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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성령의 은사

작성자시므온

작성일2019-01-24

조회수47

성령과 성령의 은사 

고린전서 121-31

 

성령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 하신 후 각 사람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해 보혜사로 오신 하나님의 영이시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도 없고, 예수를 주라 시인 할 수도 없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를 다니며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시인하는 자는 누구나 성령의 지배아래 살고 있는 것이다

 

구약시대에서는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을 붙잡고 역사 하셨지만, 성경께서 계속 머무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중에서 마음이 깨끗한 자를 선지자로 택하여 그들 입을 통해서 말씀도 하셨고 또한 구약 성경을 쓰게 하신 것이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먼저 임하신 것이다 성령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머리 위에 임하여 우리를 마귀의 발아래서 벗어나게 하신 것이다

 

성령의 의미가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하여는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유대인에게는 하나님께서 육신에다 율법을 주셨는데, 그 율법 지키는 것을 고집하다가 육신으로 오신 예수를 믿지 않았다. 그들 중에서 율법을 지키지 못하여 육체가 병든 자들은 자신의 질병을 치유 받기 위하여 예수님 앞으로 나온 자들은 육체의 질병을 치유 받았을 뿐만 아니라 죄도 해결 받았다. 이들은 자 범죄(율법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고, (예수의 살, 자 범죄)과 성령(예수의 피, 원죄)으로 거듭나서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 제자들이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성령 받으라고 그렇게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고는 절대로 성령을 받을 수가 없다. 제자들을 비롯하여 성령 받은 유대인들은 성령에 사로잡혀 죽음을 불사하고 예수를 전하다가 대부분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순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율법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다 전도를 받아 예수 이름을 부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로 인하여 성령을 먼저 받아서, 그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할 의무를 가진 백성이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성령을 어길 경우, 즉시 죽임을 당하게 되지만, 우리 이방인은 성령을 어겨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하나님께서 너무 불공평 하신 것이 아닐까? 그 이유는 이방인들에게는 성령은 율법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 성령을 어긴 죄악을 통해 나중에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앞에서, 성령을 거역한 죄를 시인하고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이 이루어지게 된다. 같은 성령이지만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게 하시는 역할은 이렇게 다른 것이다

 

성령은 다양하게 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를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도 니고데모에게 바람이 불어도 그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하셨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도 이와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령 받은 자에게 여러 가지 형태의 은사를 주셔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주시고 또한 서로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하여 주시는 것이다

 

은사는 다른 말로 하면 선물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의 영을 지배하시고 하나님을 믿도록 도와주시고 은사는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천사로 하여금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서 서로의 덕을 세우기 위해 부여한 능력이다. 특별한 은사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성령이 없는 것이 아니고 또한 타고난 성품을 은사로 말하는 것도 잘못 된 것이다. 은사는 반드시 성령을 통하여 나타난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는 크게 방언, 통역, 신유와, 같은 이적적인 은사와 사도, 선지자, 교사 등 직분의 은사로 나눌 수가 있는 것이다. 은사가 이렇게 여러 모양으로 각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나타난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은사를 잘 사용 할 수가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은사를 받은 사람이 좋은 일을 많이 할 때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고 떠 받들게 되면 겉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지만, 그 마음속에는 은근히 교만이 나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변해서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육신의 본능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는 각 사람에게 부분적으로 주어지고 온전한 것으로 주시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자신이 가진 것이 더 크다고 자랑하고 남의 것을 낮게 보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서신을 통해 큰 은사를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서로 다투고 이로 인해 혼란스러운 것을 일깨워 주고자 하였다.

 

이것은 그 당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마음이 교만한 자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다. 그럴 때 답답한 마음에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또는 그 자리에 악한 영이 지배하여 겉으로 보면 성령의 역사와 유사한 결과가 나와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성령의 역사는 반드시 유익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성령은 은사를 통해 그 사람이 사회적 지위나 돈이나 명예나 그 어떤 육신 적인 것들이 드러나면 그것이 하나님 쪽에서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마귀가 미혹하여 역사한 결과인 것이다

 

오늘날 이단의 우두머리들이 대부분 처음에는 엄청난 은사를 받아 하나님의 일로 시작했으나, 결국 이것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수단으로 변질시켜 나가다보니,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회수당하고 난 후에는 사단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한국교회에 이런 자들이 부기수다. 일반 기독교인들은 자신은 이단들과 같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안심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성령이 뜨겁게 역사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음이 악하여 짐에 따라 성령의 은혜로 살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은사는 회수당하고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답답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인의 현실인 것이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게 편지하기를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 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하면서 처음에는 성령을 따라 살다가 나중에는 육으로 돌아가는 것을 탄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와 같이 성령이 인간에게 역사하시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령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은 인간의 영을 지배하여 하나님 뜻대로 살아 보라고 권하시고 은사를 주시어 서로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죽은 영이 인간의 마음()을 지배 하고 있는 한, 인간은 어느 누구도 성령 따라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성령과 육체의 소욕은 서로가 대적 하는데 결국 그 누구도 자신의 소욕을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죽은 영이 있는 한 절대로 성령을 따라 살 수가 없다. 성령께서는 인간의 속마음까지 바뀌어 주시지는 않는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주인이신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바꾸어 주셔야 하는 것이다. 내마음속에 오셔서 나의 주인이 되실 분이 바로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이 나를 지배하시면 내가 성령을 온전히 따라 살 수가 있는 것이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말씀하면서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하면서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사랑은 성령의 은사가 아닌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사랑의 결정체인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나를 주관하실 때, 비로소 내가 모든 것을 온전히 알고 장성한 사람이 되어 어린아이의 일을 버린 수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영적인 백성이다. 그들은 성령을 따라 살아보려고 노력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러야 성화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는 결코 도달 할 수가 없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방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죽은 영이 떠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들은 애써 이것을 무시하고 그렇게 되리라 믿고 성령을 따라 살아보려고 하는 것은 마치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께 의롭게 됨을 드러내고자 하면서 자기의 의를 쌓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유대인들처럼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데, 누구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우리 앞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나와서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자범죄를 해결 받아야 한다.

 

때가 되면, 그동안 우리에게 막혔던 모든 의문을 어린양이 오셔서 인()을 떼서 풀어 주신다고 하였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도적같이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이고 살아야 진정한 성령의 뜻을 따라 살고, 더 나아가 그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천국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의 의()에 사로 잡혀 사는 자는 결국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주시는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마지막 복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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