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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그리스도영의 사역

작성자마르다

작성일2019-07-06

조회수85

성령과 그리스도영의 사역

사도행전16:6-10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위 본문에 성령과 예수의 영이 각각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정오의 빛보다 더 밝은 빛으로 예수영이 먼저 오게 되었다. 빛으로 왔다는 말에서 빛은 곧 예수 영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그 증거로 눈이 멀었는데 눈이 먼 이유는 성령을 받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예수께서 부활했다가 가신 뒤이므로 대부분 성령은 안수 할 때에 들어오는데 아나니아에게 인도받아 안수 받고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성령을 받는 순간이다. 기독교인들은 한사람도 이 체험을 한 사람이 없다.

 

사도바울과 제자들이 다른 점은 제자들은 성령만 얘기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성경에는 예수가 제자들의 죄를 사해줬다는 것이 다 가려져 있다. 예수가 율법의 완성자로서 완성을 시켜줘야 하기 때문에 이미 예수로부터 죄사함을 받았던 제자들은 마지막으로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와 예수가 계시는 성소의 휘장이 찢어져서 하나로 되어 성령이 지배를 하게 된다.

 

예루살렘 성전은 인간의 영혼에 초점을 맞춰서 지어졌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영 인 성령이 계시는 곳 성소는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 마당은 인간의 육체를 뜻한다. 우리의 영은 하늘에 속한 것으로 지성소에 해당하고 우리의 혼(마음)은 땅에 속한 것으로 성소에 해당한다. 유대인들은 육체로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먼저 예수로부터 죄사함을 받고 나중에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원죄를 사함 받고 성령의 지배를 받아 지성소와 성소의 휘장이 찢어져서 구원이 완성되지만 이방 기독교인들은 예수 이름을 부르면 성령이 먼저 와서 우리의 영을 관할하고 혼(마음)은 그리스도가 들어와야 지성소와 성소의 휘장이 찢어져서 하나로 되어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고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성령이 오심으로 예수가 죽었다 살아난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마귀의 발아래서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성령과 그리스도영이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은 죽고 사는 구원의 문제가 달려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이 부분을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다.

 

유대인들이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구원의 완결을 말한다. 제자들도 예수께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았지만 아직 마귀 발아래서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믿음이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를 부인할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처럼 되었고 물위를 걸어가다 빠져 버리는 이유도 아직 성령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아담이 범죄 할 때 하나님이 떠난 자리를 마귀가 차지했지만 예수가 승천하여 성령이 다시 와서 지배하므로 그 때부터 담대해져서 예수는 하나님 아들이라고 외치고 다녔던 것이다.

 

육체로 오신 예수는 죄가 없으므로 성령만 받아서 공생애를 시작할 수 있었다. 예수가 제자들과 유대인들에게 성령으로 표적을 보여주는 이유는 나타난 표적을 보고 그들이 믿고 따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아래 있었기 때문에 죄만 사해주면 따르는 표적으로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라고 확증하게 된다. 표적까지 증거하게 되어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2:41)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성령만 받아서는 이방인 사역은 어렵기 때문에 율법을 잘 아는 자 인 그에게 예수가 먼저 들어간 것은 사도 바울의 복음을 예수가 들어가서 확증해주기 위함이다. 그를 예표로 세운 이유는 첫째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예수께서 바울 같은 자를 통해서 이방인에게 가겠다 하는 것이며, 셋째 장차 구원도 바울처럼 성령과 그리스도영이 들어가야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본문 6-7절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만 유일무이하게 성령과 예수의영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령이 하지 못하게 했지만 자기 뜻대로 가다가 결국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는 것에 따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령만 받아서는 자유의지를 제한하지 않기 때문에 바울은 가려고 했던 것이고 예수 영은 자유의지를 제한하기 때문에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역할이다. 기독교인들이 넘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그 속에 죽은 영이 있기 때문에 죽은 영이 끌고 가는대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자는 점점 자라서 완전히 장악하게 되어 나는 없어지고 그리스도만 나타나는 것이다.

 

바울 속에 예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때 당시 바울의 말을 듣는 자는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바울과 마음이 하나 된 자들은 바울 속에 있는 예수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고 성령까지 오게 되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로부터 직접복음을 받은 자 이후로는 더 이상의 구원의 반열로 들어서는 사람은 없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위해 쓰임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3장을 보면 당시에 성령만 받은 자도 같이 있었는데 성령만 받은 자는 마음속의 죄를 사함 받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이 될 수가 없다. 두 부류가 겉으로 보기에 똑같이 복음을 전하는 것 같지만 성령만 받은 자는 예수가 없는 복음이고 알맹이가 빠진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여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3:3) 라는 책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이 쓴 성경과 바울이 쓴 성경이 다른 이유는 제자들은 예수가 하신 일을 기록한 것이고 사도 바울의 글은 예수가 들어가서 썼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다. 바울은 성령과 예수 영을 동시에 받았지만 제자들과도 특별히 다른 것이 없었기 때문에 성령만 받은 제자들과 구분이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 입장에서는 그 속에 그리스도가 들어 있어서 성령과 그리스도영을 따로 말을 해도 틀리는 것이 아니고 같이 쓴다 해도 잘못된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의 영향권 아래 있다는 말이다. 예수의 피의 공로로 예수이름을 부르는 자에게는 이방인까지 성령을 주시지만 이방인들은 아직 마음으로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죄 인 자범죄를 사함 받지 못했기 때문에 지성소와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지 않고 담이 가로 막혀 있어서 우리 영이 주인만 바뀌어 있을 뿐인 것이다. 혼적인 부분인 성소에 그리스도가 계셔야만 구원이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 속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마귀 발아래서 우리영이 성령의 영향권으로 주인만 바뀌는 것이다.

