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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인격을 입고 오신 이유

작성자나다나엘

작성일2019-08-27

조회수39

그리스도께서 인격적으로 오시는 이유

1:18-25

 

사도바울을 통해 이방에 복음이 전해진지 2천년 말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방인 가운데 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그 사람 속에 인격적으로 와 계신다. 부활해서 하나님 우편에 영으로 계신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다시 인격적으로 오시는 이유는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건져 주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자기 백성에게 법을 주시게 된다. 육적인 하나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육체의 법인 율법을 주셨고, 영적인 하나님 백성인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적인 율법인 성령의 법을 주셨다. 율법은 613가지 규정으로서 평생을 온전히 지켜야 구원에 이르게 되고, 성령의 법은 여자를 보고 음욕만 품어도 간음이 되고, 갖고 싶다는 생각만 해도 도적질이 되는 마음의 법으로서 신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지켜야 구원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법을 받게 되면 그 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인간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 법에는 자비가 없고 변개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 법으로는 살아남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엄위라는 것이다. 인간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법을 주신 것은 그 법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고, 구원의 방편인 자기 아들로 말미암아 그 법을 어긴 죄에서 건져 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인 엄위에 이어 또 다른 속성이 나타나는 것은 사랑으로서 자기 아들을 대속물로 세상에 보내주신 것이다. 아들을 통해서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고 싶으셨기 때문에 지키지 못할 법을 주셔서 죄 아래 가두신 것이다. 아들은 오직 죄인만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에 죄인이 될 근거가 필요하셨던 것이다. 그것이 곧 율법이요 성령의 법이다. 법으로 죄인이 되어야만 아들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 앞으로 달려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 땅에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인격적으로 오셨다. 이렇게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는 인간들의 아픔과 고통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신 것은 예수 자신이 인간의 모든 아픔과 애환을 헤아리신 후이다. 그래서 천한 직업인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시고 가장 밑바닥에 처하게 하심으로 인간을 속속들이 알게 하셨다. 또 예수 자신도 율법을 지키면서 율법 아래서의 고충을 맛보시고 율법 아래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무거운 짐인지를 몸소 느끼셨고, 또 율법의 저주로 병든 자들과 고아와 과부들의 애환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게 되셨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율법 아래 있는 자기 백성들의 곤고한 심정을 헤아리시기 위해서 30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4:4-5)

 

그래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을 건지러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죄인으로 나오지 않는 자들까지도 불쌍히 여겨 주시는 것을 보게 된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신 것이 그것이고,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시는 사건 등 그 외에도 많은 예가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인격적으로 오셔서 인간들 속에서 같이 살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연약함을 처절히 보고 느끼셨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야 예수께서 자기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게 된 것이다.

 

인간은 이미 범죄함으로 마귀의 자녀로 전락해 있었기 때문에 마귀의 손에서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 없는 자가 대신 죽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영적인 세계의 법칙인 것이다.

 

예수께서 해결하시는 죄는, 먼저 자기 육체가 채찍에 맞으심으로 율법을 거역한 죄에서 사해주시게 되며, 그 후에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를 사하시게 된다. 그 증거로서 성령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유대인의 구원과정이다. 이 두 가지 죄를 다 해결 받아야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께서 육체로 자기 백성에게 오신 이유는 자기 육체를 희생하여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육체로 오신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주로서 율법을 거역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지는 일을 하시게 된다. 그리고 예수의 피는 전 인류에게 효력을 나타내어 예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의 원죄를 사하고 그 증거로서 성령을 각 사람에게 보내주시게 된다.

 

그래서 우리 이방인들도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름으로 원죄를 사함 받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 백성이 되어 있다. 예수 이름에는 원죄를 사하고 마귀를 멸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원죄를 사함 받고 성령을 받게 된다. 예수 이름 속에는 그의 흠 없는 피의 공로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는 자범죄이다. 자범죄는 자기가 지은 죄로서 유대인들은 율법을 거역한 것이고 기독교인은 성령을 거역한 죄가 자범죄가 된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유대인에게는 육체를 입은 예수가 오셨고,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백성으로서 그리스도께서도 부활하신 모습 그대로 영으로 사람 속에 오시게 된다.

