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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작성자요한

작성일2019-08-03

조회수98

나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마태복음 2310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하시며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에도 불구하고 삼인칭으로 호칭하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예수와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하여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먼저 확실히 정의해야 할 것은 예수그리스도라는 용어의 의미이다. ‘예수는 이천 년 전 이스라엘 땅에 오셨던 오직 한 사람을 지칭하는 고유 명사이다. 그 당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이를 구별하기 위해 출신지를 붙여서 나사렛 예수라고 호칭하기도 한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Χριστός라 하여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가진 보통 명사로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고 한다. 이를 우리 말로 해석하면, 하나님께서 부여한 직책으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실 구세주또는 중보자라는 의미가 있는 말이다. 따라서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는 말이 되지만 그리스도는 예수이다라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성경에는 수없이 그리스도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데 이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 먼저 예수께서 어떻게 그리스도가 되셨는지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이방인의 그리스도에 대하여 명확하게 이해를 할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은 예수는 잠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그 안에 무한한 신의 능력을 갖추고 있어 그의 모든 일을 쉽게 이루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전혀 믿지 못하고 있는데, 자신은 이를 사실로 믿고 있다며 스스로 자랑스러워 한다. 언뜻 보면 믿음이 좋은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삼위일체의 한 분이신 예수께서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실 정도로 전능하시고 또한 사랑도 많으니 내 죄를 무조건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실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스스로 뭔가를 하기보다는 어떤 것이라도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만 하면 해결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좁은 길로 가라등등 수없이 믿는 자가 행해야 할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더구나 제자가 되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는데, 이런 말씀은 무시하고 오직 예수만 바라보고 기도만 해도 괜찮은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가 어떤 분이며 그리고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가 되셨는지 그리고 이방인은 그냥 예수를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의 이름만 불러도 구원이 이루어지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먼저 예수께서 어떻게 하여 그리스도가 되셨는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그분 역시 육체를 가진 한 인간이다는 관점으로 그의 행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도 자신을 인자라고 호칭하셨다. 그는 성령에 의해 잉태되어 그 속에 죄가 없으실 뿐, 육체와 성정을 가졌기 때문에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느끼시는 분이었다. 그리하여 성령을 받기 전 30년 동안 한 유대인으로 할례도 받고, 모든 율법을 다 지키며, 목수 생활을 하며 평범한 생활을 하셨다. 예수는 30년을 평범하게 사시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율법을 어기며 살 수밖에 없는 유대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실 수가 있게 되었다.

 

이렇게 평범하셨던 예수께서 때가 되어 성령이 그에게 임하자 제일 먼저 마귀의 시험을 받게 되셨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마귀가 눈으로 보이는 존재로 나타나 예수와 대화를 하면서 시험한 것이 아니라, 마귀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의 생각을 타고 시험을 했던 것이다. 이는 마치 마귀가 우리에게 죄를 짓도록 미혹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때 예수께서는 분명 성령이 함께 계셨기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잘 알고 있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실 수도 있었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육신의 유익을 위해 쓰지 않으시고 단호히 물리치셨다. 만약 예수께서 가진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을 위해 썼다면 그는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는 교만에 넘어져 결코 그리스도가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한 인간이셨다는 것을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의 내용이다. 예수께서는 다른 인간들과 똑같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시고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가를 잘 알고 계셨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22:42]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겪어야 할 죽음의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에 피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셨다. 얼마나 큰 고통을 심하게 느끼셨으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를 하셨을까? 하지만 자신 생각을 꺾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십자가에 매달려 그 모든 수치와 고통을 담당하신 것이다. 십자가에 매달려 너무 고통스러워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시며 외치셨는데, 그 뜻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의미이다. 이때 그와 함께하신 성령께서도 침묵하고 계셨기에 그 모든 고통을 예수 혼자 담당하셔야 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 속에 죄가 없으셨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죄없이 창조되어 하나님과 동행했던 아담이 마귀에게 넘어진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담 역시 죄 없는 상태였지만, 그는 아내의 말을 듣고 결국 마귀에 미혹에 넘어졌고 그로 인해 그 후손인 온 인류가 하나님과 단절되어 죄악의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평범한 인간의 속성을 다 갖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갖고 계셨기에 굶으시면 배가 고프고, 못에 찔리면 엄청난 고통을 느끼시는 분이다. 예수께서는 그 모든 시험을 통과하셨고 죽기까지 순종하셨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셨다. 그리하여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육체로 이스라엘 땅에 계실 때는 그의 이름을 부르는 유대인들을 율법을 어긴 자범죄에서 해결해 주셨다. 또한 그 뒤 흠 없는 피를 흘려 주셨기에 자신을 믿는 어떤 자라도 마귀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그의 원죄를 사해줄 수가 있게 되셨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2:36]

