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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용서하는 자

작성자베드로

작성일2019-01-27

조회수30

마음으로 용서하는 자

마태복음 1821-35

 

본문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하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라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는 것은 무한대로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용서에 대하여 아래의 비유로 설명을 하시면서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떤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와서 도저히 자신이 갚을 수가 없으니 용서해 달라고 애원을 하자, 그 임금은 그 엄청난 빚을 아무 조건 없이 다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탕감 받은 자가 밖에 나가서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보며 그에게 당장 갚으라 하자, 이 소식을 들은 임금이 그를 다시 잡아서 옥에 가두는 내용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주님은 아래의 말씀같이 형제들의 잘못을 마음으로 용서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18:35)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인간이 마음중심에서 그 형제를 용서한다는 것은 참으로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인간들 사이에서 용서라는 개념은 서로가 감정이 쌓였을 때, 화해하는 수준을 가지고 용서라고 하는데, 주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다른 사람을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탕감을 많이 받아 본 자는 절실히 은혜를 느끼고 다른 사람을 탕감해주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일만 달란트 빚진 자는 왜 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게 긍휼한 마음이 없었을까요? 일만 달란트나 되는 빚을 탕감 받았지만, 한마디로 은혜가 얼마나 큰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근본 자체가 교만과 아집이 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 본질이 나와 자기가 탕감 받았으면 남도 탕감해 주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긍휼을 베풀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죄 문제를 놓고 말하고 있는 것 입니다.주인에게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는 그 은혜를 모르고 당연한 듯이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했고 자기 동관이 자기에게 빚진 것만 크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진정으로 우리 죄를 탕감 받은 것을 안다면 그 사람은 상대방이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용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산부인과 간호사가 아기를 낳아보지 않고 이론으로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해도 직접 경험이 없이는 산모의 고통을 알 수 없습니다. 산모의 고통은 아기를 직접 낳은 산모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만 달란트나 되는 우리의 죄악을 주님으로부터 탕감 받아 본 사람만이 은혜를 알게 되고 비로소 남을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로 인해 탕감을 받고 자기의 목숨을 다해 주님을 위해 살았던 그런 삶을 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은 아직 온전히 죄를 탕감 받아 구원받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율법도 없이 살아가던 우리 이방인들에게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가 채찍에 맞아 피 흘려주신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성령을 받고 우리의 원죄까지 사함 받았지만, 아직도 기독교인들 마음속에는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가 남아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인 율법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이 영적인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유대인이 율법을 지키며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법은 마음속으로 미워만 해도 살인이고, 남의 것을 탐내기만 하여도 도둑질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생각만 해도 죄가 되는데 과연 누가 이 법을 제대로 지킬 수 있겠습니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지킬 수가 없는 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이런 법을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를 사함 받게 되어, 그때야 비로소 우리 기독교인들도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 주인이 되어 주십니다. 그렇게 온전히 죄를 탕감 받은 사람만이 마음중심에서 남을 용서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속으로 늘 주님을 사모하고 본인의 죄악성을 심각하게 깨달으며 자신을 낮추고 산다면, 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을 통해 말씀 하실 때 그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그분 앞에 나아가 영적인 율법을 따라 살지 못한 나의 죄를 고백하고, 죄를 사함 받아 내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분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어떤 원수라도 그때는 모두가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사도 바울처럼 나도 죄인 중에 괴수라는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거듭난 후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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