 

기독교인들은 부활해서 영으로 사람을 통해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성령을 거역한 죄에서 사하심을 얻게 된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이방인 가운데 사도바울 같은 자 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그 속에 영으로 들어가심으로 이방인 가운데 와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다시 이방인 앞에 오시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예수 피로 말미암아 원죄를 사함 받고 영이 마귀의 발아래서 빠져 나왔지만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지 못하여 마음이 아직 귀신의 처소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죽은 영에게서 빠져나오고 대신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좌정하셔야 구원이 완성된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인격을 입고 오시는 이유는 영적인 고아와 과부인 이방인들의 아픔과 곤고함을 맛보시고 헤아리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보내셔서 가장 밑바닥 삶을 살게 하시고 끊임없이 연단을 받게 하심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법 때문에 인간을 불쌍히 여겨 주실 수 없지만 아들을 보내서 인간의 연약함과 고통을 알게 하심으로 죄에 빠진 인간을 돌아보게 하시는 것이다.

밑바닥에 처해 보아야만 태어나면서부터 죽은 영을 가진 채 태어나서 죄에 물든 이방인들의 심정을 알게 되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사도 바울과 같이 하루아침에 거듭나서 이방인 앞에 왔다면 인간의 심정 싶은 것을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 마음 판이 어떤지를 살펴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과연 불쌍히 여김 받을 수 있는가. 예수께서 어떤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는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고통에 신음하는 자, 억눌린 자, 죄로 인해 마음이 곤고하여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는 구세주가 되어 주시지만, 스스로 구원 받았다고 유유자적 하며 남 위에 올라서서 짓밟고 무시하는 자들에게는 구세주가 되지 못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고 몸은 교회에 소속되어 있지만 실상은 모두 영적인 고아와 과부인 것이다. 진정으로 성도들을 자기 자식처럼 돌보고 살피는 목자가 없어 마귀에게 이리 찢기고 저리 찢겨서 만신창이가 되어 있고 자기의 심정을 토해놓고 의지할 곳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전전긍긍하고 기도해 보지만 아직 아들이 오지 않아 어느 것도 속 시원히 해결되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영적으로 오갈 데 없었던 자들이 자기의 비참함을 들고 나올 때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죄에서 건져주시게 된다.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살 자가 없지만 그 중심에서 살고자 해서 그리스도 앞에 나오는 자들은 건짐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시고 불쌍히 여길 자들은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길 자들은 긍휼히 여겨 주시게 된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끝까지 살리고자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그것을 끝까지 거부하는 자들은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서 다른 사람을 건지려면 우리 역시 밑바닥에 내려가서 심정을 헤아리고 왜 인간이 악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지 처절히 섭렵해야만 한다. 그래야 죄인을 끝까지 품고 자기를 희생해서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가 희생해 주지 않으면 한 사람도 건질 수 없다.

 

예수 이름만 불러서는 구원이 없다. 예수 이름은 우리 이방인에게 있어서는 모형이며 첫 것에 해당되며, 그리스도께서 실체이며 둘 째 것에 해당된다. 예수는 이스라엘 땅에 오신 메시야로서 우리 이방인에게는 성령을 받기 위한 방편으로서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는 역할을 하셨다. 이제 그 예수께서 영으로 이방인 앞에 구세주로 오셔서 이방인들을 성령을 거역한 죄에서 건져 주시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없으면 사생자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방인 앞에 도적같이 와 계신다. 영적인 고아와 과부들, 죄로 인해 마음이 곤고한 자들은 다 나와서 문제를 해결 받고 영적인 자유함을 누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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