 

예수께서 처음 성령으로 잉태되셨을 때는 그리스도의 자격은 갖추셨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최종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이후이다. 만약에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에서 넘어졌다면, 만약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는 것을 거부하고 도망갔다면, 그는 결코 그리스도가 되지 못했다. 비슷한 예로 만약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행동을 하지 못했다면, 그 역시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고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을 좀 이해하려면 예수와 나 자신과 비교를 해 봐야 한다. 만약 당신이 마음속에 죄가 없고 성령을 받았다고 한다면 예수께서 하셨던 것을 다 이룰 수 있겠는가? 마귀의 시험을 통과하고, 자기 동족으로부터 이단이란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사역하고, 또한 마지막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죽어야 한다고 한다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는가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그 누구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일을 하셨기에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예수가 그리스도(구세주)가 되신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는 부활하여 영이 되시어 하늘에 계시고 이 땅에 육체로 계시지 않는데, 우리 이방인의 구원은 어떻게 되는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그 예수를 보지도 않고 그리스도로 믿기만 하면 자신의 죄를 다 용서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이 없으신 분이다.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으로 인해 예수 믿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율법도 없는 이방인은 단지 예수를 입으로 믿겠다고 말만 해도 구원을 해 주신다면 과연 공평하신 분일까? 이방인으로서는 엄청난 은혜라고 좋아하겠지만, 유대인 입장에서는 결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유대인의 구원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그 당시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감히 하지 못하실 이적을 베푸셨지만, 이것이 자신의 능력이라 말하지 않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고 자신을 한없이 낮추셨다. 이러한 이적을 본 대부분 유대인은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감탄은 했지만, 정작 그 일을 하신 예수가 누구이신지 큰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모습은 너무 초라했고, 때로는 율법도 범하고, 정말 미천한 자들과 함께 다녔기에 별볼일 없는 자로 여겼다. 심지어 예수를 따라다니던 제자들도 예수께 당신 말고 하나님을 직접 보여달라고 했다.

 

이렇게 자신보다 못나 보이는 예수를 제쳐두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 반면에 그 초라한 외모의 예수께 마음으로 다가온 자들만 구원을 받았다. 좋은 예로 열 명의 문둥병자를 예수께서 안타까워 고쳐주셨지만, 아홉은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예수께 오지 않았다. 그러나 사마리아인 한 사람은 돌아와서 예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결국 그 한 사람만 구원받았다. 참으로 놀라운 하늘나라의 비밀이 아닐 수가 없다.

 

