연히 다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 사람에게 단회적으로 불같이 강하게 임재하시지만, 더 성장하는 일은 없고 자유의지를 제한하지도 않으신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속에서 감동으로 때로는 미세한 음성으로 말씀해 주심으로 죄악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아 주신다. 성령은 마치 아버지와 같으며 그리스도는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아버지는 가정의 법을 세우시고,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잔소리하면서도 그 법을 잘 지키도록 도와주어 가정의 화평을 도모한다.

 

그리스도 영은 한마디로 말씀이고 또한 빛이시다. 말씀이라는 뜻은 눈에 보이는 사람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가 하시는 말씀이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빛이라는 의미는 그리스도를 모신 자의 마음속에 계속해서 빛을 비추어 죄악을 깨닫게 해 주신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모신 자는 절대로 높아질 수가 없고 자신을 낮추는데 이런 자가 바로 소자(小子)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가 어떻게 사역하실 것인가에 대하여 미리 알려주신 것이 바로 씨뿌리는 비유이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마태13:3,8]

 

씨앗이 어떤 밭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결실의 양이 다르듯이, 같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더라도 자신을 얼마나 낮추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통해 구원받아 나오는 자의 숫자가 다르다. 사람을 통해 구원받은 자에게 또 그리스도께서는 씨앗으로 들어가 그 사람을 통해 또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게 된다. 사람을 통해 그리스도의 말씀(천국 복음)이 은밀하게 땅끝까지 전해지게 된다. 이렇게 쓰임을 받은 자들은 그 속에 그리스도와 함께하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함을 받게 되는데, 현재 기독교인은 성령 따라 살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지 결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는 주 앞에 선 일곱 영으로, 자신과 싸움에서 이겨 그리스도의 온전한 지배를 받는 자들을 말한다. 진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 속에 세워지는 무형 교회이다. 이런 자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세상에 전파하게 될 때, 그들의 말을 듣고 변화된 자들이 바로 144,000명의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들이 전 세계에 퍼져 이방인에게 영원한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악할 대로 악해져서 이들의 말씀을 무시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엄청난 환난을 일으켜 인간들의 고통을 심하게 되면 하나님 아들 앞으로 나오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흰옷 입은 무리이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그리스도 말씀을 듣고 그 앞에 나와 인격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여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의 열차에 탑승하게 되면 다행이겠지만, 여기서도 자신의 악을 발산하여 멸망의 길로 가는 인간들이 훨씬 더 많게 될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에 이 지구는 멸망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될 것이다. 부디 환난의 때가 오기 전에 이 말씀을 듣고 자신을 낮추고 있다가, 어느 날 도적같이 사람을 통해 오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게 될 때 자신을 버리고 나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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