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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과 이방인의 율법과 복음

작성자마르다

작성일2019-06-09

조회수69

유대인과 이방인의 율법과 복음

누가복음18:9-14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세상에서 거룩히 구별하기 위해서 세운법이다. 율법은 인간에게 죄악성을 드러내고 죄인 됨을 보여줄 뿐이고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옳은 자를 위해서 주어진 것이라기보다 법을 어긴 자 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유대인들은 태어나자마자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율법의 보호아래서 모든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 이방인들처럼은 마음이 죄로 물들어 있지 않다. 이들은 613가지나 되는 율법을 지키다가 그 중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게 되면 법을 다 어긴 것으로 된다(2:10). 율법을 어긴 것 때문에 죄가 들어오기는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율법도 없이 죄를 먹고 마시고 살아서 죄악의 씨가 태어나는 이방인처럼 죄가 관영하지는 않는다. 그 때는 문화가 덜 발달한 시대였기도 하지만 그 시대에서 본다면 또 악이 관영했던 것이다. 그래서 죄가 관영하지 않았던 구약시대의 므드셀라 같은 경우는 구백 육십 구세를 살았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오직 하나님 법만 있기 때문에 모든 생활 자체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다. 그래서 율법이 없어 죄를 느끼지 못하는 이방인과는 달리 율법아래 있기 때문에 못 지키게 되면 죄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13)는 말씀은 율법아래 있었던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의 율법의 완성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같은 아담의 후손임에도 왜 유대인과 이방인이 차이가 나는지를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사흘 길 밖에 안 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는 중에 원망, 불평을 하다가 1세대들은 여호수아와 갈렙만 남고 모두 죽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1세대들은 애굽 생활이 몸에 배어 거기서 누렸던 문화와 모든 세상 것들을 놓지 못하고 그리워함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져버려 죽게 되었고 애굽의 문물을 맛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난 자인 2세들만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한번 맛본 세상 것들을 놓기란 힘이 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도 없이 마음대로 살아온 이방인들과는 달리 율법의 보호아래 있었던 유대인들은 예수이름만 불러도 구원이 되는 것이다.

 

오직 율법을 지키기에만 열심을 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율법을 열심히 지켜서 구원에 이르겠다는 것도 그럴 수밖에 없다. 열심을 낸 자들은 상대적으로 열심을 내지 않고 오히려 법이나 어기는 자들을 무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본문에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하며 기도하는 바리새인은 율법을 잘 지킨 자기를 의롭다고 하고 못 지킨 세리를 멸시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은 이렇게 갈 수밖에 없는 유대인들의 한계를 기록한 것이다.

 

율법아래서의 삶은 아무리 열심을 내도 하나의 종교 생활에 불과하다. 종교생활은 이렇게 남을 비판할 수밖에 없고 열심을 내는 자만 구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하신 말씀도 오직 제사 지내기에만 급급한 유대인들이 성전 안에서 제사에 쓸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상을 엎으시고 돈을 쏟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율법으로 제사 지내기에만 몰두하고 제사장과도 결탁하여 불법을 행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한탄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렇게 종교적 행위에만 매달려 있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잘 지켜서 구원 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지킬 수 없는 죄인을 만들어서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해 주시려는 것이 하나님 뜻이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고백을 하는 세리 같은 자를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에 이르게 해 주시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바리새인, 율법사, 서기관들을 정죄하고 있지만 유대인들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가 기독교인들이다. 현재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종교생활일 뿐이다. 종교생활은 열심을 내면 낸 자 일수록 남을 깔아뭉개는 것이 결국 내가 더 의롭다고 말하는 것이나 똑 같다. 주일 성수하고 교회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라고 말을 하지만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함이고 의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뭐라도 열심을 내야 남보다 위에 설 수 있고 열심을 낸 것 때문에 남을 정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열심으로 자기 의를 삼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죽은 영이 자기 정체를 숨기고 나는 착하고 선한 일을 했으니까 구원이라고 하고 있으니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죽은 영이란 태어날 때부터 내속에서 주인 노릇을 하면서 죄를 계속 양산해 내는 악한 영을 말한다. 죽은 영은 인간 속에서 예수처럼 착한 것으로 가장하고 조정하고 있다가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 목적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의롭다, 착하다 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를 배제한 상태에서 열심을 내면 낼수록 의만 쌓게 되고 이것이 하나님 또는 예수로 둔갑하여 있다는 것을 모르고 죽은 영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율법도 없이 막 살아왔기 때문에 죄악의 씨앗이 태어나는 것이 유대인들과는 다른 점이다. 애굽 생활과 문화에 물든 이스라엘 자손 1세대들이 그것들을 버릴 수가 없어서 원망, 불평 하다가 광야에서 다 죽고 두 명만 살아남았듯이 이미 세상 문화에 물든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았어도 세상 것을 놓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남을 짓밟고 출세를 해서 세상에서 떵떵거리고 잘 살아볼까, 기독교인들이 잘 살지 못하면 불신자들에게 하나님 자녀로서 본이 안 된대나 하면서 오히려 세상 사람보다 더 세상 것을 붙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성령도 자기들이 살아온 세상 개념으로 받아 들여서 자기 생각에 빠져서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인 인 죽은 영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 받아서 구원인줄로 착각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은 구원의 영이 아니고 법으로 오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그러했듯이 하나님은 먼저 법을 주셔서 그 법을 따라 살아보고 지킬 수 없는 죄인이라고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이라고 하고 기독교인들은 성령 받아서 구원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세상법과 연결된 것을 단절시킬 수 있는 방법은 내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다. 세상 법은 고무줄과도 같은 법이다. 가령 백 원을 도둑질하면 죄가 안 되고 백만 원을 도둑질하면 죄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 법처럼 하나님 법을 따라 가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왔을 때 세상 것을 기준 삼아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죽은 영의 지배를 받아 온전치 못한 자는 하늘의 것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그리스도를 육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판단을 하다보면 원망,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것이 점점 자라서 결과적으로는 대적 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사람을 통해 인격적으로 오실 때 그 앞에 죄인이라고 나온 자만 구원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의 구원 과정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왔을 때는 왕따 당하는 사람, 덜 착한 사람, 별 볼일 없는 자들이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할 때 그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다. 유대인들 중에서도 세리, 창기, 병자 같이 못난 자들이 구원을 받은 것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 앞에서도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말씀처럼 되는 것이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워 오듯이 세상은 걷잡을 수 없이 타락해 있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하는 시대가 되었다. 죽은 영으로 인해 저주 아래 있는 우리에게 희망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구원의 완성은 예수 이름만 불러도 되지만 기독교인들의 성령의 법 완성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부르기만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그리스도가 내 속에 들어와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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