유대인에게는 육체로 오신 예수를 하나님께서 선의 기준으로 세우시고 그를 믿는 자를 구원해 주셨다면,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에게 맞는 선의 기준이 필요하다. 유대인은 율법 아래서 이천 년 동안 생활했기 때문에 율법이 걸림돌이 되어 그 예수를 믿기가 어려웠는데, 율법 없이 아무렇게 살았기 때문에 예수를 믿기가 쉽게 되어 그들을 구원시켜 주신다면 유대인이나 그 이전 사람들은 지옥에서 단체로 날마다 하나님께 원망하며 불평을 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이방인에게도 선()의 기준이 되는 자를 이 땅에 보내셨는데, 그분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 영을 마음에 받아들여 자신과 싸움에서 이긴 자이다. 영은 육체를 입지 않고는 말씀을 하실 수가 없으므로 부득불 사람의 몸에 들어오셔서 그 입을 사용해야 한다. 성령은 단번에 강하게 그 사람의 영을 지배하시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영으로 그 사람의 마음속에 아주 작은 겨자씨같이 들어오신다. 그 이유는 모든 이방인 속에는 이미 터줏대감인 주인(옛 자아, 죽은 영)이 있으므로 그를 무작정 쫓아내고 완전히 그 마음을 합법적으로 지배하실 수가 없다. 이것이 엄격한 영들 세계의 위계질서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영을 마음에 모신 자는 자신의 옛 주인인 죽은 영과 싸움이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 마음속에서 선과 악이 싸우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렇게 싸움을 할 때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옛 주인의 말을 따를 것인가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이다. 만약 그리스도의 영이 작은 씨로 들어오셨지만 그 말씀을 무시하고 옛 주인(자기 생각)의 말을 듣게 되면, 그 씨는 유산되어 더이상 자라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예수께서 마귀와 싸움을 하셨듯이 이방인이 그리스도로 거듭나기 위해 거쳐야 할 필연적인 영적 싸움이다. 예수께서 마귀를 이겨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받으셨듯이 이방인 또한 이러한 영적 싸움에 이겨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게 된다. 자기 마음속의 싸움에서 그리스도 말씀에 순종하여 이긴 자는, 그 말씀이 자라나 나중에는 옛 주인이 도망하고 새가 깃들 만큼 엄청나게 큰 나무로 자라게 된다. 이렇게 싸움에서 이긴 자가 되어야 또 다른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게 되는데, 이러한 사람이 바로 이방인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놀랍게도 지금 이 땅에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자신과 싸움에서 이겨내신 한 분이 계신다. 그는 바울과 같이 부활하신 예수를 빛으로 만났고, 그 뒤 마음속에서 미세하게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옛 자아와 엄청난 싸움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나오셨다. 그리한 후에, 날마다 속에 말씀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으면서 자신과 싸움을 이겨낼 수 있는 사역자들을 키워내시고 있다. 만약 그의 말씀을 들은 자들 역시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그리스도 영이 그들 마음속에도 또한 들어가 역사하기 시작한다. 만약 이들 역시 자신의 자아와의 싸움에서 이겨낸다면, 그들 역시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거듭난 자들이 바로 이방인의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영을 그 마음에 모신 자로 죄 사함의 권세까지 함께 갖고 된다. 이스라엘 땅에는 나사렛 예수 한 분이 그리스도의 직분을 담당하셨지만, 70억이나 되는 현재 이방인의 구원은 한 몸으로는 담당하실 수가 없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여 영적 싸움에서 이긴 자를 하나님께서는 양자(그리스도)로 삼아 이 세상 끝까지 말씀을 전하게 하신다. 이들이 바로 계시록에 나오는 144,000명의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만약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먼저 자신과 싸움을 이겨내고 내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해 주신다면, 그분이 바로 나의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분과 동일하게 나의 옛 자아를 이긴다면, 말씀()이 내 마음에 늘 떠나지 않고 자리를 잡고 있으므로 죽기까지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신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전해서 내 말을 받는 자가 말씀으로 거듭나게 되면, 나는 그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 수많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지만, 정작 나의 그리스도는 오직 내게 말씀을 전해 주고 그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한 분이다.

 

이렇게 이방인에게는 한 사람으로 시작하여 수많은 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가 나타나 이 세상을 향해 영원한 복음을 전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들에게 펼쳐질 구원의 여정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있는 그리스도가 될 수가 있지만, 아무나 될 수가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자신과 싸움에서 이긴 자만 될 수가 있다. 그래서 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를 향해 이긴 자만이 생명록에 기록되고 성전의 기둥이 된다고 했는데, 이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중요한 사실이 있다. 말씀을 받는 자와 전하는 자의 태도이다. 먼저 말씀을 받는 자가 영적 비밀과 말씀의 내용에 놀라 그것을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는 감사하지만, 전하는 자의 외모는 자신보다 초라하고 미천하여 무시할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이런 자에게는 구원이 완성되지 않는다. 마치 유대인이 예수의 이적과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능력에 영광을 드렸지만, 그 일을 행하는 예수를 믿지 못해 구원에 이르지 못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받는 자는 전하는 자를 자신의 그리스도(메시아)로 믿고 따를 때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가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 말씀 전하는 자의 태도 역시 중요하다. 만약 어떤 자가 말씀을 듣고 자신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를 때,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높아진다면 그는 이미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다가 쫓겨난 마귀와 같이 교만한 자가 되어 결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가 없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엄청난 일을 하셨지만,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 돌렸지 그 공로를 가로채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그를 높이고자 하셨을 때 이를 책망하고 항상 낮은 자리에 앉아계셨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자는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나왔음을 인정하고 항상 죄인으로 낮아지는 것이다. 이처럼 이방인의 구원은 한 사람으로 시작하여 전 세계에 여러 사람으로 흩어지더라도 영적으로는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오직 자기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자신의 그리스도에게 그 모든 공을 돌리는 것이다.

 

이렇게 놀라운 일이 지금 우리 앞에 은밀하게 펼쳐지고 있다. 과연 자신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는 전적으로 이 말씀을 듣는 자에게 달려 있다. 자신을 예수 믿어 의롭게 되어간다고 생각하는 자는 이 모든 말씀을 배척하겠지만,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한 그 잘못을 마음으로 깨닫는 자는 이러한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나올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앞에 나오는 첫걸음이고 자신과의 첫 번째 싸움이다. 대부분 사람은 이러한 첫 관문을 통과하기가 어렵겠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참으로 놀랍고도 놀라운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가 아닐 수가 없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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