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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것을 페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기 위함이다.

작성자베드로

작성일2019-07-12

조회수64

첫째 것을 페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기 위함이다.

20;24-29

 

본문 말씀을 보게 되면 의심 많은 도마가 나온다. 그는 예수의 제자로서 예수와 함께 다니며 많은 이적을 보고 하늘나라 말씀을 엄청나게 들었는데도 예수께서 부활하셨다고 다른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자신은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의 입장에서는 부활을 믿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의심 많은 도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내속이 그리스도로 변화되지 않고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현재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을 보게 되면 주일성수하고, 헌금 잘하고, 봉사 잘하게 되면 좋은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의무이지 믿음이 아니다. 말 그대로 신앙으로 둔갑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기독교인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유대인의 구원과정을 통해서 기독교의 형식이 무엇인지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잘 지켜서 구원받는다고 생각하여 소 잡고 양 잡아서 자기가 지은 죄악들을 씻어보겠다고 노력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613가지나 되는 율법은 모두 지킬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죄로 더 얽어매어 장차 오실 예수를 만나 그 앞에서 죄인으로 손들라고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이시다.

 

이렇게 육체의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을 구원시켜 주시기 위해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육체를 입고 오셨다. 정작 자기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가 오셨지만 형식적으로 율법을 잘 지킨다는 바리새인, 율법사, 서기관들은 예수를 배척하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죄인으로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하던 세리와 창녀, 그리고 문둥병자 등 육신의 병든 자들이 예수 앞에 나와 병도 고치게 되고 죄 사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유대인의 구원과정에서 나타나듯이 율법과 같은 첫째 것은 페하시고, 둘째에 해당하는 예수를 실체로 보내서 그로 인해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다시 말해, 율법으로 의로워져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유대인들은 육체로 온 예수를 믿어야지만 구원 받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우리 이방 기독교인들도 유대인과 똑같은 과정을 거처야 한다.

 

현재 기독교인은 대형교회에서 겉모습이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 놓고 많은 성도들이 모여 분위기에 휩싸여 드리는 예배를 참다운 예배라 생각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이 바로 형식에 젖은 종교 행위이다. 마치 유대인이 성전에서 거룩하게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기독교의 형식을 살펴보면, 주일 예배는 주보 순서에 따라 사도신경을 외우고, 찬양을 하며, 설교 말씀을 하고, 축도로 끝나는 것이 오늘날 기성교회의 현실이다. 이것이 바로 형식에 따라 모든 것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와 같이 현재 기독교인이 예배 열심히 드리는 것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것과 같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것은 육체로 오실 예수를 바라보는 첫 것에 해당되며,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열심히 드리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첫 것에 해당된다. 유대인들이 온전케 되려면 둘째 것에 해당되는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믿어야 하고, 기독교인들이 온전케 되려면 둘째 것에 해당되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된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자신이 드리는 예배를 첫 것에 해당하는 모형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은 예수 이름을 부름으로 원죄를 사함 받고 그 증거로 성령 받은 것을 구원 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여 이러한 행위들을 반복해서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형식적인 예배를 하나님을 향해 드린다고 하는 것은 종교적인 행위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때가 되어 기독교인 앞에 둘째 것에 해당하는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유대인에게는 먼저 율법(첫 것)을 주시고, 그 뒤 예수(둘째 것)를 보내 주셔서 그들을 율법 어긴 죄에서 구원을 하셨듯이, 이방인에게 실체인 그리스도를 보내사 성령 어긴 죄를 해결해 주시고자 하신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영적인 백성이라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영으로 이방인들 중의 한사람을 통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이방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하나님 백성이라 성령을 받게 되면 성령의법(영적인 율법)을 지키며 살아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 하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들어오기 전에는 이 법을 지키며 살아갈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성령과 그리스도 영이 하는 일과 내 마음속에 산영이신 그리스도가 왜 계셔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의 피가 세상에 흥건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나 예수 이름을 부르면 원죄를 해결 받고 마귀 발아래서 나와 하나님 백성이 되고 그 증표로 성령을 받는다.

 

기독교인은 이렇게 원죄는 해결 받았지만 여전히 혼적인 문제(자범죄)는 해결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지은 자범죄를 해결 받으려면 반드시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도적같이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나의 자범죄를 토설하고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들어와야 온전한 구원이다. 아들의 영이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에서 하나님 자녀로 신분이 바뀌는 것이다.

 

이때부터 그리스도가 내 주인이 되기 때문에, 마음속에 미움, 다툼, 시기, 질투가 사라지고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낮게 여기며 배려하여 주며 오직 그리스도만 자랑하게 된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빛으로 만나 그 속에 그리스도가 들어가심으로 완전히 회심했듯이 그리스도가 마음속에 들어가시게 되면 그 사람의 모든 삶이 바뀌게 된다.

 

그리고 설사 잘못된 길로 간다 할지라도 내 속에 산영이신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절대로 잘못된 길로 가지 못하게 막아 주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유의지를 제한하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음속에 무형교회가 세워져 날마다 주님께서 그날그날 할 일을 인도하여 주신다. 이렇게 성령이 하시는 일과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형식에 젖어 있는 종교생활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모시는 일에 전심전력을 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이방 기독교인들 앞에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을 통해 나타나시지 화려한 모습의 사람을 통해 오시지는 않는다. 그래서 항상 나는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죄인이라고 낮추고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사모한다면 머지않아 인격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꼭 만나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어떠한 죄를 지었건 유 무식을 막론하고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영적인 아들로 인정하고 성령의 법을 지키지 못한 자범죄를 토설한다면, 나를 지배했던 죽은 영이 떠나가고 산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속에 들어오신 후에는 비로소 모든 죄에서 참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려면 지식과 명예와 돈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으며, 오직 자기를 죄인으로 인정하고 낮추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로 달려 갈수 있는 구원의 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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