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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째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

작성자나다나엘

작성일2019-09-05

조회수26

둘째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

요한복음1:1-18

 

첫 사람 아담은 실패의 사람이다. 그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 인류에게 죄가 들어오게 하고 사망을 가져 왔다. 그래서 두 번째 아담으로 예수께서 오시게 된다. 예수께서는 아담이 범죄한 것을 해결하는 해결자로 오셨다. 첫 사람 아담은 사망을 가져왔지만 둘 째 아담인 예수께서는 마귀의 모든 시험을 다 이기시고 인간의 구세주가 되심으로 생명을 가져오신 분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려면 예수를 알아야 한다. 예수가 하나님 품속에서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을 가장 잘 나타냄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보자가 되신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8). 그래서 자신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하시는 것이다(14:6). 예수가 하나님께로 가는 관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앞에 나가는 자는 하나님 앞에 나가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다 자신에게 주셨다고 하시는 것은 죄를 사하는 권세와 심판하는 권세까지 받으셨다는 말씀으로서 예수를 배척하게 되면 구원이 없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이 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지 않는 것은 결국 하나님도 믿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예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희생하여 내어줌으로 구원의 길을 여시고 자기 백성 유대인들을 율법을 어긴 죄에서 건지셨다. 예수 앞에 나오는 자들은 율법을 범한 죄에서 먼저 사하심을 받았다. 그 후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시게 되자 그 피의 효력으로 원죄까지 사함 받아 영생에 들어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율법을 거역한 죄를 해결 받지 못함으로 멸망으로 갔다. 그들이 믿지 못한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과 율법을 지켰다는 때문이다. 특히 바리새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내 놓을 정도였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거부하고 배척함으로 구원에서 떨어졌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어떠한가. 기독교인들도 예수를 믿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역시 신앙생활에 실패했다. 기독교인들에게서 예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전혀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불신자로 있다가 예수를 믿게 되면 술, 담배를 끊고 자신을 자제하는 등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조금 달라질 뿐 시간이 지나도 속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 이는 아직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죄의 근원인 죽은 영이 여전히 기독교인들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뜻을 따라 살지 못함으로 모두가 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죄를 물마시듯 마시며 살고 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3:9)

 

그것만 보더라도 아직 기독교인들이 예수로 거듭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자신들이 성령을 받았으니까 예수로 거듭난 줄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성령은 구원의 영으로 오신 것이 아니고 영적인 율법으로 주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동일하게 보는 데서 구원문제에 있어 치명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피의 효력으로 원죄를 사함 받고 그 증거로 성령이 오셔서 기독교인들의 영을 지배하고 계시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오실 수 있는 분은 그리스도이다. 기독교인들이 거듭나려면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해주시고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좌정하셔야 된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의도를 전혀 모르고 구원의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사단에게 속아서 구원받았다고 유유자적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름으로 예수 피의 효력으로 원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 백성의 신분이 되어 영적인 율법인 성령의 법아래 놓여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 아래서 하나님 백성의 신분으로 있을 때는 구원이 아니라 율법의 정죄 아래 놓여있었다. 율법을 어긴 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셨듯이, 우리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인 기독교인들에게는 성령을 거역한 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사람 속에 오시게 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문제를 해결 받은 후에라야 백성의 신분에서 하나님 자녀의 신분으로 바뀌어 영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 이방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피의 효력만 받은 하나님 백성의 신분이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원죄를 사함 받고 영이 마귀의 발아래서 빠져 나왔다는 뜻이다. 동시에 성령은 하나님 백성에게 주어진 영적인 율법으로서 성령을 받는 즉시 성령의 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법은 일점 일획이라도 범하게 되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너희에게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5:17). 이 말씀은 마지막 날 성령의 뜻을 거스린 죄 하나하나를 전부 따져 묻겠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의 율법은 육체의 법이다. 실제로 살인을 해야 살인죄가 적용되고 실제로 도둑질을 해야 죄가 되지만 성령의 법은 마음의 법이다. 마음으로 미워만 해도 살인이요 여자를 쳐다보고 음욕만 품어도 간음이 된다.(5:27-28).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자기 뜻대로 살아버린 것은 성령 받았으니 구원이라고 착각한데서 생긴 결과이다.

 

그래서 모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짓밟고 넘어짐으로 실패작이 되어 버렸다. 구원의 길에서 넘어졌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모습에 그리스도가 전혀 없고 마귀의 형상 그대로 남아있다. 세상에서 잘 되려고 하고, 시기 질투하고 아귀다툼을 하면서 나의 유익만 챙기려고 하는 것이 마귀의 형상이다. 예수 이름을 부름으로 원죄는 사함 받아서 영이 성령의 지배 아래 놓여 있지만,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를 해결 받지 못하여 죽은 영(세상 영)이 여전히 마음()을 지배함으로 마음이 아직 그리스도의 영역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사람 속에 다시 오셨다.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 아들은 유대인들의 구세주로 오셨고 영으로 오시는 하나님 아들은 기독교인들의 구세주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믿음에서 넘어졌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둘 째 아담으로 오셔서 기독교인들의 죄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시고 영생으로 인도하시게 된다. 기독교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거역한 죄에서 사하심을 받고 구원이 완성되게 된다.

 

유대 땅에 오신 예수께서 초라한 목수의 아들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오셨듯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도 초라한 모습으로 도적같이 은밀하게 오신다. 이는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들려질 때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따라가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지금까지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게 방해했던 죽은 영을 몰아내시고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주인으로 좌정하시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다시 거듭나게 된다.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과연 누가 그리스도 앞에 나오게 될 것인가? 신앙생활에 열심냈다고 하는 자들과, 특별한 달란트를 가지고 자기의 재능을 자랑하던 자들과, 은사를 받아 주변으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자들이 과연 자기 것을 다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무릎 꿇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기가 가진 것이 있는 자들은 그것이 자기 가 되어있고 그것으로 자기를 굳게 세우고 살아왔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 그리스도께서 예리한 칼날을 들이대실 때 그리스도의 말씀을 거부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성령을 거역한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건지러 오셨기 때문에 진짜 죄인이라고 하는지 안 하는지의 여부를 가려내기 위해 죄에 대해서 예리한 칼날을 들이대게 된다. 그 때 누가 과연 죄인이라고 할 것인가. 유대인들과 똑같이 여기서도 못나고 소외되고 별 볼일 없었던 자들이 자기를 죄인이라고 하기가 쉬울 것이다. 성령을 거역하여 마음이 병든 자들과, 사람들에게 무능하여 무시당하고 외면당했던 자들과 마음이 곤고한 자들이 그리스도 앞에서 죄인임을 시인하고 그 말씀 앞에 무릎 꿇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게 되면 신앙생활에 열심 냈다고 하는 자들이 오히려 불리해진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믿지 못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다고 하는 자기 에 사로잡혀 있으면 자기가 한 것에 대해 자부심이 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말씀보다는 자기 의를 의지하게 되고 그것으로 스스로 구원에 이르려고 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자기 의를 주장하게 되면 그것이 곧 대적이 된다.

 

그러므로 자기 열심을 내려놓아야만 자기의 참 모습이 보이게 되고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된다. 자기열심이라는 것은 자기의 참 모습이 아니요 자기가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위장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열심을 내려놓아야만 자기의 참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고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무릎 꿇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누가 그리스도 앞에서 자기를 시인하고 무릎 꿇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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