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다 보기

HOME > 거듭난자들 > 두아디라 > 마르다 > 보기

제목

보지 않고 믿는 자와 보고 믿는 자

작성자마르다

작성일2019-07-12

조회수34



보지 않고 믿는 자와 보고 믿는 자

요한복음 20:24-29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도마는 예수가 부활해서 오셨을 때 함께 있지 아니해서 그 사실을 믿지 않고 있다가 예수가 다시 오셨을 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시며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해서라도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말씀이시다. 도마는 믿음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세밀하게 돌을 다듬는 석수장이답게 자기 눈으로 확실하게 확인하고 나서 믿지 못했던 자신을 꺾는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도 물고기를 잡는 것에 잔뼈가 굵은 어부였음에도 자기의 상식을 내려놓고 예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졌을 때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며 예수를 믿지 못한 것을 고백했었다.

 

기독교인들은 예배의 절차와 형식을 거룩하게 잘 지키는 것을 믿음으로 생각한다.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다니고 십일조를 잘하고 새벽기도를 열심히 다니는 것이 곧 믿음이고,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낭독하지 않으면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마다 십자가를 세워놓고 그것을 바라봐야만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 같고, 꼭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를 해야만 하나님이 역사를 하신다고 생각한다. 교회 안을 꾸미는 모든 기구들도 예루살렘 성전의 축소판으로 갖춰서 겉으로 거룩함을 나타내서 그것을 보고 믿을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눈으로 보고 하는 신앙생활은 그것에만 심취해서 마음으로 들어가서 믿을 필요가 없다. 유대인들이 제사만 열심히 드리고 정작 믿어야할 예수는 배척해 버리듯이 기독교인들이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오직 그것만 붙들려고 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이름만 부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이렇게 눈으로 보이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현실이다. 어떤 사람이라도 이렇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어서 다른 생각은 해볼 수가 없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율법(성령)을 마음에 받은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이라서 축소가 됐지만 유대인들은 육체에 율법을 주셨기 때문에 날마다 소 잡고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려야 했다. 기독교인들도 예수 이름만 부르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유대인들이 날마다 소 잡고 양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이유는 율법은 온전히 지킬 수 없는 법이라는 것을 깨닫고 율법을 어긴 죄를 가지고 예수 앞에 나와 죄사함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잘 지켰기 때문에 구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이 주일 예배를 드리고 삼일 예배, 금요철야, 각종 기도회로 모이는 것도 부활하신 그리스도 앞에 나가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죄를 해결 받기 위함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성령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에"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는 말씀은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를 믿어야 하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성령의법 완성자로 오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이다.그러므로 첫 것은 둘째 것의 모형으로 주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받은 성령은 구원의 영이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첫 출발을 하는 것으로 영적인 율법으로 온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육체에 율법을 준 것처럼 기독교인들에게도 마음속에 법을 줬기 때문에 영적인 율법인 것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킨 것이 구원이라고 했지만 예수를 통과하지 않고는 구원에 이를 수 없듯이 기독교인들도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 이름을 부르고 받은 성령을 구원이라고 한다면 공평한 하나님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면 구원에 이르지만 기독교인들이 예수이름을 불러서는 원죄만 사해진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이름을 부르면 에덴동산에서 우리 조상 아담이 지었던 원죄가 예수 피의 효력으로 사해짐으로 우리가 마귀발아래서 나오고 성령이 다시 우리 곁으로 오시게 된 것이다. 마음으로 따라 살아야 하는 성령의 법은 생각만 해도 죄가 되기 때문에 누구라도 지킬 수가 없다. 신약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말씀을 다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도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 앞에 나가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한 자범죄를 해결 받아야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오셔서 진짜 믿음은, 성령도 눈에 보이지 않게 오고 부활하신 예수도 눈에 보이지 않게 오는 것을 마음으로 믿어보라고 하신다. 여기서는 어떤 형식도 의식도 갖추지 않기 때문에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따라갈 수가 없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도적같이 아무도 모르게 아주 못난 자, 겉으로 보기에 꾀죄죄해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자를 통해서 오시기 때문에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믿을 수가 없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들어오는 순간 나는 별 볼일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사도 바울처럼 죄인의 괴수라는 고백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나의 찌질함과 악한 모습만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신 사람은 오직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은혜밖에 자랑할 것이 없다. 죄인 인 나를 누가 이렇게 만들어 주었는가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다. 왕도 대통령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내놓으신다. 하나님은 마음 중심을 살피시는 분이다. 큰 사고가 나서 건물이 무너져서 갇히게 됐을 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라도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기 때문에 신을 찾게 된다. 이렇게 긴박한 상황이 아니면 인간은 적당히 신을 찾을 수밖에 없고 오히려 악한 영의 방해만 받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모든 생사화복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10:29) 는 말씀처럼 목숨은 하나님이 걷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마귀가 계속 청구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떨어지는 것이다. 불신자라도 살고 싶어서 마음 중심에서 기도하면 들어주신다. 그러므로 목숨이 경각에 달릴 때 기독교인이라도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지 않고 적당히 구하면 살려 주지 않는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하나님 일뿐만 아니라 불신자의 하나님도 되신다. 불신자라도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살려주시지만 이것이 구원은 아니다. 불신자들은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받아야 하는 관문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세상 모든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상천하지의 신이시다.