 

하나님의영 인 성령은 우리의 영을 관할하는데 우리가 성령을 받게 되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받는 순간 뜨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자기의 모든 재산을 다 바치고 싶고 미워하던 사람들까지도 다 사랑스러워 보인다. 그러다 점점 식어지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방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악의 씨가 태어나서 자라고 자범죄를 해결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 법도 없이 세상과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가기 위해 직장도 다녀야 하고 세상 사람과 다름없이 살아가다 보면 정직할 수도 성령을 따라 살 수도 없다. 설령 벙어리가 되고 장님이 된다 해도 생각 속에서라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어서 인간으로서는 해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성령만 받고 속에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처음과 끝이 다르다.

 

기독교인들은 자기 속에 악한영이 있어서 성령과 그리스도영은 같은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렇게 말을 해야 구원이 되므로 속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은 하시는 일이 다르다. 아버지인 하나님은 모든 세상일과 역사를 주관하시고, 하나님 영인 성령은 우리의 영을 마귀 발아래서 나오게 하셔서 개개인적으로 다스리는 것이고, 아들인 그리스도는 오직 영혼 구원만 하시기 위해 개개인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삼위일체라 함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우리 속에 그리스도가 들어와야만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신다. 율법아래 살았던 유대인들은 예수를 하나님 아들이라고 믿기만 하면 되지만 기독교인들은 세상에 속해서 세상과 구별이 안 되고 속에 악이 들어 있어서 영적인 법을 어겼기 때문에 성령만 받아서는 구원이 안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왜 성령부터 주게 되느냐하면 성령으로 표적도 줘서 믿게 하지만 자기 생각은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성령은 받는 순간이 성령의 법을 지켜야 하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출발이기 때문에 율법 역활만 할 뿐 온전케 될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었다함은 예수 이름만 부른 것일 뿐이고 진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속에 예수가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들어오면 미주알고주알 다 간섭하고 지시하신다. 그리스도가 이끌고 가시기 때문에 성령아래서는 주님이 들어가게 되면 눈에 띄게 차이가 나게 된다. 그래서 성령아래서 살아본 자들을 선택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사역을 하고자 하신다.

 

성령과 그리스도영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이유는 성령은 표적을 보여줘서 불신자들을 믿게 해서 백성을 만들지만 그리스도영을 받으면 양자의 영으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법 아래서는 성령 충만 내지는 때로 감화 감동을 주지만 그리스도가 와서는 표적도 보여주지 않는다. 표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부왕 부왕해지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근본적인 것부터 고치라고 하신다. 먼저 똥을 치워야 똥파리가 날아가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병이 들었다 해도 병부터 고쳐주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마음부터 해결하지 않고 병을 고쳐 주게 되면 언제든지 악한영이 방해하여 재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귀는 예수 피로 원죄를 사함 받아 성령이 오심으로 우리의 영을 지배할 수 없지만 항상 우리를 미혹시키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역사하고 있다.

 

내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두려움도 없고 세상과 타협도 안하고 따라가지도 않는다. 악이 관영할 대로 관영해진 앞으로의 시대는 마약이 판을 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 또한 그리스도가 있어야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오늘날 목사들이 세습을 하는 이유도 그리스도가 없고 세상 영과 구별 없이 살기 때문이다. 자신 속에 그리스도가 들어왔을 때는 성령과 그리스도영을 하나라 말해도 잘못된 것이 없다. 이는 마치 그리스도를 부각 시키고 성령을 무시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자유의지를 제한하기 때문에 나는 없어지고 그리스도가 이끄는 대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있는 자는 죄를 지어도 마귀가 청구하지 못한다. 이미 예수 앞에 죄인이라고 항복을 했기 때문이고 예수가 그 죄를 대신 짊어졌기 때문에 자유를 얻는다는 말이 바로 이 뜻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네가 손을 들고 오면 내가 네 속에 들어가서 네 죄를 없이 하기 때문에 마귀가 청구하지 못한다고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손을 들지 않으면 나중에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이방인들은 속에서 악이 자랐기 때문에 손을 들고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오면 죄에서 자유롭게 된다. 내 대신 지은 죄를 다 담당해주시는 것이다. 속에 그리스도가 있어도 죄를 안 짓고는 못산다. 인간은 법을 다 지키고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그리스도가 담당해주셔야만 죄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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