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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론과 인격으로 오신 그리스도

작성자요한

작성일2019-08-26

조회수51

삼위일체론과 인격으로 오신 그리스도

요한일서 56~8

 

모든 종교에는 믿음의 대상이 있다. 불교는 부처를 믿고 이슬람교는 알라를 믿는다. 하지만 저들의 믿음 대상의 배후에는 사단이 역사하고 있다. 기독교는 참 신()이신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다. 삼위일체란 하나님은 성부, 성령 그리고 성자로 서로 다른 위격(位格)으로 존재하나 그 본질은 같다는 의미이다. 현재 기독교인이 받아들이고 있는 삼위일체론은 초대교회부터 언급되기 시작되었으며, 4세기경 어거스틴이 정리한 내용으로 만약 누군가 이것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말하면 바로 이단으로 정죄하는 기독교의 절대적이고 핵심적인 교리이다. 그러나 정작 이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으며 단지 신비롭고 난해한 하나님의 섭리라고만 주장하고 있다.

 

삼위일체론이라는 방대한 책을 저술한 어거스틴의 꿈 얘기는 유명하다. 꿈에서 한 어린아이가 표주박으로 바닷물을 모래밭의 작은 웅덩이에 옮기는 것을 보고 무엇을 하느냐고 그가 물었다. 그러자 그 애는 이 바닷물 모두 옮기고자 한다고 하자, 어거스틴은 애야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하자, 그 어린아이가 돌아보며 내가 바닷물을 이 작은 웅덩이에 옮기는 것보다 당신이 인간의 머리로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이해하려는 것이 더 어리석다라고 한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꿈에서 깼다는 일화가 있다. 인간의 머리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하나님께서 그에게 꿈을 통해 깨우쳐 주셨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수많은 인간이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이성과 지식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렇게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기독교 교리는 어리석고 악할 뿐만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게 지옥으로 인도하는 안내서 역할을 하고 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서로 다른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동일한 영으로 간주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영적 세계를 전혀 알 수가 없는 기독교인이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같은 영으로 인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첫 번째는 바울의 심정을 전혀 모르고 그가 기록한 성경 구절들을 자신들의 기준에서 해석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영과 성령을 거의 동시에 받았고 함께 역사하시기에 그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또 다른 이유는, 성령을 받은 자신들을 구원받은 자로 확정하기 위함이다. 만약 성령 이외에 그리스도 영을 또 받아야 한다면 기독교인의 구원이 무너지기 때문에 다르다는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세 번째 이유는, 기독교 역사상 바울 이외에 그 누구도 그리스도 영을 받은 자가 없었기에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수많은 신학자 모두가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동일하다고 주장하니, 이를 아무런 의심도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삼위일체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부 하나님은 천사들(영계)과 이 세상 만물(물질계)을 창조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분이다. 또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며 권세 자들을 내세워 세상을 통치하신다. 하나님은 이 세상 그 어떤 곳에도 편만하게 계시기에 믿는 자나 믿지 않는 불신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신다.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5;45]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옛 속담이 있다. 우리 조상들이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셨기에 이런 속담이 생기게 되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불신자라도 절체절명의 순간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그 요구에 응답해 주신다.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한 사람이 전심으로 살려달라고 기도하니 거북이가 나타나 그 등을 타고 구출된 사건이 예전에 있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마음 중심에서 애간장이 다 녹는 심정으로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 기도 응답을 받아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육신에 관한 것으로 영생하고는 상관이 없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 각 사람의 영을 지배하시는 분이다. 아담의 타락으로 마귀의 하수인이 된 인간은 예수가 부활하시기 전까지 모두 마귀의 지배하에 있었다. 하지만 마귀는 죄 없는 예수를 죽게 하여 그의 많은 죄악이 만천하에 드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세상 임금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 결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지은 원죄를 사해주고, 그 증거로 성령을 보내주시고, 성령으로 하여금 인간의 영을 지배하시고 또한 영적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신다. 성부 하나님은 만물과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없이 역사하지만, 성령께서는 예수의 이름을 부른 자들에게만 특별히 역사하신다. 또한 율법 아래 살았던 유대인은 성령을 받으면 구원이 완성되지만, 아무런 법도 없이 살아온 이방인들에게는 성령이 영적인 율법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유대인은 태어나서부터 율법의 제재 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그들 마음은 우리 이방인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들이 율법을 어기면 죄악이 외부에서 들어오지만, 그 마음 밭이 근본적으로 악하지 않기에 예수께 나아오기만 하면 그 속의 죄가 해결되고 마음이 깨끗해진다. 그리고 그 뒤 성령을 받으면 그들은 성령 온전히 따라 살 수가 있었다. 다시 말해, 영과 혼을 가로막고 있는 휘장이 찢어서 온전히 성령에 순종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만약 그들이 성령을 어기면 이 땅에 더 이상 살아야 할 의미가 없어지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육은 멸하고 영은 구원해 주셨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령을 속이자 죽임을 당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이었다.