 

하나님이 직접 우리 곁에 올수 없어 성령으로 각 사람의 영에게 오신다. 성령은 하나님 영이지만 하시는 사역은 틀리다. 불신자는 성령을 알 수 없고 예수 믿는 자에게는 예수의 피 흘림을 통해 마귀가 나를 다시 지배하지 못하도록 성령이 내 영을 보호하기 위해 오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본질로서 유대인에게는 구원의 완성으로 오시지만 이방 기독교인들에게는 내 영을 보호해야 하기 위해 개개인에게 법(성령의 법)을 주시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 감화 감동으로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죄 때문에 다 지나쳐 버린다. 하나님을 따라 가려면 너무 막연해서 좀 더 가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성령을 받는 것이고 우리 죄로 인해 성령도 따라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와야 인간의 영혼에 초점을 맞춰서 지어진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의 휘장이 찢어짐으로 하나님, 성령, 그리스도를 다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만 받아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내 마음속에 오셔서 자식에게 어머니가 얘기를 하듯이 인격으로 오신다. 그리스도는 미주알고주알 대화하듯이 말한다. 성령으로는 감화 감동을 주기 때문에 지나쳐 버리기가 쉽지만 그리스도는 누구든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신다. 이렇게 하나님, 성령, 그리스도가 하시는 사역이 바로 삼위일체가 되는 것이다.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없으면 기독교인들도 이단들도 자기 자랑만 하게 된다. 거룩한 모습으로 예수 흉내를 내고 성령이 말씀하신다고 하지만 예수로 둔갑한 귀신이고 성령을 빙자한 것뿐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자랑은 마귀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이단들이 내세우는 것을 보면 자기가 재림 예수라든지 보혜사 성령이라며 결국 자기 자랑을 하고 있다. 자기 유리할 대로 교묘하게 성경을 풀고 있지만 파고 들어가 보면 하늘의 것이 아니고 전부 세상 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는 세상 피조물을 가지고 인간을 농락한다. 성모 마리아상 눈에서 피가 흐른다하면 인간들은 거기에 속아서 꼼짝 못하고 당하는 것을 본다. 눈으로 보이는 것들만 쫓다 보면 이렇게 마귀의 미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특성은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눈으로 보이는 것을 믿고 쫓는 것은 다 거짓이기 때문에 성령만 받은 기독교인들과는 반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있는 자는 자기의 악함을 자랑하기 때문에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못 믿는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핸디캡이 없는 사람이 없다. ‘죽은 영이 주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문제라도 갖고 살고 있는 것이다. 죽은 영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없고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만 해결 받을 수 있고, 그리스도가 내 마음속에 좌정해야만 하나님의 완성품이 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인격을 입고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가 죄 속에서 나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인도해서 죄인이라고 항복을 하면 내속에 들어와서 나의 옛사람은 없어지고 내 주인이 되어 이끌고 가기 때문이다.

 

 

 

 



첨부파일 다운로드: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미투데이 공유
  • 요즘 공유
  • 인쇄하기
 
이름 : 비밀번호 : 스팸방지코드 :
하단로고

새한중앙교회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삼성리 584-1 

Tel : 031-774-6301 / Fax : 031-774-6305 

선교비후원계좌 : 농협 351-0930-6631-83(새한중앙교회)

Email: ksk6307@naver.com / h0sea@naver.com

Copyright ⓒ 2013 새한중앙교회 /  정보관리책임자:김찬희