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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감 받은 자 라면

작성자마르다

작성일2019-01-27

조회수36

탕감 받은 자라면

마태복음 18:21-35


본문은 어떤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 빚을 진 종이 갚을 것이 없어 애원하자 불쌍히 여겨 빚을 모두 탕감하여 주었는데, 탕감 받은 자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고 옥에 가두는 것을 보고 탕감해 주었던 빚을 다시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합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복음 성가를 들으면 영낙없이 우리는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 같습니다. 인간은 자라면서부터 이렇게 받는 것에만 익숙해있고 주는 것에는 익숙하지 못해서 자기중심적이고 상대방을 배려할 수도 없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어쩔 수 없이 질서에 따라 움직이지만 마음속에서는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쌓이게 되고 그에 따라 사건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라는 질문에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하십니다. 그것도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중심으로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라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여기서 중심이라는 것은 우리의 겉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서부터 99.9%를 해도 안 되고 100%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껍데기로 조금 한 것을 가지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 뱃속에서 한날한시에 나온 쌍둥이 형제도 커가면서는 각각 성격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서 마음을 합할 수 없게 됩니다. 처음에는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간에도 서로 받으려고만 하기에 불화가 생기고, 부모 자식 간에도 엄밀히 따져보면 그 속에 계산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농담처럼 말하는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말을 자세히 생각해보면 상대적으로 남보다 내가 더 나아야 안심이 되므로 인간으로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라는 자아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속에 있는 죽은 영이 나를 붙잡고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영은 인간들을 죄짓게 만들어서 지옥으로 가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말로는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라 하면서 포장을 하지만 결국은 죄 속으로 몰아넣어 버리는 것이 죽은 영이 하는 일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성령 아래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성령을 따라 살지도 못했으면서 나는 예수 믿으니까하고 자신들의 겉모습만 바뀐 것을 마음속까지 바뀐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 안에서도 가진 자 끼리, 잘 나가는 자 끼리 어울리고 당을 지어 내가 하는 것은 모두 옳고 바르고 정의롭다고 생각하기에 그렇지 못한 자를 비판하고 무시하게 됩니다. 하나님 이름을 부르는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는 이 모습만 봐도 남을 용서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심에서 용서를 하려면 내가 죽어야만 할 수 있습니다. 자아가 없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 자아를 없애 버릴 수 있을까요?

 

기독교인들은 원죄와 자범죄를 모두 사함 받아야만 영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원죄는 우리조상 아담이 지은 죄이기 때문에 예수 이름을 부를 때 예수 피의 효력으로 하나님이 값없이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우리를 마귀 발아래서 나오게 해 주셨습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서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자범죄를 해결해 주시려고 두 번째 은혜를 베풀어 주시게 됩니다. 이모든 것이 내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사도바울 속에 빛으로 들어가셔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신 것처럼, 이제 이방인 중에서 한사람을 택해서 그리스도가 그 속에 들어가서 인격을 입고 오실 때, 우리는 그 말씀을 믿고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내속에 있는 자아’(죽은 영)는 죽고 산영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어 그 때 부터는 진정으로 남을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죄를 하나님이 심판하기로 작정 했다면 우리는 한사람도 살아날 사람이 없습니다. 죄인인 우리 앞에 하나님이 직접 오실 수 없어 아들을 보내 주셔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자 하십니다. 아들을 죽여서 인간들을 마귀 발아래서 꺼내 주신 것도 모자라서 이제 성령을 어긴 죄까지 해결해 주시러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어떤 노력도 없이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를 통해 아담이 지었던 '원죄'를 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증거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부패하여 성령을 거역하고 또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자범죄'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모두 성령을 거역한 '자범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자범죄'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통해 도적같이 다시 오셨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자범죄'를 해결 받은 사람이 바로 일만 달란트 탕감을 받은 사람입니다. 


일만 달란트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서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갚아도 다 갚을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사람은, 오백데나리온 빚진 자도 가볍게 탕감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범죄'를 탕감 받지 못한 자는 남의 죄도 용서해 줄 수 없습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용서를 받았다면, 나도 남을 용서해 주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죄를 탕감 받지 못한 자는 남의 죄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남의 죄를 용서해 주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내 마음속에 모셔야 합니다. 그래야 내 자아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인도하는 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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