 

초대교회 시절 유대인에게 임하셨던 성령의 역사는 대단하였다. 율법에 매어 살았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직접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었기에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강하게 역사하시어 많은 이적과 표적이 나타났다. 이러한 표적을 본 유대인이 이것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을 알았기에 제자들의 말을 듣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만 해도 죄를 해결 받고 성령이 임하셨다. 사도행전을 보면 하루에 삼천 명이나 되는 유대인이 한꺼번에 믿었던 역사가 기록돼 있다. 이렇게 성령을 받았던 유대인들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킬 수가 있었다.

 

한편 이방인은 주어진 율법도 없었고 말씀을 전해주는 선지자도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 방법이 없었다. 바울로 시작된 복음이 전 세계에 퍼져 이들은 누군가 전해준 말씀을 듣고 예수 이름을 부르자 성령이 임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적 백성이 되었다. 그들은 그때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천국과 지옥 같은 영적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성령을 받으면 처음에는 마음이 뜨거워 눈이라도 빼줄 것처럼 그리고 전 재산이라도 다 바칠 것 같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 할 정도로 냉랭해 질뿐 만 아니라, 끝에 가서는 하나님이 없는 사람같이 생활한다.

 

이같이 이방인은 성령을 받아도 유대인과 다르게 성령을 따라 살 수 없는 결정적인 원인은 마음속의 죄악이 해결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령이 그 사람 영을 지배하신다고 해도, 마음속에는 죽은 영이 항상 죄를 범하도록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금식하고 기도 열심히 하면서 세상과 분리된 생활을 하면 죽은 영의 활동이 잠시 멈추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성령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세상과 짝하게 되면 죄가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렇게 이방인은 끊임없이 성령과 세상 사이에 왔다 갔다 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고 이미 마음 판의 죄악을 해결 받은 후에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성령 따라 살 수 있지만, 기독교인에 있어서 성령은 영적인 율법 역할만 하실 뿐 구원을 완성시키지 않는다.

 

삼위일체의 한 분인 성자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직 인간의 죄악을 해결해 주시는 역할을 담당하신다. 기독교인의 심각한 오해는 성자를 유대 땅에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셨고, 이제는 부활하시어 한 분의 영체(靈體)로 하늘나라에 계신다고만 생각하고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그 모든 것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더 이상 이 땅에서 하실 일은 없으며, 오직 하나님 우편에서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경배의 대상으로 섬길 뿐 나의 주인이 되시어, 나를 이끌어 주실 분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잘못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방인의 구원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그 마음속을 지배하던 옛 자아(죽은 영)가 떠나가고 그리스도께서 주인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세상을 쫓지 않고 온전히 성령 따라 살 수가 있다. 놀랍게도 예수께서 부활하여 영이 되셨기에 이제 성령과 마찬가지로 우리 각 사람에게 오실 수가 있다. 성령은 인간의 영을 지배하실 뿐,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시지 못하신다. 오직 영이 되신 그리스도만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실 수가 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는 육체를 입으신 적이 있기 때문에 영으로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세 분의 다른 위격으로 계시며, 그 하시는 일이 확실히 다르지만 죄가 없으신 관점에서는 모두 같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삼위일체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죄악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격을 갖고 이 땅에 직접 오셔야 한다는 사실이다. 인격이란 사람에게 나타나는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성향을 말한다. 인격으로 오셔야 하는 이유는, 먼저 인간의 삶을 직접 경험하면서 살아봐야 인간의 심정을 이해하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 영이라서 인간을 오직 선과 악으로만 판단하신다. 만약 성령의 법을 그대로 인간들에게 적용하게 되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자는 한명도 없다. 그런 폐단을 막고자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인격을 입고 오셔서 인간의 형편과 사정을 이해하시고,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시기 위해서 직접 이 땅에 인격적으로 오시는 것이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이런 사실을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 그리스도를 만나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천년 전 유대 땅에 성령에 의해 잉태되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 아들이 바로 나사렛 예수시다. 그는 성령을 받기 전 30년 동안 한 유대인으로 할례도 받고, 모든 율법을 다 지키며, 직업으로 목수 일을 하며 평범한 생활을 하셨다. 예수께서 평범하게 사시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율법을 어기며 살 수밖에 없는 유대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실 수가 있게 되었다.

 

또한 예수께서는 최악의 육신 고통 가운데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쓰지 않으시고 단호히 물리치셨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다른 인간들과 똑같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시고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가를 잘 알고 계셨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평범한 인간의 속성을 다 갖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시험을 통과하셨고 죽기까지 순종하셨기에 최종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아들로 인정받아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는 그리스도가 되셨다. 예수께서 이렇게 하실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성령께서 그를 전적으로 붙잡아 사용하실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원죄도 없이 태어나셨고 살아오면서 죄를 전혀 짓지 않으셨기에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백프로 장악하셨기 때문에 그 모든 일을 이루실 수 있었다.

 

예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인격을 입고 오셨기에, 유대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실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율법을 어겨서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길 수 있었으며,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는 세리와 창녀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의 죄를 도말하여 주셨다. 만약 하나님의 법으로만 그들을 판단한다면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그 앞에서 살아남을 자는 한명도 없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의 이름을 부르는 유대인들에게 긍휼을 베푸사 율법을 어긴 자범죄를 해결해 주셨다. 또한 십자가에서 흠 없는 피를 흘려주셨기에 자신을 믿는 어떤 자라도 마귀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아담이 지은 원죄까지도 사해주셨다.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서는 유대인의 심정을 이해하실 수 있도록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예수는 부활하여 하늘나라에 계시다가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영으로 사람을 통해 인격적으로 이 땅에 다시 오셨다.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서는 죄 없는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서는 죄인 된 인간의 몸을 빌려 그 마음속에 영으로 다시 오신 것이다. 영은 육체를 입지 않고서는 말씀을 하실 수가 없으므로 부득불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인간의 입을 사용해야 한다. 성령은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단번에 오셔서 인간의 영을 지배하시지만, 그리스도는 영으로 사람의 마음속에 아주 작은 겨자씨같이 오신다. 그리하여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죽은 영과 싸움에서 이겨야 이방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메시아가 되실 수 있다.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죽은 영에게 지고 말았지만, 그리스도는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 있던 죽은 영과의 싸움에서 이기셨기 때문에 이방인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구세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마음을 통해 인격적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서는 유대인의 한 사람으로 오셨듯이, 이방인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이방인의 속성과 심정을 아시기 위해 인격으로 오시는 것이다. 유대인과 달리 이방인은 죄악 가운데 태어나 죄를 먹고 마시는 개, 돼지와 같은 존재이다. 따라서 이들의 마음속에 어떤 죄악이 있는지 어떻게 넘어지는가를 아시기 위해서 한 사람의 이방인 몸을 빌려 이 땅에 다시 오신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통해 인격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죽은 영을 물리치시고 그의 입술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격을 드러내고 계신다. 만약 이스라엘 땅에 오셨던 그 경험만 갖고 계신다면 날마다 죄를 먹고 마시는 이방인들을 결코 이해하실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죄성과 심정을 구구절절 아실 수가 있을 정도로 그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하시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도 긍휼을 베풀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며 그리스도께서 인격적으로 우리 앞에 오신 이유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신다면, 그 앞에 살아남을 이방인은 아무도 없다. 또한 유대인의 기준으로 이방인을 판단해도 구원받을 자는 극소수이다. 더구나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성령을 어긴 죄인이다. 유대인 그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었듯이, 기독교인들 또한 그 누구도 성령 따라 살 수가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긍휼을 받지 않지 않으면, 기독교인들은 그 누구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이제 이방인들 앞에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이방인들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숨은 죄악을 들추어내실 것이다. 이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나오는 자에게는 한없는 사랑으로 그를 품어주시어 그 사람 속에도 영(말씀)으로 다시 들어가시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다시는 죄악 가운데 살지 않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또한 한번으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길이길이 참으시고 그들이 죄에서 돌이켜 나올 때까지 말씀을 전해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을 몸소 실천하시며, 우리들에게 그것을 직접 보여주시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오래 참고 그리스도는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그리스도는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그리스도는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자신과 같은 모습을 가진 사람을 통해 말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보다는 그를 판단하여 무시하거나 대적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그 속에 죽은 영이 틀림없이 방해를 할 것이기 때문에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나마 자신을 못났다고 낮추는 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마치 세리와 창녀 그리고 율법을 어겨 병든 유대인들이 예수께 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사람을 통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앞에서 인격적으로 말씀하실 때 각 사람의 정체는 숨김없이 모두 다 드러날 것이다. 인간은 악한 영적인 존재라 자신도 속고 있고 또한 남도 속이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폐부를 찌르는 말씀을 하실 때, 그것을 시인하고 나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

 

자신보다 못한 모습을 한 인간의 말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으로 예수를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이스라엘 땅에 보내서 유대인을 구원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당신의 아들을 보잘 것 없는 자를 통해 이 땅에 보내서 이방인을 구원하시고 또한 심판도 하실 것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양과 염소의 비유를 들어 다음과 같이 하신 말씀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25: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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